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이 20%를 넘으며 초고령사회에 공식 진입했다. 불과 7년 만에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전환되며 보건지소와 보건진료소 등의 부족과 제도적 뒷받침이 따르지 못하면서 공중보건의 제도 역시 어려운 문제에 직면해 있다.
◇농어촌의료법은 1980년대 제정, 헌법보다 낡아
농어촌의료법은 1980년대 제정됐다. 이 제도는 농어촌 주민들의 건강을 지켜온 소중한 제도적 장치였다. 농어촌 의료서비스 또한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농어촌의료법)에 근거해 운영돼 왔는데, 당시 법의 목적은 보건지소, 진료소를 중심으로 한 1차 공공의료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주민의 의료 접근성을 보장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러나 진료 범위가 제한적인데다 방문 진료 역시 법에 명시되지 않고 지침 수준에 머물며 안정적 운영이 어렵다보니 인력 또한 1인 근무 체계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학영 의원(국회부의장)과 ‘사회경제적 불평등 완화 및 취약계층의 사회권 보장을 위한 입법과제 자문위원회’가 지난 9일 국회에서 개최한 [헌법보다 낡은 농어촌의료법 이제는 바꿀 때다] 토론회에서는 이러한 구시대적 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변화의 요구에 힘이 실렸다.
◇보건진료소, 통합돌봄과 건강증진의 중심 거점으로
이날 토론회에선 보건진료소가 단순한 일차 진료기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통합돌봄과 건강증진의 중심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역할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또 방문진료와 원격협진의 제도화, 전문 인력 체계 강화, 다인 근무체제로의 전환 등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농어촌지역의 보건진료소는 지난 1977년 3년 간의 시범사업을 거쳐 의사가 배치되지 못하는 곳에 간호사를 1년 이상의 관련 직무교육 후, 1980년 10월 보사부(보건사회부) 전국 제도로 확대됐다. 또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 제정(1980.12.)으로 2012년 이전의 별정직 공무원을 일반직 공무원으로 전환해 올해 18,905개소가 운영 중에 있다.
보건의료 전달체계의 가장 하위기관인 보건진료소는 지역민의 의료 접근성 향상 및 의료 균등에 기여하며 1차진료, 지역사회 통합 돌봄, 원격의료, 건강증진사업, 감염병 대응 등 공공보건기관의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 첫 발제에 나선 김영남 보건진료소장회 회장은 “보건소 방문 건강관리 사업은 상담 서비스에 국한되어 있어 치료적 간호 요구에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노인 장기요양보험, 방문 간호 등 인적 인프라가 대단히 부족하고, 동시에 비용 부담으로 이용을 꺼린다. 취약 지역의 경우 요양보호사 위주로만 장기 요양을 이용하고 실상 간호 서비스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취약지역에 위치한 보건진료소는 농어촌지역에서 근접성과 친숙성으로 노인 인구의 포괄적인 건강관리 및 돌봄 요구를 해결하는데 매우 긴요하나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공적자산”이라며 “일차보건의료 교육 강화와 관련해 제16조 자격으로 24주 이상의 직무교육을 최소한 52주 이상의 교육과 1인 체제가 아닌 조직과 시스템 이런 구축으로 역할에 있어 지속적 관리나 2차 보건의료 체계 구축을 위한 실질적인 정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진 발제에서 임은실 대구보건대학교 간호대학 교수는 ‘보건진료소 제도 개선과 인력운영 방향’에 대해 “농어촌의료법에 의하면 경미한 의료 행위를 하는 사람으로 되어 있는데 ‘경미한 의료행위’ 범위가 어디까지인지가 굉장히 애매하다”면서 “이러한 의료 행위에 대한 범위가 좀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 보건진료 전담 공무원은 보건진료소에 근무하는 사람으로 한정되어 있다”고 법안 표기 수정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임 교수는 “문제는 단순하게 보건지소·보건진료소 보건진료 전담 공무원이 거기에서 의료 행위를 하면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느냐의 부분”이라면서 “우리가 보건지소에 양의는 없지만 한의사나 치과 의사는 많다. 단순히 진료소로 변환시켜서만은 이 역할을 할 수가 없는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농어촌의료법 19조는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이 ‘경미한 의료행위’를 할 수 있고, 의료행위를 할 때 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환자진료지침에 의한 통상 질병의 종류와 처치방법들로 하도록 돼 있는데, 현행 91종의 처방약으로 의료취약지 주민의 요구를 대응하기가 충분한지 검토가 필요하다"며 "의약분업의 원칙은 의사는 처방만 하고 약사는 조제·교부만 한다(예외 지역에서는 의사가 조제와 투약을 할 수 있도록 돼 있음)고 적시하고 있다고는 하나 보건의료 소장이 약을 지어서 갖다 주는 행위가 타당하냐"고 꼬집었다.
임 교수는 "약사법의 의약품 조제의 예외 지역은 보건지소는 해당 되지만 보건진료소는 해당되지 않는다”면서 “진료·조제·즉시 교부가 하나의 의료행위로 진행돼야 하기 때문에 방문진료 후 보건진료소로 돌아와 조제한 약을 환자 집으로 가져다주면 약 배달 행위가 될 수 있어 이에 대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환자 진료 지침에 방문 진료에 대한 표준 지침 마련 △전문간호사 수준의 교육 훈련 △방문 진료 대상 완화 △복수 인력 배치 등을 제언했다.
◇전문간호사 수준의 교육, 52주 이상으로 확대해야
이어진 토론에선 전문간호사 수준의 교육 훈련과 공중보건의사나 보건진료소의 역할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도 나왔다.
홍석미 원주 황둔보건진료소 소장은 “농어촌의료법 제16조는 보건진료전담 공무원은 간호사·조산사 면허를 가진 사람으로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시행하는 24주 이상의 직무교육을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면서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의 자격과 교육은 1980년 12월 제정된 농어촌의료법 제16조로 충분하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업무 범위와 관련해선 “변화하는 환경이 맞춰 더 많은 일을 하게 해 달라”고 주문하며 "관할 구역 내 재택환자를 볼 수 있을 만큼의 업무 범위 확대 요구, 전문간호사 수준의 교육을 24주 이상의 직무교육에서 52주 이상으로 확대할 것"을 주문했다.
만성질환자의 사례를 들면서는 만성질환 관리에 필요한 약제사용도 지나치게 제한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나백주 을지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최근 농촌 인구 감소 및 교통여건 개선 등으로 농촌 보건의료 실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최근 10여 년간 군 단위 의원급 의료기관 증감 추이를 보면 전체적으로 경기도와 제주도를 빼고는 이러한 감소 경향은 뚜렷할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보건지소·보건진료소에 보건 진료원 한 명씩 배치 해놓고 이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대한 정책적 과학적 그런 연구가 사실 너무나 많이 부족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분들의 개인기에 의존해 의료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있긴 했으나 복합적인 만성질환이나 응급 상황의 대처 부분들에 대한 교육 훈련이나 전문의사들과의 연계 부분이 취약하다”며 “강원도 평창에서는 촉탁의를 고용해 정기적으로 방문 순회하면서 진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보의 수급 감소가 불가피하다면 원격자문 체계를 강화하고 지역 공공병원과 긴밀히 연계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지역의사제 도입 등 지역 내 의료 서비스 접근성 향상을 위한 노력과 고민이 꽤 많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런 부분들을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공중 보건시설뿐만 아니라 보건진료원들도 임상 훈련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근무하는 전문의사들과 협력 자문 체계를 면밀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 일본 사례 많은 시사점 줘
우리와 달리 일본, 호주, 캐나다 등 국가에서는 의사 접근성을 늘리기 위한 전략이 다양하게 모색된다. 특히 일본의 사례는 지금의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일본에 만화와 드라마로도 된 닥터 코토 진료소 같은 경우, 의사들이 농어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국가차원의 홍보 전략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자치의과대학 및 지역의사제 등도 많은 성공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전공의 수련에 6개월 정도를 도서지역 근무 경험을 갖도록 의무화하는 것은 매우 인상 깊다고 할 수 있다.
나 교수는 "만성질환 관리 기능 강화에 대해서도 투약 등 문제는 일정한 복약관리 기능과 생활습관 개선 그리고 진료 의사와 협력 상담 기능이 중요하다”며 “실제 투약에 의한 만성질환 관리 부분은 전문의도 쉽지 않다고 호소한다. 이런 경우 해당 전문의사와 긴밀한 연계 협력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생활습관 및 복약지도 측면에서 개선이 일어나도록 하는 협력진료의 기능과 체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건진료소의 역할 재정립과 기능 강화
이어진 토론에선 보건진료소의 역할 재정립과 기능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진환 서울대학교 보건환경연구소 교수는 “합의된 방향에 맞추어 보건진료소의 기능을 재설정하고, 그에 따라 인력·시설·장비를 전면적으로 재점검하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주민에게는 가장 가까운 공공의료 자산이다. 하지만 현행 양적 지표만으로는 보건진료소의 실제 역할과 성과를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능 중심의 운영 평가제계를 새롭게 구축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이 전문간호사 수준의 교육 훈련을 받더라도 의사와의 협력체계가 병행되지 않으면 운영 목적 달성이 어렵다는 점에서 보건진료소와 의료기관 간 협력 모델 마련해야 한다”며 “일차의료와 건강증진은 본질적으로 분리하기 어려운 만큼, 포괄적 일차보건의료 전략 속에 보건진료소를 위치시키고, 전국이 일률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고유한 필요가 반영될 수 있도록 자율성과 주민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행 「농어촌의료법」과 「지역보건법」이 병존하면서 보건진료소가 지역보건의료기관에 포함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어 제도적 충돌과 불명확성이 지속되고 있는 점에 대해서 지적했다. 농어촌의료법을 별도로 유지할 경우, 보건진료 전담공무원에 대한 중앙정부 통제로부터 일정한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으나, 지역보건법 체계 내에서 요구되는 일관된 전달체계 관리는 미흡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의사 부족을 단순히 간호사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건진료소를 중심에 두고 농어촌 의료 문제를 풀어나가는 포괄적 전략을 모색하는 것이라는 지적에도 힘이 실렸다.
토론회에 참석한 이학영 국회부의장은 “농어촌 지역은 의료기관이 턱없이 부족해 정기검진은 물론 급성 질환 대응조차 어렵다”며 “보건지소·진료소의 역할 강화와 의료 인력 유인, 장기적 재정 지원을 아우르는 구조적 정책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