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이코노미 박홍기 기자] 농협중앙회의 ‘비정규직 100% 정규직 전환계획’이 결국 공염불에 그치고 말았다. 농협은 2017년 5월 범농협 일자리위원회를 구성해 5,245명이라는 정규직 검토대상 인원을 확정했고, 이를 같은 해 국정감사에서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아울러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은 취임 2주년 간담회에서 5,200여 명 중 3,214명을 순차적으로 전환하겠다며 기존 계획에 변동이 없음을 재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협은 지난해 7월 최종 전환대상 인원을 1,917명으로 대폭 줄이면서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엎어버렸다. 이번 취재과정에선 더 이상 추가전환 계획이 없다는 사실까지 확인됐다. 농협이 비정규직 대책을 졸속으로 수립했거나, 정규직 전환에 대한 의지가 애초부터 없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농협 “비정규직 5245명 정규직화 검토” 발표... 국감서 순차적 전환계획 공개
농협은 지난 2017년 5월25일 보도자료를 내고 약 8,000명 정도 되는 모든 계열사(지역 농·축협 제외 34곳) 비정규직 직원 가운데 5,200여명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농협중앙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농협중앙회 및 각 계열사의 총 직원 수는 현재 35,289명”이라며 “전문직 계약직, 퇴직 후 재취업자(순회감사역), 출산휴가 대체인력(산전 후 대 체직) 등을 제외한 정규직 검토대상은 5,245명으로 전체인원 대비 14.9%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창출정책 기조에 발맞춘 움직임으로, 농협중앙회는 이때부터 정규직 전환대책을 총괄하는 ‘범농협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절차를 검토하는 등 전환 작업에 돌입했다.
그로부터 약 5개월이 흐른 2017년 10월20일. 농협중앙회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비정규직 5,245명을 2019년까지 100%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구체화했다. 범농협 일자리위원회 위원장인 허식 농협중앙회 부회장은 구체적인 정규직 전환계획을 묻는 김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전문직 계약직 등을 제외한 5,245명 전원을 올해 40%, 내년 30%, 내후년 30% 해서 100% (정규직으로) 전환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2017년 10월20일, 농해수위 국감 中>
김철민 의원 > 회장님.
김병원 농협중앙회장 > 자세한 것은 전무이사(허식 농협중앙회 부회장)께서 잠깐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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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원 농협회장 “5245명 中 우선 3214명 정규직 전환”...실제 1917명 확정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국감 등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공언한 농협은 이듬해인 2018년 한층 더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내놨다.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은 지난해 3월5일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기자실에서 열린 취임 2주년 브리핑에서 “전환대상 비정규직 직원 5,245명 가운데 3,214명을 올해 안에 정규직으로 전환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2018년 3월5일, 김병원 농협중앙회장 취임 2주년 브리핑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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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농협중앙회가 이처럼 수차례 ‘5,245명’의 비정규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처럼 하고도 전환 대상을 2,000명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대폭 줄였다는 점이다. 농협중앙회는 지난해 7월24일 범농협 일자리위원회를 열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규모를 1,917명으로 확정했다. 엄연히 따지면 1,917명의 정규직 전환마저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1,917명은 정규직이 아닌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무기 계약직은 고용안정성은 보장되는 반면 임금과 복지, 승진 등의 근로조건이 정규직과 다르다.
박완주, ‘전환대상 급감’ 지적 ...농협 측 “나머진 공채지원 시 서류전형 면제 등 검토”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었던 농협중앙회의 표리부동(表裏不同)한 행보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농해수위 국감 과정에서 “농협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정규직 전환대상 인원 5,245명을 100% 전환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비정규직 직무분석과 현장실사 후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최대한 빨리 정규직화를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공언했다”며 “그러나 실상은 계획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이 당시 농협중앙회로부터 받은 ‘직무분석 결과 법인별 전환대상 인원’에 따르면 5,245명을 대상으로 한다던 정규직 검토대상은 4,728명으로 517명이나 줄어들었고, 정규직 전환대상 인원은 1,917명으로 절반 이상인 63.4%나 급감했다. 농협의 34개 계열사 가운데 농협물류는 71명에서 5명으로 정규직 전환 대상이 93%나 감소했고, 농협중앙회는 322명에서 53명으로 83.5%, 농협은행이 519명에서 130명으로 75%, 목우촌이 94명에서 27명으로 71.3%, 하나로유통이 1,620명에서 483명으로 70.2%가 줄어들었다. 계열사 3곳은 정규직 전환 계획조차 세우지 못한 상태였다.
농협 측은 34개 계열사 가운데 전문직, 산전 후 대체직 등을 제외한 전환대상 2년 계약직 5,245명을 대상으로 직무분석· 현장실사·정부 민간부문 가이드라인 등을 감안해 단계적 추진을 검토했지만 ▲법인별 자체 직무분석 ▲조직내부 수용성 ▲채용절차의 정당성 등을 갖추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1,917명으로 전환규모를 확정했다고 설명했다.
<2018년 10월16일, 농해수위 국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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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의원은 이처럼 농협 측에 전환인원 재조정을 통한 ‘추가’ 정규직 전환계획을 요구했지만, 농협중앙회는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다만 농협중앙회는 서면 답변을 통해 “현재 재직 중인 비정규직에게는 정규직 공채지원 시 서류전형 면제 및 가점 부여 등 우대방안을 검토하겠다”며 “장애인 별도 채용 및 직·간접 일자리 창출도 적극 추진해 농협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농협 “1917명 外 정규직 추가전환 없다 ...앞선 발언은 의지표명이었을 뿐”
약 1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은 어떨까. 농협 측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관련 “추가 전환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올해 말까지 전체 계열사 정규직 전환대상 1,917명에 대한 정규직화를 추진하는 것이 목표”라며 “상반기까지 1,100명 정도 전환했고, 나머지 대상자에 대한 정규직 전환은 하반기 채용 시즌에 맞춰 완료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농협중앙회와 농협은행 등 8대 법인 소속 비정규직 직원의 정규직 전환 작업은 끝났고, 나머지 기타계열사의 경우 필기시험과 면접 등 내부제한 경쟁을 통해 올해 안에 마무리 할 예정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2017년부터 정규직 전환검토를 위해 일자리위원회를 구성해 법률검토, 실태조사, 직무분석, 경영여건 등을 감안했고, 노동조합과 협의를 실시해 최종적으로 1,917명에 대한 정규직화를 진행하고 있다”며 “공공기관 중 농협만큼 정부 일자리 정책에 발맞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곳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비정규직 자체를 뽑지 말자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자연감소분과 업무특성 등을 감안해 비정규직 자리를 없애고 정규직 공채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부연했다.
농협이 비정규직 대책을 졸속으로 수립한 상황에서 섣불리 발표한 것 아니냐는 질문엔 “정부의 정책 방향도 있고 사회적 요구도 있으니 선제적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검토 해보겠다고 발표한 것”이라며 “확정적인 내용은 아니었다”고 답했다. 김병원 농협중앙회장, 허식 농협중앙회 부회장이 국감 등에서 수차례 관련 내용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서도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의지표명 정도지, 단정적으로 말한 건 아니었을 것”이라며 “그때 만해도 직무분석에 대한 검토나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없었기 때문에 확정적인 내용을 얘기할 수도 없었다”고 했다.
농협은 몸집에 맞는 사회적 책임 다해야
농협은 직원 및 조합원 수만 각각 10만명, 200만명에 달하는 기관으로, 국가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거대조직이다. 공공기관이 아님에도 ‘약속’에 상당한 무게감이 실리는 이유다. 농협 8대 법인의 수많은 비정규직 직원들이 지금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정규직 전환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들은 아직까지 농협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 그러나 농협 8대 법인은 더 이상 정규직 전환 계획이 없다.
약속의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민감한 사안인 만큼 더 구체적인 실현 계획을 가지고 신중히 결정해 발표했어야 한다. 농협 측의 주장은 그동안 ‘정규직 전환확정’이라고 언급한 적은 없고, ‘정규직 검토대상’이나 ‘정규직 전환계획’이라고 했으니 책임이 없다는 식인데, 그 발언의 주체가 ‘농협’이기 때문에 법적 책임과 별개로 도의적 책임은 분명히 있다. 추가적인 정규직 전환계획을 수립하지 않고 지금 수준에 그친다면, 농협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음은 지난해 국회 농해수위 국감에서 김종회 민주평화당 의원이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에게 언급한 내용이다.
“호언장담을 잘 안하시는 김병원 회장님께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100% 호언하셨는데, 잘 되지 않고 있습니다. 언행일치가 잘되는 사람이 군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인간이고요.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언고행 행고언(言顧行 行顧言)하라 했습니다. 말은 언제든지 행동을 돌아봐야 하고, 행동은 언제든지 한 말을 돌아보면서 언행일치 시키는 것이 군자의 도고 우리가 바라는 바인데, 100% 호언하셨으니까 충분히 실천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해야 할 것이고, 정규직화 하라니까 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 놓고 ‘정규직화 했습니다.’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M이코노미뉴스는 농협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과 관련한 후속 취재와 보도를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