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의 문제는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문제의 축소판이다."
10일 국회위원회간 제8간담회실에서 열린 농협 유통구조 혁신을 위한 국회 토론회의 좌장을 맡은 원철희 농식품신유통연구원 이사장(전 농협중앙회장)이 한 말이다.
농협, 나아가 농협의 유통이 안고 있는 문제는 여러가지 난맥상이 얽히고 섥힌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라는 뜻이었다.
원 이사장은 "농협의 유통사업, 특히 하나로마트로 대표되는 소매 유통사업은 1990년대 농협이 전체적인 밑그림을 설계하고 본격적으로 추진한 사업이었다. 신용사업 위주의 농협에서 탈피해 적극적으로 우리 농민들의 농산물을 제대로 된 가격에 팔아주는 것, 그리고 유통구조를 혁신해 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안정적으로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발상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고 농협 유통의 역사에 대해 설명했다.
원 이사장은 "그러나 농산물 뿐 아니라 유통시장 전체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극심한 경쟁에 접어들었고 농협은 정부의 압력으로 치밀한 계획 없이 경제지주를 만들고, 대규모 안성농식품물류센터를 만들어 다시 농산물 유통단계를 늘리는 옛 한국의 농산물 유통으로 후퇴했다. 불필요한 옥상옥의 조직, 농협 특유의 금융기관 방식의 경제사업 운영 때문에 중앙회의 경제사업, 그중에서도 농산물 판매사업은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원 이사장의 지적대로 토론회에서는 누구 하나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각 이해 관계자에 따라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고 결국은 답을 내지 못했다. 토론회를 주관한 이병진 국회의원(민주당)조차 마무리 발언에서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논의가 시작됐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고 위안을 삼았을 정도다.
농협 유통이 안고 있는 문제는 무엇일까. 그리고 해결책은 어떤 것일까. 답 없는 공허한 메아리만 남았지만 농협 유통을 바라보는 입장에서의 시각 차이는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농협의 입장 : 전체 유통 시장의 문제, 내부에 답 있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박계찬 농협경제지주 마트전략국 국장은 "농협은 원예농산물 생산액 20.9조원 중 10.9조원을 출하해 생산액의 절반 이상을 유통하고 있으며 산지 생산자조직 정비와 산지시설 스마트화와 현대화, 도.소매 사업의 경쟁력 강화등이 필요하다. 또한 농협 도매사업 취급액은 매년 증가해 농산물 판매확대 및 농업인 실익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며 "직접 도매 사업량은 2019년 1조3,496억 원에서 2023년 1조6,895억 원으로 늘어났고 공판사업 사업량은 2019년 3조8,900억 원에서 2023년 4조9,750억 원으로 증가했다. 하나로마트도 정기특판, 정부정책 연계 할인(농할쿠폰) 등 행사를 지속 실시하며 소비자 혜택을 제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농협 유통이 처한 어두운 현실은 전체적인 시장의 침체와 맞물려 있다고 했다.
박 국장은 "승승장구하던 편의점 유통도 경기 침체로 성장률이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기존 신제품과 1+1 행사 전략을 이어가며 매장 대형화와 신선식품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형 마트들도 각기 위기 탈출을 위해 규모의 경제를 실시하거나 구조 조정을 통해 활로를 찾고 있다는 것이 농협의 입장이었다.
박 국장은 "이마트는 인건비 및 운영경비 절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구조조정 및 본사 조직 인력 통합 등으로 길을 모색하고 있다. 롯데 쇼핑도 브랜드 이미지 전환과 함께 비용 절감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농협이 나아갈 길도 구조조정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박 국장은 "오프라인 유통 마트와 슈퍼마켓은 식품코너 확대, 비식품 코너 축소, 델리와 가공식품 상품 구색 강화를 통한 2040세대 고객의 유입을 꾀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 하는 것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라며 "하나로유통은 대형마트, 슈퍼마켓 등 동종업계 대비 고비용 구조로 돼 있다. 2017년 이후 투자 매장의 대규모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유통 트랜드 변화에 대응이 미흡했다고도 할 수 있다. 또한 농협 유통은 2021년 유통 4사 통합에 따른 인건비 상승, 2023년 명예 퇴직 도입 초기비용 발생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 여기에 축수산 도매사업 조정에 따른 도매수의 감소 및 이연법인세자산 상각 등 비경상 비용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경영 개선을 위해서는 산지 농협 연계 확대로 지역 농산물 판매 증대, 판매장 상품 경쟁력 강화, 농협다운 매장 구현을 위한 농식품 매출비중 제고 및 우수 농산물 판매 확대, 계열사별 유휴자산 매각 또는 활용도 제고로 수익성, 현금 수지 개선, 도매기능 활성화를 토한 수익성 제고 및 신규 수익원 발굴 등을 들었다.
△노조의 입장 : 노동자의 고혈을 짜내는데만 골몰하고 있다
이동호 농협유통 노동조합 위원장은 "가장 민주적이고 자본주의 형태라고 평가 받는 협동조합, 그 중에서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협동조합인 농협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민주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인 행태가 문제를 키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위원장은 농협 유통사업의 설립목적은 구매대행사업과 유톤전문자회사의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 했다.
이 위원장은 "농협의 유통사업은 이익창출이 유일한 목적인 일반 대형 유통업체와는 그 설립 목적 자체가 확연히 구별된다. 농협의 주인인 농민들이 땀흘려 키운 우리 농산물을 적정한 가격에 매입해 소비자에게 신선하고 안전하게 공급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농산물 유통구조의 중심에서 그 존재 의의를 증명하는 사업"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대형 유통업체들의 통합 작업은 조직과 인력 통합을 통해 책임과 권한을 합치는 작업이고 그로 인한 시너지를 목표로 하지만 농협의 유통 사업은 구매와 판매를 분리하고 권한과 책임을 나눠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고 현 상황을 짚었다.
이 위원장은 "신선식품의 경우 안성농식품물류센터 중심의 통합구매를 강요하고 농협유통의 축수산 통합구매를 반토막내며 스스로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산지조합에서 농협유통으로 바로 공급되던 창립 초기 사업모델은 안성물류로 대표되는 지주 농산구매국이라는 중간 유통 단계가 추가되며 왜곡된 것이 가장 큰 퇴보라 할 수 있다. 이는 단지 최근 몇 년간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2009년과 2010년 농산과 가공생필류 구매권을 박탈하고 2015~2016년 농협 유통의 연금 유보금 약 1,000억 원을 배당받아 가는 과정에서도 경제지주는 유통자회사에 대한 투자와 방향성 제시를 통한 사업 활성화가 아닌 유통자회사의 고혈을 뽑아가는 약탈의 형태로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위원장이 내 놓은 해결책은 산지와 소비자, 농민과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유통구조의 혁신으로 우리 농산물을 판매하는 것이 농협 하나로마트의 존재가치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구매와 판매가 분리돼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관료제형 사업구조가 아니라 구매부터 판매까지 하나의 조직이 책임지는 정상적 사업구조가 돼야 한다. 얼마에 구매하든 사갈 곳이 정해진, 땅짚고 헤엄치기식 구매업무를 수행하며 은행 중심의 금융노조 교섭결과에 따라 급여 인상과 성과급이 결정되는 권한화 책임이 분리된 현재 시스템 하에서는 그 누구도 대형 유통업체와 경쟁할 수 있는 구매권을 기대할 수 없다. 농협중앙회가 각 자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본래의 취지에 따라 전문자회사의 독립 경영 체계가 보장돼야 한다"고했다.
또 "농협 유통은 40% 이상, 하나로 유통은 60% 이상이 2년 미만의 단기 계약직으로 채워져 있다. 고용의 질이 계속해서 나빠지고 있다. 그런 반면 경제지주의 상품본부는 매년 1,000억 원이 넘는 손익으로 지주 전체 손익을 떠받치고 있으며 구매파트의 MD들은 유통사업장의 성과가 아닌 농협은행 등 신용사업의 성과에 따른 임금인상, 성과급, 특별 장려금을 받고 있다. 권한도 힘도 없는 자회사 직원들은 모든 책임을 감수하며 희생해야 하는 구조적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농협 유통의 위기는 답을 찾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3자의 눈 : 기형적 구조의 농협 유통
세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농협 유통회사의 통합이 완전 통합으로 이뤄지지 않고 구매와 판매 조직이 별도로 존재하는 불완전 통합에 머무르고 있다. 하나로유통과 기존 유통 자회사가 별도로 존재하면서 농협 유통회사간 시너지가 훼손되고 있다"며 "유통회사는 구매가와 판매가 조절을 통해 다양한 영업 전략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구매권과 판매권이 분리된 구조는 대형 유통매장 등과의 경쟁력 상실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고 지적 했다.
이 위원은 "농협중앙회 매출 총 이익률을 보면 40%를 상회함을 알 수 있다. 이는 자산 총계 상위 30개 기업과 비교했을 때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 영업 이익률은 10% 안팎으로 형성되는 것이 상식이다. 농협은 비정상적인 영업 이익을 내고 있다. 그런데 농협 유통은 지난해 178억7,700만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그렇게까지 쌓아 놨던 자본이 잠식 상태에 있다는 얘기인데 실제로 투자한 금액 보다 더 순자산 감소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협 유통의 손실을 중앙회가 메꿔가는 형태로 변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농협중앙회는 어마어마한 이득을 보고 자회사는 굉장한 손해를 봐서 자본 잠식까지 되고, 자본 잠식이 되니까 중앙회나 경제적 지주가 또 계속 출자를 해가면서 이쪽에서는 물이 새고 이쪽에서는 굉장한 이익이 몰리고 몰린 이익이 계속 출자를 해가면서 지속되는 형태가 정상적인 사업이라고 절대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 위원은 "그런데 농협 유통도 2021년까지는 영업이익이 마이너스가 된 적이 없다. 2022년부터 처음으로 합계 비용이 마이너스가 됐다. 항상 플러스였던 농협 유통이 합병을 하고 난 뒤 적자가 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어떤 시장 상황이 단기적으로 나빠서라기 보다는 구조적으로 농협의 유통 및 적자를 보기 보다는 최근에 있었던 뭔가 구조 개혁이 조금 잘못된 방향으로 된 것이 아닐까 의심을 갖게 된다"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