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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북한 ‘영토 조항’ 개정 전망, 왜 틀렸나?

 

북한이 지난 7일과 8일 이틀 동안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우리의 국회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1차 회의를 열고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 개정 등 주요 안건을 처리했다. 회의가 열리기 전 대북 정책 관련 정부 기구와 다수의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이 예고한 최고인민회의 안건에 헌법 개정이 포함된 것에 주목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 공개적으로 지시한 헌법 개정, 즉 통일 관련 문구 삭제와 영토 조항 개정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회의 결과를 전하는 북한 매체 보도를 보면 북한이 헌법 개정을 하기는 했지만 노동 연령과 선거 연령을 조정하는 내용이었다. 통일 문제나 영토 문제 조항이 개정됐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오히려 김정은 위원장 지시 사항을 비공개로 처리할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 이번 회기에서 남북 관계 재조정 문제는 처리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내부 사정에 대해 한국 전문가들의 분석이나 예상은 틀릴 수도 있다. 북한이 국가 운영과 관련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헌법 개정’ 관련 예상이 틀린 것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북한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가장 큰 줄기에 해당하는 북한 정체성 이해에서 중대 오류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북한 정체성에 대한 부분에서 오판이 발생한다면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이 제대로 수립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이번 문제가 왜 중요한지, 그리고 왜 이런 잘못이 발생했는지, 꼼꼼하게 따지는 것은 앞으로 북한 정체성과 관련한 문제에서 오판을 방지하고, 대북 정책은 물론 대외정책 전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절차다. 북한이 이번에 헌법 개정을 다루면서 통일 관련 문구 지우기와 영토 조항을 개정하지 않은 이유, 또는 개정하지 못한 이유를 생각한다면 우선 작업 규모가 방대하다는 점을 고려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발언한 내용과 올해 1월 중순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한반도에 남한과 북한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하는데, 과거에는 동족의 나라로 분단됐다는 점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각자 다른 나라로서 독자적인 삶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헌법에 통일이나 평화 관련 문구를 삭제할 것을 지시했다. 북한에서 수령 지시는 모든 것에 앞선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1월에 지시한 내용이 10월에도 이행되지 못한 것에는 중대한 이유가 있음을 시사한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실무적으로 작업량이 방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통일 관련 문구나 영토 조항 개정은 단지 헌법 개정 문제나 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 철거를 넘어선 문제다. 김정은 위원장 지시는 헌법 등 최상급 강령 수정은 물론 북한 전역에 수백 개 이상의 박물관이나 교양교육 시설, 또는 수천 건 이상의 북한 주민 대상 교육 교재를 모두 변경하는 작업을 수반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작업일까? 아닐 것이다. 통일 관련 문구는 선대 수령인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70년 이상 장구한 세월 동안 반복적으로 제기한 주장을 반영한 것이다. 김일성과 김정일 두 수령 지시 사항 중에서 적어도 절반 정도가 통일과 관련한 지침일 것이다. 북한 지역 곳곳에 산재한 통일 관련 문구를 물리적으로 삭제한다는 것은 아마도 1,2년 정도의 시간 투자로는 어림도 없는 작업이 될 것이다.

 

둘째,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지도력 특성, 특히 권력 정당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문제다. 막스 베버에 따르면 특정 국가의 권력 구조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최고 지도자의 권력 정당성이다. 권력 정당성은 최고 지도자가 권력을 휘두르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순순하게 수용할 개연성을 의미한다. 권력 정당성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카리스마 정당성, 전통적 정당성, 법적-합리적 정당성이다.

 

카리스마 정당성은 권력자가 압도적인 역량이나 매력을 갖고 있어서 다른 경쟁자가 감히 대적할 수 없고, 도전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존재하는 정당성이다. 대개는 쿠데타나 혁명을 통해 국가 권력을 획득한 지도자들이 이런 종류에 해당한다. 전통적 지도자는 대체로 카리스마 지도자의 자식이 권력을 승계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 왕조 국가에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법적-합리적 정당성은 사전에 정해진 권력자 선출 규정에 따라 선거 등의 절차에 의해 최고 권력자가 보유하는 정당성이다. 한국이나 미국처럼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는 사람이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전형적인 사례다.

 

김정은 위원장은 어떤가? 그는 전형적인 전통적 지도자다. 특출한 능력이 있어서 수령이 된 것이 아니다. 단지 김일성의 손자고, 김정일의 아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북한의 절대 권력자가 된 것이다. 전통적 지도자는 카리스마 지도자나 선대 지도자와의 혈연 관계를 증명하면 권력을 승계할 수 있지만, 최초 카리스마 지도자가 제시한 위대한 약속을 차질없이 이행해야 한다는 제약을 갖고 있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은 전통적 정당성을 가진 지도자의 특성에 따라 최고 지도자가 된 이후에 가장 중요한 규칙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내용을 이행하라고 스스로 명령한 것이다. 아마도 김 위원장은 자신의 지시가 얼마나 큰 모순이고, 자해 조치인지 모르고 결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가장 유능하고 충성스러운 참모들조차 김정은 위원장의 권력 정당성을 부인하는 조치를 이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정은 위원장의 권력 상실과 정치 혼란, 궁극적으로 북한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분단 문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도 이번에 영토 조항 관련 오판을 한 주요 배경이다. 한국과 북한은 1945년 나라가 분단된 이후 지금에 이르고 있지만 전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천 년 이상 단일민족국가를 유지했던 특별한 나라다. 이런 민족적,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고 통일을 포기하고 영구 분단을 수용한다면 천 년 이상 누적된 전통을 무시하는 결과가 되고, 다른 나라가 결정한 국토 분단 수용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라가 분단된 지 79년이고, 남과 북 서로 통일 문제로 부담이 누적된 만큼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외세가 그어놓은 분단 결정을 수용한다면 스스로 주권을 지킬 의사가 없는 노예 민족이라는 수모와 경멸에서 벗어날 수 없다. 79년 세월이 길어서 외세의 분단 결정을 수용한다면 앞으로 또다른 외세가 남한을 동서로 분단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거기에 반대할 명분도 없을 것이다.

 

남이든 북이든, 분단을 수용하고 두 국가로 살자는 주장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김정은 위원장이 남과 북을 동족의 나라가 아니라 교전 중인 두 개의 국가로 규정한 것은 천 년 동안 면면하게 이어온 민족 정체성 차원에서 본다면 심각한 자기 부정에 해당하는 것으로 결코 실행할 수 없는 망상에 불과한 것이다.

 

위에서 검토한 내용을 고려하면서 북한 문제를 관찰하고 분석했다면 이번에 북한이 영토 조항이나 통일 관련 문구를 헌법에서 삭제할 것이라는 예측은 조심했어야 한다. 조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망이 틀린 것이고, 그것은 한반도 분단이나 북한 권력 구조나 사회 특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결과다.

 

이번 일을 계기로 북한 관련 정부 기구나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의 정체성과 한반도 분단 문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한반도 외교안보 정세에 대한 진단과 대응책 마련, 평화 통일 실현 방안 등에서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높일 수 있도록 다짐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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