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어 8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지난 2016년 12월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난 이듬해 2017년 1월 셋째주, 헌재의 탄핵심리가 진행 중이었다.
그때 한 여론조사기관이 정당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범진보 51%(더불어민주당 37%, 국민의당 11%, 정의당 3%), 범보수 21%(새누리당 12%, 바른정당 9%), 그리고 “나는 어느 당에도 나는 속해 있지 않다”고 손사래를 치는 무당층이 28%였다.
◇무당층 17%, 8년 전보다 10% 포인트
지난달 17일 같은 여론조사기관이 8년 전과 비슷한 시기에 정당 지지도를 조사했는데 무당층이 17%로 나왔다. 8년 전보다 10%포인트 이상 줄어들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대개 무당층 17% 안팎은 큰 선거 일주일 전쯤 형성되는 수치라고 한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는 선거 날짜가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그런 수치가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8년 전 탄핵정국 때와 달리 10% 포인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어째서 무당층에서 뛰쳐나왔을까? 현직 대통령의 체포와 구속과 헌재의 심리 등이 진행 중인 것을 보고, 아마도 대선이 곧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지지 정당을 미리 앞당겨 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쉬 바뀌지 않는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을 상기해 보면 그들로 하여 그런 변화의 행동을 유발한 배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선거학회 전 회장을 지낸 배제대학교 김형준 석좌교수는 한 신문에 기고한 칼럼에 서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이나 행동 간에 불일치가 발생할 때 이를 줄이기 위해 기존의 인식과 태도를 변화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새로운 정보나 증거가 제공 될 때 기존의 믿음이나 생각이 변할 수밖에 없어 행동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새로운 정보와 증거가 제공되면 행동 변화 2017년 1월인지 2월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당시 헌재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리를 진행하고 있었고, 필자는 동향의 여러 일행과 설악산 등반을 마치고 관광버스로 귀경 중이었다.
일행들의 요청으로 기사는 광화문 촛불집회를 중계하는 운전석 위쪽에 설치된 TV를 켰다. 그들 대부분 이구동성으로 마음은 광화문 집회에 있다거나 서울에 도착하는 대로 집회에 참석하겠다면서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리에 앉은 순으로 마이크를 잡고 자기소개를 했다. 저마다 일어나서 촛불집회를 찬양했고, 저것이 백성의 마음과 민심이라는 소리도 나왔다.
당시 탄핵 찬성 여론이 80%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는 묵묵히 일행의 말을 죽은 듯이 듣고 있었다. 동양 정치 사상 시간에 맹자를 배웠던 나 역시 “백성이 귀하고, 사직은 다음이요, 군주가 가장 가벼우니, 백성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혁명은 폭력 수단이 사용된다 해도 용인될 수 있다”는 혁명 사상을 모를 리 없었다.
그렇지만 내 차례가 왔을 때,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눈치가 없었다. “탄핵에 찬성 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 않겠느냐”면서 나도 모르게 기사에게 “TV를 꺼달라”고 말했다. 갑자기 버스 안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탄핵에 반대하는 저 XX 뭐야? 분노와 증오, 경멸에 찬 수많은 시선이 나를 과녁으로 삼은 화살처럼 내게 꽂혔다. 갑자기 다리가 풀려 후들거렸고 머릿속에 하얘졌다.
준비한 말을 까먹어 버린 나는 그저 “박 대통령이 뭘 잘못했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부화뇌동하지 않겠다”고 말한 뒤 그만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일행의 제안으로 다시 TV는 켜졌다. 일행은 나를 의식해서인지 탄핵을 찬성하는 소신 발언의 강도가 높아졌다. 그들의 말이 내 귀에 들어올리 만무했지만 50여 명의 일행이 각자의 소개가 끝나고 나서야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은 나 혼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무리에서 떨어져 외톨이가 된 짐승처럼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 눈으로 볼 수 없는 뒤통수를 치지 않을까 싶었다.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함으로써 내 속내를 보였다는 참담함으로 걱정과 후회가 밀려들어 긴장이 풀리지 않고 견디기 어려운 소변만 마려웠다. 일행들이 버스에서 내려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고 나서 나는 대선배로부터 버스에서 내가 한 말과 행 동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 요즘 같은 상황이라면 말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선배는 내가 다른 일행들로부터 인신공격을 당할 수도 있는 분위기였다는 귀띔을 했는데 충격이었다. 그때의 트라우마로 필자는 사적인 자리가 아니면, 공적인 어느 자리에 가서든 정치적 입장에 관해 속내를 드러내지 않도록 애썼다. 그래서 이쪽도 저쪽도 아닌 무당층에 속했던 나는 이번 탄핵 정국에서도 같은 태도를 유지하려고 했다.
그런데 무당층이 8년 전보다 10%포인트가 줄어든 여론조사를 보고 궁금증이 샘처럼 솟아난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신문과 TV보다는 유튜브, 자신의 코드에 맞는 채널 선호
아마 8년 전 탄핵 정국과 지금의 탄핵 정국과 다른 게 있다면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TV와 신 문보다는 온라인 플랫폼, 특히 자기와 정치 성향이 맞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마치 젊은 층이 예능을 보듯 뉴스와 정보, 증거를 채집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8년 전에 유튜브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필자의 기억으로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필자 역시 당시 신문과 TV에 의존했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모르지만, 필자 역시 이번 탄핵 정국을 전후로 신문이나 TV보다 유튜브만 보고 듣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40년 가까이 기자 생활을 한 필자는 어느 게 팩트이고 어느 게 가짜 뉴스인지 분별할 정도는 된다고 자부하는 데도, 내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말을 해 주는 유튜브 채널에만 푹 빠져들고, 그렇지 않은-반대 의견을 가진 유튜브 채널을 거들떠보지 않게 되었다.
모바일 빅데이터 기업인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유튜브 이용자는 4624만6846명으로 5천만 명에 가까웠다. 이 수치라면 우리 국민 대부분 유튜브를 이용하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는 지금으로부터 6백여 년 전인 1450년경 인쇄기가 발명되고, 1452년부터 3년에 걸쳐서 구텐베르크가 성서를 인쇄함으로써 종교개혁이 빠르게 확신 되었던 역사적 사건을 연상하게 한다.
당시에 사상의 결과물이 인쇄물의 형태로 대량으로 쏟아져 나옴으로써 다양한 의견과 여론이 형성되었다. 이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절대 왕권 사회가 근대 시민사회로 바뀌었고 사회적으로는 권위주의 가 무너지고 자유주의가 싹텄다. 쌍방향 소통, 공감하는 커뮤니티 형성하며 민심을 좌우 지금 상황도 유사하다.
전 국민 누구나 기자가 되고 PD가 되어, 혹은 정치평론가, 경제 평론가, 사회 비평가, 과학자 가 되어 자신의 목소리를 시간 제약이 없이 얼마든지 유튜 브에서 펼치고 있다. 덕분에 일반인들은 뉴스나 정보를 한 방향에서 일방적으로 전하는 신문이나 TV가 없어라도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정보, 증거, 그리고 해설 등을 선택 하여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댓글과 같은 의견 피력을 통해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 짐으로써 자신과 같은 견해와 정치색을 띤 사람끼리 모여 여론을 주도할 수도 있 다. 물론 유튜브의 운영상 사용자들이 확증편향에 빠지기도 하고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나오거나 의견이 중복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짜증이 나게 할 때도 자주 있다.
그러나 유튜브로 인해 8년 전보다 무당층이 10%포인트 줄어들었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이 될 것이다. 전동차 안에 서 신문을 보는 사람을 본지 오래됐고, 식당의 벽에 걸린 TV 화면의 뉴스를 주시하는 사람이 크게 줄어들긴 했지만, 많은 이들 또한, 신문과 TV 시청이 줄었다고 해도 핸드폰을 통해 신문과 TV에서 보내는 뉴스와 정보를 얻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거의 모든 상황에서 개인의 행동과 반응은 자신이 관찰한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회인지 이론 (social-cognitive theory)이 맞다면,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유튜브는 가짜 뉴스 논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민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더구나 정치 경제 등 소위 자칭 타칭 분야별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은 지금까지 신문이나 TV에서 전해 주던 정제된 정보나 증거, 양비론적인 의견과 달리 주관적 인 개인 의견이 큰 비중을 차지함으로써 이에 동조하는 일 반인들이라면 기존에 가졌던 생각이나 믿음을 쉽게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래저래 사람 들이 유튜브를 사용하고 이해하고 만들어 낼 수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역량이 커지는 상황이라 선거에서의 무당층은 점점 더 줄어들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