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세기 후반 수출주도성장이 성행하게 된 배경에는 미국이 2차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의 전후 복구와 냉전 시기 소련의 세계 확장을 저지한다는 배경이 있었다. 그 이후 한국과 대만도 전후 식민지에서 독립한 신생국의 경제를 도와준다는 컨센서스가 있었고, 수출 규모도 그리 크지 않았다. 일본의 수출 물량은 너무 크고 무지막 지하였으므로 미국은 직접적으로 제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재 중국의 수출 물량은 전성기 시절 일본의 수출량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이를 감당해야 하는 미국 경제는 허약할 대로 약해진 상태다. 지금 미국 경제가 좋아 보이는 것은 고금리정책과 AI 붐으로 인한 착시에 가깝다. 한 마디로 속빈 강정이다. 미국이야말로 제조업이 거의 붕괴된 상태이고 막대한 나랏빚을 돌려막기를 하는 실정이다. 지금은 미국은 노동자들이 못살겠다며 노조들이 강성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계속 집권하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든 마치 일본과 한국이 그 옛날 전후 복구했듯이 국가 경제의 근본을 되살리는 데 주력해야 할 처지에 있다. 유럽 경제는 미국보다 더 참담하다고 할 수 있다. 너무나 오랫동안 사회주의 복지 체제에 정부도 국민도 길들여진 탓에 중국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유럽은 점점 가난해지고 있는 가운데 이민들이 몰려오고 있다. 나라 내부는 정파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고, 주류 사회에서 소외 됐는지 스스로 섞이려고 하지 않은지 모르지만 이민자 집 단들이 사회 및 경제 불안 요소가 된 지 오래됐다. 유럽의 첨단과학 기술은 아직 건재하다고 후하게 평가할 수 있어 도 미국과 같은 첨단기술기업의 생태계를 조성하지 못했다.
기술 스타트업은 많이 있다고 하지만 정부의 엄청난 보조금을 받고 덩치가 커버린 중국 기술 기업들을 당해낼 수 가 없다. 과학기술 선진국이라는 유럽에 빅테크가 없는 것은 일본과 한국, 대만과 같이 절박한 기업가 정신이 부족한데다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반시장적 규제가 너무 강하고 자본도 빈곤하다.
유럽에서는 이를테면 ‘환경’과 ‘프라이버시’가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과격 논리가 득세하고 있다. 독일이 원전을 싹 없애는 ‘간 큰’ 결정을 내리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유럽도 산업 재흥을 위한 보조금이 필요하다는 줄은 알지만, 복지를 누리는 이익단체와 계층, 정당들이 버티고 있어 중국보다는 턱없이 부족한 보조금도 겨우 마련하는 실정이다.
유럽은 자유시장 경제의 발목을 잡는 철학과 담론, 이념들 만 비대칭적으로 발달돼 있는 꼴이어서 시끄럽기만 하고 되는 일이라곤 거의 없는 답답함이 짓누르고 있는 모양새다. 중국도 할 말은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일본과 독일, 한국, 대만 등이 수출 주도로 국가 경제를 성장해왔지 않으냐, 중국도 앞선 나라와 같은 방식으로 수출로 발전하려고는데, 왜 중국의 발목을 잡으려고 하느냐고 항변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중국이 군사력 굴기에 나서 미국과 맞서고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것 때문에 무역 상대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중국 제품을 수입 해서 써야 할 미국과 유럽 경제가 이를 감당할 수 없을 만 큼 허약한 상태라는 사실을 중국은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현재의 무역 불균형 상태가 지속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현재의 중국 수출 방식과 군사력 확장 정책이 변하지 않는 한 중국과 서방 경제권과의 디커플링은 돌이킬 수 없을 정 도로 멀어질 것 같다. 미국은 디커플링을 기정사실로 정하고 중국과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위기관리를 하는 차원에서 외교와 통상정책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역의 본질적 의미를 생각할 때 : 상생 무역 패러다임
무역은 각각의 경제생태계에서 잉여로 남은 물건과 부족한 제품과 원자재 등을 상호 교환하는 것이다. 무역 상대 국의 생태계가 죽든 말든 나만 싸게 많이 팔려고 하면 상대국은 받아들일 수 없다. 상대국이 필요로 한 것만 수출 하고 수입하는 게 순리다. 21세기 무역은 상생 무역 패러다임이 아닐까 생각된다.
6.25 전쟁이 끝나고 난 뒤에 미국에서 남아돌던 잉여 농산물이 원조 형태로 엄청나게 들어왔다. 당시 정부는 잉여 농산물을 팔아 부족 세수를 충당했다. 이 바람에 물가는 낮아졌고 도시민들의 배고픔은 면했지만, 농촌은 값싼 미국산 잉여농산물이 시장에 쏟아져 큰 타격을 받았다.
중국의 값싼 수입품이 소비자들에게 좋은 면이 있고 인플레를 잡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것은 같은 공동체에 사는 생산자들과 유통산업에 큰 타격 을 주게 된다. 이웃이 거지가 되면 나도 곧 거지가 된다. 무역은 윈윈, 상생이어야 한다. 물론 지나친 자국 산업 보호 는 오히려 자국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주장도 타당한 면이 있으나 현 상황은 도를 넘은 상태다.
현재 중국의 경제정책은 내수면에서는 소련 경제 모델을, 국제무역면에 서는 군국주의 일본의 대외 모델과 매우 흡사하다. 상대국의 노동자와 생산자, 소비자들을 함께 고려한 무역 패러다임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아울러 세계 무역은 우방국 간의 교역 중심으로 바뀌는 추세가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일본, 필리핀, 호주, 대만은 미국과 유럽 무역 생태계와 더욱 긴밀해지는 구도를 띨 것으로 예상된다. 동남아 국가들은 중국과 서방 사이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아마도 동남아 국가들의 수출 품목이 중국 제품과 경쟁 관계를 보이고, 중국과의 밀착으로 미국과 유럽 수출에 제약받는다면 서방 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국의 투 트랙 전략과 평화로 이끄는 무역 외교
한국 경제는 이와 같은 위기를 잘 이용해야 한다. 투 트랙을 상정해볼 수 있다. 선진국에 대해서는 중국의 제조업 침투를 막을 수 있는 방패 역할을 제공한다. 개도국에 대해서는 기술 제휴와 값싼 현지 노동력의 결합을 통한 협력 모델이다. 개도국 모델은 이미 방산 수출에서 실험적으로 시도해오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선진국과의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의 협력 모델도 이미 한국 기업들의 미국 내 반도체와 배터리 공장 건설을 진행하고 있어 전혀 낯설지 않다. 자원부국인 중앙아시아와 아프라카, 중남미와 협력 강화를 본격적으로 모색한다, 이들 나라들은 기술과 자본을 원한다.
우리나라는 기술을 제공하고 대신 시장과 자원을 얻는다. 자본은 미국과 일본과 협력하여 동반 진출한다. 첨단기술은 미국과 유럽과 협력하고 레거시 제조업은 자원부국들과 한다. 일본은 부문에 따라 경쟁자이면서 협력 자가 될 수 있는 나라인 것 같다.
강대국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거나 내버려 두면 언제 국지 전쟁이 터질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강대국의 패권 대리전 쟁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방관자로 있으면 더욱 ‘밉상’으로 몰리기 쉽다. 이럴 바엔 한국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움직일 필요가 있다.
현재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동분서주하고 있으나 강대 국들의 인식 차이가 너무 커서 합의를 도출해내지 못하고 있다. 당분간 강대국끼리 평화적 해결이 어려워 보인다. 이럴 때는 누군가 ‘브릿지(bridge)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한국 혼자서 하기보다는 제3국들과의 경제협력으로 신뢰를 쌓아가면서 더불어 신무역 질서를 만들어가는 중추국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강대국들을 인류의 공동 번영과 평화로의 길로 끌어들이도록 해야 한다. 이런 역할을 함께 할 수 있는 제3국가군은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인 것 같다. 한국의 새로운 무역 상생 이니셔티브와 평화 외교가 그 어느 때부터 절실한 시점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