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퍼스트’라는 구호의 의미
2025년 7월 20일 실시된 일본 참의원 선거는 정치 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든 사건이었다. 특히 유튜브 기반의 신생 정당인 참정당(参政党)이 단 1석에서 14석으로 약진한 것은 일본 정치만이 아니라 세계적 흐름과도 연결되는 중요한 징후라 할 수 있다.
이 정당의 대표인 가미야 소헤이(神谷宗幣)는 “일본인 우선(Japanese First)”을 전면에 내세우며 기존 정치 질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슬로건이 아니다. ‘일본인 우선’은 정체성, 불안, 불만, 그리고 권리 담론이 뒤 섞인 복합적 감정의 응축체이며, 세계적 반글로벌리즘 현상의 일본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사회가 외국인 관광객과 이주민 증가, 생활비 상승, 임금 정체, 고령화 등 구조적 문제에 직면하면서 “우리부터 살기 어렵다”는 내셔널리즘 감성이 반동적으로 분출되고 있다.
그 배경에는 미국의 트럼프주의(MAGA), 독일의 AfD, 프랑스의 르펜당, 이탈리아의 살비니, 그리고 한국의 극 우 유튜버 정치화와 같은 현상과 연결된 ‘정체성 정치’와 ‘반글로벌화 대중주의(populism)’의 세계적 흐름이 있다. CNN은 이러한 참정당의 부상을 “트럼프식 메시지를 일 본에서 재현한 사례”로 해석했고, BBC는 “경제 불안과 문화 위기가 뒤섞인 신(新)보수주의의 탄생”으로 바라봤다.
본 칼럼에서는 1) 참정당의 부상과 유권자의 정서, 2) 반글로벌리즘의 이론과 역사적 맥락, 3)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통해 이 현상을 분석하고자 한다.
1. 참정당의 부상과 유권자의 정서
- 그들도 우리만큼 힘들다
2025년 7월 20일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참정당이 14석을 획득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일본의 상원(참의원)은 총 248석이기 때문에 이는 소수 정당에 불과하지만, 불과 3년 전 2022년 단 1석으로 시작한 정당이 단기간에 10배 이상 성장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파급력이 매우 크다. 더욱이 자민당과 연립 정권이 상하 양원에서 모두 과반을 잃게 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유튜브에서 태어난 정당
- 디지털 기반 대중주의
참정당의 설립자는 가미야 소헤이. 원래 슈퍼마켓 점원이자 영어 강사였던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백신 반대운동, 반정부, 반 세계화 메시지를 퍼뜨리며 지지층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2020년 유튜브에서 “국민을 위한 진짜 정치를 하겠다” 고 외치며 정당을 창당했고, 2021년부터는 지방의회 선거에서 하나둘씩 당선자를 내기 시작했다.
![[그림] 일본 내 외국인 수 추이 (자료=일본출입국재류관리청 자료](http://www.m-economynews.com/data/photos/20250834/art_17560069882878_6abc24.jpg?iqs=0.380505957541698)
참정당의 유튜브 채널은 2025년 7월 23일 기준 47만 명 이상이 구독하고 있으며, 선거 기간 동안 ‘외국인 탓’, ‘코로나 사기’, ‘메이저 미디어의 거짓 말’ 등을 일관되게 주장하며 기존 정 치에 실망한 시민들의 감정을 자극했다. 이는 기존 제도권 언론이 제공하지 못하는 감정의 배출구이자, 분노의 공동체를 만들어 주는 일종의 ‘정치적 이바쇼(居場所)’였다.
◇'일본인 우선’ 구호의 효과 ― 반외국인 감정과 지역 피로감
참정당의 가장 핵심적인 정책은 단연 ‘일본인 우선’이다. 이 구호는 트럼프의 ‘America First’를 연상시키며, ‘너무 많은 외국인 노동자, 관광객, 이주민으로 인해 일본인의 삶이 힘들어지고 있다’ 는 불만을 구조화하는 데 성공했다.
CNN은 이를 두고 “관광객 급증과 이민자 유입에 따른 지역사회의 피로감과 불안감이 정치적 수단으로 전환된 사례”라고 보도했다. 요미우리 신문은 지방 유권자 인터뷰를 인용하며 “외국 인 탓을 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건 알지만, 마을 온천이 외국인으로 붐비고, 조용한 일상이 무너졌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의 외국인 거주자는 2023년 기준 377만 명으로 10년 전보다 70% 가까이 증가했으며, 관광객은 연간 3,000 만 명 이상으로 코로나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이러한 급격한 외국인 증가 속에서 지방의 고령 유권자, 서비스업 종사자,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이 피로감과 경쟁 압력을 호 소하며 참정당에 표를 던졌다고 볼 수 있다.
◇자민당의 무기력과 경쟁력 있는 야당의 부재
닛케이 신문과 아사히신문은 개표 이후 7월 21일 신문에 서 공통적으로 “참정당의 약진은 그들의 실력 때문이 아니라, 자민당의 무기력과 야당의 비전 부재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아사히 신문은 당일 논설에서 “물가 상승과 실질 임금 하락, 고령화에 따른 지역소멸 위기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정책이 자민당에서도, 입헌민주당 등 야당에서도 제시되지 못한 가운데, 참정당만이 감정적으로라도 공감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외국인을 제한하면 일본인의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단순한 주장은 복잡한 경제 현실을 무시한 것이지만, 지친 유권자들이 복잡한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점에 서 쉽게 소비될 수 있는 구호였다. 이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populism)의 수사학이자, 불안정한 시대의 선동 정치학이다.
2. 반글로벌리즘의 이론과 역사적 맥락
- 경계와 주권을 둘러싼 오래된 이야기
반글로벌리즘(Anti-globalism)은 단순한 외국인 혐오나 경제적 보호주의의 유행어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화 (globalization)라는 이름 아래 촉진된 자본, 사람,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이 특정 집단에게는 위기와 불안, 실질적 피해로 인식되면서 출현한 사회 · 정치 · 문화적 반응의 총체다. 참정당의 급부상 역시 이런 역사적 흐름 속에 위치한다.
◇반글로벌리즘 이론: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고통받는가?
글로벌화는 생산의 해외 이전, 다국적 기업의 확장, 국경을 넘는 정보통신 혁신, 문화의 혼성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사회를 바꾸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모두에게 ‘기회’로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
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스(Manuel Castells)는 ‘글로벌 네트워크 사회’에서 연결된 계층과 탈락한 계층 사이의 양극화를 강조했다. 연결된 자들은 세계적 자본과 정보, 문화에 접근하고 그것을 자산화할 수 있지만, 연결되지 못한 자들은 ‘지역 정체성’ 혹은 ‘국가주의적 소속감’으로 자기 존재를 되찾으려 한다. 이는 영국의 브렉시트(Brexit)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프랑스의 르펜 지지층 증가 등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경제적 불안, 문화적 정체성 상실,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 결합되면 반글로벌리즘은 매혹 적인 대안이 된다.
◇역사적 사례: 반복되는 민족주의 반응
반글로벌리즘은 전례 없는 현상이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외부의 유입에 대한 경계와 배타성은 반복되어 왔다. 19 세기 말 미국의 반이민 운동: 중국인 배제법(1882)은 당시 대공황 이후 백인 노동자들의 일자리 불안을 배경으로 “중국인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인식에 기반해 제정되었다. 이는 오늘날 일본의 외국인 노동자 비판 담론과 유사하다.
1930년대 유럽의 보호무역주의, 대공황 이후 각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고율 관세를 도입하고 외국인 배척 운동을 벌인 결과, 국제 무역은 급속히 위축되었고 세계 경제는 더욱 침체되었다. 이 시기의 ‘자국 우선주의’는 결과적으로 극우의 부상과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다. 1970~80년대 일본의 ‘경제 민족주의’, 플라자 합의 이후 엔고 불황에 빠진 일본은 외국 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내부 소비 진작을 통해 자립 경제를 도모했다. 이 시기 역시 외국 자본과 문화에 대한 경계심이 정치적 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공통적으로 경제적 충격 이후, 대중이 국가와 공동체의 경계를 다시 세우려는 정치적 반응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불안이 곧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구분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본 사회의 특수성과 글로벌 맥락
BBC는 참정당의 약진을 두고 “극우 정당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국민 정체성 정치”라고 평가하며, 일본이 전통적으로 강한 집단주의와 민족 동일성을 바탕으로 운영되어 왔음에도, 21세기 들어 이 가치가 혼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사히는 “세계화의 파고 속에서 일본이라는 공동체를 지키고자 하는 ‘경계 세우기’의 정치가 다시 시작 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세계 경제가 다극화되면서 미국의 보호무역이 강화되고, 중국과 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들의 대안적 모델이 부상 하는 지금, 일본의 유권자들이 느끼는 불안은 단지 국내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글로벌 권력 질서의 변동 속에서 일본의 정체성과 주권을 되찾고자 하는 욕망이 참정당을 통해 표출된 것이라 볼 수 있다.
3.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반글로벌화 시대의 시민의식
2025년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나타난 현상은 단지 일본 내부의 정치 재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미국과 유럽, 한국, 대만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자국 우선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시대 흐름과 깊이 맞닿아 있다.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불안과 불신의 정치가 어떻게 대중을 설득하고 동원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위협받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탄이다.
◇반글로벌화는 시대정신인가, 일시적 반동인가?
오늘날 반글로벌화 정서는 세계화의 일방적인 확산과 그에 따른 경제적 양극화, 정체성의 위기, 지역 공동체의 해체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국가에서도 외국인 배척과 자국 중심 정책이 대두되었고, 이는 전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역사학자 폴 크루그먼은 “경제위기 시기에 사람들은 타인 보다 국가를 신뢰하며, 국가는 다시 적을 만들어 민족을 결속시킨다”고 말한 바 있다. 2020년 이후의 세계는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경쟁, 인플레이션, 기후위기 등 연속된 ‘복합위기’ 속에서 다시 ‘국경 안에서 안정을 추구 하려는 본능’을 강화시켜왔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반글로 벌화는 단순한 정치적 전략이 아니라 현재의 불확실성에 대응하려는 사회적 본능이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반성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시민의식의 위기- ‘우리’는 누구인가?
정치적 담론에서 ‘자국민 우선’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 할 때 우리는 반드시 “누가 자국민인가?”, “누가 배제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참정당의 ‘일본 우선’이라는 메시지는 그 자체로 명확하고 강력하지만, 동시에 외국인, 이주자, 타문화에 대한 거리 두기와 차별을 내포한다. 이러한 경계 긋기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유사하게 등장 하고 있다. 결혼이주여성, 난민, 조선족, 새터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 발언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정치인의 발 언에서 반복되고 있으며, 다문화 정책에 대한 회의와 복지 혜택의 형평성 논란은 여론을 양분시키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은 단지 국적이나 언어가 아니라, ‘공존의 규범’을 수용하고 실천할 수 있는 윤리적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 국제이해교육, 다문화교육, 시민교육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글로벌 시민사회의 방향을 다시 묻다
지금 세계는 다시 전환점에 서 있다. 세계화의 장점이었던 ‘자유로운 이동과 교류’는 팬데믹과 지정학적 위기로 그 동력을 잃었고, 각국은 다시 자국 중심의 정책과 규범으로 회귀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조율의 시작일 수 있다. 일본의 참정당의 선전은 우리에게 큰 메시지를 주고 있다. 그것은 ‘외국인 혐오’나 ‘포퓰리즘’ 자체보다, 우리 사회가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 어떤 공적 언어와 가치를 세워야 하는지를 묻는 거울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노와 혐오를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과 차이를 넘어서 연대할 수 있는 시민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반글로벌화 시대의 진정한 시민사회의 모습이며, 다시 세계와 연결되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