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귀금속 공예라 하면 사치품이라고 생각하기쉽다. 하지만 비철금속인 금, 은, 동의 재료를 통해 희소성과 재화가치를 상품으로 탄생되는 게 귀금속공예다. 대량생산이 보편화되어 있는 요즘, 작품 하나하나에 혼을 담아서 고객들의 니즈에 맞추고 나만의 작품세계를 이어가는 사람들. 우리전통 고유의 맥을 이어가는 박창순 귀금속공예명장을 만났다.한꺼번에 대량을 생산해내는 기계보다는 조금은 느리더라도 상품 하나하나에 혼을 담아서 만들어 내는 수작업은 어쩌면 구시대적으로 느껴진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는 장인의 혼을 담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자본에 밀려 같이 한 동료들이 하나 둘 사라져갈 때 가슴이 저미는 한숨을 담아서 작품으로 토해내는 이들을 우린 장인이라고 부른다.돈보다는 사명감이 먼저 이기에 긴 세월의 고통도 감내하는 이들이 그나마 위로 받을 수 있는 건 그 분야의 최고라는 명예일 터. 오직한 길만을 걸으면서도 행여나 마음이 흔들릴까봐 주변 조차 돌아보는 것에 인색했던 이들이 장인의 혼을 이어가고 있다. 오늘 만난 박창순 명장이 그런 장인 중 한사람이다.누구나 그 분야의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힘든 과정을 겪어내는 인내가 필요하듯, 박 명장도 귀금속공예 최고의 자리에
여보세요, 김과장님이신가요? 저는 이민형의 엄마인데요, 오늘 애가 너무 아파서 회사엘 못 갈 것 같네요. 영 일어나질 못해요. 잘 좀 봐주세요.”학부형의 전화를 받는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된 것 같다. 어제까지 멀쩡히 퇴근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전화통화도 못할 만큼 아픈가? 엄마 입을 빌려 결석하는 미취학 아동처럼 20대가 훌쩍 넘고서도 엄마를 통해 결근을 알린다. 입사통지서를 취학통지서로 착각한 건 아닌지, 보호자를 동반해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 요즘 신세대들, 도통 이해가 안 된다. 키덜트(Kids+ Adult)족이 직장에 입사했다. 레고 장난감, 게임 속 주인공과 대화를 하던 그들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맞벌이를 하며 한없이 너그럽게 키웠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나아 잘 키우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산아제한 정책에 힘입어 금이야 옥이야 키운 외동아들, 외동딸이다. 물질적 풍요만큼 사랑도 독차지했고, 헌신적인 사랑만큼 부모 의존도가 높은 세대다. 옳다 그르다를 논하기 전에 이런 성장배경과 세대적 특수성을 이해하면 한심하다가도 감정이 누그러진다. “요즘 애들 왜 그래?”라며
유럽 재정 위기는 관료들의 실기(失機)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모든 신용 위기는 돈을 풀어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신용 위기의 본질은 거래 상대방이 파산할 수도 있다는 불안(counterpart risk)의 확산에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납세자들의 세금 사용 권한을 가지고 있는 정부와 발권력을 가지고 있는 중앙은행이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할 것이라는 확신을 시장에 심어줘야 한다. 그러나 10월 말 EU정상회의, 11월 초 G20 정상회의는 무성한 말잔치로 끝나고 말았다. 은행의 자본 확충은 시장에 맡겨버렸고, 역내 구제금융기구인 EFSF(유럽재정안정기금) 증액 문제도 추가 출자 없는 레버리지 도입이라는 미봉책을 내놓는 데 그쳤다. 그사이 유럽 재정 위험의 불길은 그리스·포르투갈 등과 같은 유럽의 변방에서 이탈리아·프랑스 등의 중심부로 옮겨 붙고 있다. 유럽 금융기관들의 단기 자금 조달 여건은 다시 악화되고 있고, 프랑스와 독일의 국채 수익률 스프레드는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프랑스의 역사적 전통과 국민성, 성장 잠재력 등을 감안하면 프랑스가 국가 채무를 이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에 가깝다. 단 현재의 조건
모든 생명체는 때가 되면 죽는다. 그게 자연의 섭리다. 만약 그렇지 않고 오래오래 계속 산다면 그건 축복이 아니라 대형사고가 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만드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람들이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때가 오면 그 기업은 죽어야 한다. 그래야 그 기업에 투입되는 인력과 자본을 다른 곳에 활용할 수 있다. 죽지 않고 계속 살아 숨 쉬면서 내뿜는 독소는 다른 기업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준다. 저축은행도 마찬가지다. 저축은행의 기원은 사채업에서 찾을 수 있는데, 사채업은 은행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던 시절 서민들이 숨 쉴 수 있도록 도와준 유일한 돈줄이었다. 그들을 고리대금업자라고 비난하긴 하지만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은행의 빈자리를 메워준 사채업자와 저축은행에 감사해야 한다. 그들의 존재 이유는 분명히 있었고, 그들이 받았던 고금리는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은행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우리 금융시스템의 그림자였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은행이 열심히 도와주고 키우던 대기업들은 돈을 별로필요로 하지 않는다. 돈이 필요하더라도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주식을 상장해서 자본시장에서 직접 조달한다. 저축은행들이 주로 대
유방재건수술(Breast Reconstruction)이란 유방암 때문에 유방절제술(Mastectomy)을 받은 환자, 선천적 또는 외상으로 인하여 유방이 없는 환자에게 유방을 만들어주는 수술이다. 유방암 때문에 편측 또는 양측 유방절제술을 받은 환자는 암 자체로부터는 해방되었다 하더라도여성상실이라는 정신적 충격과 열등의식에 사로 잡혀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환자들에게 자신감을 회복시켜주며, 유방절제술에 대한 정신적 여유를 갖게 해주는 수술이 유방재건술이다. 이 수술은 19세기 초반에 Halsted가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 탄시니(Tansini)(1906)에 의해 광배근근피판을 이용한 유방재건술이 처음 시도된 후올리버(Olivari)와 보스트윅(Bostwick) 등에 의해 그 수술방법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7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근피판(myocutaneous)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발달되었고, 미세혈관문합술의 발달로 유방재건술이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1982년에 하트램프(Hartrampt) 등에 의해 횡복직근근피판을 이용한 유방재건술이 발표되면서 자가조직을 이용한 유방재건은 더욱 활성화되었다. 또한 Radovan에 의해 조직확장술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은행은 독특한 지위를 가진다. 이윤을 추구하는 사적 경제주체이기도 하지만, 자금의 순환을 매개하는 중재자로서경제 전반에 영향을 주는 인프라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은행의 위기는 개별금융기관의 어려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경제시스템 전반의 교란으로 이어지게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은행뿐만 아니라 비은행 금융사들이 가진 중요성이 부각됐다. 80년대 이후 진행된 금융규제 완화로 인해 소위 그림자금융권(shadow banking system: 투자은행, 헤지펀드, 사모펀드등)의 규모가 오히려 전통적인 은행보다 커졌기때문이다. 리먼브라더스 파산 직후의 극심한 혼란은 금융시스템 교란을 가져오는 대마(大馬)가 전통적 은행이 아닌 투자은행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주식시장을 압박하는 악재가 단지 순환적 경기 하강이라는 실물적요인에 그칠 경우 주가가 추세적으로 크게 하락하는 약세장(bearmarket)이 출현하지 않는다. 금융시스템의 교란이 신용경색으로 이어지고, 이런 신용경색이 다시 실물경기에 악영향을 주는 부정적인 피드백이 나타날 때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한다. 한국증시의 추세적 약세장에서는 늘 금융기관의 위
자본주의 경제에 경기순환 즉 호황과 불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은 20세기가 다 되어서야 벌어진 일이다. 불황을 일컫는 여러 영어 표현이 있지만 그 대부분 또한 19세기 말에 새로이 출현한 것들이다. 하지만 화폐 경제의 일상을 살아가면서 생존해야 하는 민초들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살기 힘든 자신들의 삶이 더더욱 피폐해지는 이러한 경기불황의 현실을 그 전부터 몰랐을 리 없다. 이들이 옛날부터 쓰던 더 오래된 ‘불황’의 영어표현 중에 ‘어려운시기(hard times)’라는 말이 있다. 내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표현이다. 내가 이 표현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러하다. 경기 불황을 나타내는 다른 표현들은 대부분 물가, 실업률, 경제성장률 등의 가공의 경기지수들의 추이를 경험적 현실의 바탕으로 삼는다. 이런 것들은 물론 서로 연결되어 있고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그 중심에 있는 ‘생활세계’에서의 가장 살아있는 핵심은 사람들의 삶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수들은 그러한 핵심적인 진실의 일면을 나타낼 뿐, 그 핵심을 나타내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엉뚱한 주객의 전도가 벌어져서
내 별명이 ‘시베리아 면도날’이란다. 우연히 직원 블로그를 방문했다가 알게된 사실이다. 차갑기가 얼음같고 날카롭기가 가시 같단다. 백주 대낮에 발가벗겨 광장으로 내몰린 느낌이다. 나만 몰랐던 사내 비밀들이 누구나 검색하면 볼 수 있는 블로그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니 놀랍고도 신기하다. 사무실에선 침묵하던 양들이 인터넷에선 포효하는 사자같다. 블로그에 이런 글을 올리지 말라고 경고를 해야 하나, 여기서라도 사내 비밀을 파악해야 하나, 말 못할 고민이 하나 더 늘었다 ‘형님세대’인 ‘386세대’가 이념의 깃발을 내걸었다면 ‘블로그세대’는 자유의 깃발을 꽂았다. 자기정체성이 삶의 목적인 블로그 세대는 주위 눈치를 별로 안본다. 블로그에 회사 일을 올리는 것도 산더미같은 일에 파묻혀 억눌렸던 본성을 자신만의 공간에 풀어내는 것이다. 뒤통수를 치려거나 모함을 하려는 정치적 행동과는 무관할 확률이 높다. 상처 받지말고 관찰하자 사무실에선 침묵하던 그들이 불특정다수에게 수다를 털어놓는다는 것은 사무실에서는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만나는 상사에겐 직접 말하지 않으면서 블로그에 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