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중반부터 올해 초까지 시청자들을 울고 웃게 했던 ‘KBS2 TV 주말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 드라마의 감칠맛을 더해줬던 OST ‘내가 말했잖아’는 1980년대 활동한 ‘로커스트’의 곡을 리메이크해 홍대여신 요 조가 부른 곡이다. 귓속말로 입김을 불어넣는 듯이 감미로운 목소리로 부르는 요조만의 독특한 스타일은 어느 누구로 하여금 중독성을 불러일으킨다.
요조는 2004년부터 허밍어반스테레오, 공일오비의 객원보컬로 활동했었다. 이후 2007년 소규모아카시아밴드와 함께 ‘My name is Yozoh with 소규모’ 앨범 발매로 정식데뷔를 했다. 광고 배경음악과 영화, 드라마 OST 등의 활발한 활동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진 요조의 대표곡은 ‘좋아해’, ‘허니허니베이비’, ‘에구구구’ 등이 있으며 싱어송라이터로 오랜 시간 활동하면서 다진 만만치 않은 내공과 귀엽고 사랑스러운 보이스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오랜 기간 나는 뮤지션 요조가 아닌 요조음악의 팬이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요조의 음악은 행복했던 시간에 자주 들었기에 나에게 요 조는 행복한 기억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2013년도에 발매된 2집 ‘나의 쓸모’ 앨범에서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하는 듯한, 새로운 요조의 음악을 들으며 요조의 음악이 아닌 뮤지션 요조가 궁금해졌었다. 늦은 오후 홍대 거리의 한 카페 모퉁이에서 홍대여신이라 불리는 요조(신수진)를 만났다. 반달의 큰 눈과 보조개를 만들며 반가워하는 모습에 자연스럽게 ‘오랜만이에요 잘지냈어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사석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기에 편하게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요즘 바쁘게 지내시는 것 같은데 근황을 전해 주세요.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바쁘게 지내는 것 같다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그냥 똑같이 별일 없이 지내고 있어요. 딱히 안한 것 같고 ‘내가 바빴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일상의 연속이라 그런가 봐요.
명절에 ‘JTBC 김제동의 톡투유 - 걱정 말아요 그대’ 방송출연 하셨던데 어땠나요.
저는 방송하는 거 싫어하거든요. 그런데 저희 회사 대표님의 권유가 있어서 나갔어요. 정규편성이라 4월부터는 1주일에 한번 씩 브라운관에서 제 얼굴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오랜만에 방송을 했지만 재미도 있었고 반응도 좋았어요. 워낙에 김제동씨가 진행을 재미있게 잘하니깐 잘 묻어간 거죠. 방송 끝나고 나서 검색어 1위에 올랐단 이야기를 듣기는 했어요. 저는 원래 공연을 해도 모니터링을 안 해요. 공연이 끝나고 나면 유튜브에 공연영상들이 올라가잖아요. 쑥스러워서 그런 거 못 봐요, 방송도 보는 둥 마는 둥 하는데 어차피 집에 TV도 없으니까 보기도 쉽지 않죠.
집에 계실 때는 뭘 하면서 지내세요. TV가 없으면 심심할 것 같은데...
그런 질문을 많이 들어요. 그런데 TV가 없어도 생활이 가능한 게 은근히 많아요. 집에서도 해야 할 일이 많잖아요. 청소나 빨래 같은 집안일 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요. 저는 결벽증은 아닌데 정리정돈이 잘 안 되어 있으면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아요. 청소해도 꼼꼼히 해야 하고요. 병은 라벨이 앞에 보이게 가지런히 편의점 정렬을 해요. 욕실에 샴푸 같은 것도 그냥 놔두지 않고 라벨 보이도록 해 놓고요. 결벽증으로 치자면 중간 정도는 되겠네요(웃음).
요조라는 이름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요조라고 하니깐 대다수의 사람은 요조숙녀의 요조라고 생각하는데 제 이름 요조는 일본 고전 소설의 캐릭터예요. 극 중에 남자주인공 이름이 오바요조죠. 한 마디로 지질하고 루저같은 주인공인데 피해의식도 심하고 자존감도 낮고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최악의 캐릭터라고 볼 수 있죠. 최악의 종류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옆 사람을 정말 짜증나게 하는 그런 캐릭터요. 제가 그 소설을 20살인가 읽었는데 제가 가지고 있던 부끄러운 어떤 면을 요조라는 인물에게서 발견했어요. ‘어 나랑 비슷한 사람이다’ 하는 그런 동질감 같은 걸 느꼈죠. 그때부터 요조라는 이름으로 닉네임을 썼는데 앨범 낼 때 본명(신수진)이 너무 흔한 이름이라서 가명을 쓰기로 해서 요조라는 이름을 쓰게 됐어요.
20살 때 공감했던 오바요조와 지금의 요조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많은 차이가 있죠. ‘인간실격’을 20대 초반에 읽고 얼마 전에 다시 읽어봤는데 읽으면서 내가 이런 사람을 왜 좋아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거 있잖아요. 연애할 때 진짜 죽고는 못 살 정도로 좋아서 연애하다가 헤어지고 나면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그때를 다시 생각해보면서 ‘내가 쟤를 왜 좋아했지? 대체 쟤가 뭐가 멋있었던 거지’ 하는 생각들과 비슷하죠. ‘내가 왜 오바요조라는 사람을 그렇게 좋아했을까’ 약간 그런 낯선 기분이 들었는데 어쨌든 책속의 주인공이니깐 변하지 않는 거죠.
사진제공 :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요즘 청춘멘토 이미지가 많던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 드나요.
제가 이런 캐릭터로 소비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의도한 적도 없었으니까요. 저는 실제로 청춘이니 멘토니 하는 단어에 불편함을 느끼고 공공연하게 말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느새 제가 그런 단어를 대표하는 한 명이 된 게 신기하면서도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렸나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아마도 그 이미지가 시작하게 된 것이 청춘콘서트가 아닌가 싶어요. 그 강연이 4년 전인데 당시 영상이 이제야 퍼지면서 그 강연을 보고 큰 힘이 된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제가 그렇게 언변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고맙죠. 그런데 점점 그게 포지셔닝이 되니깐 솔직히 부담스러워요. 원래 착한 사람이 아닌데 어쩌다가 한 선행 때문에 주변에서 착하다고 강요받는 그런 기분이랄까요. 그렇다 보니까 사람이 가식적으로 변하게 되는 것 같고 위선적이게 되는 거 같아요. 내가 누리는 자유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는 느낌도 들고요. 제가 방송을 꺼렸던 것도 얼굴이 알려진다는 거였거든요. 그렇게 되면 행동에 대해 상당히 부담스러워지니까요.
여행을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어디를 자주 가세요.
생각하는 것만큼 많이 다니지는 못한 것 같고 그냥 좋아해요. 저는 틈만 나면 제주도 가요. 가끔 제주도로 이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물론 몇 년째 꿈만 꾸지만요. 방금 전에도 스케줄 보면서 ‘짬이 나면 바로 제주도에 가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제게 있어 제주도는 여행이라기보다 쉼터라 할 수 있죠. 제가 많은 나라를 여행해보지는 못했지만 가보면 느끼는 게 거기서 거기라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저는 여행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어쨌든 제주도에 가면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좋아요.
내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여행지 중 한군데가 대만인데 솔직히 대만은 참 볼 것이 없거든요. 그런데 대만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제 생애 가장 최악의 여행지는 파리에요. 보름정도를 머물렀는데 하루 종일 아무도 안 만나고 말을 한마디도 안 했거든요. 물론 굉장한 유적지나 미술관 등 볼거리들이 많죠. 그렇지만 마음속에 생명이 길게 남아있는 것은 사람들하고 공유했던 기억이었던 같아요. 사람들은 북극에서 오로라를 보고 싶다느니, 몽골에서 빽빽한 별이 떠 있는 밤하늘을 보고 싶다느니 이런 얘길 하잖아요. 그런데 저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좋은 사람들과 같이 좋은 이야기를 하면서 좋은 풍경을 보는 것인 것 같아요.
책도 출간하셨던데... 평소에도 글을 쓰시나요.
그냥 에세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의 글을 써요. 저는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너무 좋아해요. 그렇게 쓴 글을 주변에 있는 문인들이 보고 칭찬을 많이 해주니까, 청탁이 들어와도 거절 못하고 거절 못하고 그냥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먼저 해요. 남자들이 가질법한 야망 같은 것들이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거죠. 곡도 써야 하고 할 일도 많은데도 일단은 ‘해볼게요’ 이 말이 먼저 나와요. 그 순간부터 고생하는 거죠.
책을 많이 읽어서 스펙트럼이 넓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까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책을 많이 읽으면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게 확실히 사고라는 것이 어휘랑 정비례하거든요. 예를 들어 오지랖이라는 단어가 있다면 뭔지는 알아도 확실한 뜻을 모를 수가 있거든요. 오지랖이 라는 단어를 앎으로써 제 사고는 우주가 팽창하듯이 확장되는 거죠. 실제로 책을 읽는다거나 일기를 쓰거나 했을 때 어렴풋이 느낀 것들을 책을 읽을수록 또 뭔가를 써내려 나갈수록 뭔가 더 넓어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누가 그런 글을 정리해놓고 써놓은 걸 봤는데 그 글을 읽고 나서부터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책을 더 많이 읽으면 습득하게 되는 표현이 나 단어들이 더 많아지고 시야가 넓어지는구나 그런. 저는 서점에 가면 몸이 막 떨려요. 저걸 언제 다 읽어야 하나 하는 설렘이죠. 진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레코드 가게에 가면 저걸 언제 다 듣지? 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요. 저는 음악을 하는 사람인데도 음악은 많이 안 듣는 편이에요. 대신 서점에 가서 책을 사 오죠. 그걸 읽는 게 취미생활이에요. 앞으로 제주도에 정착한다면 서점을 내고 싶은 게 꿈이에요. 물론 쉽지는 않겠죠. 돈도 별로 못 벌 거고요.
정규앨범 2집 타이틀이 ‘나의 쓸모’인데 어떤 걸 담고 싶었는지요.
뭘 담고 싶다는 것보다는 좀 뻔하고 클리쉐 같은 이야기죠. 입으로 내뱉기에 좀 민망하지만 ‘진짜 나의 모습’ 이예요. 제가 이번에 음반을 내면서 타협한 부분이 많았거든요. 회사와도 그렇고 저 자신과도 그렇고요. 그동안 5년이라는 공백이 생겼는데 그동안 라디오 DJ를 하느라 앨범을 못 낸 것도 있었지만, 앨범을 내고 싶은 생각도 없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 앨범을 낸다면 타협 없는 상태의 음악을, 최소한의 타협도 안 하고 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타협을 안 할 때 대중들이 별로 안 좋아할 텐데 그런 걱정도 있었죠. 하지만 그런 거 상관하지 말고 어찌 되었든 타협하지 말자 이런 의지가 강했던 것 같아요. 이후 앨범을 내고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너무 다르다.” “그래서 좋다.” 혹은 “그래서 별로다.” 이거였어요. 음반을 발표했을 때 기자들과 인터뷰하면 한 첫마디가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였죠.
2집 ‘나의 쓸모’ 이전에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지금과 다른 점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는 프로듀서가 따로 있었기에 저도 별도로 뭘 할 수 있는지 몰랐어요. 그래서 리드해주는 데로 무작정 쫓아갔죠. 그런데 몇 년 지나고 보니까 대중들이 내 어떤 면을 좋아하는구나 그런 걸 알게 됐죠. 그런데 대중들이 좋아한 모습들은 제가 보여주려고 노력했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어요. 그냥 대중들이 좋아하니깐 귀엽게 부르고 사랑스럽게 부르려고 노력한 거죠. 그런데 좀 짬밥이 되다 보니까 제가 저를 알게 된 거죠.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 게 이런 게 아니구나,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성장이란 걸 하면서 깨닫게 되고 다시 아기 옷 입는 것을 싫어하게 된 거죠. 그렇게 하니깐 회사에서는 왜 그러냐고 하죠.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는데 왜 바꾸느냐 그러죠. 그런데 제가 싫은데 어떻게 해요.
인디밴드 20주년 기념앨범에 들어 있는 ‘불륜’이란 곡은 어떤 곡인지 소개해 주세요.
불륜이라는 곡은 그때 마침 만들고 있던 곡이라서 20주년 컨셉에 딱히 맞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잘 어울리지 않겠나 싶어서 계속 진행했어요. 다행히 주변의 반응도 좋아요. 제목이 ‘불륜’이라 금지곡이 되든지, 주목을 많이 못 받을 거로 생각했어요. 마침 간통법 위헌 결정이 났는데 간통법 폐지 기념곡으로 통하고 있어요.
‘불륜’이란 곡은 쓰게 된 이유라도 있는지요.
그러게 왜 쓰게 됐을까. 명확하지는 않은데 언젠가부터 저는 사랑이나 연애에 대해서 되게 뒤틀린 심사를 하게 됐어요. 연애를 못 해서라기보다는 연애나 사랑의 끝을 몇 번 겪다 보니까 어떤 연애나 사랑을 핑크로 표현하는 게 좀 억지스럽고 포장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에구구구’ 같이 달콤한 사랑 노래는 만들지 말자고 생각해서 그래서 자연스레 불륜으로 포인트가 움직인 거죠.
앞으로 활동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엄마 앨범을 제작을 드리려고 해요. 저희 엄마가 노래를 정말 잘하시거든요. 기타도 저보다 훨씬 잘 치시고요. 제가 단독공연을 여태껏 세 번 했는데 그때마다 게스트가 엄마였어요. 엄마하고 같이 기타 치면서 노래도 부르고요. 저희 엄마의 꿈도 가수였는데 아빠 때문에 가수의 꿈이 좌절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엄마의 못 이룬 꿈을 제가 실현해주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엄마가 나이도 있으니까 더 늦기 전에 빨리 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올가을에 엄마 앨범을 제작해서 같이 공연도 하려고 계획 중이에요.
물론 제 곡도 써야 하고 엄마 곡도 써야 하니까 어렵죠. 엄마는 창법이 양희은 선배님 느낌이 많이 나는 창법인데 제 호흡은 그게 아니니까 엄마 호흡에 맞춰서 곡을 쓰려고 해요. 통기타 가수들의 예전 노래를 들으면서 진짜 공부하듯이, 그리고 가사를 쓰는 일도 엄마 나이에 할 수 있는 이야기와 어휘를 선택해야 하거든요. 그런 부분이 조심스럽다 보니 진행이 느린데 어찌 되었든 가을 안에는 음반을 내겠다고 약속해 놓은 상태예요. 그런 다음에는 엄마와 지방공연도 하고 엄마가 따로 공연할 때 매니저 일도 하고 싶어요.
잘 지켜봐 주세요.
MeCONOMY Magazine April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