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부장판사 박정제 지귀연 박정길)는 이재용 삼성전자 외 피고인 13명의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계와 법조계에서는 그동안의 법원 판단과 달리 매우 전향적인 판결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지배구조 개편 과정이 회사와 주주의 이익으로 이어졌으며, 삼성그룹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위한 경영활동이 주주 이익을 고려했다는 것이 무죄 판결의 이유다.
또한, 이 회장의 지배력 강화 자체도 주주 이익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았다. 재판부는 “자신이 투자한 회사에 대한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로 경영권이 안정되는 것은 (주주의) 손해가 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이와 함께 2015년 삼성이 주총을 앞두고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대해 주주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이 회장의 지배력 강화 목적을 가장 먼저 언급했으며, 이 회장의 지배력 강화 자체가 주주의 이익이라고 판단한 만큼 ‘강점을 보다 잘 알리자'는 일을 했을 뿐이라고 판단하였다.
기업승계는 새로운 도약의 시작
기업승계가 부의 대물림 혹은 자본가의 이익 실현이라고 여기는 부정적 인식이 있다. 따라서 기업승계로 인한 자산의 이전에는 정당한 절차를 따라야 하며 부의 분배 차원에서라도 마땅히 높은 상속 증여세를 부과할 유인도 있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기업승계를 위한 국가의 지원이 기업의 존속을 보장하고 일자리 보전이라는 공공복리 증진에 기여한다’는 시각에서 기업인이 후계자에게 기업 자산을 승계하는 것을 일반 상속과 본질에서 다르게 평가한다.
기업승계의 경제·사회적 의미와 관련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2006)는 기업승계를 통한 제2의 창업이 신규 창업보다 평균적으로 높은 생존율을 실현하고 있으며 ‘고용 역시 신규 창업 대비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사실에 주목한 바 있다. 기업승계는 기업이 수십 년간 착실히 쌓아온 기술과 경영 노하우를 경제적으로 보전할 수 있는 확실한 대책이며, 지속적인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의 안정적 경영권 승계가 계속기업으로서 일자리를 창출하며 소득을 분배하고 국가가 부담하기 힘든 공공복리 증진에 기여하는 구조라면 기업승계는 면세와 감세로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 분야임에 틀림없다.
기업승계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을 경우 기업은 창의적 발상과 신속한 의사결정, 과감한 투자 활동으로 성장을 지속하게 된다. 성장하는 기업은 자연히 고용유지 및 일자리 창출뿐 아니라 국가경쟁력 및 경제 안정에 기여할 것이다. 바로 기업승계가 단순히 부의 대물림이 아닌 ‘책임의 대물림’이자 ‘제2의 창업’이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거꾸로 승계에 실패하여 기업의 소멸로 이어지면 최대주주의 가족과 기업, 국가 경제에 적지 않은 손실이 초래된다. 기업을 경영하던 가족은 소득원과 일자리 상실로 생존 및 복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기업은 축적된 기술과 노하우 등 유·무형의 자산이 소멸되고 생산설비가 상실되며, 국가 경제 차원에서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 이렇듯 기업승계는 해당 기업이나 가족 자체의 문제만이 아니라 기업과 관련한 다수의 이해 관계자와 나아가 국민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중소기업의 승계
1977년 설립된 봉제완구 전문 중소업체 양지실업이 생산한 ‘산타베어’는 미국에서 매년 400만 개 이상 팔리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86년 12월 美(미) 미네소타州(주) 미니애폴리스 TV의 프라임타임 뉴스에서 여성 앵커는 ‘산타 베어(Santa Bear)’의 인기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며 아직 크리스마스 선물을 장만하지 않은 가정이 있다면 아이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양지실업은 鄭錫周(정석주·69) 회장이 1977년 창업한 봉제완구 전문 생산업체로 생산량의
100%를 세계 15개국으로 수출했다. 임직원 수 450명에 연간 수출액 3천만 불이 넘는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산타 베어(Santa Bear)’ 전량을 수출했으니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86년 말 로널드 레이건 前(전) 미 대통령이 어린이들과 함께한 공식 연말 파티에 ‘산타 베어’를 들고 등장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특히 30년간 적자 없이 회사를 이끌며
6無 경영이 유명하다.
① 은행 차입이 없고
② 급여 일자를 어긴 적이 없고
③ 당좌 거래 계좌가 없고
④ 해외로부터의 클레임이 없고
⑤ 노사분쟁이 없고
⑥ 적자가 없다
이 회사가 2003년 종업-終業(그는 폐업-閉業이라 하지 않는다)을 결정하고 2006년 중국 칭다오(靑島) 공장을 문 닫았으며, 최근에는 서울 금천구 독산동의 공장과 사옥을 처분했다. 해외 판매라인은 모두 정리했고 종업원들에게도 퇴직금과 취업 지원금 등 보상을 하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종업 결정에 모두가 의아해했다. 정석주 회장은 종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가장 큰 이유라면 후계자가 없었어요. 아들은 완구와 관계가 없는 공부를 하겠다고 미국으로 떠났고, 전문경영인도 없었습니다. 3년 전부터 그만둘 계획을 세웠어요.”
“중소기업은 창업이념을 이어가야 합니다. 창업이념을 가장 잘 이을 수 있는 사람은 사실 가족 말고는 드물어요. 중소기업에서 뼈가 굵은 사람은 CEO로서 사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고, 대기업 출신 엘리트는 이 분야의 전문성을 갖지 못하죠. 또 오너로서 목숨 걸고 이 회사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이 없어요. 결국, 적당한 후계자를 찾지 못했습니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라고 하는데 중소기업에서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합니까? (중략) 이런 기업을 유지하려면 이런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고 함께해 온 자식한테 물려주는 게 제일 좋은데 우리나라에선 거의 불가능해요. 이러다 보니 괜찮은 기업들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국에서는 가업을 이을 때는 상속세 등 혜택을 주는 정책이 있거나, 이런 정책을 준비 중인 곳이 꽤 있습니다. 상속을 나쁘게만 보지 말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데 아쉽습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즘 경제계에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요인 중 하나로 얼마 전 IBK기업은행의 희망 중소기업포럼의 연사인 황승연 명예교수의 기업승계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황승연 명예교수 는 “한국에서 기업은 가치 창출의 주체가 아니라 가치 착취의 대상”이라며 기업의 상속과 관련한 규제, 특히 상속세 제도의 불합리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나라는 기업의 주가가 경제 수준이 비슷한 다른 나라에 비해 낮게 형성되어 있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을 겪고 있기도 한데, 그 원인 중 하나로 과도한 상속 세율이 꼽히기도 한다. 주가가 오르면 상속세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한국 기업 오너들이 주가 높이기에 소극적이거나, 오히려 주가를 낮추려는 모순적인 행위를 지속한다는 지적이다.
황 교수는 이와 관련해 “국내 기업들은 50~60%에 달하는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기업 분할, 일감 몰아주기, 재투자 축소 등 모순적 행위를 통해 주가를 낮게 유지하려 하고, 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작용한다”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지정학적 요소보다 주가를 고의로 낮추려는 오너 리스크에 더 큰 영향을 받으며 이는 결국 상속세 때문이라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러한 모순을 제거하면 장담하건대 10년 내 주요 7개국 G7 반열
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2008~2017년 10년간 신흥시장 주가 순자산비율 PBR 현황을 보면 한국의 PBR은 1.1배로 인도(3.2배), 인도네시아(2.9배), 멕시코(2.5배) 등의 국가보다 낮은 수준을 보이며, 신흥시장 평균인 1.6배에도 못 미친다. 주가수익비율 PER은 9.6배로 세계 증시 중 최하위권에 머무르는 실정이다.
황 교수는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상속세율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OECD 평균 15%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상속세 부담이 줄어드는 추세이기도 하다. 포르투갈, 슬로바키아(2004년), 스웨덴(2005년), 체코(2014년) 등이 2000년 이후 상속세를 폐지했으며, OECD 회원국 가운데 상속세가 없는 국가는 20개국에 이른다.
마지막으로 황 교수는 “상속세가 없어지면 주가를 낮게 유지하려는 기업의 모순적인 행위가 사라지고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면서 투자 유치, 고용 확대 등 경제 활성화 효과가 일어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중소기업의 지속가능성이 커지고 장수기업이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