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에서 활동하는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사용하는 무선호출기(삐삐)와 무전기 수 천 대가 지난 17일과 18일 이틀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면서 최소 25명이 숨지고 약 3천명이 다치는 사건이 일어나 지구촌이 충격에 휩싸였다. 충격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방식으로 대규모 테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존재하는 시대에 구식 통신수단인 삐삐를 동시다발적으로 폭발시켜서 다수 인명을 살상하는 방식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고, 실제로 전례가 없는 일이다. 또 민간인을 살상한 것은 무차별적 군사력 사용이 국제법적으로 금지된 상황에서 전형적인 막가파식 테러라는 점에서 최강의 용어로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전쟁 발발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는 한반도 거주민으로서 이번 사태의 특성과 교훈에 대해 민감하게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건이 문제가 되는 점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지구촌 주민들의 일상에 대한 테러라는 점이고, 둘째, 무차별 공격이 자행된 사례라는 점, 셋째, 국가 테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일상에 대한 테러라는 점은 지구촌 주민들이 흔히 사용하는 통신 기기를 테러 집단이 활용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삐삐가 테러 도구로 사용됐다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컴퓨터 단말기, 또는 자동차와 같은 개인 교통 수단, 버스나 철도와 같은 대중 교통 수단, 전기와 수도, 가스 등의 필수 공공 서비스도 테러 집단에 의해 사용되지 않으리라고 믿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에 폭발된 삐삐와 무전기를 보면 내부에 30그램 이하의 폭발물질과 원격 기폭 장치가 설치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몇 가지 선행 과정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삐삐나 무전기에 설치할 소형 폭발 장치와 통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고 제조나 유통 과정에서 폭발 장치가 설치돼야 하고, 헤즈볼라 대원들이 주로 구매자가 될 것이라는 정보도 필요하다. 장기적이고 대규모적인 테러 공작임을 알 수 있다.
현지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삐삐에 폭발물을 심어놓은 것은 헤즈볼라와의 전면전에 대비한 장기적 프로그램이었지만, 폭발물 설치 사실이 발각되는 바람에 급하게 폭발을 감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경우라고 해도 지구촌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소소한 기계 장치를 폭탄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은 앞으로 지구촌 주민이 안심하고 일상을 사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가 각종 국제법 규정을 무시한 무차별 군사력 사용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인류는 탄생하는 시점부터 수 천 년 동안 전쟁에 시달려왔다. 그러나 인류는 마침내 1945년 유엔 헌장 채택을 계기로 일정한 요건을 갖추지 않은 전쟁을 법적으로 금지하면서 지구촌 단위에서 문명 수준을 한 단계 격상하는 성과를 거뒀다.
유엔 헌장 제2조 4항을 보면, 모든 국가는 국제 관계에서 무력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예외 조항으로 자위권 발동이 있는데, 타국의 군사적 침공 이후 즉각적이어야 하고 불가피한 상황이 있어야 하고, 비례적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이번 사태를 돌아보면 자위권 조항과 전혀 맞지 않아서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국제인도법에 해당하는 제네바 협약과 헤이그 규약 규정에도 위반된다. 국제인도법에 따르면 민간인 보호 의무가 있고, 명백한 목표에 대해서만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어서 무차별 공격은 금지 사항이다. 이번 사례는 헤즈볼라를 겨냥했다고 하지만, 헤즈볼라 대원이 누구인지 특정하기 어렵고, 헤즈볼라와 무관한 사람도 문제의 삐삐를 사용할 가능성이 존재하므로 명백한 무차별 공격 사례다.
또한 유엔 총회가 1948년 채택한 세계 인권 선언과 1966년 제정한 ‘시민 권리와 정치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에서도 모든 인간에게 생명권과 자유권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해당 조항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범죄 행위다.
이번 사례는 특히 국가 테러리즘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국제 사회 주요 언론들은 중동 지역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이번 사건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하고 있다. 국가 테러를 자행한다는 것은 인류 공동체의 법과 규칙을 준수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문제에 대해 이스라엘이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지구촌에서 이스라엘이 존경을 받기는커녕 국가 테러를 저지르는 집단으로 비난받을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국제법을 위반해도 물리적인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부당성과 불법성을 고발해도 소용이 없다. 무력 충돌이 복잡한 양상으로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중동에서 그럴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국제법 위반이고, 처벌 대상이라는 점이 명백하다는 점에 대해 공감대를 확산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인류 역사 발전 추세를 보면 장기적으로 국제법이나 국제 규범이 실질적으로 정착하고 있고, 이를 위반하는 세력은 언젠가는 대가를 치른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인류 공동체에서 약 8천년 동안 특정국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전쟁은 합법이었지만 약 80년 전인 1945년 유엔 헌장을 계기로 불법이 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교적 짧은 기간에 전쟁의 불법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최근에도 전쟁이 간헐적으로 일어나지만 해당 국가들은 자위권이나 불가피한 상황을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전쟁이 금지됐다는 규칙이 상당 부분 정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국제법 차원의 논의를 떠나 이번 사태에서 주목해야 하는 요점 중에 하나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적대적 관계가 극도로 험악한 상황에서 대규모 무차별 공격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국가 간에 적대감이 최고조에 이를 경우 국가 테러 차원의 무차별 공격도 벌어질 수 있다는 등식을 얻을 수 있다. 남과 북이 지금처럼 적대적 관계를 꾸준히 고조시킨다면 한반도에서도 삐삐 동시다발 폭발과 유사한 사태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유사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가정이 부각되면 우선은 테러 정보 수입과 테러 격퇴 역량 강화, 또는 피해 최소화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동시에 적대감을 완화함으로써 적대국의 테러 공격 필요성을 현저하게 낮추는 노력도 필요하다. 국내 정치 차원에서 진영 논리가 과열되면 갈등 관계인 주변국에 대한 경멸 언사를 의도적으로 과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 국내 정치 지지자들을 결집할 수 있지만, 외교안보 차원에서 국가 이익을 훼손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그러므로 진영 논리에 따라 외교안보 정책을 전개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국가적 위기를 초래하는 자해 행위다. 특히 북한의 경우 한국에 비해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한 만큼 적대감을 낮추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경제난으로 붕괴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배후 지원국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제적으로, 외교적으로, 정치적으로 다양한 옵션을 사용할 수 있는 한국이 먼저 상호 적대감을 낮추는 노력을 주도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정책이 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레바논 ‘삐삐 폭발’ 사례를 보고 교훈을 얻어 대외 정책 기조를 전환하고 적극적인 적대감 해소 노력에 나서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