[이상용 수석논설주간] 코로나19 백신을 최초로 개발해 전 세계에 공급하고 있는 화이자(Pfizer)는 그의 파트너사인 바이오앤테크사에 가려 우리나라에선 별로 주목받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화이자는 2018년 바이오앤테크와 mRNA 기반 독감 백신 개발 계약을 하고 연구를 진행해왔다.
코로나가 터지자 화이자는 바이오앤테크와 공동으로 mRNA 기반 코로나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mRNA 기반 백신 기술은 바이오앤테크가 가지고 있으나 직원 1,300명 규모의 독일 바이오사가 전 세계에서 백신 실험 참여자를 신속하게 모집해 테스팅하고 수억개의 도스를 제조할 수는 없다. 화이자는 불과 6개월 사이에 4만3천500명을 테스트 완료하고, EU, 미국, 영국,일본 등에만 5억 도스 이상을 공급하기로 했다.
화이자는 1849년 독일 이민자인 찰스 화이자와 그의 사촌 찰스 에르하르트에 의해 뉴욕에서 창립됐다. 화이자는 자체 연구개발을 계속하면서도 인명사고 리스크가 큰 제약업종의 속성상, 수많은 소송전을 견뎌내고, 줄기찬 M&A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해온 백전노장의 글로벌 플랫폼이다. 화이자는 현재 존슨앤존슨, 로슈, 머크 등과 함께 세계 제약사 랭킹 5위권 안에 포진하고 있다. 기자가 보기에 화이자 없는 바이오앤테크 단독의 백신 개발과 보급은 가당치 않은 얘기로 보인다.
선진국을 바라보는 한국 기업들은 바이오앤테크사의 벤처로서 도전 모델이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제 화이자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소위 전문가, 전문직업, 전문기업은 단 며칠도 연구개발을 손 놓을 수 없으며, 공부할수록 모르는 게 나타나고 새로운 도전자를 마주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마치 바이올리니스트가 단 하루도 바이올린을 잡지 않으면 안 되듯이 세계 정상기업들은 연구 개발과 함께 새로운 기술에 열려 있지 않으면 도태된다.
중소기업에서는 연구개발만 해도 되지만 대기업은 연구 개발과 벤처기업의 M&A와 그들과의 협력을 동시에 해야 한다. 대기업이 연구개발만 해서는 망한다. 화이자도 백신개발을 해왔기 때문에 바이오앤테크의 mRNA 백신 기술의 중요성을 알아채고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전문성이 없으면 M&A이고 협력모델이고 할 수 없다. 기술 수준이 미국기업들에 비해 못지않은 일본기업 중에 글로벌 기업이 적은 것은 이와 같은 ‘열린 상생경영’에 익숙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제약사 순위 30위권의 3분의 2가 미국기업들이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말로 상생을 말할 게 아니라 진정한 글로벌 강자들은 ‘열린 상생경영’을 실천하고 있음을 주목할 때가 됐다. 유망 중소기업과의 협력과 충분한 값을 치르고 M&A하는 것이야말로 경제생태계도 살리고 본인들의 지속적인 경쟁력을 유지하는 비결임을 화이자의 경영에서 엿볼 수 있다.
M&A할 때는 중소기업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술에 내재된 노하우까지 이전받을 수 없다. '기술이전'이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단박에 기술의 내밀한 속성을 알 수 없기에 원천 개발자와 머리를 맞대고 같이 대화도 나누고 스스로 해봐야 한다. 그러려면 시간이 넉넉해야 한다. 미국기업 간의 M&A를 보면 돈을 넉넉히 주고 기존 기술진과 경영진들을 고스란히 근무하도록 한다.
중소기업의 우수한 기술을 ‘도둑질을 하려고 하거나 싼값에 후려쳐 사려는 대기업의 타성을 하루속히 청산해야 한다. 다행히 한국의 대기업들도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이런 병폐가 서서히 벗겨지는 듯한 긍정적인 모습도 보인다.
현대차가 지난 12월 4족 보행 로봇으로 유명한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해 최대주주가 됐다. 영화 ‘아이로봇’을 보면 로봇제작사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내용인데, 앞으로 로봇 제작산업이 현재의 자동차산업과 같은 절대 우위의 제조산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재계도 글로벌 경영을 아는 세대로 교체되고 있다. 삼성과 SK, 현대차, 네이버가 선도적으로 글로벌 M&A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모습은 고무적이다.
LG가 구광모 회장의 취임 이후 보수적 기술경영에서 탈피해 AI와 로봇 분야의 대형 M&A에 적극 나설 태세다. LG전자는 지난해 12월 23일 글로벌 자동차 부품 업체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전기차 파워트레인 분야 합작법인 설립을 전격 발표했다. 신설법인의 지분은 LG전자 51%를 보유하고, 마그나가 49%를 가지는 형태다. LG전자 측은 다가올 전기차 시대를 대비한 것이라고 밝혔다. 마그나는 세계 3위의 대형 자동차 부품회사다.
지금은 실리콘밸리 벤처기업 출신 일론 머스크가 우주산업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중동의 소국, UAE가 2021년 12월 화성 탐사 로켓을 발사하기로 예정돼 있다. 한국의 국가 주도 로켓개발은 더디기만 하다.
국가 주도 연구개발은 ‘출연연’까지, 기업 보조금은 마중물만 대줘야
정부는 ‘강제력’을 동원할 수 있으므로 징세를 통해 거둔 돈을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는 데에 쓰고 싶어 한다. 가시적인 성과를 보임으로써 득표하는 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시적인 성과가 잘 나타나는 곳은 경제성장과 복지 분야일 것이다. 복지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아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좋아해도 혜택 대신에 세금을 부담을 하는 사람들은 복지에 대해 비우호적이다. 하지만 경제성장 지표엔 누구도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산업발전과 과학기술 개발이란 명목으로 쏟아붓는다. ‘개도국 티’라는 말이 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좀 성공했다는 개도국의 정치지도자와 기업가들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절대 긍정’의 심리를 자랑하는 이들이 있다. 큰 꿈을 가지는 거야 나무랄 이유가 없지만 중간 사다리 단계에 대한 플랜 없이 ‘무조건 하면 된다‘는 건 개도국 성숙기에선 곤란하다. 백신 구매를 머뭇거린 데에는 ‘개도국 객기’를 부린 것은 아닐까. 아니었기를 바란다.
정부 예산을 ‘눈먼 돈’이라고 표현하는데, 눈먼 돈만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사업하면 거의 실패한다. 내 돈이 들어가고 그 보상이 자신들에게 돌아올 수 있어야 온전한 기술개발의 타깃 안에 들 수 있다. 그것도 100% 성공은커녕 한 자리 숫자 이하의 성공확률일 것이다.
기술도 대학 연구실 기술과 출연연 기술은 성격이 좀 다르다. 대학 연구실은 과학적 발견과 이론에 치우친 거라고 하면 출연연 기술은 실용성에 방점을 찍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또한 출연연의 실용적 기술이 상품성 있는 기술로 가려면 갈 길이 멀고 험난하다. 상품성이 있으려면 한 가지 기술로는 안 되고 여러 가지 기술들이 융합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짧게는 5년, 길게는 20~30년 걸릴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상품성 기술’이란 말에는 광고와 마케팅, 홍보, 영업의 요구가 반영돼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만큼 시의성을 잃지 않는, 기민한 창의성이 요구된다. 대학과 출연연은 순수하게 기술만 개발하면 되지만 상품성 있는 기술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제4차 혁명기술의 특징은 AI, 빅데이터, 로봇, ICT, 바이오, 신재생 에너지 등이 상호 융합되고 창조되는 과정이 불규칙적인 나선형을 그리며 발전한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목표도 나와 있으나 어디로 튈지 연구개발자 자신도 모르는 상황이다. 자연히 융합적 연구를 다반사로 하는 기업의 연구개발실이 현재 세계 기술을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이 연구개발과 첨단교육의 중심 센터로 진화 중
물론 대학과 출연연의 개별적 연구개발이 중요하긴 해도 21세기 R&D의 화두는 여러 기술들의 융합이므로 기업연구개발실이 급부상하고 있다. 대학과 출연연의 기초연구와 응용기술이 여전히 중요하고 필요하나 현장에 필요한 기술로 거듭나는 기업 연구개발실이 주역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AI와 빅데이터 이전에 ICT 기술과 소프트웨어 등도 먼저 기업에서 일어나고 난 뒤에 대학에서 관련 학과가 생겨났다. AI 기술이 각광 받자 정부가 지원금을 조성하고 대학들이 서로 학과를 설립하려고 부산을 떨고 있다.
영국의 제1차 산업혁명도 공장의 직인들에 의해 먼저 일어났다. 제4차 산업혁명도 그런 과정으로 일어나고 있으므로 전혀 놀랄 일은 아니다. 일론 머스크의 전기차와 재활용 로켓도 기업의 자체 연구개발실에서 나온 것이지 출연연이나 대학, 나사(NASA)에서 만든 게 아니다. 원천기술은 대학과 출연연에서 나왔으되 실용 가능한 융합기술은 기업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의 기업들도 대학과 출연연만 기대하지 말고 자체적으로 개발한다는 비전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
기업들은 대학들이 필요한 기술 인력을 배출하지 못한다고 불만이었는데, 자체 양성으로 선회할 상황적 조건에 처해 있다. 박사급 인재를 찾기 위해 미국과 유럽 대학들을 방문하는 연례 행사를 하는 것도 좋지만 기본 바탕이 좋은 학부생과 석사들을 기업 연구개발실에서 양성하는 방안을 고려해봄 직하다. 정부는 기업 연구개발실에서도 기술박사학위를 부여할 수 있는 권한을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해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선진국이 하는 것을 보고하겠다는 ‘개도국 티’를 버리고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맨 먼저 할 수도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지금 다른 개도국은 물론 선진국들도 한국이 새로운 정책을 내놓는가를 예의 주시하고 오히려 우리 것이 좋으면 따라가려고도 한다. 정부와 기업이 ‘공격적’ 정책과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대학들은 백화점식 학과목에다가 뒤처진 첨단 및 융합학문, 등록금 인상을 할 수 없는 사회적 제약, 학생 수 감소 등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사면초가에 빠진 대학은 당분간 과학기술발전에 따른 실효적 수요에 대응을 하기가 어려울 전망이다.
고등교육 및 기술훈련에 대한 과감한 개혁을 다른 나라들이 하는 것을 보고 추수하려고 하지 말고 선도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도 강고한 교육계의 기득권 세력 때문에 우리나라 못잖게 교육계를 통한 개혁은 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MS와 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이 교육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노동자에 대한 기술교육과 직장인에 대한 전문직무교육을 자율에 맡기지 말고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지금처럼 노동자 자율에 의존하는 쿠폰제로는 미약하다. 기존 기술을 대체하는 신기술이 속속 등장하는 시대에는 신기술 전환교육 및 훈련이 미적지근해선 안 된다. 고교 의무교육보다는 재직자의 의무교육이 더 시급하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이 재직자 교육을 방치하는 바람에 구조조정과 해외공장이전으로 방출된 노동자들이 고스란히 장기 실업자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재직자 교육을 의무화시키면 학생 수 감소로 고통을 받고 있는 대학에도 새로운 교육 시장을 제공하는 효과도 거둘 수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소모적인 성격을 띠지만 직장교육은 노동자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건설적 대안이다.
서비스 자영업은 ‘기술 도입’을 선도적으로 하는 자체가 창조적 혁신이다
흔히 내가 직접 기술 개발해야만 하는 줄로 생각하기 쉬운데, 전혀 그렇지 않다. 앞선 기술은 얼리어답터로 내 사업장에서 먼저 시도하는 것이 ‘혁신’이다. 흔히 기계의 설계자와 제작자가 그 기계를 잘 운용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설계자와 제작자와 운용자는 뇌의 영역이 각각 다르다는 것이 이론적으로도 맞고 경험적 증거다.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운용 영역에서 어마어마한 일자리를 생길 것이다. 전 세계의 자동차 기술자와 노동자들 숫자를 다 합해도 한 나라의 직업적 운전자들 숫자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AI자동화 기술을 자영업자의 작업 현장에 도입하여 쓰다 보면 무궁한 쓸모를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많은 새로운 일자리가 나타날 것이 틀림없다.
지금처럼 기술이 급변하는 시대에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첨단기술에 방어적으로 되면 유니콘이나 화이자와 같이 ‘열린 상생경영’을 하는 글로벌 기업들에 먹히기 쉽다. 한국의 대형 유통기업들이 아마존의 부상 의미를 읽지 못하고 오프라인의 단맛에 취하다가 혁신을 실기했다. 한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자영업자와 직장인들도 AI와 빅데이터, 코딩 등 신기술의 얼리어답터가 되는데 머뭇거림이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MeCONOMY magazine January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