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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北, 주체연호 사용 중단...국가 체계 변경 반영

 

북한에서 연일 남북 관계가 적대적 두 국가라는 점을 강조하는 조치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휴전선 요새 장벽 설치에 이어 남북 연결 철도와 도로 폭파 등이 우리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대한민국이나 한국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것도 주목 대상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사안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에 지시한 통일 관련 헌법 조항 삭제 문제로 과연 언제, 어떻게 헌법 조항을 개정할 것인지가 관심사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 충격적인 조치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로 알려졌다. 북한이 10월 12일 밤부터 공식 문서에서 주체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12일 밤에 나온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담화에서 주체 연호 대신 서기 2024년 연호를 사용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10월 12일자 제호에 주체113(2024)로 표기됐지만, 다음날인 13일자 제호에는 서기로만 표기됐다. 북한이 주체 연호를 도입한 것은 1997년 9월 9일 정권 수립 기념일로 제1대 수령인 김일성 주석의 탄생 연도인 1912년을 원년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북한은 27년 만에 주체 연호 사용을 중단하고 서기 연호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변경한 것이다.

 

◇ 주체 연호 사용 중단은 중요한가?

 

그렇다. 매우 중요하다. 주체 연호는 북한에서 국가 통치의 이념적 근간인 주체 사상과 직접적으로 연동돼 있다. 그런 만큼 북한 행보는 주체 사상과의 결별을 의미할 수 있고, 이것은 북한 관찰자 입장에서 본다면 북한 국가 성격이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주체사상과의 결별을 진행하는 이유와 의미, 향후 여파는 무엇일까? 김정은 위원장의 최근 언행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지난 1월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론으로 규정하고, 통일 관련 조항을 헌법에서 삭제할 것을 지시한 부분이다. 여기서 적대적 두 국가론과 통일 관련 조항 삭제, 그리고 주체사상 결별은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 민감한 관찰 요점이다.

 

세 가지 개념을 관통하는 개념은 권력 정당성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개인 능력이 특출하거나 선거 승리를 통해 권력을 잡은 것이 아니다. 단지 북한의 수령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로 지명했다는 사실 때문에 최고 지도자가 된 것이다. 전통적 정당성을 지도자들은 카리스마 지도자와 달리 국민들에게 특출한 능력이나 매력을 주기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없고, 선거에 의해 당선한 지도자처럼 임기에 구애받지도 않아서 편하게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다만 전통적 지도자에게도 한 가지 제약은 존재한다. 선대 지도자, 특히 최초의 카리스마 지도자가 제시한 주요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최초의 카리스마 지도자는 김일성 주석이다. 김 주석이 북한 주민들에게 제시한 주요 약속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자주 통일이다. 북한 논리를 좀더 길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단일 민족국가로 행복하게 살아왔던 한민족의 나라 조선이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받아 자주권에 침해를 당했는데, 불세출의 지도자 김일성의 반제 투쟁으로 일제 침략자를 격퇴했다.

 

곧바로 미국 제국주의 침략을 받았지만, 또 다시 김일성 주석이 영웅적으로 전쟁을 지도해서 국토 절반을 지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인 남한 영토는 미국에 강점돼 있으니, 주한미군을 몰아내고 남한 동족을 해방시키는 것이 민족의 과업이 됐다. 이 과업을 가장 잘 수행하려면 반제국주의 투쟁에서 영도력을 입증한 김일성 가문 중심으로 유일 지도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주통일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강대국 강압에서 벗어나 독자적 판단과 국가 운영을 의미하는 주체사상이다. 그러므로 자주통일론, 또는 주체사상은 김일성이 독재 통치를 유지하는 논리적 근거가 됐고, 김정일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권력 세습의 논리적 근거로도 활용됐다. 그런데 3대 수령인 김정은 위원장이 스스로 자주통일론과 주체사상을 폐기한다고 선언해서, 전통적 지도자의 제약인 최초 카리스마 지도자의 약속 이행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동을 하는 셈이다.

 

◇ 권력 정당성 스스로 훼손하고도 아무런 문제 없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권력 정당성이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지도자 통치에 대해 순순하게 협조할 개연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권력 정당성이 사라지면 국민들이 지도자에게 불만을 품는 경우 참지 않고, 저항한다. 다만 북한에서 김 위원장에 대한 치명적 반발이 일어날지는 명확하지 않다. 김 위원장이 새로운 카리스마 정당성을 창출하거나 민주적 선거를 진행해서 법적-합리적 정당성을 획득하면 사회 안정은 유지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선거를 진행할 가능성은 없으니, 카리스마 정당성을 창출하는 쪽으로 노력할 것이다.

 

◇ 김 위원장은 독자적 카리스마 창출 가능할까?

 

쉽지 않을 것이다. 김 위원장이 보여줘야 하는 가장 큰 과제는 경제 발전이다. 특히 남북 자주 통일 과업이나 주체사상이 폐기되는 조건에서는 경제 성장이 핵심 변수가 된다.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 지도력을 바탕으로 몇 년 사이에 남한과 비교할 수 있는 기적적인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을까?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북한의 정치와 경제, 사회가 수 년 이내에 중대 혼란을 경험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북한은 지금 북한 정권 출범 이후 가장 큰 위기 상황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불안 상황은 남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한반도 전체가 매우 위험한 상황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남과 북의 전면전쟁 가능성을 거론하지만, 논리적, 경험적 근거가 매우 조잡해서 과도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북한의 현재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상황을 살펴본다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전쟁을 걸어온다면 이틀을 견디지 못하고 북한군은 궤멸되고, 자신의 생명도 보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남한에 사용하는 시나리오도 생각할 수 있지만, 단지 논리적으로만 존재할 뿐이고, 실질적으로는 가능성이 없는 시나리오다. 쉽게 말해서 전면전이 날 가능성은 없다. 다만 북한 내부 혼란이 통제 불능 상태로 이어진다면 전쟁에 준하는 대규모적인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해야할 일은?

 

북한에서 급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려면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언행을 금지해야 한다. 오히려 북한과 대화 채널을 구축해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쟁 등 자해 시나리오 외에 평화 공존이 가능한 협상 시나리오가 존재한다고 알려줘야 한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외교가 전례를 찾아보기 거대한 과제를 만난 것이다.

 

만약 외교가 실패해서 급변 사태가 발생할 경우 인명과 재산 피해가 최소화하도록 최상의 위기 관리에 나서야 한다. 특히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이 북한 영토를 국제 연합 안보리 관할 구역으로 처리할 경우 북한 영토 가운데 80% 정도를 영구적으로 상실할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 비극을 막기 위해 주변국에 대한 외교 노력을 전개하는 것이 바로 지금 대한민국 외교의 과제다. 무인기 몇 대를 평양 상공에 보냈다고 승리를 자축하는 것은 한반도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위기에 대한 무지와 무능을 보여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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