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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의 러브스토리 ...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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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661년, 파사국(페르시아)이 멸망하면서 당나라로 망명했던 아비틴 왕자가 마침 당나라에 와 있던 신라의 의상대사 (625~702)를 만났다. 아비틴 왕자는 동서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던 사마르칸트에서 만난 바실라(신라)의 사신 가운데 ‘죽지랑’이라는 화랑(花郞)을 기억하고 있었고, 의상 대사로부터 그가 화랑의 우두머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측천무후 치하의 당나라에서 망명 생활을 계속할 수 없었던 아비틴 왕자는 의상대사의 도움을 받아, 꿈에 그리던 신라 땅에 도착해 문무왕을 알현하는데....」

 

방송사 스타 PD출신으로 숱한 히트 프로그램과 《고향생각》, 《한복 입은 남자》 등 베스트셀러를 써 온 이상훈 교수 겸 작가가 이란의 서사시 《쿠쉬나메》의 역사적 사실(史實)을 통해 1400년 전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의 러브스토리를 엮어냈다. 서울 테헤란로에 페르시아의 석류나무 한 그루를 심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는 이상훈 작가를 M이코노미 매거진에 초대해,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와 역사소설에 대한 그의 열정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알아봤다.

 

Q.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의 만남은 역사적 사실인가, 아니면 픽션인가요? 

 

 이상훈 작가  사실입니다. 쿠쉬나메(Kush Nama)라는 페 르시아의 서사시가 있습니다. 이란의 하킴 이란샨 아블 카이에 의해 기록된 신화 역사의 일부지요. 이 필사본이 대영박물관에서 발견되어 자랄 마티니 교수에 의해 출간됐습니다. 이 책에 의하면 페르시아가 아랍 이슬람에게 패망한 661년, 아비틴 왕자가 당나라에 망명했고, 679 년 측천무후를 피해 바실라(신라)로 가서, 신라왕의 딸 프라랑(쿠쉬나메에 기재된 이름)과 결혼하고 페리둔이라는 아들을 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사마르칸트에 2번을 갔다 왔고 이란을 답사했어요. 주낙영 경주시장님은 비공개 자료를 포함한 관련 자료를 아낌없이 제공해 주셨죠. 15년 전 처음으로 이 책을 쓰려고 생각했던 게 이제야 나온 겁니다. 자료조사를 하는데만 2년 반쯤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란에서는 쿠쉬나메를 학교에서 가르치기 때문에 자기 나라 왕자를 받아 준 바실라(신라)가 한국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이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이유가 아마 그런 역사적 사실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는 그래서 생긴 건가요?

 

 이상훈 작가 그럴지도 모르지요. 강남 테헤란로는 1977년 6월 27일 방한한 골람레자 닉페이 테헤란 시장이 구자춘 서울특별시장과 서울-테헤란 간 도로명 교환에 합의해서 생긴 것인데, 테헤란에도 역시 서울로라는 도로가 있습니다. 테헤란 북쪽에 위치한 외곽 순환도로와 접해 시내 중심부를 잇는 평범한 도로라서 강남 테헤란로와 분위기는 다릅니다만, 우리나라 사람은 이란에 서울 거리가 있다는 걸 잘 모르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란에선 테헤란로가 유명해서 한국에 방문하거나 거주하는 이란인 들은 테헤란로에서 기념사진을 찍곤 합니다.

 

이란 혁명 이후 왕조 시절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테헤란에서 ‘서울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데요. 서울의 ‘테헤란로’에 대해서도 ‘팔라비 왕조 시기 맺은 협약이니 무효’라는 식의 지적은 없었다고 해요. 이란이 우리나라를 호의적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날 원효는 의상대사를 통해 알게 된 아비틴을 요석궁 (瑤石宮, 요석은 태종무열왕과 보희 부인의 딸로 김흠운과 원효의 아내이자 설총의 어머니)으로 초대해 요석공주에게 소개시켰다. 아비틴은 그때 요석공주 옆에서 자신을 눈여겨 보는 시선 하나를 의식하고 있었다. 청초하게 아름다운 젊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문무왕의 딸인, 그러니까 요석 공주의 조카인 프라랑이란 미모의 소녀, 아비틴은 순간 그녀와의 사랑을 직감했다.」

 

Q. 작가가 보시기에 그 당시 신라에서 대왕의 딸이 외국인과 결혼하는 것이 가능했을까요?

 

 이상훈 작가  1400년 전의 신라 상인들이 배를 타고 인도와 페르시아로 다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유물에서 발견되는 페르시아의 수많은 흔적을 보더라도 신라는 어쩌면 지금 우리보다도 개방적이었을 겁니다. 신라는 페르시아나 아랍 상인들에 대해서 관대했고 거주지도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왕실의 공주가 외국인과 결혼한다는 건 쉽지 않았을 겁니다. 신라 왕실의 혼인은 정략적이고 정치적인 일이었을 것이니까요. 귀족들의 반대도 만만찮았을 겁니다. 하지만 쿠쉬나메에는 결혼했다고 나오니까 분명한 사실이죠. 가락국의 김수로왕이 인도의 허황후와 결혼한 걸 보면, 뭐 그리 신기한 것도 아니긴 하지만....

 

「691년 아비틴과 프라랑 공주의 아들이 태어났다. 당시는 문 무왕의 아들이자 프라랑의 오빠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상태였다. 이 왕이 신라 31대 왕인 신문왕으로 선대의 업적을 이어받아 통일된 신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성군이었다. 왕은 조카가 태어났다는 소식에 아비틴을 반월성에 초대했다.

 

“아이의 이름은 지었습니까?” 왕이 묻자, 아비틴이 아뢰었다.

 

“페르시아식 이름으로 페리둔이라 지었습니다. 페르시아 제 국의 왕실을 이어가기 위함이옵니다.”」

 

 

Q. 아비틴은 아들이 성장한 뒤 페르시아 제국 부흥을 위해 부자가 신라를 떠나지만, 원정길에서 신라인들과 접촉이 계 속되고 있더군요.

 

 이상훈 작가  그렇습니다. 저는 혜초(慧超, 704년~787년) 의 인도여행 경비를 프라랑 공주가 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라랑 공주는 혜초에게 자신의 아들 페리둔을 만나 달라고 부탁했을 거라고 봐요. 혜초가 당시 페리둔이 있는 파사국(페르시아)의 사마르칸트까지 일부러 갔었거든요. 그리고 최초 동서양의 전쟁이라는 탈라스 전투에서 당나라군을 지휘했던 고선지 장군도 우리나라 사람입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페르시아가 멸망한 661년부터 799년 신라 원성왕이 세상을 떠났을 때까지 138년간의 실크로드에서 활약한 신라와 페르시아의 역사, 타클라마칸 사막과 천산산맥을 넘어 인도양과 중국 대륙을 넘나드는 장대한 스케일이 느껴진다. 그리고 너무 오래되어 기억에서 잠시 비켜있던 신라인의 외국인과의 교류와 접촉의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된다.

 

이상훈 작가는 여행을 좋아한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올랐을 정도로 산악은 프로급이다. 그의 두려움이 들 정도의 열정과 필력은 머리를 맑게 하고 체력을 키워 주는 등산을 통해 채워지고 있다고 귀띔한다. 이 책을 쓰기 위해 그는 중동사를 비롯해 거의 100권 분량의 책을 읽었다고도 했다. 매주 한 권씩은 기본으로 읽었다는 것. 특히 그는 일본 역사소설을 좋아해 같은 책을 몇 번씩 읽 었다고 했다.

 

“《삼국지연의》는 서기 184년 황건적의 난부터 서기 280 년까지 중국 내륙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명나라 때 나관중이 집필한 중국의 대표적인 역사소설인데, 진수라는 사람이 당시의 사료들을 모아서 하나로 편찬한 정식 역사서인《삼국지》보다 동양의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가 무엇이냐면... 세간에 떠돌던 이야기들이 사람 들의 입을 거치면서 살이 붙어 삼국지 소설이 되고, 테헤란로에 신라공주를 걷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책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사건과 인물에 대한 각주(脚注)가 달려있어 마치 재밌는 정사(正 史)의 역사책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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