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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리포트


소원을 빌 때 주의하라, 진정 이루어질지도 모르니까

노력하기 싫은데 성공은 하고 싶다고?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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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 건너 생긴 치킨집이 8만여 개, 또 한 집 건너 하루 38개씩 생겨났다는 커피숍, 여기에 70만여 개에 달한다는 음식점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거리 두기로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더구나 코로나 이전부터 너무 많은 자영업자가 진출해 시장은 출혈경쟁과 폐업이란 악순환을 거듭해온 터라, 위드 코로나로도 경쟁력을 회복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그렇다면 희망은 없는가? 하나의 작은 카페에서 출발해 세계 최고의 커피 브랜드 기업을 만든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회장, 그의 자서전 《Pour your Heart Into It(네 마음을 쏟아 넣어라》에서 밝힌 그의 경험을 통해 우리나라 자영업 시장이 혁신할 방향을 찾아보고자 한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영업을 쉽다고 생각할까?

 

우리나라 사람이 구미(歐美) 사람들과 달리 생각하는 여러 개념 가운데 현저한 차이가 나는 게 있는데 자영업이다. 구미사람들은 한 마디로 자영업은 진입하기가 무지무지하게 어려운 분야라고 생각한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자영업을 마지막으로 밥벌이 수단으로 여기며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치부한다. 게다가 워낙 시장 진입장벽이 낮은 탓도 있겠지만, 자영업이란 숭고한 나만의 기업이자 직업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큰 문제이다.

 

 15년 전, 2006년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은, <비즈니스 위크> 베스트셀러 1위로 선정된 《Setting the table》이라는 책이 있다.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 경영자인 「대니 메이어」가 식당경영이 얼마나 어려운 사업인지를 이야기 하는 내용인데 자신이 레스토랑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로 부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사업을 선택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실토하며, 실제로 레스토랑 사업은 온갖 변수가 작용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고용, 훈련, 동기부여, 구매, 예산, 디자인, 제조, 요리, 시식, 가격, 판매, 서비스, 마케팅, 접대 등에서 하나같이 탁월 한 능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조업과 달리 상품이 소 비되고 경험되는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고객의 반응이 나오

니 레스토랑 사업은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미국인들이 이 책을 많이 읽은 것은 그만큼 자영업이 어렵고 어렵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반증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어떤가. 최근 들어 음식점을 통해 연예인 못지않게 인기를 누리는 사람이 있지만, 그 사람의 저술을 포함해 식당경영과 창업에 관련된 서적 가운데 베스트셀러가 된 게 있다는 소리를 필자는 들은 적이 없다.

‘먹방’이니, ‘맛집 소개’ 같은 프로그램은 많고 많지만, 식당경영이 힘들고 복잡하다는 사업이라고 말하는 프로그램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 걸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식당과 같은 자영업을 시작할 때 미국인이나 유럽인들처럼 자신이 경영자라는 생각으로 준비에 준비를 거듭하고, 꼼꼼하게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라는게 필자만의 잘못된 생각일까?

 

「하워드 슐츠」의 창업 철학

내 일생을 바쳐서 해야 할 일을 찾았어!

 

뉴욕의 빈민가에서 어렵게 자라면서 고등학교 때 미식축구 선수로 활약하다 축구 장학금을 받고 노던 미시건 대학(Northen Michigan University)에 들어갔던 《스타벅 스》의 「하워드 슐츠」 회장, 1953년생이니까 우리나라 나이로 치면 올해 69살이다. 그는 대학에서 자기가 생각했던 만큼 훌륭한 미식축구 선수가 되지는 못했기 때문 에 선수 생활을 포기했다. 장학금이 중단되자 학자금 대출을 받고,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면서, 밤에는 바텐더, 심지어 피까지 팔았다. 커뮤니케이션, 특히 대중연설과 대인관계 커뮤니케이션, 경영학을 선택으로 공부하면서 그의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 졸업생이 된 그는 대학을 졸업 했지만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졸업 후 1년 만에 제록스사에 취직해 세일즈 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하루 50통의 전화를 하면서, 6개월간 수많은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다녔건만 한 건도 판매하지 못했다. 다만 좋은 고객이 될 듯한 사람들을 확보했고 얼굴에 철판을 까는 게 무엇인지를 배웠다. 그렇게 도전하길 3년, 그는 워드프로세서를 파는 최고의 세일즈맨이 되었는데 그때부터 자신감이 붙어 뭔가 도전하고 싶었다.

 

마침 아는 친구를 통해 스웨덴 회사가 가정용품을 파는 해마플 라스트(Hammarplast)라는 자회사를 미국에 진출시킬 계획이라는 소리를 듣고, 그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회사는 그를 스웨덴에서 연수를 시키고 건축용 자재를 파는 부서로 발령을 냈다. 하지만 그는 플라스틱으로 찍어 낸 한물 간 물건을 아주 싫어하니 그만두겠다고 사표를 냈는데, 오히려 회사는 그를 뉴욕으로 발령을 내며 부사장 겸 총 매니저로 승진시켰다. 약 20개의 독립 외판부(外販部) 를 관리하는 책임을 맡긴 것이다.

 

연봉 7만5천달러, 회사 차에 판공비, 1년에 4차례 스웨덴 방문을 포함한 무한정의 여행권을 제공한 데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던 스웨덴풍의 부엌 가구와 가정용 집기 제품을 판매하게 되었다. 그 자신이 세일즈맨이었고, 판매팀에 동기를 불어넣는 방법과 제품을 재빨리 고급 소매점에 배치할 줄 알았기 때문에 판매량은 곧바로 늘어났다.

 

 

28살 나이에 그 정도 수준의 성공이면 만족했을 법한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시애틀시에서 열린 커피 시음회에 갔던 그는《스타벅스》라는 커피 판매 회사의 커피에 대한 열정과 정통성에 매료되었다. 당시《스타벅스》는 5개의 점포를 가진 보잘 게 없는 회사였다. 하지만 그는 ‘드디어 내 일생을 바쳐서 해야 할 일을 찾았다!’고 소리쳤다. 곧바로 부사장직을 버리고 어렵사리《스타벅스》의 마케팅 담당자로 자진해 들어갔다.

 

1983년 스타벅스에서 근무한 지 1년 정도가 되었을 때 그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국제 가정용품 전시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밀라노 거리를 걷던 중 작은 에스프레소 바에 들렀는데 바리스타와 손님들이 대화하는 풍경을 보고, “아, 이것이 바로 일상생활에 늘 있는 편안하고 낯익은 순간들이야”라고 생각했다. 당시 이탈리아에는 20만 개의 커피바가 있었으며 밀라노에만 1,500개가 있었다. 손님들로 꽉꽉 찬 커피바가 모든 거리의 구석구석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커피 원두만 파는《스타벅스》가 핵심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스타벅스》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커피 원두만 팔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처럼 커피의 신비와 로맨스를 커피 바에서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이는 마치 신의 계시와도 같았다. 긴급하고 확연히 보이는 일이었기 때문에 부르르 떨 정도로 흥분했다고 했다.

 

그는 이런 감동과 체험을《스타벅스》6호점을 열어 실천했다. 하지만《스타벅스》경영진은 더 이상의 확장을 원치 않았다. 그러자 그는 회사를 떠나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했다. 어머니는 “얘야, 너는 지금 좋은 직장을 갖고 있잖니, 왜 그만두려는 거야 제발 그러지 말아라, 왜 고생을 사서 하려고 하니 응?”하고 말렸지만, 그는 어릴 적 소망이자 일관된 일생의 꿈-나 자신의 운명은 내가 컨트롤 하겠다는, 뭔가 독특한 것을 성취해 내고 말겠다는, 나 자신과 가족을 위해 대단한 무언가를 하겠다는-을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었으므로 「일 지오날레」라는 자신의 카페 벤처 회사를 세웠다.

 

이탈리아 스타일로 우아하게 훌륭한 커피를 제공한다면 고개들은 단골이 되어 매일 찾아올 것이고, 6개월 안에 필요한 투자자금을 끌어들여 50개의 직영점을 가진 회사로 키워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검토하고 실행하는데 무려 3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투자를 유치를 위해 242명을 찾아갔으나 217명에게 거절을 당하고 남몰래 여러 차례 울었다고 했다. 이런 숱한 역경 끝에 1987년 8월 그는 자신이 다니던《스타벅스》를 합병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과연 우리나라 자영업자 중에《스타벅스》의「하워드 슐츠」같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슐츠는 20대 초반부터 쌓은 세일즈맨 경력에다 커피머신 등과 같은 주방용품을 판매하는 전문가였다. 커피를 좋아하기 이전에 자영업자로서 갖춰야 할 조건을 충족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경험도 없이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커피 장사 하겠노라고 나서는 사람과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그에겐 축적된 경험이 있었기에 커피라고 하는 흔한 아이템이 그의 가슴을 울릴 수가 있었다.

 

자영업자는 글자 그대로 스스로 사장인 경영자이다. 해당 분야에서 프로페셔널이란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하워드 슐츠」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증언하고 있는 듯 하다. 숱한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가? 내가 일생을 바쳐 볼 일인가? 대답이 아니라면, 어떤 분야건 자영업에 도전 해서는 안 된다.

 

성공은 나눴을 때 최고가 된다.

 

자영업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가 아마도 사람 쓰는 문제일 것이다. 인건비 상승은 둘째 치고라도 애써 뽑아서 일을 가르쳐 놓으면 몇 달도 안 돼 그만둬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람을 뽑느라, 광고를 내고, 일일이 면접을 보랴, 가르치랴, 그러면 또 그만두는 악순환이 이어져, 자영업자 사장님은 한 시도 편안할 수가 없다. 매장의 인력 관리가 안 되다 보니, 매장을 경영하는, 다시 말해 시스템적으로 운영하기가 힘든데다, 요즘은 거리 두기로 매출까지 떨어져 사람을 쓸 형편이 되지도 않는다.

 

사장 스스로 종업원이 되어 뛰어보지만 그런 임시방 편으로는 한계가 있을 터. 그렇다면 코로나-19 이전부터 자영업자의 골치를 썩여 온 인력수급 문제를 전 세계 2만 9천여 개 매장에서 35만 명의 파트너(《스타벅스》는 직원을 이렇게 부른다)가 1억 명의 고객을 상대하는《스타벅스》의 「하우드 슐츠」는 어떻게 극복했을까?

 

그것은 어쩌면 「하워드 슐츠」 회장이 자서전에서 밝혔 듯이 1987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회한 (悔恨)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2차 대전에 참전했던 아버지가 자신이 이루어 놓은 업적을 보시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상실의 슬픔이 너무 컸었다고 회고했다. 트럭운전을 했던 자신의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에서 평가 절하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시는 걸 것을 보았고, 미래 에 대해 불안해하시며, 경영진에 대해 노여워하시는 모습 도 보면서 자신이 미국에 만연된 불신과 불안정을《스타 벅스》에서 개혁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사람들을 가족처럼 대하라. 그러면 그들은 충성스럽게 그들의 모든 것을 줄 것이다. 사람들 곁에 서 있으라, 그러면 그들도 너의 곁에 있을 것이다.”

 

1988년 그는 파트타임 직원을 포함한 전 직원에게 종합 의료보험 혜택을 주었고, 3년 뒤인 1991년 비상장 기업이 었지만 기본 봉급 수준에 따라 고위 경영자부터 모든 직원에게 스톡옵션을 주었다. 회사가 상장기업이 될 때 그들의 스톡옵션은 궁극적으로 상당한 가치가 될 수 있을 것이었다. 회사는 직원들이 자신의 가치를 창조할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회사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적극적으로 일한다는 믿음이 그에게 있었다.

 

1994년 4월 클린턴 대통령은 그를 워싱턴 DC로 초대해 그의 의료보험혜택 프로그램을 경청했다. 그는 또, 직원을 파트너라고 정의했다. 오너와 동등하게 일하고 성공을 공유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임박한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2억 5천만 달러가 드는 건강보험혜택을 없애지 않으면 주식을 매각하겠다는 기관투자자의 협박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자신의 공유철학을 고수했다. 주식은 전량 매각됐지만 몇 년 후 스타벅스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소매업이나 음식점 등은 고객에 대한 서비스에 흥망이 달려 있는데도 종업원들이 어떤 산업보다도 낮은 봉급과 복리후생 혜택을 받는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사실 이 사람들이 가게의 심장이요, 영혼일 뿐 아니라 가게의 얼굴이다. 적어도 자영업자라면, 이런 상식을 모르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나라는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 이슈가 근본적으로 자영업자 문제를 배제한 채 진행됨으로써 자영업의 경영 자체를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는 게 문제다.

 

우선 (가칭)「서비스 경영학교」를 세워 서비스 정신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배출된 졸업생들을 자영업 실전현장에 투입해 해당 분야의 서비스 전문가로 육성하는 한편, 자영업자들이 안심하고 이들을 고용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복리후생제도를 마련함으로써, 「하워드 슐츠」같은 서비스기업인이 나올 수 있는 여건부터 조성해야 할 것이다.

 

카페가 한 집 건너 늘어나는 진짜 숨은 이유

 

거리를 걷다 보면 눈에 띄는 게 카페다. 코로나-19 이전 에는 하루 38개씩 생겼다고 하니, 그럴 만하다 싶었는데 정말 이렇게 많은 카페가 같은 지역에서 출혈경쟁을 하다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기야 망할 줄 알고 가게를 여는 바보가 어디 있겠냐마는, 너나 없이 카페 시장에 뛰어드는 배경이 정말이지 궁금했다.

 

아무리 작은 카페라도 창업은 창업이고, 창업이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동네 카 페에서부터 대형 유명 카페까지 들러보면서 내부를 유심히 관찰했는데 문득 카페 창업이 늘어나는 이유가 어느 카페에나 들여놓은 커피 뽑는 기계, 커피머신에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커피머신 한 대만 들여놓으면 누구나 카페를 차릴 수가 있으니까 말이다. 바리스 타를 고용할 필요가 없고, 기계 앞에 사람을 세워, 커피머신의 보턴을 누르면 라면을 끓여내듯 커피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된다.

 

손님들이 직접 결재를 하고, 커피를 받아가니까, 접대하는 사람을 별도로 뽑을 필요가 없으며 머그잔을 닦는 것 외에 설거지할 일도 없었다. 커피 맛은 볶은 원두커피의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커피머신으로 뽑으니 1년 12달 변함없이 유지할 수 있을 듯했다. 이러니 카페가 하루 멀다 하고 생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최근 자영업 시장에서 프랜차이즈 형태의 식당이 대세를 이루다 보니, 자연히 주방의 표준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음식 맛이 상향평준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치킨을 튀기거나, 피자를 만드는 로봇이 등장하는가 하면, 이미 자동 김밥 제조기, 생선초밥 제조기, 월남 쌀국수 제조기, 피자오븐기 등등의 주방 기기가 사용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 기기에 새로운 바이오기술을 융합한 음식 제조기도 머지 않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손맛, 칼맛, 불맛 등 아날로그적 감성을 강조해 온 우리나라의 자영업 시장은 새로운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음식은 이제 조리사와 서비스 영역이 아니라 엔지니어, 인공지능 전문가, 식품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창신(創新)의 공간이 될 전망이다.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는 주방 기기 판매 전문가였다. 어느 커피머신 제품이 가장 우수한지 판단할 수 있는 식견을 가지고 있었고 배전(焙煎, ばいせん의 일본식 한자어, 원두를 볶는 것, roasting) 기술을 직접 익히고 품질을 유지하는 노하우를 알았으며, 자신이 앞치마를 두르고 커피를 직접 서비스하면서 고객을 관찰한 전문가 중의 전문가였다.

 

그래서일까, 그는 지금까지 스타벅스를 광고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광고하지 않아도 스타벅스를 찾았던 손님들이 입소문을 내줬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단순히 제품만 구매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창업자의 문화와 가치를 고려해 결정하고 있었다. 자영업은 장사가 아닌 사업이어야만 할 것이다.

 

“자영업자는 우리 가게가 손님들의 개성과 가치를 존중하고 손님과 함께 성장을 추구한다는 메시지를 확실히 인식시킬 의무가 있다.

 

슐츠는 이 때문에 자신이 추구한 커피의 맛과 기업의 가치가 손상될 우려가 있다면서 프랜차이즈를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스타벅스 직원이 운영하는 직영점을 고수했다. 주방 기기의 혁신과 자영업에 대한 올바른 철학이 자영업 시장에서 살아남고, 나아가 성공하기 위해 조건이 아닐까?

 

소원을 빌 때는 주의하라, 진정 이루어질지도 모르니까

 

「하워드 슐츠」가 CEO에서 물러나 해외 사업에 열중하는 동안, 그러나 미국에서 《스타벅스》는 서서히 쇠퇴하고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스타벅스》 매장 수가 늘 면서 매출은 늘었지만, 지속 가능한 수치가 아니었다. 2006~2008년 사이 주가는 75% 하락했고, 미국 본토에선 2007년 말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불친절한 서비스에 대한 고객 불만도 늘었다. 2008년 1월 슐츠는 CEO로 복귀했다. 미국 전역의 스타벅스 매장을 닫고 바리스타들을 상대로 에스프레소 제조 교육을 다시 하고, 카페라테의 품질이 완벽하지 않다면 쏟아버리고 다시 만들라고 가르치며 ‘옳은 행동’을 위한 권한과 책임감을 강조했다.

 

2년 뒤 매출은 사상 처음 100억 달러(약 11조3,000억 원) 를 돌파했다. 슐츠는 ‘스몰비즈니스(골목상권)’의 지원을 위해 스타벅스를 통해 ‘인디비저블(Indivisible, 분리할 수 없는)’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을 위한 일자리 만들기’ 기부 캠페인을 진행했고, 모금한 기금으로 소규모 사업체들에 저이자 융자를 제공했다.

 

기후 변화, 무역, 세제 개편, 동성 결혼, 총기 규제 등 정치적 사안에 다양한 견해를 밝히며 참여했다. 2018년 스타벅스 CEO를 다시 사임하고서 2019년 초, 미 대통령에 출마를 검토 중이란 뜻도 밝혔다. 그러나 몇 달 뒤 출마 의사를 철회하고 2020년 대선에선 ‘우리 공화국의 미래를 위해’ 조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했다.

 

그는 단 하나의 커피집을 열어 자영업자처럼 시작했지만 사업가였다. 장사꾼을 넘어 커피의 경험을 재창조해 냈다. 하지만 그 흔한 커피를 갈아서 금으로 만든《스타벅스》같이 매력적인 기업도 그토록 거칠고 힘든 여정을 견뎌왔는데 규모의 차이일 뿐이지 지금 쓰러져 넘어지는 우리나라의 자영업자들은 얼마나 힘들겠으며 분하고 억울하겠는가,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가고 사람은 자기 생각대로 된다고 하니, 이 속담을 잊지 말자.

 

“소원을 빌 때 주의하자. 진짜 소원이 이루어질지도 모르니까.”

 

MeCONOMY magazine Octobe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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