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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에어컨 없는 수도권의 여름, 견딜 수 있겠어요?

이르면 내년 지역별 '전기 요금 차등제' 도입 현실화
수도권 제조업 전력비용 연간최대 1.4조원까지 상승
수도권 전기요금 '최대 2배' 인상땐 에어컨 가동 지장

재생에너지 확대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독일은 최근 적지 않은 암초에 부딪혔다. ‘녹색 정전’ 사태를 겪었고 주변국들로부터 '원전 사업에 투자하라'는 압박까지 받는다.

 

2023년 원자력 발전을 중단한 독일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최소 8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지난 해 12월 독일 전력시장에서는 도매 전력 가격이 메가와트시(MWh)당 936유로(141만원)까지 치솟으며 18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11월 평균가는 115유로(17만 3000원), 10월은 85유로(12만 8000원)에 불과했다.

 

 

올겨울은 유난히 바람이 거의 없고 낮에도 해가 들지 않는 날씨가 계속되면서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일시적으로 0에 가깝게 떨어지는 상황이 연출된 결과다. 지역별 편차도 크다.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많은 지역은 싼 전기 요금을 활용할 수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발전소와 떨어져 있는 지역은 더 많은 전기 요금을 내야 상황이 발생하면서 국민들의 불만도 점차 커지고 있다.

 

◇ "차등 전기요금제"...발전소와 먼 거리, 전기요금 많아 낸다

 

우리도 비슷한 문제를 겪을 수 있다. 올해부터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도매)가 도입되기 때문이다. 내년 부터는 소매 전기 요금도 지역별로 편차를 두기로 했다.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는 지역 간 전력 불균형 해소를 위해 발전소가 밀집한 지역의 전기요금은 낮추고 발전소에서 멀어질수록 전기요금이 높아지는 제도다.

 

문제는 인구 밀집도가 높은 수도권의 전기 요금이 높아질 것이 뻔하다는 점이다. 수도권 인근에는 발전소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먼 지방에서 만들어 낸 전기를 끌어다 쓰는 방식을 썼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했다. 전기 선로를 까는 것도 문제였지만 전선이 지나가는 곳의 주민 수용성도 걸림돌이 됐다.

 

지금까지는 그 부담을 모두 한전이 지고 있었지만 앞으로는 수도권의 각 가정에서 보다 많은 책임을 질 수 밖에 없게 됐다.

 

스웨덴의 경우 지난해 전력 발전소가 밀집한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의 전기 요금 차가 무려 190배 까지 나타나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우리나라라고 그런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은 없다. 수도권 주민들은 당장 늘어나게 될 전기 요금을 버텨낼 수 있을까. 국민적 저항이 나타나지는 않을까. 녹색전환연구소의 자료를 통해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현실을 살펴봤다.

 

◇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어떻게 부과되나

 

한국의 전력시스템은 중앙집중형이다. 비수도권 지역에 대규모 발전소를 건설하고 장거리 송전망을 통해 수도권 등에 전력을 공급하는 구조다. 전력 생산은 지방에서 주로 이루어지지만 소비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장거리 송전망 건설로 인한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과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 밀양 송전탑 사태 이후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송전탑 인근 지역 뿐만 아니라 발전소가 위치한 지역도 각종 규제로 재산권 행사 제한과 지가 하락 등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받고 있다.

 

현재 전기요금은 용도, 계절, 시간대 등에 따른 차등은 있지만 공간적으로는 차등을 두지 않는다.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전기요금이 적용되면서 전력 공급과 소비의 지역 간 불균형, 송전망 구축 비용 증가 등 문제가 가중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제정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을 근거로 정부는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대규모 발전소와 송전망 의존을 줄이고 수요지 인근 에너지 생산으로 에너지 공급체계를 혁신하고, 지역 내 에너지 생산과 소비를 통해 지역 주도형 에너지 시스템 구축을 위해 특별법이 제정·시행됐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은 제45조(지역별 전기요금)에서 “전기판매사업자는 국가균형발전 등을 위하여 '전기사업법' 제16조 제1항에 따른 기본공급약관을 작성할 때에 송전ᆞ배전 비용 등을 고려해 전기요금을 달리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을 근거로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시행을 예정하고 있지만, 전기요금 책정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담겨있지 않았다. 정부는 우선 수도권, 비수도권, 제주권으로 나눠 전기요금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M이코노미뉴스와 통화한 산업부 관계자는 "수도권에 에너지 공급이 집중되면서 많은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며 "수도권 전기 소비자는 그 비중에 맞춰 적절한 비용을 지출해야 하기 때문에 전국 권역을 3가지로 나누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시행 초기 문제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지금의 방향이 현재로선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며 "수도권 사용자들의 비용 상승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지역별로 발전소, 송변전소 등의 입지가 달라 발전원가, 송배전원가의 차이가 발생한다. 원자력, 석탄, LNG 등 발전원과 지역별 전력사용패턴은 발전원가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전력을 소비하는 지역과 발전소 간 거리에 따라 송전거리가 달라지고 지역별 산업구조와 규모에 따라 송전선 이용률도 차이가 날 수 있다.

 

 

◇ 쟁점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지역 구분 적절성

 

지역별 비용 차이를 도‧소매 전기요금에 반영하자는 것이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도다. 현재 정부 계획대로 수도권, 비수도권, 제주권으로 구분할 경우 수도권 3개 지역(서울, 경기, 인천)의 전력 소비량 비중은 39%지만, 발전량 비중은 26%에 불과하다. 전력자급률이 낮은 지역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전력을 생산해 송전하는 과정에서 발전소와 송전선로 건설이 필요하다.

 

2015년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 송‧변전과 송전탑의 설치와 유지비용이 27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전력수급체계는 발전설비가 집중된 비수도권 전력을 발전설비가 부족한 북쪽의 수도권으로 보내는 소위 ‘북상조류’ 형태를 띠고 있다.

 

국내에서 사용하고 있는 송전선로는 전압에 따라 154kV, 345kV, 765kV로 구분할 수 있다. 154kV는 지역 송전망으로 사용되고, 345kV는 기간 송전망으로 사용되고 있다. 765kV는 대전력 송전망으로 1998년부터 설치하기 시작해 점차 늘려가는 추세다. 

 

345kV, 765kV와 같은 대규모 장거리 초고압 송전망은 북상조류에 부응해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건설되면서 심각한 지역 간 갈등을 야기했다. 수도권 융통 전력 수요가 더 증가할 것으로 예측돼 이러한 현상은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도 도입에 따른 쟁점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지역 구분의 적절성이다. 전력자급률이 낮은 수도권은 전기요금을 올리고, 전력자급률이 높은 비수도권은 전기요금을 내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부 안대로 3개 지역으로 구분해 제도를 시행한다면 지역 간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어 수도권에 포함되는 인천은 전력자급률이 광역시 중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 계획대로 전기요금이 결정될 경우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도 도입 취지와 달리 전력자급률이 100% 이상임에도 수도권으로 묶여 전기요금이 인상될 전망이다.

 

비수도권에서도 대구, 대전, 광주 등 전력자급률 100% 이하인 지역과 충남, 부산, 경북, 전남 등 전력자급률 100% 이상인 지역이 동일한 전기요금을 적용받게 된다.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도 도입에 따라 전력자급률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전기요금 인하를 기대했던 지역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실제로 인천 지역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의 적용 기준을 지방자치단체별 전력자급률을 고려해 설계해야 한다는 내용의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당장 전기 요금이 오르게 될 수도권 지역의 반발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여름, 우리는 역대 최고로 더운 여름을 겪어야 했다. 이제 한국의 여름은 길고 독해졌다. 에어컨이 없는 여름은 상상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전기 요금 차등제가 도입되면 수도권의 에어컨 가동률은 크게 떨어질 수 밖에 없어 내년 수도권 전기 요금은 2배 이상 뛸 수도 있다.

 

온열 환자 및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전기 요금이 오르게 되면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경노당 에어컨 가동 등을 통해 온열 질환에 노출된 노인들의 냉방 복지를 추진하고 있는 지자체 들도 일단 멈춤 상태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유럽의 경우 에어컨 가동을 원래 많이 하지 않기 때문에 저항이 덜했지만 에어컨 없는 여름을 상상하기 어려워진 한국 현실에선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두번째는 전력 다소비 산업의 지방 이전 가능성이다. 그동안 전력자급률이 높아 불공정을 주장해오던 부산, 강원, 충남, 전남, 경북 등 지역에서는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도 도입에 따른 전기요금 인하 효과와 함께, 제조업·IT 등 전력 다소비, 첨단 분야 기업의 지역 내 유치를 기대하고 있다. 기업들은 좀 더 전기 요금이 싼 곳으로 공장을 이전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수도권 산업 전반에 걸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부산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부산 기업인 86%가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 89.5%는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가 전략 다소비 산업 유치, 85.4%는 지역균형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현재 검토 중인 3개 권역으로 구분하는 차등 전기요금제도가 수도권 첨단산업 기업 유치 요인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비수도권 지역에서도 전력 자급률이 최대 70배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전력자급률이 높은 지역은 상대적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도권 지역 기업들은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가 도입되면 수도권 제조업 전력비용이 연간 최대 1.4조원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도매가격 차이는 19~34원/kWh 정도로 전망된다.

 

도매가격 변화분 전망치와 소매가격 전가율을 시나리오별로 나눠 수도권 내 업종별 전력비용 부담을 추정한 결과 최소 8000억 원에서 최대 1.4조 원 늘어날 것으로 나타났다. 업종별로는 전자, 통신 업종의 비용 부담이 최대 6000억 원으로 가장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제조업으로 분류되는 25개 업종 평균 전력비용 부담 상승분은 550억원으로 추정된다.

 

세번째는 올해부터 시행 예정인 도매가격 차등과 2026년부터 소매가격 차등 적용을 둘러싼 갈등이 있다. 정부는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가 ‘발전 불균형’을 바로잡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내년 도입을 앞두고 곳곳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선 도매가격 차등제가 시행되면 민간 발전사들의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역별 원가를 계산해야 소매요금을 차등할 수 있기 때문에 원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도매가격부터 차등화하겠다는 것이 산업부 입장이다. 그런데 산업부가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구분해 도매가격을 적용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하면서 비수도권 발전사들의 수익이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지역별 전력자급률을 나누게 되면 수도권은 65%, 비수도권은 136% 수준이기 때문에 비수도권 발전소의 전력 판매 단가가 낮아지게 된다. 민간발전협회의 ‘지역별 전기요금제 비수도권 발전기 영향’ 자료에 따르면 지역별 도매가격이 10원/kWh 낮아질 경우 비수도권 발전기를 운영하는 민간 발전사들의 수익은 연간 약 8236억 원 줄어드는 것으로 추산됐다.

 

도매가격이 20원이나 30원 낮아질 경우 이들의 연간 이익은 1조6473억 원에서 최대 2조4709억 원 낮아지게 된다. 민간 발전사들은 이미 운영 중인 발전 실비를 옮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기존 발전설비까지 차등 요금제를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의견이다. 또한 도매가격 차등화가 전기사업법상의 원칙인 ‘동일 전력계통, 동일 전력거래가격’과 어긋난다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도입을 통해 지역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 이행을 가속화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시민사회와 재생에너지업계에서도 우려가 크다.

 

현행 전력시장은 각 발전소가 생산한 전력을 한전이 독점적으로 구매하는데 전력거래소가 전력수요와 발전소별 생산단가를 고려해 도매가격과 발전소별 발전량을 결정한다. 현재는 전국 모든 발전소가 같은 가격으로 전력을 팔지만, 지역별 전력 도매가격 차등요금제가 도입되면 전력생산이 전력수요보다 많은 지역의 전력은 한전이 싸게 구입하고 반대의 경우 비싸게 구입하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한전은 낮은 입찰가를 제시하는 발전사업자들을 골라 낙찰하며 실속을 챙길 것이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이 그 손실을 떠안게 되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도매시장에 먼저 차등 요금제가 도입될 경우 비수도권 전력도매요금은 현재보다 10원/kWh 하락한다는 가정 하에 비수도권 민간 태양광·풍력·가스발전기 수익은 연간 1조 원 감소할 것이다. 이 중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감소액은 약 2500억 원으로 예상된다.

 

한전 발전자회사인 석탄화력과 원자력도 3조5000억 원이 감소하지만 이들은 '정산조정계수'를 통해 손실을 보전할 수 있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이 고스란히 그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 복잡한 전기 요금 차등적용제, 어떻게 풀어야 할까

 

기후위기대응과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에너지전환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에너지전환의 핵심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기화다. 전력 수요가 이전보다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대규모 발전소, 장거리 송전망에 기반한 기존 중앙집중식 에너지체계는 한계에 봉착했다.

 

지역 간 에너지 공급과 수요 불균형 및 비효율 발생 뿐만 아니라 신규 발전소와 초고압 송전망 건설이 차질을 빚으며 재생에너지 보급과 산업전환도 함께 지연되고 있다. 전력 수요가 있는 곳에 전력 생산 시설을 지어 공급하는 분산형에너지 활성화가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분산형에너지 시스템은 대규모 발전소와 송전망 건설에 따른 사회적, 경제적 부담을 줄여 에너지전환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오용석 녹색전환연구소 기후시민팀장은 "단순히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전력 자급률과 지역 특성을 고려한 세분화된 지역 구분이 필요하다"며 "각 지역의 전력 생산량, 소비량, 송전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공정한 요금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는 또 "지역별 이해관계가 서로 첨예하게 갈라지기 때문에 광범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도입 근거가 된 분산형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취지에 맞게 지역별 재생에너지 발전 확대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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