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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리포트

‘변호사강제’와 ‘국선대리’, 민사상고심에 도입되나

사법절차 효율적인 운용과 당사자 권익보호 VS 자기결정권과 평등권 침해


[M이코노미 박홍기 기자] 민사소송은 형사소송이나 헌법소송과 달리 당사자주의를 취하고 있다. 당사자주의는 소송주도권을 법원이 가지는 직권주의와 대립되는 말로 소송의 양당사자가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고 증거를 제출하면서 대등한 지위에서 공격·방어하는 것을 뜻한다. 민사소송에서 법원은 제3자적 입장에서 양당사자의 주장과 입증을 판단하기만 하고, 당사자가 신청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는 판결하지 못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몇 가지 문제점이 제기된다. 우선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사람은 법률분쟁이 생기면 재판진행과정 자체가 생소해 변호사 선임을 통해야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 보통인데 여기에는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든다. 

최근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제도 도입으로 매년 1,500명 이상의 변호사가 배출되면서 수임료가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기본서류작성이 아닌 소송대리라면 아직까지 최소 300만 원은 줘야한다. 1,000만원 넘는 소송도 허다하다. 경제력에 따라 소송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민사소송 특성상 실제 소송으로 다툴만한 법적실익이 없는데도 잘 몰라서 혹은 밑져야 본전 식으로 계속 소를 제기하면서 법원의 업무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2016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5년 상고기각률이 88.3%에 이르고 있다. 대법원에 올라온 사건 10개 중 약 9개는 애초부터 법적으로 판단할 내용이 없었다는 뜻이다. 이에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6월 법률심인 상고심절차에 필수적인 변호사 대리인 선임을 강제하고, 변호사를 선임할 자력이 없는 당사자를 위한 국선대리인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법절차 효율적 운용과 당사자 권익보호 가능해져

우리나라 민사소송은 3심구조로 구성돼있다. 지방법원에서 판결 받은 것이 불공정하다고 생각되면 항소해 고등법원에서 판결을, 이 또한 불공정하다고 생각되면 대법원에 상고해 다시 판결을 받을 수 있다. 1심과 2심은 주장사실의 존부를 판단하는 사실심을, 3심은 재판에 적용된 법률 등의 위반이 있는지만 판단하는 법률심을 맡는다. 나경원 의원 발의안은 법률심인 상고심부터 변호사강제주의를 도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지난 9월19일 ‘필수적 변호사 변론주의와 민사국선대리인 도입 및 논쟁’이라는 주제로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홍세욱 대한변호사협회 제1기획이사는 “(제도가 도입되면) 소제기 단계에서 불필요한 소송을 막아 법원의 업무경감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사법제도가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소제기 후 소송절차 진행단계에서 효율적인 소송준비가 가능하고, 절차가 집중적으로 진행돼 변론주의나 구술주의원칙과 같은 기본원칙들이 보다 잘 준수될 수 있다”며 “(법원이)분쟁상황을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해 합리적인 분쟁해결을 도모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권익보호 측면에서 홍 이사는 “법률지식이 부족함에도 경제적인 이유로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해 분쟁의 결과가 왜곡되고 재산적인 손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며“국선대리인 제도의 신설로 국민들에 대한 사법복지 범위를 확대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현직에 있는 권순건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는 “(재판 과정에서) 소송당사자 가운데 한명이 자필로 100페이지 넘는 서면을 써서 낸 적이 있는데 그 사건 처리를 위해 다른 사건을 못했던 경험도 있고, 수억 원 걸려있는 소송에서 (법률지식의 미진으로)주장을 안 해 답답하고 안타까웠을 때도 있다”며 “이런 경험에 비추어보면 변호사강제주의에 전체적인 방향엔 동의하지만 곧바로 상고심 전체 영역에 도입하기 보단 필요한 영역에 선별적으로 도입해 제도가 도움이 된다는 걸 국민들에게 먼저 설득한 후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형사·헌법재판에서 이미 운영 중인 변호사강제주의, 민사재판도 동일한 기준에서 볼 수 있어

형사소송법 제33조에 따르면 ▲피고인이 구속된 때 ▲피고인이 미성년자인 때 ▲피고인이 70세 이상인 때 ▲피고인이 농아자인 때 ▲피고인이 심신장애의 의심이 있는 때 ▲피고인이 사형, 무기 또는 단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기소된 때 ▲빈곤 그 밖의 사유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때 ▲연령·지능 및 교육 정도 등을 참작하여 권리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국선변호인을 선임하거나 할 수 있도록 돼있어 형사소송에서 부분적으로 변호사강제주의가 운영되고 있다. 또 헌법재판소법 제25조 제3항에 따르면 ‘각종 심판절차에서 당사자인 사인은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지 아니하면 심판청구를 하거나 심판 수행을 하지 못한다. 다만, 그가 변호사의 자격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어 헌법소송에서는 전면적으로 변호사강제주의가 실현되고 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동 규정 도입 후 약 30년간 여러 번 제기된 헌법소원 사건에서 줄곧 합헌성을 인정해왔다.


토론회에 참석한 정영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사상고심 변호사강제주의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에서 헌법재판소가 밝힌 논거를 빌려 “대법원 민사재판에 있어 변호사강제주의는 재판업무에 분업화 원리의 도입이라는 긍정적 측면 외에도 ▲재판을 통한 기본권의 실질적 보장 ▲사법의 원활한 운영 ▲민사재판의 질적 개선 ▲재판심리의 부담경감과 효율화 ▲사법운영의 민주화 등 공공복리에 그 기여도가 크다고 하겠고, 그 제도적 이익은 본안소송주의를 채택함으로써 변호사 선임비용 지출을 하지 않는 이익보다는 이익형량 상 크다”며 “더욱이 무자력자에 대한 국선대리인제도라는 대상조치가 별도로 마련돼 있는 이상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민사상고심 변호사강제주의는 자기결정권 침해, 헌법·형사재판과 본질적 차이

제도도입을 반대하는 입장은 상고심에서 변호사를 무조건 선임하도록 하는 것이 인간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당사자주의 등 자기결정권이 지배하는 민사소송절차에서는 자신이 직접 소송을 수행할 것인지, 소송대리인을 선임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최현진 대한법무사협회 법제연구위원은 “일본의 2005년부터 2011년까지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본인소송을 하는 원고의 62.9%가 본인 스스로 소송을 수행하고 싶다는 의욕 때문에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는다”며 “국민은 자기소송의 주체로서 소송에 관해 스스로 결정권을 행사하고 싶어 하는데 국민으로 하여금 무조건 변호사를 선임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국민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변호사강제주의가 국민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것은 법학자나 법학교수, 법무사 등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는 국민이 당사자인 경우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된다”며 “변호사들보다 훨씬 전문적인 법률지식을 갖추고 있는 등 스스로 소송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 국민에게 무조건 변호사를 선임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것이 명백하다”고 말했다. 

형사소송이나 헌법소송에 제도가 도입돼있으니 민사소송에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은 우월한 공권력에 의한 국민의 기본권침해를 막기 위해, 형사소송에서는 국가형벌권 실현과정에서 우월한 공권력 행사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변호사 강제주의가 필요한 면이 있다”며 “그러나 민사소송은 대등한 사인 간의 사적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절차라는 점에서 헌법재판이나 형사소송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사인 사이의 법적 다툼인 민사소송에서는 헌법재판이나 형사소송보다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이 특히 더 존중돼야한다”며 “민사소송과 성격이 전혀 다른 헌법재판과 형사소송에 변호가 강제주의가 도입돼있다고 곧 민사소송에도변호사 강제주의를 도입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경제력과 사는 지역에 따라 국민 차별해

변호사강제주의가 경제력에 따라 국민을 차별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변호사보수가 최하 수 백 만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변호사선임을 강제하는 것은 경제적 부담 때문에 소송을 포기하도록 강제한다는 주장이다. 최 연구위원은 “대부분의 국민은 국선대리인이 선임될 만큼 가난하지도 않지만 고액의 선임료에 구애받지 않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을 만큼 부유하지도 않다”며 “변호사보수를 제한하고 국민의 부담을 낮추려는 노력은 안하면서 국민으로 하여금 무조건 변호사를 선임하도록 하는 것은 극소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이름으로 대다수 국민에게 고액의 변호사비용을 강제로 부담시키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아울러 국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 차별받을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전국에서 개업 중인 변호사 17,000여명 가운데 13,000여명(76.5%)은 서울에 집중돼있다. 또 전국 약 230개 시군구에서 변호사가 1명 이하인 지역은 84곳에 이른다. 변호사강제주의를 도입하기 위해선 국민이 사는 곳 주변에 변호사가 충분히 있어 국민이 쉽게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변호사의 대도시 편중현상이 심해 지방에 거주하는 국민들의 경우 차별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최 연구위원은 “변호사가 대도시에 현저히 집중된 상태에서 변호사강제주의를 도입하면 지방에 거주하는 국민은 변호사 선임의 불편으로 소송을 통한 권리구제를 포기할 수 있다”며 “지방에 거주하는 국민을 대도시에 거주하는 국민과 차별해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실련 “법원과 변호사업계 간 유착관계로밖에 안 보인다”...1심부터 사법 접근권 보장해야

3심인 상고심은 사실관계를 확정짓는 1·2심과 달리 적용 법률의 위반여부만 가리게 된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변호인의 조력이 필요한 시점은 사실 확정을 짓기 전 치열한 공방이 오가는 1심이나 2심이지, 모든 쟁점이 정리된 3심 때 변호사를 투입하는 정책은 시급한 과제가 아니라는 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설명이다. 김삼수 경실련 정치사법팀 국장은 “(법안은 상고심에 변호사강제주의를 규정하고 있는데) 사회적 경제적 요부조자들은 분쟁초기단계에서의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라며 “대법원 상고심은 재판이 거의 마무리되는 단계고 90% 전후가 기각되는 상황에 중요한 재원이나 인력을 투입한다는 건 국민의 재판청구권 보장과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맞지 않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선변호인의 경우 당사자의 취지보다는 판례나 대법원의 법리에 의한 형식적 서면을 작성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도 했다. 국선변호사가 대법원과 다른 입장에서 대법원의 선행판결을 비난하거나 파격적인 법리공방을 펼칠 수 없어 객관적인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게 될 거라는 얘기다. 김삼수 국장은 “헌법재판에서 국선대리인 신청기각률이 2014년 9월말 기준 82.45%”라며 “국선변호인을 대법원에서 관리하면 상고장 각하절차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현재 민사소송은 70% 이상이 변호사가 아닌 전문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변호사 강제주의를 도입하는 것은 변호사 직역을 강화하기 위한 법원과 변호사 업계 간 유착관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1심부터 세입자, 소비자, 의료피해자, 환경 및 공해피해자, 행정상 처분을 다투는 국민, 금융피해를 입은 다수당사자 등 분쟁의 종류별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공변호사제도를 강화해 사법접근권을 보장하고, 상고사건의 실질적 감소가 일어나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살펴본 바와 같이 각자의 주장에는 충분한 설득력이 있는 게 사실이나 어떤 제도의 도입이든 이권다툼이나 이념논쟁이 아닌 국민권익보호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MeCONOMY magazine October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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