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배출, 무기 생산 등을 이유로 기업에 대한 금융기관의 투자 배제 현황을 집계하는 ‘금융 배제 추적기’(Financial Exclusion Tracker) 2024년 최신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배제 대상 한국 기업이 전년 대비 50%이상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솔루션이 금융 배제 추적기 최신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전체 배제 기업 수는 223개로 전년 145개에서 78개나 증가했다. 그 중 가장 심각한 자본 이탈을 경험한 회사는 포스코 홀딩스였다. 외국 투자사의 절반 이상이 투자를 철회했다. 포스코 홀딩스의 화석 연료 사업과 산림 파괴 등이 주요 이유로 꼽히고 있다.
금융배제 추적기는 민간 은행의 책임 투자 등을 감시하는 네덜란드 시민단체 뱅크트랙(BankTrack)을 비롯한 세계 여러 단체가 연합해 집계하는 데이터베이스다. 매년 말 업데이트 현황을 발표한다.
금융 배제 추적기의 2024년 업데이트 결과에서 세계 투자 배제 현황의 경우는 17개 나라 93개 금융 기관이 총 135개 나라의 5,536개 기업 집단을 투자 배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회사 단위로 집계하면 투자 배제된 기업의 수는 모두 6만6,708개에 달했다. 배제 이유는 기후변화 악화 및 화석연료 투자, 인권 침해, 정치적 불안정 가중, 담배, 무기 생산 등이었다. 이 가운데 가장 주된 이유는 기후변화 악화 및 화석연료 투자로 전체 배제 사례의 절반 가까이(48%)가 해당했다.
국가별 1위는 미국으로 1,160개 미국 기업(기업 집단 기준)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2위는 중국으로 852개, 3위는 인도 341개, 4위 캐나다 290개, 5위 러시아 283개였다. 한국은 기업 집단 기준 99개로 순위는 높지 않지만, 시가총액을 고려하면 배제 수준이 결코 적지 않다.
미국의 전체 시가총액은 현재 약 64조 달러 규모다. 한국의 시가총액은 약 1조 달러 대임을 고려하면 배제 규모가 작지 않다. 한국 기업을 투자 배제 대상으로 삼은 금융기관 역시 총 103개로 지난해 대비 무려 21개가 증가했다. 한국의 223개의 투자 배제 기업 가운데, 최소 30개가 넘는 다수의 투자기관에서 배제된 회사는 지난해 8개에서 올해 11개로 증가했다. 포스코홀딩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국수자원공사가 새로 추가되며 이 수치를 끌어올렸다.
◇포스코 홀딩스는 왜 표적이 됐나
투자배제 명단에 포함된 기업들 중 시가총액 기준 상위 기업은 현대차, 기아, HD현대중공업, 고려아연, 포스코홀딩스 등이었다. 이 가운데 포스코홀딩스는 유일하게 총 30개의 금융기관으로부터 배제돼 두드러진 사례로 꼽힌다. 투자 배제를 결정한 30개의 금융기관 중 11개 금융기관은 기후 및 환경적 요인을 배제의 이유로 들었다.
2022~23년 사이 최소 15곳의 유럽 소재 기관투자자들이 포스코홀딩스와 그 자회사를 기후위기 대응 우려 등으로 투자 대상에서 배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뱅크트랙의 요한 프리진스 대표는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은 신규 및 기존 고객의 위험성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금융 배제 추적기를 주의 깊게 참고할 것”이라며 “다른 금융기관들이 해당 기업을 배제한 사례는 추가적인 위험 검토를 위한 중요한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개인 투자자들의 상당한 순매수에도 포스코홀딩스 주식의 외국인 보유율은 지난 10개월간 급격히 감소했다. 지난해 포스코홀딩스의 외국인 보유율은 28%로, 2023년 1월의 52%에서 크게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 외국인 및 기관 투자자들이 포스코홀딩스 주식을 처분한 주된 이유로 본사 이전과 이차 전자 소재 투자 확대가 꼽는다. 히지만 여기에는 ‘기후 리스크’라는 추가적인 요인이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네덜란드의 지속 가능 투자사인 로베코는 2021년 말부터 ‘파리협정 이행 가속화 프로그램(Acceleration to Paris program)’에 따라 탄소중립 전환에 뒤처진 200개 고배출 기업에 관여정책을 강화해 포트폴리오 내 기업의 탄소배출감소를 촉진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다.
로베코 관계자는 "포스코 홀딩스를 ‘기후 기준 미달’로, 포스코 자회사는 ‘석탄화력발전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는 이유로 2024년 2월 투자 배제 리스트에 추가했다. 이번 투자 배제 리스트에 포스코홀딩스가 추가된 것은 지속적인 관여활동에도 사전 검토 기간이 지날 때까지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2022~2023년 사이 최소 15곳의 유럽 소재 기관투자자들이 포스코홀딩스와 그 자회사를 규범 위반 및 기후 관련 우려로 투자 배제한 바 있다.
◇기후, 투자의 우선 순위가 되다
지난 10년간 글로벌 금융 업계에선 기후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12의 하위개념이 아닌 금융 안정성과 회복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됐다는 평가다. G20과 금융안정위원회(Financial Stability Board;FSB)는 기후변화 관련 재무 정보 공개협의체(Task Force on Climate Related Financial Disclosures;TCFD)를 2015년 설립했다.
여기에서는 기업이 기후 변화 리스크 완화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투자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그만큼 기후리스크로 철강 등 다양한 부문과 시장 전반의 많은 자산과 상품의 가격이 재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고품질 철강은 건물, 자동차, 기계, 가전제품, 반도체 등 다양한 산업의 기반이 되어 왔다. 따라서 철강의 탈탄소화는 해당 산업의 전반적 탄소 발자국 저감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 각국의 공시 의무 강화, 배출량 제한,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의 탄소가격제는 이미 시행에 들어갔다. 포스코가 탄소 집약적 생산 방식을 지속하고 국내 탄소 가격제로도 배출량을 충당하지 못한다면 탄소 가격 차이를 보완하기 위해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이런 투입 비용 증가는 결국 기업의 수익 감소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CBAM 관련 추가 비용으로 유럽 시장에서 포스코 제품은 현지 생산 업체 제품에 비해 더 비싸고 경쟁사가 선보이는 프리미엄 인증 그린스틸보다 뒤떨어질 위기에 놓였다. 탄소세 증가와 잠재적 수요 감소로 운영 및 생산 비용이 크게 증가하면 포스코의 수익성이 약화돼 주주들의 주가수익률과 지주회사의 신용등급이 하락할 수 있다는 경고등이 들어온 상태다.
한 환경단체 관계자는 "포스코는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석탄 에너지 활용 기업이다. 위기 신호가 들어온 지 오래지만 아직 옛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주주들의 손해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 지속 된다면 대규모 금융권은 물론 개인 투자자들도 포스코를 떠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금까지 포스코는 배출량 및 배출집약도를 줄이는 데 제한적인 성과를 거두어왔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신뢰할 수 있고 달성 가능한 단기목표나 로드맵을 공개한 바가 없다. 전환 경로 이니셔티브(Transition Pathway Initiative;TPI) 성과 평가에 따르면 포스코의 탄소 집약도는 철강산업 평균을 크게 웃돌고 있다. 또한 전 세계적은 온도 1.5도 목표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포스코,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포스코 홀딩스는 지난해 CEO를 교체하는 등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포스코 홀딩스가 어떤 길을 가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전망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기후 솔루션은 포스코그룹은 포스코홀딩스의 신임 CEO 및 이사회 선임을 기회 삼아 현 비즈니스 모델이 탈탄소 경제에 어 떻게 부합하는지 재점검해야 하고, 탄소중립 로드맵 전환 계획과 감축 목표를 재설정하고 그에 따른 적 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또 경영진 책임 의식 및 리스크 거버넌스 강화, 일반적으로 성공적인 지배구조는 이사회와 고위 임원 등 최고위 층에서 시작되는 만큼, 기후 관련 리스크에 대한 책임은 전담 고위 임원에게 부여하고, 이사진은 이러한 리스크를 평가하는 데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더불어 기업 문화 및 핵심 가치에 기후 변화와 지속가능성을 반영하기 위해 고위 경영진은 기후 변화에 어떠한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그 기대치를 전사적으로 전달해야 한다고 봤다.
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도모하기 위해 기업은 탄소중립 전환 계획을 수립하고 정기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또한 그 계획에는 이해관계자의 검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중간 목표와 관련 조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기후솔루션의 기후금융팀 박현정 연구원은 “올해는 한국 주식시장이 겪고 있는 고질적인 디스카운트 문제로 더 많은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배제될 수 있다"며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중시하는 기후, 환경 등을 포함한 지속가능성 이슈들을 보다 면밀히 점검하고 이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기자와 통화한 포스코 홀딩스 관계자는 이와 같은 분석에 대해 "(우리는) 환경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아직 가시적 성과가 나오지 않았을 뿐 충분히 미래에 대비하고 있다. 글로벌 로드쇼 등을 통해 등 돌린 해외 투자자들의 마음을 돌리려는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어 조만간 성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