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025년 새해 첫날 한남동 관저 부근에서 동조 시위를 하고 있는 지지자들에게 서한을 보내서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의지와 더불어 자신을 보호해달라는 취지의 요구를 제기했다.
국회에서 계엄선포를 빙자한 내란 혐의 등으로 이미 탄핵소추를 받았고,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 영장과 수색 영장이 발부된 상황, 그리고 수사 당국 조사 결과 윤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로 지목된 점 등을 고려하면, 윤 대통령 서한은 대다수 국민은 물론 수사 당국과 법원이 바라보는 접근법과 완전히 다른 맥락이다.
지난 12월 3일 밤 비상 계엄 선포 이후 자폭에 해당하는 담화문을 잇따라 낸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그동안의 상황 변화를 고려하면 자폭 담화문의 결정판이다.
국가 권력의 최정점인 대통령 자리에 있는 사람이 국회, 특히 야당이 자신의 말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군과 경찰 수천 명을 동원해 국회 무력화를 시도하고,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유튜브에서 쏟아내는 헛소리에 현혹돼서 선거관리위원회를 불법 점령하는 망동을 일으킨 일로도 우리는 충분히 충격을 받았다.
국회의 준엄한 탄핵을 받고도 계엄령 선포는 거대 야당의 횡포로 국정이 마비된 것과 관련해 야당에게 경종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뻔뻔한 거짓말을 늘어놓더니, 이제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자신을 보호해달라고 간청하는 형국이다. 탄핵을 요구하는 절대 다수 국민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일부 지지자를 상대로 시위를 사주하는 배경을 보면, 두 세력의 물리적 충돌을 유발하겠다는 꼼수가 내포돼 있다. 그에 대한 혐오감과 적개심이 열 배, 백 배로 커지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폭군으로 낙인이 찍히고 강제로 축출당한 사례가 몇 차례 있어서 이번 사태도 그런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상황이 전개되는 양상을 보니 윤석열 내란 사건은 사안의 심각성이나 중대성이 훨씬 커서, 엉터리 성격 파탄자가 벌이는 광란의 칼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악필자멸(惡必自滅), 즉 '악행을 일삼는 자는 반드시 스스로 멸망한다'는 필자의 믿음이 옳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악필자멸' 개념을 생각한 것은 자신의 출세 또는 존재감 과시를 목적으로 의도적이고 반복적으로 악행을 저지르면서 주변을 괴롭히다가 결국 자신의 악행으로 조성된 함정에 빠져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자들을 지칭하는 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면서 악당을 만나는 경우가 있고, 벌을 주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솟아나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응징할 수 있는 역량이 없어서 화를 참아야 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악인으로 규정했던 사람이 불운을 만나 혼이 났다는 이야기도 접하고 있다. 악인은 누군가의 보복이 아니어도 자연의 섭리에 따라 처벌을 받게 돼 있다면, 그리고 하나의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을 처벌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점도 고려한다면 답답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악필자멸이 보편적으로 인간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원리 가운데 하나라는 인식이 더 굳어졌다.
악필자멸은 논리적으로 틀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악인은 어떤 사람인가? 위에서 언급한 대로 자신의 이익 확보나 존재감 과시를 위해 주변 사람을 의도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괴롭히는 인간으로 규정하는 것이 편리할 것이다. 생각이 다르고 처지가 다른 다양한 인간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각종 규범을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저없이 훼손하는 사람들도 악인의 반열에서 빼놓을 수 없다.
악인들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공존 의지가 전혀 없고, 오직 자신의 성공이나 존재감 과시에 목숨을 건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결국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의 이익과 가치를 서슴없이 강탈하거나 비방과 중상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파괴한다.
악인들은 단기적으로 보면 세상 물정에 밝아서 영민하게 행동하면서 튼실하게 실속을 차리는 사람으로 보인다. 문제는 악인들이 어느 정도 성공을 한다고 해도 악행을 멈출 수 없다는 점이다. 악행 외에 할 줄 아는 재주가 없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착취하는 것이 자신의 출세 비결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주변에 남은 동료들은 유유상종, 즉 자신과 비슷한 종류의 악인들이다. 악인의 분탕질로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주변에서 꾸준하게 나타나게 되고, 악인에 대한 분노와 혐오, 복수심의 총량도 커지게 된다. 악인은 장소와 상황을 바꿔가면서 자신에 대한 보복을 피해가지만,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다. 자신을 겨냥해 복수를 원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 반면에 자신과 교류하는 악당 친구들은 악마의 세계관을 공유하면서 그것을 대세로 여기는 오판을 멈출 수 없다.
역사에 보면 온갖 사기와 범죄, 부정, 부패 행각을 하면서 출세 가도를 걷다가 권력의 정점에 올랐는데도 오히려 부정, 부패 규모를 키워서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 사람이 즐비하다.
폭군(暴君) 차원으로 본다면 고구려 5대왕 모본왕, 7대왕 차대왕, 14대왕 봉상왕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권력에 취해서 사치와 향락에 빠지고 국민을 도탄에 빠지게 한다는 이유로 신하들의 반란을 유발하면서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 간신 모리배 차원에서는 고려 시대에는 이자겸이 대표적인 사례고, 조선 시대에는 임사홍과 임숭재 부자를 비롯해서 윤원형, 김자점 등이 유명하다.
대한민국 정부 출범 이후에도 이승만 대통령 시기 이기붕도 부통령으로 권력의 정점에 올랐는데도 악행을 멈추지 않았다가 처참한 최후를 맞은 간신 모리배의 대표자들이다.
이번 사태를 돌아보면 윤석열 대통령 스스로 분을 참지 못해서 내란을 일으킨 특별한 사례여서, 폭군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혼군(昏君)이나 용군(庸君)이 적지 않았지만, 고구려 초기 이후 폭군 세 명 외에 폭군으로 기록될 만한 군주는 거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아마도 폭군, 혼군, 용군이 모두 합쳐진 경우로 역사상 최초의 사례로 볼 수도 있겠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경우 윤 대통령을 도와 내란을 지휘한 사람으로 간신 모리배로 기록될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악필자멸의 전형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는 점은 같다.
악필자멸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나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과 마찬가지로 권선징악(勸善懲惡) 원리 중에서 구체적인 부분에 집중한 개념이다. 그동안 이 말은 너무도 당연해서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사회가 급속하게 변하고 당연한 것이 무엇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워졌다.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가치가 뒤집히는 경우도 나타나면서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특히 신자유주의 부작용으로 일부 소수 엘리트 집단이 카르텔을 형성하고 불법적, 탈법적, 초법적으로 부와 권력, 명예를 독점하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 이익을 위해 부정을 자행하고도 잘못됐다는 인식조차 없는 악인들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대한민국도 이제 선진국이 되고 과거 우리 선조들이 누렸던 안정적인 삶으로 돌아가고 있다. 악행을 거듭하면 반드시 스스로 멸망한다는 믿음이 상식이 되는 고품격 사회로 이동해야 하는 시점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장관은 정체도 알 수 없는 점집에서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점궤를 받아들고, 부엉이셈으로 국가와 국민,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를 위협한 것에 대해 악·필·자·멸 네 글자를 가슴에 품고 스스로 반성하고, 모든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는 것이 그나마 죄를 줄이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