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엔비디아가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5'에서 소개한 물리적 AI 개발 플랫폼 '코스모스'(Cosmos)에 대해 "시장 성장의 핵심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9일 트렌스포스는 글로벌 로봇 대형언어모델(LLM) 시장이 2028년 1천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로봇 공학을 위한 글로벌 LLM 시장이 연평균 48.2% 성장할 전망이다.
트렌드포스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고도로 통합된 시스템으로 발전하고 산업용에서 가정용으로 전환됨에 따라 이해 및 상호작용 기능의 수요를 맞추는 인공지능(AI) 교육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리적 AI는 로봇과 자율주행차량 등 물리적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AI 시스템으로, 코스모스는 이 AI가 현실의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할 수 있게 하는 플랫폼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6일 CES 2025 기조연설에서 "로봇을 위한 챗GPT의 모멘트가 다가오고 있다"며 "LLM과 마찬가지로 코스모스는 로봇 및 자율주행차량의 개발을 발전시키는 데 기본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황 CEO가 CES 기조 연설자로 나선 것은 지난 2017년 이후 8년 만이다.
◇ AI 선두주자 엔비디아 원픽, 로봇 훈련 플랫폼 ’코스모스‘
엔비디아는 미국의 반도체 설계·제조·서비스 기업으로 외장 PC의 GPU(그래픽 메모리)가 세계 80%의 점유율을 기록하는 1위 기업이다. 이와 더불어 인공지능 칩과 자율주행 자동차 플랫폼 시장에서도 업계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챗GPT 등장 이후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AI 관련 기업으로 부상했다. 이러한 AI붐 수혜로 2023년 전 세계 반도체 기업 중 매출 1위를 기록했다.
그만큼 젠슨 황의 이번 CES 기조연설에 세계 각국의 IT기업과 언론의 이목이 쏠려 6일 라스베가스 멘델레이베이 컨벤션 센터는 연설 시작 3시간 전부터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AI의 아이폰 모먼트가 시작됐다”고 2년 전 예측했던 황 CEO는 이번에는 곧 로봇 챗GPT 시대가 온다고 말했다. 그는 AI의 궁극적 미래는 로봇, 자율주행차와 같은 물리적 실체를 갖춘 ‘피지컬 AI’라 정의하며 이 산업이 2년 전 챗GPT처럼 급격하게 확산하는 역사적인 시간이 올해 올 것이라 자신했다.
◇ 휴머노이드 로봇 대중화 열풍...‘코스모스’ 대체 무엇?
젠슨 황은 이날 ‘코스모스’라는 새로운 로봇 개발 플랫폼을 전면에 내세웠다. 코스모스는 기존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로봇과 자율주행 자동차를 훈련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비디오를 생성한다. ‘코스모스’를 쉽게 말하면 ‘로봇 훈련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생성형 AI, 챗GPT가 빠르게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은 ‘AI 가속기’를 통해 온라인에 떠도는 뉴스와 대화, 논문 등을 빠르게 학습하기 때문이다. 방대한 자료를 학습한 챗GPT는 어느 순간 사람처럼 말하고 쓸 수 있게 된다.
반면 로봇은 물리적 공간에서 손짓 하나부터 걸음걸이까지 사람에게 하나씩 다 배워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코스모스’는 이 훈련을 사람이 아닌 현실과 동일한 가상 플랫폼에서 시킨다는 것이다. 이 플랫폼을 사용하면 로봇을 훈련시키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자동차 공장 환경을 구현한 다음 로봇을 투입하는 식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작업에 로봇이 익숙해지도록 한다.
엔비디아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엔비디아 옴니버스(Omniverse)와 lsaac ROS가 사용된다. 옴니버스는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를 사용해 개발자가 공장의 모든 유형의 지능형 기계에서 동시에 데이터를 렌더링해 충실도 높은 시뮬레이션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Isaac ROS는 합성 데이터를 사용해 디지털 트윈 내에서 무한한 수의 시나리오에서 로봇을 테스트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코스모스는 2000만 시간 분량의 영상을 14일 만에 파악할 수 있다. 물리적 AI 로봇을 훈련시키는데 시간과 인력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코스모스’를 통해 로봇의 대중화가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로봇을 ‘차세대 물결’로 지목한 젠슨 황이 ‘코스모스’를 새로운 먹거리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트렌드포스가 엔비디아의 '코스모스'에 대해 "시장 성장의 핵심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 것이 괜한 말이 아니다.
업계에서는 엔비디아가 AI 개발 플랫폼 쿠다를 통해 AI 가속기 시장을 장악한 것처럼 코스모스를 통해 ‘엔비디아 칩 생태계’를 더 공고히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표준이 된 쿠다는 엔비디아 AI 가속기에서만 작동하는데 코스모스도 엔비디아 제품에서만 작동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 미래 먹거리 ‘로봇 시장’... 대기업, ‘로봇기업 합병’ 등 속도전
최근 국내 로봇산업의 경우 휴머노이드 기술이 국가첨단전략기술로 신규 지정되고 R&D예산도 5조7천억 원으로 확대되는 등 상승기류를 타고 있는 모양새다. 이런 흐름 가운데 국내 대기업들도 로봇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점찍고 역량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BCC에 따르면 세계 로봇 시장 규모는 현재 784억달러(약 114조원)에서 2029년 1652억달러(240조원) 수준까지 커질 전망이다. 대기업들은 주로 합병 등을 통해 빠르게 기술력 확보와 시장 선점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로봇 전문업체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지분을 늘려 최대주주가 됐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국내 최초 2족 보행 로봇 ‘휴보’를 개발한 업체로, 삼성전자는 보유 중인 AI·소프트웨어 기술에 이 회사의 인간형 로봇 기술을 접목해 휴머노이드 개발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대표이사 직속 ‘미래로봇추진단’도 신설했다. 레인보우로보틱스 창업 멤버 오준호 카이스트 명예교수를 단장으로 선임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오 교수를 국내에서 피지컬 AI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은 전문가로 꼽는다. 삼성전자는 CES 2025에서 AI 컴패니언 로봇 '볼리'의 상반기 출시 계획을 깜짝 발표하기도 했다.
2021년 현대차그룹은 로봇전문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사내 로보틱스랩이 자체기술로 만든 산업용 웨어러블(착용형) 로봇을 공개했다.
LG전자는 작년에 AI 기반 자율주행 서비스로봇 스타트업 베어로보틱스에 6000만달러를 투자했고, 이미 상업용 로봇 사업을 육성해왔다. LG전자는 '가사 해방'에 방향을 두고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 이동형 AI 홈 허브(코드명 Q9)의 제품과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SDK)를 오는 2∼3월에 개발자에게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화는 재작년 10월 ㈜한화에서 협동로봇·무인운반차·자율이동로봇 사업을 분리해 한화로보틱스를 신설했다.
국내 로봇 시장이 아직 초기인데다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다보니 대기업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LG전자 등의 로봇 사업 투자는 국내 로봇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 “서비스 용 로봇 많이 뒤쳐져... 지금 안 따라잡으면 위험”
업계에선 한국이 후발주자인 만큼 민간의 발 빠른 투자와 정책적 지원 등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이어진다. 국내 기업들은 단순 자동화 로봇이 아닌 휴머노이드 형태의 로봇 개발에선 유럽, 미국 등에 뒤처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제조업 종사자 1만 명당 로봇 수를 말하는 제조로봇 밀도는 2022년 기준 1,012대로 세계 1위지만 전기전자, 자동차 등 특정 업종에 편중되어 있고 정밀도가 요구되는 로봇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거대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휴머노이드 등 서비스 로봇은 중국산 로봇 점유율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내 로봇기업은 2500개사로 집계되지만 99%가 중소기업이고 매출 10억 미만 기업은 70%에 달한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한국로봇산업협회 상근부회장)는 “첨단 로봇은 하이엔드 기술력이 필요하며, 새로운 플레이어가 완전히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간 정부 지원도 선제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세계적 추세를 따라가기 힘들지만 아예 포기하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생태계 구축을 위한 인재 양성이 시급하단 견해도 이어진다.
KIAT 조사(2023년 4월)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로보산업 종사자는 3만 5000명이나 2030년에는 5만여 명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SW공학, 기계설계, 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의 인력 수요가 예상된다.
지난 8일 국회 ‘AI·모빌리티 신기술 전략 조찬포럼’ 9차 토론회에서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 이노베이션 센터장은 “새롭게 변해가는 기술 산업의 영향력을 고려한 AI 칩 설계, 소프트웨어 등이 중요한데 인재가 너무 부족하다”고 했다.
유재훈 삼성전자 마스터는 “피지컬 AI 알고리즘이 나오며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횡단적인 지식을 갖춘 인재들을 양성하고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조웅환 기계로봇항공과장은 제도, 인프라 등 시장 진입의 걸림돌도 여전하다고 밝혔다. 그는 ”사람 중심으로 설계된 제도, 안전 기준 부재 등이 로봇의 시장 진입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며 ”로봇의 활용 범위가 획대되면서 로봇 안전 사고 대비, 건전한 로봇 윤리문화 등이 새로운 이슈로 부각되고 있어 정부 차원의 착실한 대비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