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새해가 밝자마자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서 대량해고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가 열린 이래 이번처럼 한꺼번에 거의 모든 빅테크 기업들이 직원들의 해고를 실시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지난 30년간 세계 경제는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도구의 확산과 정착이 이끌어왔다고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대량해고 사태의 의미와 영향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지난달까지 발표된 것을 종합해보면 구글이 12,000명, 마이크로소프트가 10,000명, 아마존이 18,000명, 트위터 3,700명, 테슬라 6,000명 등 테크 기업들의 해고자는 7만여 명에 이른다.
빅테크 중의 빅테크인 구글의 해고는 의심심장하다. 구글의 해고자는 전체 직원의 6%에 이르러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이번에 AI 부서의 직원들도 해고 대상에 포함된 것은 구글의 내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읽을 수 있다. 순다 피차이 구글CEO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미국 내 해고 조치는 즉각 실행하지만 해외 직원들은 현지의 법과 관행에 따라 실시될 것”이라고 밝혔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호황을 누리자 인재영입에 열 올렸던 구글이 갑자기 해고 조치를 내린 것은 경영자의 판단 미스였다. 비올 때 우산을 썼다가 소나기가 그치고 해가 내리쬐자 우산을 버리는 격이라고 할까. 아무리 미국의 고용 유연성이 장점이라고 하지만 경영자들이 고용 유연성을 이용하는 듯 한 모습이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끊임없이 황금 알을 낳을 것 같았던 검색광고로 성장해왔던 구글도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않는 한 현재 직원들의 고용 유지도 밝아 보이지 않는다. 전 세계 직장인들에게 ‘꿈의 직장’이라고 여겨졌던 구글에서 도저히 벌어질 수 없다고 여겨지고 있다. 해고 직원들은 물론, 남아 있는 직원들도 당황, 실망, 허탈에 빠져 있다. 17년간 구글에서 근무했던 한 베테랑 직원이 하던 일을 마저 끝내려고 새벽 4시에 회사에 출근했더니 출입 카드가 작동되지 않아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 노조의 패럴 쿨 의장은 성명을 내고 지난 4분기만도 170억 달러의 수익을 거둔 회사가 대량 해고를 시행한 것은 극도로 나쁘고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이라고 표현했다. 세계 경영의 모범이자 학자들과 직원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아왔고, 지금도 서점에서 구글 경영의 성공 비결을 전하는 책들이 팔리고 있는 회사에서 일어난 일이다.
선진국 산업 및 일자리 생태계의 취약성
미국은 잘 알다시피 대학 경쟁력이 세계 최고다. 그 다음 구글, IBM 등 기업 연구소, 나사와 같은 국책연구소 등이 원천기술 개발로 세계를 리드하고 있다. 그러나 원천기술 개발력과 응용기술력이 제조업 역량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노동자들의 거센 임금상승과 복지 확대 요구를 견디지 못하고 기업들이 주로 중국 등으로 공장을 이전했기 때문이다.
원천기술이 개발된 가까이에 그것을 적용할 제조업이 태평양 건너 중국에 있으면 미국엔 별로 도움 안 되고 중국에 있는 미국 공장을 통해 중국으로 줄줄 새나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테슬라 중국공장을 통해 얼마나 미국의 전기차 기술들이 중국 기업으로 흘러들어가겠는가, 안 봐도 뻔하다.
미국 제조업 입장에서 그들의 경쟁국인 일본과 독일로는 갈 수 없었고 미국보다 더 고임금과 높은 복지국가인 유럽으로 이전할 수도 없었다. 한국도 1980-90년대엔 제조업 경쟁력이 점차 높아지는 시기여서 중국밖에는 진출할 곳을 찾지 못했다. 오늘날 중국의 부상, 타이완 위협, 미-중 대결은 근원적으로 보면 미국의 경쟁력 약화와 일본 및 독일의 부상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국가 단위 간 경쟁에서 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인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이노베이션과 코스트다. 첨단기술력과 같은 이노베이션 효과는 그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생각보다는 오래가지 못한다. 중국 산업 경쟁력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 AI기술, 틱톡 등은 현재 미국의 이노베이션 산업들을 뿌리째 뒤흔들어 대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하나의 요인인 코스트는 그 산업을 쇠퇴시키거나 아예 퇴출시키기도 한다. 코스트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임금이다. 무조건 고임금도 안 좋지만 무조건 낮은 임금도 안 좋다. 각 나라마다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미국은 제조업 노동자들이 줄기차게 고임금과 고복지를 요구한 끝에 산업을 중국에 넘겨주고 말았다. 일본은 너무 낮은 임금으로 때우려다가 쇠락을 면치 못하게 된 것 같다. 어떻게 ‘밸런스’를 찾는가가 노사정의 지혜인 듯하다.
미국 고용 관행의 약점이 제조업 취약성의 원인?
미국은 제조업을 중국에 이전하고 난 뒤에 국내에는 전문 기술자 중심의 고연봉 체제로 전환했다. 전문가를 계속 붙잡아 두거나 더 나은 기술자들을 고용하려면 고연봉의 유인밖에 쓸 수밖에 없다. 미국 상위 그룹 간에 인재 쟁탈전으로 인해 연봉은 점점 더 올라갔다. 스톡옵션으로 유인하던 것도 주식 시장이 좋아야 가능한 일이다.
이번 대량 해고는 고연봉의 전문가와 기술인들을 고용하는 시스템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조짐으로 볼 수도 있다. 미국을 제외한 주요 국가의 기업들에서 대량 해고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종의 사건과 같은 이번 대량해고는 미국 기업 고용 시스템의 위기일까. 실리콘 밸리의 유연한 고용과 해고 관행에 짙은 의심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이번 대량 해고는 기업들의 비즈니스 방향 재설정과 효율성 증대라는 목적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세계 경제 침체가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분기별 실적과 주가, 투자자의 압력 등이 더 큰 요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의 수익 앞에 기업이 애초 추구하려고 공언했던 이상이 너무 후순위로 밀려든 것은 아닐까.
미국이 현재 10% 안팎에 불과한 제조업 비중을 끌어올리려면 고용 관행의 일대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고용 유연성의 장점도 분명 있다. 전문직과 기술자들은 전직을 통해 연봉을 높일 수 있는 기회도 있기 때문에 원하기도 한다. 또 해고된 기술자들이 중소기업으로의 전직과 창업을 통해 난이도 높은 혁신기술을 확산시키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경영자들이 분기별 실적과 주가를 ‘과도하게’ 의식해 해고를 너무 쉽게 해버리면 고용 유연성의 장점은 떨어지게 된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제조업은 고용의 안정성이 중요하고 그래야 기술 수준의 유지와 개발도 효과적으로 꾀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일본처럼 한 직장에서 평생 고용 개념으로 못 박아버리면 기술의 갈라파고스화로 전락될 위험도 있다.
한국형 기술 제조업 경영 모색할 때
지금 각국은 반도체 기술을 비롯해 전기차, 배터리, AI, 및 양자 컴퓨터 등 신기술 개발을 위해 보조금 퍼붓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의 막대한 보조금에 비판적이던 미국과 유럽, 일본도 보조금 주기 레이스에 들어간 모양새다.
급변하는 시장의 수요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면서 필요한 기술개발을 단기, 중기 및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낸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쏟아 붓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이번 중국의 기술 추격 이전에도 일본과 독일의 기술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엄청난 보조금 등 각종 지원 정책을 편 바 있지만 모두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세금만 낭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중국은 헝그리 정신이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 있다. 헝그리 정신이 사라지려면 소득이 더 높아져야 한다. 미국과 일본이 누를수록 중국의 정부와 기업, 기술자들이 똘똘 뭉쳐 대응해나갈 것이 틀림없다. 사회 각 부문별로 서로 내 몫 챙기기, 손해 안 보기에 골몰하는 미국과 유럽이 결코 대응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이번 구글 해고 사태에서 보듯이 하루아침에 동료들이 해고되는 것을 본 직원들이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위기 대응에 힘을 다하겠는가. 영국의 공공 노동자들은 지난 해 중반부터 지금까지도 각 노조별로 산발적으로 파업을 벌이고 있다. 영국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는 의식은 실종된 것 같다.
일본은 산업경쟁력 재부흥을 외치고 있으나 저임금과 고물가에 시달리고 있는 기술자와 노동자들이 얼마나 호응할지 두고 볼 일다. 더욱이 일본 집권 자민당이 두 배 증액된 방위비의 일부를 세금으로 충당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악재로 떠올랐다.
중국의 첨단기술 굴기와 미국과 일본, 유럽의 점단기술 지키기 경쟁에서 한국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보조금으로는 안 된다고 본다. 노사는 물론이고 정부와 정치권, 학계 등이 분열과 정쟁, 차별 의식을 거두고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경영자는 고용안정을 최대한 유지하고 차별 없는, 공정성의 가치를 반영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말았으면 한다. 노동자들도 투쟁으로 무리한 요구를 쟁취하기보다는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협상을 통해 현실적인 이익을 선택하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아울러 정치권은 소아적인 정치 이익으로 노사문제를 쟁점화하지 말며 시민단체와 언론은 임금과 복지문제를 이념화하여 분열과 투쟁을 부추기는 방향으로는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미국과 유럽의 사회는 지리멸렬 찢어져 있는데, 그런 배경에는 이념적 시민사회와 언론, 지식인들의 무책임한 언설이 기여한 바가 크다. 날로 공격적 성향이 드러나는 북한의 위협 하에 놓여 있고, 오직 기술과 무역 외에는 살길 막막한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처럼 ‘사회 분열’을 허용할 여유가 전혀 없다. 각 분야별로 최선을 다해야만 현상유지라도 가능한 취약한 지정적적 국가의 처지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국 대학 경쟁력 강화 필요성
한국의 기술개발 경쟁력 측면에서 아킬레스건은 대학 경쟁력이다. 국책연구소와 기업연구소는 제몫을 잘해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대학 경쟁력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해 정부의 특별한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 학부생 입학생이 줄어들고 있는 판에 아직도 대학 입시 운운하고 있는 현실이 치열한 글로벌 경쟁력 상황과는 너무 동 떨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국의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 수도권대학, 지방대 등을 몽땅 합쳐도 중국과 미국, 일본의 대학 수에 비해 몇 십 분의 1도 안 된다. 그런 곳에서 서열을 따지고 같은 분야를 중첩해 우열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난쟁이 나라에서 서로 키를 재는 것과 뭐가 다른가. 한국 대학은 4년제의 경우 대학원 연구 중심으로, 전문대는 응용 및 적용 기술 개발과 훈련 중심으로 개편돼야 한다. 아울러 각 대학들은 서로 거의 중첩됨이 없이 차별화하여 그 분야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을 목표로 해야 한다.
지방대학은 수도권대학들과 유사한 전공으로 경쟁하려들지 말고 차별화에 포인트를 둘 필요가 있다. 부산경남권, 전남권, 전북권, 충청권, 강원권, 경북권 등 각 지역의 산업 클러스터와 관련된 전공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대학이 미국과 유럽 대학처럼 기초기술과 원천기술 부문에서 효율적인 역할을 해낼 수 있다면 한국 경제를 앞으로도 더욱 상승할 것으로 기대된다.
MeCONOMY MAGAZINE FEBRUARY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