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이코노미 문장원 기자] 치솟는 아파트 가격으로 최근 신규 아파트 분양 당첨이 로또 당첨과 같다는 ‘로또 아파트‘라는 자조 섞인 표현까지 등장한 지 오래다. 이에 대안으로 논의되는 것이 토지임대부 주택과 환매조건부 주택이다. 지난해 12월 경기도가 경기주택도시공사 등 공공기관이 제공한 부지에 아파트를 지어 분양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공공기관이 되사는 ‘기본주택 분양형’(공공환매 토지임대부) 공급을 추진하기로 했고, 변창흠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도 오랫동안 이러한 유형의 주택 도입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최근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 M이코노미 매거진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토지임대부 주택과 환매조건부 주택의 개념
토지임대부 주택이란 토지 소유권은 공공기관이 갖고, 주택은 분양을 받은 민간이 소유하는 방식이다. 국가, 지방자치단체, 주택공사, 토지공사 등 공공기관이 토지를
소유하고 그 위에 지은 건물만 민간에 분양하며, 토지 지분이 분양가에서 제외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공급 가능한 구조다. 인근 지역 주택가격의 절반 수준으로 주택을 마련할 수 있어 ‘반값 아파트’라 불리기도 한다. 주택을 분양받은 사람은 공공기관 소유의 토지 지분이 분양가에서 제외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주택 구입이 가능하나, 매월 토지 임대료를 납부해야 한다.
분양가가 저렴해 서민 주거 안정 방안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청약 대상도 무주택자와 서민을 주요 대상으로 하고 있고, 무주택자에게 우선 공급하며 1가구 1주택만 허용한다. 통상 토지 임대 기간은 약 40년으로 장기간 임대할 수 있으며 향후 재건축도 가능하다.
환매조건부 주택은 공공기관이 아파트를 건설해 시세의 3분의 2 가격에 분양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다시 사들이는 방식이다. 토지공사, 주택공사 등 공공기관이 토지를 개발하고 주택을 건설해 시세 대비 저렴한 가격으로 실수요자에 분양한다. 이때 소유권은 분양받은 사람이 갖지만, 매각은 반드시 공공기관에 해야 하는 조건이 붙는다.
환매조건부 주택은 무주택자가 시세의 70% 수준으로 주택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추후 매각을 원할 경우 공공기관이 사들이며, 매입 가격은 분양 시 정한 가격이나 최초 분양가에 정상 이자율을 적용한 가격으로 결정되므로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없다. 무주택자는 전세 자금 수준으로 주택을 마련할 기회를 얻고, 주택 구입자는 전세와 비교해 주거 안정권이 보장되며, 공공기관은 향후 매수권을 갖게 됨에 따라 투기 수요의 차단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북유럽·싱가포르에서 오래전부터 활용
토지 임대부주택은 유럽 일부 국가의 경우 이미 오래전부터 활용하고 있는 제도다.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은 1900년대부터 국가나 지자체가 토지를 확보해 주택을 건설하고 토지 임대료를 받는 토지임대부 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1990년 이후 지가 상승으로 토지임대료가 상승하면서 저렴한 주택 공급 추세는 다소 둔화되는 분위기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는 전체 토지의 약 68%를 차지하는 시유지를 토지임대제도에 활용하고 있다. 주거용 토지의 임대 기간은 약 50~60년이며, 임대료는 토지 가격의 약 4% 수준에서 결정된다. 헬싱키에는 토지 임차를 원하는 수요층이 많고, 단독주택 용지는 임차 희망자의 가족 규모와 재산을 기준으로 정하며, 아파트 등 공동주택 용지는 개발 업자와 정부 당국의 협상에 따라 토지 배분과 임대료가 결정된다.
이 제도를 통해 임차인은 정부가 보장하는 임차권으로 주거 안정권을 확보할 수 있으며, 계약서 내용과 다르게 토지 이용 시 임대 계약이 취소되거나 보상을 해야 하는 책임을 진다. 다만 제도 정착을 위해 토지 임대료의 징수와 재산 가치의 평가에 상당한 재정이 들어간다.
스웨덴 주택시장에서 공공주택은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1900년대 초반 정부에서 토지임대제도를 스톡홀름시에 도입하면서 확산됐다. 스웨덴 정부는 지난 1950~60년대 도심 토지의 90% 이상을 사들여 가격을 조정. 토지는 국가가 소유하되 건물은 민간과 공공이 건설해 공급했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주택 공급이 가능한 반면 공공 임대주택에 입주하기 위해 대기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스톡홀름 전체 토지의 약 70%를 국가가 소유해 저렴한 가격으로 토지임대부 주택을 공급하고 있으나, 높은 수요로 인해 주택을 분양받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앞서 언급한 싱가포르 역시 주택개발청(HDB)을 통해 토지임대부 주택과 환매조건부 주택 제도를 모두 실시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현재까지 HDB가 공급한 주택은 약 119만 호에 달하며, 전체 인구의 약 80%는 HDB가 공급한 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HDB는 매년 약 2만 호를 공급하고 있는데 주택 유형은 원룸부터 방 2~5개 구조까지 다양하다. 분양 주택가격은 시세의 50~60% 수준이며, 토지를 임차권 형태로 공급함에 따라 분양가는 민간주택의 절반 정도로 공급할 수 있다.
싱가포르에서 이런 주택공급이 가능한 배경에는 이미 지난 1960년대 초반에 토지 공개념을 기반으로 대부분의 토지를 국유화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1947년 지대관리법, 1966년 토지취득법을 통해 전체 토지의 약 81%를 국유화했다.
HDB로부터 주택을 분양받은 사람은 5년간 전매가 제한되며, 이후 환매 시 차익의 최대 25%를 국가가 환수한다. 공급 방식은 시민권 소유 여부, 소득 수준, HDB 주택 소유 여부 등을 고려해 신청 자격을 부여하며, 주택을 분양 받은 경우 중앙연금준비기금(CPF,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이 분양가의 80% 정도를 저금리로 융자 지원을 해준다.
HDB에서 아파트를 분양받을 기회는 일생에 2회로 제한된다. 첫 번째 분양의 경우 5년 거주해야 하며, 기존 대출을 모두 갚으면 두 번째 주택 분양 신청(의무 거주 기간 3년)이 가능하나 정부 지원은 없으며 은행 대출을 이용해야 한다. 5년 이내 주택을 매각할 경우 HDB에서 사들이며, 시세 대비 낮은 가격으로 환수된다.
만일 거주자가 재판매를 원할 경우에는 분양가와 시세를 비교해 일정 부분을 개발이익으로 환수한다. 전매제한 기간인 5년이 지나면 민간 주택시장에 매각할 수 있으며, 주택 유형에 따라 개발이익 환수 비율을 적용한다.
눈여겨볼 부분은 HDB가 공공주택의 가격 급등 방지를 위해 중개 업무를 맡고 있다는 점이다. 주택 소유자는 매도 시 가격을 HDB에 신고해야 하며 허위 기재 시 벌금 등으로 처벌한다. 또한 HDB에서 재판매되는 주택 물량을 통제하고 가격 적정성을 검토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이처럼 유럽, 싱가포르 등 일부 국가에서 토지임대부 주택의 대거 공급이 가능한 것은 국가나 지자체가 오랜 기간 많은 땅을 확보한 데서 가능한 제도다.
이에 비해 한국의 경우에는 유럽 국가나 싱가포르 등에 비해 저렴한 주택 공급이 가능한 국공유지 확보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사업 추진에 다소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또 분양 막을 보완책 필수
우리나라에서 토지임대부 주택과 환매조건부 주택 도입 추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지난 2009년 4월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공급촉진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제정해 서울 강남 세곡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가 처음 공급된 바 있다.
2006년 11월 당시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이 ‘대지임대부 분양주택’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고, 이에 따라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환매조건부 분양을 기본으로 한 반값 아파트 방안을 제안했다.
이후 2007년 10월 참여정부 당시 관련 내용이 입법화되기 전 경기 군포시 부곡 택지개발사업지구(47만㎡)에 총 2,737세대의 국민임대주택단지 중 토지임대부 389세대, 환매조건부 415세대를 공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입지 여건이 좋지 않고, 40만 원에 달하는 높은 토지 임대료로 인해 청약률과 계약률이 저조해 사실상 중단됐다. 2009년 6월에는 전 가구를 일반 분양으로 전환했다.
한편 강남 보금자리주택지구 내 LH서초5단지(서초구 우면동)와 LH강남브리즈힐(강남구 자곡동)이 토지임대부 주택으로 공급됐다. 하지만 전매 제한이 풀린 이후 가격 상승으로 시세 차익 논란이 일었다. 처음 분양가는 주변 시세의 절반 정도인 2억 원 초반대이고, 토지 임대료는 30~40만 원대였다. 토지 소유권이 없고 매월 임대료를 납부해야 하는 단점으로 초반에는 인기가 없었지만, 입주 후 수요가 크게 증가했고, 전매제한 기간인 5년이 풀리는 시점에 이르자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실제 강남 보금자리주택지구 내 토지임대부 주택인 LH강남브리즈힐은 2012년 당시 2억2,000만 원(전용면적 84㎡)에 분양됐는데 인근 단지인 세곡푸르지오는 3억4,000만 원에 분양됐다. 현재 시세를 비교해보면 세곡푸르지오는 매매가 15~16억 원에 비해 LH강남브리즈힐은 매매가 11~12억 원(토지 소유권이 없어 다소 저렴)으로 다소 낮은 편이나 분양 시점과 비교하면 상당한 시세 차익이 발생한 것이다. 초기에 분양받은 사람에게 큰 시세 차익이 발생하면서 로또 분양이라는 이야기가 여기에서 나왔다.
저렴한 주택 공급 면에서 효과는 있을 것
이런 배경에서 지금 논의되는 토지임대부 주택과 환매조건부 주택에 대해 초기 분양받은 사람의 시세 차익 발생을 막을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정부도 지난해 12월 29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관련법에 분양받은 토지임대부 주택 매각 시 한국토지공사(LH)에 되팔도록 하는 환매 의무화 조치를 포함시켜 시세 차익을 공공이 환수하도록 했다. 법 개정안에는 전매제한 기간을 30년으로 늘리고, 주택량도 시 LH가 매입하며, LH가 건설해 공급하는 주택의 30% 이상을 토지임대부 주택으로 공급하는 내용도 들어갔다.
최근 발표된 3기 신도시 역시 토지임대부 주택과 환매조건부 주택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손은경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토지임대부 주택과 환매조건부 주택 공급은 시세 대비 저렴한 주택 공급과 함께 로또 청약을 방지할 수 있는 대안으로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라며 “서민 주거 안정과 저렴한 주택 공급 면에서 토지임대부 주택과 환매조건부 주택은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했다.
다만 “국내의 경우 주택 구매 시 토지를 포함한 소유권을 원하는 수요층이 많고 향후 주택 매각을 통한 시세 차익을 기대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같은 주택 유형에 대한 수요로 이어질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라며 “30년이라는 장기간 전매 제한 기간으로 인해 실수요층의 수요로 이어질지도 관건이다”라고 했다.
손 연구위원은 “실수요층도 주택을 소유가 아닌 거주의 개념으로 보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라며 “환매 시 주택가격이 하락하면 공공기관이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주택 분양가격 수준과 환매 시 주택가격, 환매 주택의 재판매 대상, 공공 사업자의 재정 부담 등은 향후 고민해야 할 과제”라고 했다.
MeCONOMY magazine March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