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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트럼프 재등장과 한국의 외교 전략

 

도널드 트럼프가 돌아왔다. 지난 11월 초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는 1월 20일 취임식을 갖고 제47대 대통령 임기를 시작했다. 그는 지난 2017년부터 4년 동안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 지구촌 거의 모든 사람에게 황당한 괴짜로 알려진 만큼 사람들이 전전긍긍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트럼프를 그토록 두려운 존재, 또는 불편한 존재로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 아마도 트럼프 자신의 말처럼, 그가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이고, 예측을 불허하는 행보를 보인다는 사실에 기반할 것이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고 있는 미국 대통령이 이른바 미치광이 전략을 즐겨 사용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은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도 트럼프 재등장에 겁을 먹고 트럼프가 집권하면 엄청난 규모의 금전 요구를 할 것이라면서 선제적으로 양보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트럼프가 이미 방위비 분담금으로 14조 원을 내라고 협박했다면서 14조 원을 모두 낼 수는 없어도, 3조든 4조든 일단 크게 올려주고,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달라고 먼저 요구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트럼프가 유리한 협상을 위해 사전에 파놓은 함정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자충수일 뿐이다. 트럼프는 다른 나라와의 협상을 겨냥해서 우선적으로 여러 가지 위협을 가해서 상대가 스스로 겁에 질려 양보하게 만드는 협상 전술을 즐겨 사용한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트럼프의 협상 전술은 트럼프 행정부 1기에 이미 많이 노출됐다. 그만큼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더 이상 트럼프 협상 전술에 넘어가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노출할 필요는 없다. 트럼프가 협상의 달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냉철하게 보면 진정한 협상가가 아니라 얍삽한 반칙왕 특성이 더 강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반칙왕은 왕으로 불릴 만큼 유명세를 얻는 데 성공했는지는 모르나 반칙을 일삼는 사기꾼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기꾼은 정통 기술을 보유한 고수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인류 역사에서 확인된 명제다. 그러므로 트럼프와 같은 반칙왕을 상대할 때는 어떤 반칙을 구사하는지 면밀히 관찰한 다음에 그의 약점을 파고들면 백번 싸워도 패배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트럼프의 협상 기술은 무엇일까?

 

트럼프 저서나 대통령 재직 시 보여준 언행을 보면 몇 가지 반복되는 지침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는 자기가 협상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취약한 요소인지 상대방이 알지 못하게 숨겨야 한다. 둘째, 자기가 원하는 것을 기준으로 10배, 20배를 요구한 다음, 상대방 반응에 따라 요구 사항을 낮추는 방식으로 협상 주도권을 확보한다.

 

셋째, 협상을 유연하게 진행하면서 필요하면 언제라도 전략을 수정한다. 넷째, 협상을 진행하면서 위험을 감수하는 대담성을 보여준다. 다섯째, 기습적으로 상대방을 압박해서 상대의 중심을 흔든다. 여섯째, 협상이 시작하기도 전에 심리전과 협박 공세를 전개해서 상대가 겁을 먹은 상태로 협상에 임하게 만든다. 일곱째 타이밍을 살펴서 유리한 시점을 적극 활용한다. 여덟째 언론을 충분히 활용해서 유리한 협상 환경을 조성한다.

 

트럼프 협상 기술은 다른 사람도 사용하는 표준적 범위에 해당하지만, 트럼프의 특이한 성향 때문에 다른 사람의 협상 기술과 매우 다르게 보인다. 예를 들어 그는 협상을 하면서 자신의 속내가 상대에게 노출되면 곧바로 협상 목표를 변경한다. 자신이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악명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트럼프는 상대방이 금기라고 생각해서 상상하지 못하는 제안이나 전술을 무제한으로 사용한다. 반칙왕의 면모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상대가 자신을 존중하면서 물러서는 태도를 보이면 타협을 수용할 수 있지만,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면 상대를 괴롭히는 전술로 넘어간다. 상대가 강자라고 생각하면 쉽게 타협하고, 상대가 약자로 보이면 더욱 강하게 압박한다. 노벨 평화상 등 자신이 개인적으로 얻고 싶은 특정한 가치를 위해 상당한 수준의 양보를 제공할 의사를 갖고 있다.

 

트럼프의 협상 기술을 염두에 둔다면 트럼프의 외교 분야 관심사가 어떻게 전개될지도 예측할 수 있다. 그린란드 매입 구상과 관련해 트럼프는 그린란드 주민들에게 매력 외교를 공세적으로 전개할 것이고, 덴마크에 대해서는 다양한 종류의 외교적 압박을 가할 것이 분명하다.

 

군대가 움직일 수 있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덴마크를 괴롭힐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린란드를 매입하면 좋고, 매입에 실패한다고 해도 중국이 북극해 주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한다는 목표에 도움이 됐다고 주장할 것이다. 자신을 외교 천재라고 주장할 수 있는 상황만 조성해도 그는 성공했다고 판단할 것이다.

 

파나마 운하 문제도 마찬가지다. 파나마 운하를 미국이 직접 소유하는 상황에는 이르지는 못하겠지만, 미국이 운하 관리권을 일정 부분 보유하는 상황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파나마가 최대한의 양보를 하는 시점까지 협박 공세를 끊임없이 전개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동맹국이나 우방국을 상대로 압박을 가하는 것은 상식을 초월하는 범죄적 악행이다.

 

미국 이미지가 악화하고 미국의 패권 유지 구조를 침해하면서 장기적이고 구조적으로 미국에 중대한 손실로 작용한다. 그러나 개인 이익과 미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트럼프 처지에서 본다면 합리적인 접근법이다. 트럼프가 중시하는 단기적 이익과 미국의 장기적 손실을 비교하면 손실 요소가 훨씬 크다.

 

◇ 한국, 유리한 국면 조성하려면...

 

방위비 분담금의 경우도 한국에 대해 일단 14조 원을 내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는 아마도 협상 과정에서 수정안을 제시할 것이고, 수정안은 한국 반응에 따라 매우 유연하게 제시될 것이다. 일단 한국을 윽박질러서 공포에 질리게 만든 다음에 한국을 흔들어 볼 것이다.

 

협상이 시작돼도 트럼프는 14조 원을 제시한 다음 액수를 줄여가면서 협상의 주도권을 잡았다고 판단할 것이다. 한국이 한번 양보하면 오히려 한국이 약점이 있다고 보고, 오히려 요구액을 높일 수 있다. 그러므로 미리 양보안을 놓고 우리끼리 복닥거리며 싸울 필요가 없고, 차분하게 협상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

 

지금이라도 기업인을 중심으로 한국과 미국의 분야별 전문가 교류를 활성화하고, 상호 이해와 공감대를 최고 수준으로 확대해서 트럼프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공공외교 역량을 격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외교를 통해 미국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난 이후에 협상을 전개한다면 방위비 분담금을 포함해 모든 상황에서 유리한 국면이 조성될 것이다.

 

트럼프는 예측할 수 없는 괴짜라는 이미지를 발전시켜서 결국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 대통령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다. 그래서 트럼프의 협상 전략은 예측할 수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자세히 분석하면 다른 사람들은 금기라고 생각해서 사용하지 않는 방식을 과감하게 사용하는 특성, 즉 반칙을 즐겨 사용한다는 점이 중요한 특징일 뿐이다.

 

트럼프가 금기를 무시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알면 그의 협상 전략을 예측하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이다. 미리 겁을 집어먹고 선제적인 양보안에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다. 단기적 협상 성과에 집착하면서 장기적 국익에 해당하는 전략적 구조 또는 국가 이미지를 스스로 훼손하는 트럼프의 협상 기술을 최대한 역이용하는 시나리오 검토에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인 대응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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