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이 약 1년 8개월에 걸쳐 '사교육 카르텔' 사건을 수사한 끝에 총 126명을 입건해 100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현직 교사들이 조직적으로 수능 문항을 만들어 사교육 업계에 판매하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 직원들이 수능시험 이의신청의 심사를 무마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16일 이같은 사교육 카르텔 사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송치된 100명 중 현직 교사는 72명, 사교육업체 법인 3곳, 강사 11명, 학원 대표 등 직원 9명, 평가원 직원·교수 등 5명이다. 이 중에는 국내 대표적 대형 사교육업체와 소속 강사들도 포함됐다.
경찰은 2023년 7월 교육부로부터 수사 의뢰한 후, 그해 8월 자체 첩보를 입수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그 과정에서 2019∼2023년 업무 외적으로 수능 관련 문항을 제작해 사교육업체나 강사에게 판매하고 1명당 최대 2억6,000만원을 받아 챙긴 현직 교사 47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에게 금전 대가를 제공한 사교육업체와 강사 19명이 이른다. 문항 1개당 시가는 10만∼50만원으로 책정됐고, 문항 20∼30개를 묶은 '세트' 단위로 거래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강사 1명이 문항을 사들이는 데 최대 5억5천만원까지 지불했다.
수능 출제·검토위원 경력이 있는 현직 교사 9명이 이른바 '문항제작팀'을 구성해 여러 사교육 업체와 강사에게 조직적으로 문항을 판매한 사례도 드러났다. 이들은 대학생들로 이뤄진 '문항검토팀'도 운영하며 특정 과목 문항 총 2,946개를 사교육 업계에 판매하고 총 6억2천만원을 수수했다.
이 외에도 한 대학교 입학사정관이 고3 수험생 8명의 대입 자기소개서를 지도해준 대가로 310만원을 받은 사례, 현직 교사가 소속 고등학교 학생들의 대입 수시전형 결과를 외부에 유출한 사례 등이 확인됐다.
경찰은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 문제 판박이 논란'의 수사 결과도 공개했다.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문항이 '일타강사'로 통하는 한 유명 강사 A씨의 사설 교재에 나온 것과 흡사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된 사건이다.
이 문제 출제위원이었던 대학교수는 자신이 2022년 감수한 EBS 교재에서 해당 지문을 처음 보고 별도로 저장해뒀다가 영어 23번 문항에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A 강사의 사설 교재에 실린 유사 문항은 다른 현직 교사가 제작해 A 강사에게 판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수능 출제위원과 사설교재 관계자들의 계좌, 통신, 전자우편 내역 등을 분석한 결과 이들 간 유착을 의심할 만한 정황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수능 출제 과정에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사설 교재와의 '중복성' 검증에는 소홀했던 것으로 결론냈다.
평가원은 검증에 필요한 사설 교재를 구하면서 그전까지 매해 구매 대상에 포함했던 A 강사의 교재를 별다른 이유 없이 누락했다. 구매 대상을 2022년 9월 26일까지 발간된 교재로 한정하면서 9월 27일 발간된 A 강사 교재를 빠트린 것이다. 이후 수능 영어 23번 문항과 A 강사 교재 문항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이의신청이 다수 들어오자 평가원이 이에 대한 심사를 무마한 것으로도 밝혀졌다.
이런 수사 결과를 종합해 경찰은 수능 23번 문항을 출제한 교수를 업무방해 등 혐의로, 문항을 판매한 교사와 이를 사들인 A 강사는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로 송치했다. 이의심사를 무마한 평가원 직원 3명도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