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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정 많고 애틋한 한국의 효심

-한국의 정신문화를 찾아서(30)

2021년 4월 제93회 미국아카데미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의 배우 윤여정 씨가 한국인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미나리’를 본 한국인들은 아마도 윤여정의 연기에 왜 심사원들이 높은 점수를 준 것일까 하고 의아했을지 모른다. 윤여정 씨의 뛰어난 연기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자식과 손자들을 위해서 묵묵히 헌신하는 한국인 어머니상의 캐릭터가 심사원들의 감동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짐작된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과 희생은 한국인 효심의 절반 모습이다. 그 나머지 절반인 자식의 부모 섬김은 오늘날 점점 빛이 바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의 순수한 효심은 아주 옛날 고대 이전 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종으로 진화하면서 남녀가 만나 사랑의 결실로 자식을 낳고 오랜 기간 양육하는 사이에 효심은 자연히 형성됐을 것이다. 부모가 나이 들어 육체적 기력이 떨어졌다고 할지언정 그들의 경험 지식과 지혜는 장성한 자식들에게 필요했을 것이다.

 

효도가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독특한 가치이자 사상인 양 말해지고 있으나 정확한 표현은 아닌 듯하다. 유교 문화는 가족의 효 윤리와 여기서 확장된 충 윤리가 거의 전부다. 이에 비해 서양의 문화는 효를 포함해 인간 덕성과 행복, 욕망, 영혼, 성격, 습관, 심지어 소망과 용감함, 고통, 절제, 쾌락, 명예, 친애 등을 다루고 있다. 그 대표적인 저술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다.

 

 

그리스와 로마는 아버지의 가부장권을 강조하는 모습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지배는 군주가 신하를 지배하는 것과 같다. 아버지의 권위는 그가 당연히 받아야 하는 애정과 연장자로서의 권리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그의 위치는 왕권과 같은 성질의 것이다.”라고 말했다. 유교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해서 개인에서 가족, 가족에서 국가로 확장하는 되는 식으로 사고한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에서 가족으로 윤리와 가치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고방식이었다.

 

그리스와 로마는 아버지 중심으로 자식들을 바라보며 한 사람의 시민, 군인으로 기르려고 한 반면, 유교 문화권은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를 섬기는 서술이 많은 편이고 효도의 덕성을 강조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 아버지가 절대적인 가부장권을 갖고 있는 속에서는 자식들이 아버지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섬기려는 효성을 가지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유럽은 고대부터 전쟁이 많을 수밖에 없는 지리적 환경이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남자는 강한 전사로 키워져야 했고 여기에다 귀족의 자제들은 지식과 지혜의 덕성이 필요했으리라.

 

로마는 혈연을 그리 중시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마음에 드는 타인을 양자로 맞이하여 그에게 재산을 상속해주기도 했다. 동서양, 모두 가문을 중요시 했는데, 생각하는 사고의 차이에서 가족 윤리의 색깔이 달라졌던 것 같다. 훌륭한 가문을 지키기 위해선 능력 있는 자식이 필요했으므로 기꺼이 능력 있는 양자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과 가문을 지키기 위해 혈통의 자식 양육에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 방식 사이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본질은 같은데 방법이 달랐던 셈이다.

 

로마 귀족들은 자식이 태어나자마자 젖먹이는 보모와 가정교사에게 전적으로 맡기다시피 했다. 이것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의무와 복종의 관계로 만들었을 것이다. 유럽은 기독교가 들어오고 스토아 철학이 스며들고 난 뒤에도 가족의 특성은 많이 달라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효도는 어떠하였는가. 흔히 전국시대에 씌어졌다는 「효경」과 「논어」, 「소학」 등을 거론하는 것은 당위적인 내용을 살펴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효성이 어떤 식으로 표출되었는지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서 그 실상을 자세히 알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은 뛰어난 무장이기에 앞서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그 효성은 당시 조선 선비들의 평균적 모습이 아닐까 싶다. 임진왜란 일기로는 「쇄미록」이 있다.

 

「쇄미록」을 쓴 오희문은 벼슬에 나가지 않은 평범한 양반인데, 전란 중에 어머니를 굉장히 걱정하는 대목들이 많이 나온다. 어머니를 섬기고 사랑하는 점에선 이순신 장군과 오희문은 거의 대동소이한 것 같다. 이 글에서 난중일기 중에서 어머니와 가족관련 부분만 뽑아봤다.

 

 

이순신 장군의 효심

 

(「난중일기, 교주본」 노승석 역주, 여해 간) 

이순신 장군은 모함을 받고 갖은 모욕을 당한 끝에 겨우 목숨을 건지고 백의종군하게 된다.

 

정유년(1597) 

4월 1일, 맑음. 감옥 문을 나왔다.

 

11일, 맑음. 새벽꿈이 매우 심란하여 이루다 말할 수 없었다. 마음이 몹시 침울하여 취한 듯 미친 듯 마음을 가눌 수 없으니, 이것이 무슨 징조인가. 병드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사내종을 보내어 어머니의 소식을 듣게 했다.

 

13일, 맑음. 일찍 식사 후에 어머니를 맞이할 일로 바닷가 길에 올랐다. 도중에 홍찰방 집에 들러 잠깐 이야기하는 동안 아들 울이 종 애수를 보냈을 때에는 배가 왔다는 소식이 없었다....얼마 후 종 순화가 배에서 와서 어머니의 부고를 고했다. 달려 나가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해 보였다. 바로 해암으로 달려가니 배는 벌써 와 있었다. 길에서 바라보면서 가슴 찢어지는 비통함을 모두 적을 수가 없었다.

 

16일, 궂은비가 오다. 배를 끌어 중방포 앞으로 옮겨 대고, 영구를 상여에 올려 싣고 본가로 돌아왔다. 마을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비통함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랴. 집에 도착하여 빈소를 차렸다. 비가 크게 내렸다. 나는 아주 지친 데에다가 남쪽으로 갈 일이 또한 급박하니, 울부짖으며 곡을 하였다. 오직 어서 죽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19일, 맑음. 일찍 나와서 길에 올랐다. 어머니의 영연에 하직을 고하고 울부짖으며 곡하였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천지 사이에 어찌 나와 같은 사정이 있겠는가. 빨리 죽는 것만 같지 못하구나. 조카 뇌의 집에 가서 조상의 사당 앞에서 하직을 아뢰었다. 금곡의 강선전관의 집 앞에 당도하니, 강정, 강영수 씨를 만나 말에서 내려 곡을 하였다. 또 보산원에 당도하니 천안 군수가 먼저 와 있어서, 냇가에서 말에서 내려 쉬고 갔다. 임천 군수 한술은 한양에 가서 중시를 보고 오는데 앞길을 지나다 내가 가는 것을 듣고 들어와 조문하고 갔다. 아들 회, 면, 울과 조카 해, 분, 완 및 변주부가 함께 천안까지 따라왔다.

 

27일, 맑음. 일찍 출발하여 송치 아래에 이르니 구례 현감이 사람을 보내어 점심을 지어 먹고 가게 했다...저녁에 정원명의 집에 도착하니, 원수(권율)는 내가 온 것을 알고 군관 권승경을 보내어 조문하고 안부를 물었는데, 위로하는 말이 매우 정성스러웠다. 저녁에 이 고을 수령이 와서 만났다. 정사준도 와서 원공(원균)의 패악하고 망령되어 잘못된 행태를 많이 말했다.

 

5월 5일, 맑음 새벽꿈이 매우 어지러웠다. 아침에 부사가 와서 만났다. 늦게 충청 우후 원유남이 한산도에서 와서 “원공(원균)이 흉포하고 패악함”을 많이 전하고, 또 진중의 장졸들이 이탈하여 반역하니, 그 형세가 장차 어찌 될지 모르겠다"고 말하였다. 오늘은 단오절인데 천리 되는 천애의 땅에 멀리 와서 종군하여 어머니 장례도 못 치르고 곡하고 우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니, 이 무슨 죄로 이런 앙갚음을 받는 것인가. 나와 같은 사정은 고금에 둘도 없을 터이니, 가슴 찢어지듯이 아프다. 다만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6일, 맑음. 꿈에 돌아가신 두 형님을 만났는데, 서로 붙들고 통곡하면서 말씀하시기를, “장사를 지내지도 못하고 천리 밖에서 종군하고 있으니, 누가 그것을 주관한단 말인가. 통곡한들 어찌 하리오”라고 하셨다. 이것은 두 형님의 혼령이 천리 밖까지 따라와서 이토록 걱정한 것이니 비통함이 그치지 않는다....연일 꿈이 어지러운 것 도 죽은 혼령이 말없이 걱정하여 주는 터라 깊은 애통함이 간절하다. 아침저녁으로 그립고 비통함에 눈물이 엉겨 피가 되건마는, 하늘은 어찌 아득하기만 하고 나를 밝게 살펴주지 못하는가. 어찌하여 어서 죽지 못하는가.

 

8일, 맑음. 이날 새벽꿈에 사나운 범을 때려잡아서 가죽을 벗기고 휘둘렀는데, 이건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

 

20일, 맑음. 체찰사(이원익)가 내가 머물고 있다는 것을 듣고는 먼저 공생을 보내고 또 군관 이지각을 보내더니, 조금 있다가 또 다시 사람을 보내어 “일찍이 모친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였다가 이제야 비로소 듣고 놀랍고 애도하는 마음에 군관을 보내어 조문한다”고 하였다. 그를 통해 “저녁에 만날 수 있는가”라고 묻기에 나는 “당연히 저녁에 가서 인사하겠다”고 대답하고, 저녁에 가서 뵈니 체찰사는 소복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히 일을 의논하는데 체찰사는 개탄스러움을 참지 못했다.

 

7월 2일, 맑음. 오늘은 돌아가신 아버님의 생신인데, 멀리 천리 밖에 와서 군영에서 복무하고 있으니 인간사 참으로 어떠한 것인가.

 

7일, 맑음. 오늘은 칠석이다. 슬프고 그리운 마음이 어찌 그치랴. 꿈에 원공(원균)과 함께 모였는데, 내가 원공의 윗자리에 앉아 밥을 내올 때 원균이 즐거운 기색을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징조를 잘 모르겠다.

 

9일, 맑음. 내일 아들 열을 아산으로 보내려고 제사에 쓸 과일을 봉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늦게 윤감, 문보 등이 술을 가지고 왔다. 열과 변 주부 등이 돌아가는 것을 전별하였다. 이 밤은 달빛이 대낮 같이 밝으니 어머니를 그리며 슬피 우느라 밤늦도록 잠들지 못했다.

 

14일, 맑음. 새벽꿈에 내가 체찰사와 함께 어느 한 곳에 갔는데, 많은 송장들이 널려 있어 혹은 밟고 혹은 목을 베기도 했다.

 

15일, 비가 오다가 개다가 했다. 늦게 중군 이덕필이 왔다. 저물어서 돌아갔다. 그를 통해 “우리 수군 20여 척이 적에게 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우 분통하였다.

 

16일, 비가 오다 개다하면서 끝내 흐리고 맑지 않았다. 저녁에 영암군 송진면에 사는 사노 세남이 서생포에서 알몸으로 왔기에 그 연유를 물으니, “7월 4일에 전 병사의 우후가 타고 있던 배의 격군이 되어...대마도에서 건너 온 무려 천여 척의 적선을 만나 서로 싸울 것을 작정하니, 왜선은 어지러이 흩어져 회피하므로 끝내 잡아 초멸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탄 배와 다른 배 6척은 배를 조정하여 못하여 서생포 앞바다까지 표류하여 뭍으로 오르려고 할 즈음에 거의 모두 살육을 당하고, 저만 혼자 숲 속으로 들어가 기어가서 살게 되어 간신히 여기에 왔습니다”라고 하였다. 듣고 보니, 매우 놀라운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믿는 것은 오직 수군에 있는데, 수군이 이와 같으니 다시는 가망이 없을 것이다. 거듭 생각할수록 분한 간담이 찢어지는 것만 같다.

 

18일 맑음, 새벽에 이덕필과 변홍달이 와서 전하기를 “16일 새벽에 수군이 밤의 기습을 받아 통제사 원균과 전라 우수사 이억기, 충청 수수 및 여러 장수들이 다수의 피해를 입고 수군이 크게 패했다”고 하였다. 듣자니 통곡함을 참지 못했다. 얼마 뒤 원수(권율)가 와서 말하기를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사시까지 이야기를나누었으나 마음을 안정하지 못하였다. 나는 “내가 직접 연해 지방에 가서 듣고 본 뒤에 결정하겠다”고 말했더니, 원수가 매우 기뻐하였다.

 

 

21일 맑음, 점심을 먹은 뒤 노량에 도착하니, 거제 현령 안위와 영등포 만호 조계종 등 십 여 명이 와서 통곡하고 피해 나온 군사와 백성들도 울부짖으며 곡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경상 수사는 피해 달아나서 보이지 않았다. 우후 이의득이 보러 왔기에 패한 상황을 물었더니, 사람들은 울면서 말하기를, “대장 원균이 적을 보고 먼저 달아나 육지로 올라가자, 여러 장수들도 모두 그를 따라 육지로 올라가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그들은 “대장의 잘못을 입으로 표현할 수 없고 그의 살점을 뜯어먹고 싶다”고 하였다. 거제의 배 위에서 자면서 거제 현령과 이야기하는데, 사경에 이르도록 조금도 눈을 붙이지 못해 눈병을 얻었다.

 

8월 2일, 잠시 갰다. 홀로 병영 마루에 앉았으니 그리운 마음이 어떠하랴. 비통함이 그치지 않는다. 이날 밤 꿈에 임금의 명령을 받을 징조가 있었다.

 

3일, 맑음, 이른 아침에 선전관 양호가 뜻밖에 들어와 교서와 유서를 주었는데, 그 유지 내용은 곧 ‘삼도통제사를 겸하라는 명령’이었다. 숙배를 한 뒤에 삼가 받았다는 서장을 써서 봉해 올렸다.

 

5일, 맑음, 아침 식사 후 욕과 땅에 이르니, 피난민들이 길에 가득하였다.

 

10월 13일, 달빛은 비단결 같고 잔바람도 일지 않는데 홀로 뱃전에 앉았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뒤척거리며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밤새도록 잠들지 못하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만 더할 뿐이다.

 

14일, 맑음, 사경에 꿈을 꾸니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로 가다가 말이 발을 헛디뎌 냇물 가운데로 떨어졌으나 거꾸러지지는 않았다. 막내 아들 면을 붙잡고 안은 형상이 있는 듯하다가 깨었다. 이것은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저녁에 어떤 사람이 와서 천안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하는데, 아직 봉함을 열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마음이 조급해지고 어지러웠다. 대충 겉봉을 펴서 열이 쓴 글씨를 보니, 겉면에 ‘통곡’ 두 글자가 씌어 있었다.

 

하늘이 어찌 이처럼 인자하지 못한 것인가.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듯하다. 마음으로 면이 전사했음을 알게 되어 나도 모르게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듯하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어찌하여 이치에 어긋난 것인가. 천지가 어둡고 밝은 해조차 빛이 바랬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간 것이냐.

 

영특한 기질이 남달라서 하늘이 세상에 머물러 두지 않는 것인가.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이제 내가 세상에서 끝내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 너를 따라 죽어 지하에서 함께 지내고 울고 싶건만, 네 형, 네 누이, 네 어미도 역시 의지할 곳이 없어 아직은 참고 연명한다마는 마음이 죽고 형상만 남은 채 부르짖어 통곡할 따름이다. 하룻밤 지내기가 일 년 같다. 이날 이경에 비가 내렸다.

 

17일, 맑으나 종일 바람이 크게 불었다. 새벽에 향을 피우고 곡을 하는데, 흰 띠를 착용하고 있으니, 비통함을 어찌 견딜 수 있으랴.

 

19일, 어두울 무렵 코피가 한 되 남짓 흘렀다. 밤에 앉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어찌 말로 다 하리요. 금세에 영령이 되었으니 끝내 불효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을 어찌 알랴. 비통한 마음이 꺾이고 찢어지는 듯하여 억누르기 어렵다.

 

11월 7일, 이날 밤 삼경 꿈에 면이 죽던 모습이 보여 울부짖으며 곡을 했다.

 

23일, 바람이 크게 불고 눈도 크게 내렸다. 이날 승첩에 대한 장계를 썼다. 저녁에 얼음이 얼었다고 한다. 아산 집에 편지를 쓰니 눈물을 거둘 수 없었다. 아들을 생각하니 감정을 가누기 어려웠다.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에 대한 효심과 자식 사랑이 지극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옛 한국인의 효심은 유별나게 정이 많고 애틋한 듯하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가족 간 사랑과 효심은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한다. 영화 ‘미나리’에서 보이듯이 조건 없는 애틋한 어머니 사랑은 여전한 것 같은데, 남은 반쪽 자식들의 효심만 부활하면 좀 더 행복한 한국 사회가 되지 않을까

 

 

MeCONOMY magazine January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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