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결정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국제해양법재판소에의 제소’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전문가들은 만일 국제해양재판소에 해당 사항을 제소한다면 ‘유엔 해양법협약상 강제분쟁해결절차’를 활용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 유엔 해양법협약의 해양환경보호규정에 근거해 연안국의 일방적 행위의 적법성을 다투는 강제분쟁해결절차에의 제소가 늘고 있다.
지난 4월 13일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원전에 보관 중인 방사능오염수를 방류한다는 기본 방침을 정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후 제1원전에서는 방사능오염수가 하루 160~170톤씩 발생하고 있는데 현재는 도쿄전력에서 핵물질 정화 장치로 처리한 후 부지 내 탱크에 보관하고 있다. 하지만 오는 2022년 10월쯤이면 보관 중인 방사능오염수의 양이 저장 탱크의 용량을 초과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핵물질 정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현재 기술수준으로는 방사능오염수를 처리해도 삼중수소(트리튬)라는 방사성 물질이 충분히 제거되지 않고 잔류할 수 있어 일본 내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이 방류를 우려하고 있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 결정 보도 하루 만인 4월 14일 문 대통령은 청와대 내부회의에서 “일본의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과 관련해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잠정 조치와 함께 제소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라고 지시했다.
日 방사능 오염수 방류, 해양환경보호의무 위반
일본의 방사능오염수 방류 결정은 유엔 해양법협약상 해양환경보호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인정된다면 한국이나 관련국은 협약의 강제분쟁해결절차를 활용해 국가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최근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검토되고 있는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는 ‘유엔 해양법협약상 강제분쟁해결절차 활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엔 해양법협약의 강제분쟁해결절차가 적용되기 위한 요건은 총 세 가지다. 첫째는 유엔 해양법협약의 해석·적용에 관한 분쟁이 존재해야 하고, 둘째는 당사국이 선택한 다른 평화적 분쟁해결수단이 있으면 당사국이 선택한 수단에 의해 해결되지 못했어야 한다. 일방에 의한 갑작스러운 강제분쟁해결절차 개시를 방지하고 사전적 분쟁 해결을 위한 기제로서 당사국들은 분쟁 해결과 관련된 의견을 교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적용배제 사유가 없어야 한다.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에서의 주권적 권리 또는 관할권과 관련된 분쟁 가운데 강제분쟁해결절차의 적용에서 자동으로 배제되는 분쟁 유형이 있다.
당사국은 배제선언으로 해양경계획정 관련 분쟁 또는 역사적 만(historic bays) 및 권원 관련 분쟁, 군사 활동에 관한 분쟁 또는 해양과학조사·어업 관련 법집행활동에 관한 분쟁, 안전보장이사회가 유엔헌장에 따라 부여받은 권한을 수행하고 있는 분쟁에 대해 강제분쟁해결절차의 적용에 대한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다. 한국은 유엔 해양법협약 제298조에 열거된 모든 유형의 분쟁에 대해 강제분쟁해결절차 배제선언을 한 상태이다.
국제 판례상 일본의 소송 차단 힘들 것
최근 국제 판례를 보면 유엔 해양법협약의 해양환경보호 관련 규정에 근거해 연안국의 일방적 행위의 적법성을 다툴 수 있게 해 강제분쟁해결절차의 관문이 확대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유엔 해양법협약 제7부속서의 중재재판에 회부되었던 사건에서 일방 분쟁당사국이 상대국의 해양환경보호 관련 규정 위반 사실을 주장한 사건은 모두 5건으로, 2001년 아일랜드와 영국 간 혼합산화물핵연료 재처리공장(mixed oxide nuclear fuel reprocessing plant: MOX Plant) 잠정조치 사건과 2003년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간 조호르 해협 간척 잠정조치 사건, 2015년 모리셔스-영국 간 차고스 군도 사건, 2016년 필리핀-중국 간 남중국해 사건, 2020년 우크라이나-러시아 간 흑해 연안국 권리 선결적 항변 사건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모리셔스-영국 간 차고스 군도 사건과 필리핀-중국 간 남중국해 사건 2건은 실제로 중재재판부에서 해당 규정의 위반 사실이 있었음을 인정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만일 한국이 유엔 해양법협약의 해양환경보호규정에 근거해 오염수 방류행위의 적법성을 다투는 강제분쟁해결절차의 활용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면밀히 검토할 사항이 있다고 강조한다.
정민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최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에 대한 국제법적 대응방안’ 보고서에서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 고려 시 검토사항으로 “유엔 해양법협약상 강제분쟁해결절차의 활용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고 대비하되, 일본과의 해양환경보호 공동협력체계를 구축해 나가기 위한 양자 간 외교를 계속 병행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강제분쟁해결절차의 활용은 일본 측의 투명한 의사결정과 정확한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한·일 간 협상의 진행 과정에서 우리 측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정 조사관은 유엔 해양법협약상 강제분쟁해결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한국의 국제소송 역량에 대해 점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국이 정교한 소송기술로 일본을 강제분쟁해결절차에 회부해 잠정조치 또는 본안 판정에까지 이를 수 있는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 조사관은 “최근 해양환경보호 사건을 보면 지금은 다년간의 해양법 판례와 경험의 축적으로 강제분쟁해결절차를 활용하는 것이 소송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라며 “일본 측에서 재판소의 관할권 성립 여부와 관련해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최근 판례 경향을 보면 일본 측에서 완벽하게 소송을 차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을 한국이 강제분쟁해결절차를 공세적·선제적으로 활용하는 최초의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정 조사관은 “그간 한국은 한반도 주변수역에서의 해양 활동과 폐기물 투기로 인해 유엔 해양법협약상 강제분쟁해결절차의 피소국이 되는 경우만 상정해 수세적으로 대비해온 경향이 있었다”라며 “이에 강제분쟁해결절차가 개시되기 전, 그 진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돌발변수의 예측·관리와 향후 한·일 간 해양 분쟁에 미칠 수 있는 파급효과에 대한 주의 깊은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MeCONOMY magazine May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