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이른바 ‘쉬었음’ 인구가 1년 새 8만 명 넘게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써 20~30대 청년층의 ‘쉬었음’ 인구는 70만 명에 육박했다. 하지만 정부는 “역대 최고 고용률을 보이고 있다”라고 자평할 뿐 ‘쉬는 청년’ 심각성에 대해서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래동력 2030세대, 일 안 하는건가? 못하는 건가?
지난해 11월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비임금근로 및 비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비경제활동인구는 1616만3000명이다. 비경제활동인구는 현재 가사(36.5%), 재학·수강(20.4%), 연로(15.6%), 쉬었음(14.4%) 등의 상태인 것으로 밝혀졌다.
비경제활동인구 중 ‘쉬었음’ 인구 증가가 눈에 띈다. 올해 상반기 월평균 대졸 이상(전문대 포함)의 학력을 가진 비경제활동인구는 405만8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만2000명 증가했다. 1999년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이후로 상반기 기준 가장 많은 기록이다.
또 통계청의 ‘2024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이 졸업 후 첫 취업을 하기까지 평균 소요시간은 11.5개월로 역대 최장 기간을 기록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도 취업으로 간주하는 것을 감안하면 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이 거의 1년 가까운 쉬고 있었던 셈이다.
연령대별로 보면, 20대 ‘쉬었음’ 인구는 1년 새 2만8000명 늘어 38만4000명, 30대는 같은 기간 25만4000명에서 29만2000명으로 3만8000명 늘어났다. 20~30대 청년층 ‘쉬었음’ 인구만 67만6000명에 달한다.
또한, 22일 통계청 7월 고용동향 보고서에는 지난 7월 ‘15세 이상 취업자’가 2885만7000명으로 지난해 동월보다 17만2000명 증가했다. 반면 청년층(15~29세) 취업자는 14만9000명 감소해 21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일자리 양극화... ‘청년 백수’는 간절하지 않다
‘왜 쉬었는지’를 연령대별로 물어본 통계청 조사 결과를 보면, 15~29세는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서’가 32.5%로 가장 많았고 비슷한 사유인 ‘일자리가 없어서’도 7.3%로 파악됐다. 이어 ‘다음 일 준비를 위해 쉬고 있음’이 23.9%, ‘몸이 좋지 않아서’가 18.2% 순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청년 백수’가 급증하는 이유에 대해, 정부 정책의 홍보 및 접근성 부족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실제로 대부분의 국민들은 정부의 지원 정책에 대해 인지를 못하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우선, 정책 시행의 핵심사항인 예산 확보와 부처간 협업 체계 구축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앞서 정부가 이달 발표한 ‘미취업 졸업생 지원책’ 역시 단기적 금융지원일뿐 중장기적 대책은 못 된다고 지적이다.
이렇게 정부 정책이 실효성을 잃은 이유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격차에 대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미취업 졸업생들이 눈높이를 낮추기만을 기대하는 노동시장의 구조적 모순이 포함돼 있다. 이는 2030 청년들이 취업 준비에 있어 스펙에 올인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들이 엄청난 시간과 금전적 투자 오롯이 감당하게 한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정부가 제시한 청년 고용정책들은 결론적으로 실효성이 없다”며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청년들이 노동시장 참여를 이끌 수 있는 정책들이 마련돼야 하는데 정부의 정책은 턱없이 부족하다”라고 일침했다.
●부실한 정부 지원 정책마저 비웃듯 악용하기도
올해 1분기 기준 ‘임금 근로자 일자리’가 한 분기 전보다 31만개 늘면서 2년여 만에 반등 폭을 키웠다. 20~40대 일자리는 줄어든 반면 50~60대 위주로 증가했다.
이에 대해 정부가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일자리에만 정책과 세금을 집중하고 핵심 취업 연령대인 청년층의 일자리 정책에는 소홀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광석 실장은 “고학력자 중심의 비경제활동인구 증가는 결국 저학력자 보다 고학력자의 일자리 부조화가 심하고 그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의미”라고 진단했다.
정부의 취업지원서비스인 ‘국민취업지원제도’도 뚜렷한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제도에 의해 취업한 청년은 1058명으로 16.6%, 10명 중 단 2명도 안 됐다. 의욕을 고취해 취업을 돕겠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셈이다.
반면, 일부 청년들은 “일 안해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다”며 오히려 일을 하는 게 손해라고 입을 모으기도 한다. 다양한 청년지원금으로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에 정부 정책을 역으로 이용하겠다는 심산이다. 심지어 정부지원금으로 주식·코인 투자를 시도해 일을 하는 청년들보다 더욱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이들도 종종 있다.
‘쉬었음’ 청년 중 상당수는 정부나 지자체가 청년을 대상으로 지급하는 정책자금을 통해 생활비를 충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서울시는 서울에 주소지를 둔 만 19세~34세 이하의 미취업자에게 최대 6개월 동안 매월 50만원씩(총 300만원)을 청년 수당으로 지급하고 있다.
또한 청년월세 지원금도 당초 취지와 달리 악용되고 있다. 청약통장에 가입한 만 19세~34세 이하 비근로자 청년은 1년 동안 매월 20만원 씩 총 240만원의 월세를 지원받을 수 있다. 또 만약 아르바이트(연소득 2200만원 이내)를 단 한 번이라도 했다면 신청을 통해 1인가구 기준 165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는 근로장려금 제도도 존재한다.
●한정된 일자리 매달리기 대신 '한탕주의'에 빠지기도
김지연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망총괄은 ‘좋은 일자리’와 그렇지 않은 일자리의 격차가 너무 크다고 말한다.
김 총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좋은 일자리는 한정돼 있기 때문에 고연봉을 얻기 위해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하다”며 “그 과정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구직활동에 대한 의지가 꺾이게 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취업준비생 A씨(26·남)는 “내가 원하는 회사는 바늘 구멍 뚫기만큼 입사하기가 힘들다”며 “취업을 준비하면서도 많은 개인 비용을 지불했는데, 만약 눈높이를 낮춰 입사를 한다고해도 다시 이직을 준비할 듯 하다”고 말했다.
재취업을 준비하는 B씨(33·여)는 “스타트업에서 7년간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는데 오너의 투자 착오로 3분의1의 직원이 회사를 떠나게 됐다”며 “저 역시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기업의 직원을 대하는 태도에 실망감이 커,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고령층에서 바라보는 청년들은 ‘인내와 성실함이 부족하다’는 부정적 목소리도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그들의 ‘그냥 쉬었음’을 현상 자체로 인정하고 미래의 꿈을 쫓는 대부분의 2030 세대에게 응원을 보내자고 말하는 이도 있다.
60대에도 꾸준히 일하고 있는 C씨는 ‘청년백수’가 많은 세태에 대해 “2030세대는 급변하는 콘텐츠 홍수 속에서 공동체 문화가 스며들지 못했기 때문에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며 “40~50대를 보는 잣대로 그들에게 직업정신과 책임감을 요구하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코인에 올인하거나 무리한 대출을 낀 개인 투자사업 등 한탕주의에 빠져있는 청년들은 없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