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생활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매듭이 이제는 각종 액세서리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귀걸이와 목걸이는 물론, 머리띠, 옷핀, 그리고 휴대전화기 고리까지 멋스러운 매듭을 이어가고 있는 북촌 ‘동림매듭공방’ 신영미 매듭기능전승자를 만났다.서울의 삭막함을 따뜻하게 느끼게 하는 곳이 북촌이다. 나지막이 앉은 작은 집들 사이사이로 난 좁다란 골목길은 코 흘리게 아이들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시골의 정서를 그대로 담고 있다.외국인들이 빠뜨리지 않을 관광지로 알려진 북촌은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서 더욱 재미있다. 신영미 매듭기능전승자가 있는 ‘동림매듭공방’은 서울시가 지원하여 2004년 4월에 문을 열었다.노리개, 허리띠, 주머니, 선추, 유소 등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오는 각종 장식용 매듭에서부터 실, 끈, 장신구 등 매듭의 재료까지 총망라하여 전하고 있다는 공방에서는, 지속적인 작품 활동과 더불어 매듭 보급을 위한 초보자교육과 일일매듭체험을 비롯한 각종 공예를 위한 응용매듭, 전문가 양성교육까지 이뤄지고 있다.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신영미 매듭기능전승자의 48년 매듭인생은 하루에도 수백 번을 돌렸던 물레가 함께하기에 그 의미를 더한다.
국내를 대표하는 펀드평가사 제로인의 수장으로 부임, 금융자산 평가 토털 서비스를 선언한 이현규 대표. 이 대표 부임 후 제로인은 수익률, 규모 등의 기본 펀드 정보는 물론 자산운용사의 신용등급, 펀드 매니저의 투자 스타일 등에 관련된 정보까지 제공하고 있다. 이현규 대표가 말하는 펀드 평가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성공 펀드 투자 비결에 대해서 들어봤다. 에디터 최은성 객원기자 학자를 연상시키는 단정하고 지적인 인상의 이현규(53) 대표. 정확한 펀드 정보 분석으로 국내를 대표하는 펀드평가사로 손꼽히는 제로인의 수장이다. 알고보니 학창시절부터 대학 교수를 꿈꿔 경제학과에 진학했었다고 한다. 대학졸업 후 유학을 준비하다 급작스런 아버지의 교통사고는 집안의 장남이었던 청년의 인생 행로를 바꾸어 놓았다. 불행은 누구에게나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불행에 굴하지 않는 용기있는 행동이다. 이 대표는 좌절하지 않고 다른 길을 찾아 나섰다. “교수가 되려는 것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꼭 교수가 아니더라도 다른 길을 찾아서 얼마든지 세상에
학자를 연상시키는 단정하고 지적인 인상의 이현규(53) 대표. 정확한 펀드 정보 분석으로 국내를 대표하는 펀드평가사로 손꼽히는 제로인의 수장이다. 알고보니 학창시절부터 대학 교수를 꿈꿔 경제학과에 진학했었다고 한다. 대학졸업 후 유학을 준비하다 급작스런 아버지의 교통사고는 집안의 장남이었던 청년의 인생 행로를 바꾸어 놓았다. 불행은 누구에게나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불행에 굴하지 않는 용기있는 행동이다. 이 대표는 좌절하지 않고 다른 길을 찾아 나섰다. “교수가 되려는 것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꼭 교수가 아니더라도 다른 길을 찾아서 얼마든지 세상에서 가치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여겼죠.” 다른 길을 찾아 나선 그는 전공을 살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산업은행 채권팀에 입사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금융인생은 승승장구했다. 산업은행 채권팀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며 삼성증권에 스카웃되었고 CJ투자증권 이사를 역임했다. 또 채권 전문가로 역량을 살려 국내 최초로 펀드처럼 채권 정보를 제공하는 코리아본드웹을 설립 대표로 재직했다. 판매사 중심이 아닌 투자자 중심의 금융자산
19세 나이로 에베레스트 산을 올랐고, 이듬해엔 북극에서 남극까지 42,000km를 무동력으로 종단한 청년이 있다. 2008년 내셔널지오그래픽 올해의 탐험가로 선정되었고, 전 세계 지리학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활발히 활동하는 영국왕립 지리학회의 회원이기도한 이 남자. 자신의 경험으로 대한민국에 새로운 생각을 심어주는 동기 부여자(Motivational Speaker) 제임스 후퍼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어떻게 처음 탐험을 결심하게 되었나요? 어릴 때부터 탐험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지?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던 친구와 같이 자전거 타는 클럽 활동을 했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계속해서 타다 보니 자신감도 많이 생겼고요. 그런데 클럽에서 간 자전거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신문에서 에베레스트 산에 대한 이야기를 봤어요. 그 기사에 나온 에베레스트 산 사진을 보고 순진한 마음에 ‘와 멋있다, 당장가자!’고 시작하게 된 거죠. 자신감만 가지고 시작했어요. 사실 어렸을 때 아빠랑 산책이나 조금 했었지, 탐험 같은 것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았어요(웃음).에베레스트 산을 가기 전 준비 기간이 짧지 않았을 텐데?16살 때부터 3년 동안 에베레스트 산을 가기 위해 연습하고 준비
사람들의 손목에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부품들로 이루어진 시계 속 세상. 그 세상을 지난 40년 동안 쉬지 않고 탐험해온 사람이 있다. ‘명장’이라는 칭호를 가진 그의 손에서는 죽은 시계도 금세 새 생명을 얻는다. 대한민국 시계 명장 1호 장성원 ‘장성원시계’대표에게 시계 이야기를 들어보자. 에디터 이정훈 기자서울 압구정동에 위치한 ‘장성원시계’. 이곳에는 중고 명품시계를 구매하거나 매입하기 위해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다른 이유에서 ‘장성원시계’를 찾는다. 바로 시계명장 장성원 대표에게 시계 수리를 받기 위해서다.시계와 장성원 대표의 첫 만남은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기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던 초등학생 시절 장성원 대표는 짝꿍이 차고 온 시계를 기어이 뜯어보고 말았다. 당시 손목시계는 전교에 한두 명이 차고 있을 정도로 귀했던 물건.“17살부터 했으니 이제 40년이 넘었네요. 어려서부터 특별히 시계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에요. 작고 재밌는 것들, 시계를 떠나 기계 종류는 모두 좋아했지요. 시계는 우리 어릴 적에 그렇게 많이 만져볼 기회가 없었거든요. 당시 학
월 매출만 억대를 올리며 웬만한 중소기업을 능가하는 사업체로 키운 탤런트이자 CEO인 김종결사장. 음식점 창업의 교과서로 평가받으며 가장 성공한 연예인 CEO로 손꼽힌다. 특히 부침이 많은 음식점 창업으로 19년째 대박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김종결그의 외식사업 성공비결을 들어봤다. 70년대 히트작 연화, 아씨 등 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하며 안방극장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탤런트 김종결 사장. 70년대 청춘 아이콘이었던 그는 40년이 넘은 관록의 연기를 바탕으로 여인천하, 무인시대 등의 사극에서 중후한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여인천하에서 연기했던 김안로는 팬카페가 생길만큼 인상적인 연기로 지금까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지난해 봄에는 미니시리즈 마이더스에도 출연했다. 올 봄에는 또다른 사극으로 브라운관에 복귀할 예정이다. 연기자 ‘김종결’ 뒤에는 따라붙은 또다른 이름이 있다. 바로 연예계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사장님’이란 타이틀이다. ‘장사의 신’, '음식점 교과서‘란 별명이 말해주듯 그는 음식점 창업으로 웬만한 중소기업을 능가하는 규모의 사업을 일궈냈다. 김종결 사장이
상암 월드컵경기장 바로 길 건너에 위치한 벽돌집. 이곳에는 ‘명랑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너덜너덜한 문짝과 부서진 서랍, 침대들이 이들 손에서 새 가구로 뚝딱 만들어진다. 목공방이나 가구공장이라기 보다는 ‘놀이터’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이곳. 사회적 기업 ‘문화로놀이짱’의 안연정 대표를 만났다. 에디터 이정훈 기자국내에서 버려지는 폐목재는 연간 약 200만 톤. 서울시에서만 1년에 약 16만 톤 이상의 폐목재가 버려진다. 하지만 대부분 재활용되지 못하고 매립되거나 소각된다. 지난 2006년부터 폐목재를 태워 전력을 생산하는 열병합 발전소들이 늘면서 지난 2011년 한해에만 70만 톤의 폐목재가 태워졌다. 전체 발전량의 2%를 신재생 에너지로 채우는 의무할당제(RPS) 때문에 대부분이 발전소에서 조력이나 풍력 발전 보다 투자비가 적게 드는 폐목재 소각방식을 선호하기 때문. 내년부터는 연간 약 150만 톤의 폐목재가 소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연보호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시행되는 신재생 에너지 사업이 오히려 폐목재 재활용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목재 자급률이 약 11%에 불과한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이런 상황이 과연 환경을 위한 길일까?
19세 나이로 에베레스트 산을 올랐고, 이듬해엔 북극에서 남극까지 42,000km를 무동력으로 종단한 청년이 있다. 2008년 내셔널지오그래픽 올해의 탐험가로 선정되었고, 전 세계 지리학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활발히 활동하는 영국왕립 지리학회의 회원이기도한 이 남자. 자신의 경험으로 대한민국에 새로운 생각을 심어주는 동기 부여자(Motivational Speaker) 제임스 후퍼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에디터 이정훈 기자어떻게 처음 탐험을 결심하게 되었나요? 어릴 때부터 탐험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지?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던 친구와 같이 자전거 타는 클럽 활동을 했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계속해서 타다 보니 자신감도 많이 생겼고요. 그런데 클럽에서 간 자전거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신문에서 에베레스트 산에 대한 이야기를 봤어요. 그 기사에 나온 에베레스트 산 사진을 보고 순진한 마음에 ‘와 멋있다, 당장가자!’고 시작하게 된 거죠. 자신감만 가지고 시작했어요. 사실 어렸을 때 아빠랑 산책이나 조금 했었지, 탐험 같은 것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았어요(웃음).에베레스트 산을 가기 전 준비 기간이 짧지 않았을 텐데?16살 때부터 3년 동안 에베레스트 산을 가기
환경에 따라 변화되지 않는 조직은 곧 몰락을 의미한다. 무한경쟁시대로 접어든 방송시장에서 상호간의 신뢰와 최상의 품질을 위한 기술경쟁력은 최우선이 될 수밖에 없다. 항상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T미디어웍스는 뉴미디어시대의 선두주자를 열어가고자 한다. 김기배 전무를 만났다.국내 유일의 종합방송기술전문회사인 T미디어웍스. 프로그램제작에서부터 송출까지 방송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기술력을 갖추고 최상의 품질을 만든다는 목표아래 전 직원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각 분야의 방송전문가들이 모여 뉴미디어시대를 열어가고자 출발한 이 회사는 최고의 기술력과 최상의 품질을 추구한다. 지상파방송 및 케이블방송, 위성방송 및 ,DMB스포츠와 골프 채널을 비롯한 각종 프로그램제작을 해내는 체계적인 시스템은 국내에서는 유일하다. “우리 회사는 6개의 채널을 제작하고 있는데요. 곧 8개로 늘릴 예정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SBS의 위성DMB와 지상파DMB를 했었는데 위성DMB는 SBS로 가져갔고 지상파DMB만 우리가 하고 있죠. 현재는 SBS케이블채널과 종편방송인 채널A를 우리 회사에서 제작합니다.” 김기배 이사의 설명이다.원래 T미디어웍스는 S
알톤 스포츠는 지난 1994년부터 한발 앞선 디자인과 품질, 합리적인 가격으로 자신의 입지를 구축해온 자전거 전문 기업이다. 경쟁업체보다 뒤늦게 출발했지만, 과감한 경영전략으로 지난해 55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업계 2위로 자리매김한 알톤 스포츠의 김천흠 부사장을 만났다. 알톤 스포츠(이하 알톤)는 국내 자전거 업계 2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브랜드다. 하지만 ‘만년 2위’가 아니다. 지난 1994년 ‘세익 트레이딩’으로 설립된 이후 불과 10여년 만에 메이저 자전거 브랜드로 성장했다. 김천흠 부사장은 알톤의 이러한 성장에는 중국 현지에 직접 자체 공장을 설립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1995년부터 중국 현지 공장을 설립하여 제품을 생산했습니다. 물론 공장이 크진 않았습니다만, 그 당시만 해도 국내 대부분의 시판 업체들이 OEM을 통해 물건을 들여왔거든요. 부지부터 건물의 건설까지 저희가 100% 진행한 것입니다. 이렇게 직접 공장을 운영하다 보니 아무래도 타사에 비해서 가격 경쟁력이나 품질 면에서 경쟁력이 우수했지요. 그리고 해외 제품의 벤치마킹과 OEM 수출 등의 기회도 많아졌습니다. 결국 이러한 점들로 인해 기술이나 최신 시장정보를 많이 접
박 회장의 올해 사업목표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공격적으로 마케팅한 해외시장공략이다. 국내시장은 샵샵이 속도전을 내기 시작했고, 해외사업부는 원활하게 정상 진입로를 구축했다. 곧 시작될 속옷사업부는 본격적인 전개를 앞두고 있다.그러나 무엇보다 지난 7년간 끊임없는 교육을 통해 개발한 인재중 심의 방판사업부의 진가가 발휘할 단계에 와 있다.“여성들은 자기 안에 잠자고 있는 가능성을 몰라요. 그 능력을 인정하는 여성들이 별로 많지 않다는 말이죠. 사실은 무궁무진한데도요. 저는 직접 경험했던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이 회사를 창업할 때 여성들의 잠재된 능력을 일깨워주고자 했었고 그것을 지키는데 많은 시간과 물질과 정신을 투자했죠. 올해는 그간 투자해 온 것들을 발휘해서 해외시장 진출은 물론, 파코메리에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있는지를 보여줄 때라 생각해요. 그래서 가슴이 막 뛰어요.”박 회장의 화장품회사 경력은 25년이다. 인재개발의 필요성은 경험에서 얻었다. 그리고 실천했다. 그래서 그 어떤 호칭보다도 박 회장이 좋아하는 호칭은 인간재생공장 공장장이다. 그것도 집안에서 주부로 살았던 여성들을 상대로 인재를 개발하는 이런 박 회장을 보고 속 모르는 사람들은 늦게 가
채화칠기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최종관 전승자. 국내의 몇 안 되는 장인 중 한 사람인 그는 배우자도 같은 길을 걷고 있던 여인을 택했다. 그리고 부부는 평생을 옻칠을 하면서 알콩달콩 살아간다. 한 길을 걸어온 지 벌써 40년. 이젠 지겨울 법도 하건만 부부는 너무나 행복하단다. 동행 길에 아들과 딸이 합류했기 때문이다.작년에는 가족전도 가졌다. 아들과 딸의 손을 거치면서 젊어진 작품은 전통미를 겸비한 현대미로 활용도를 한층 높였다. 가족의 작품전에 전통협회와 관람객들의 호응은 대단했다. 그 어떤 이슈보다 작품의 완성만이 관심거리인 이들에게 세상은 감칠맛으로 보답한다. 언론에서조차 관심가져주지 않은 빛바랜 일일지라도 이들에겐 행복수치를 높인다.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이들이 있기에 우리 문화는 그 가치를 빛나게 하고 소박한 행복에 스며들게 한다.최종관 전승자는 20살에 옻칠을 시작했다. 특별히 배운 것도 아니고 배고픈 시절이었으니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마침 집안에 형이 옻칠 공장에서 일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배웠다. 그렇게 산 세월이 40년이나 됐다.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는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너무나 행복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