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혹 웃자고 시작한 풍자가 사회문제로 번질 때가 있다. 나와 다른 삶의 환경과 가치관, 그리고 경제력 차이 및 자녀 교육환경까지 비교 대상이 되는 한국 사회다. 정치뿐만 아니라 일상의 이웃에게도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일상화돼 있는 현 시국, 유튜브를 통해 무작위로 배출되는 극단의 ‘혐오문화’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화제를 모은 코미디언 이수지의 ‘대치맘 패러디’ 영상이 배우 한가인의 개인 채널에 공개한 ‘14시간 자녀 학원 라이딩’ 영상과 맞물리며 이슈화되고 있다.
지난해 9월 개인 유튜브 채널 ‘자유부인 한가인’을 개설한 한가인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자신의 일상을 가감 없이 공개하며 인기를 모았으나 대치동 학원 라이딩과 차 안에서 김밥으로 끼니를 떼우는 영상 등에서 “유난스럽다”는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는 와중에 코미디언 이수지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에 올린 ‘휴먼다큐 자식이 좋다’(자식이 좋다)를 공개해 대중들 사이에서 논란이 됐다. 소위 ‘대치맘’으로 불리는, 교육열이 높은 강남 대치동 엄마들을 현실감있게 그려내며 지나친 교육열을 꼬집었다는 평가와 실체가 확실하지 않은 ‘대치맘’이라는 프레임을 조롱했다는 비판이 맞부딪혔다.
여기서 이수지는 대치동 학원가에서 네 살 아이를 키우는 ‘제이미맘’ 이소맘이라는 부캐릭터를 내세워 명품 패딩과 가방으로 휘감고 자녀 교육을 명목으로 자녀 교육에 열을 올리며 ‘학원 라이딩’을 하는 극성 엄마의 모습을 패러디했다.
●자식에게 전해지는 극단의 내로남불...아이들은 줄어도 사교육은 뜨겁다
본의 아니게 한가인 측은 자녀 보호를 위해 해당 영상을 비공개 전환했다. 또 한가인은 지난달 26일 ‘유 퀴즈 온 더 블럭’까지 출연해 이번 이슈에 대해 “내가 아이들 엄청 공부시키고 잡는다고 생각하시는데 절대 아니다”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방송 뒤 명품 옷이 또 다른 논란이 되자, 한가인은 1일 자신의 SNS 개정에 캡처본을 띄우며 “이런 거 전부 협찬입니다. 제 거 아니에요”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방송에 입고 나온 명품 브랜드 D사 재킷이 740만원이 넘고, 같은 브랜드의 귀걸이는 1900만원, 목걸이는 630만원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지난 3일 방송인 붐의 유튜브 채널 ‘유튜붐’에 현영이 출연해 이수지의 대치맘 패러디 영상을 본 후 달라진 주변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송도 소재 국제학교에 재학 중인 두 자녀를 둔 현영은 “나는 그건 안 입지만 진짜 엄마들이 많이 입는다. 근데 요즘 진짜 안 입더라”라고 달라진 주변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에선 “왜 열심히 자기 삶을 사는 엄마들을 희화화하느냐”며 불편하다는 반응도 있다. 배우의 삶보다 두 아이의 엄마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한가인은 억울할 수 있을 만하다. 하지만 대중·사회문화 전문가들은 “한국의 사교육을 적나라하게 풍자한 것”이라는 의견이 더 많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대중은 대치동 엄마들이 경제력, 인맥 등을 이용해 교육정보를 독점하고, 그게 그대로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현실에 반감을 느낀다. 이수지는 그 점을 비판하는 시선으로 패러디하며 정확히 대중의 마음을 저격했다”고 짚었다.
반면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 ‘된장녀’ 논란을 예로 들며 “실제 대치동 엄마들이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음에도 그렇게 규정하며 낙인찍고 대중의 시기심과 혐오감을 유발한 것”이라며 “엄마들이 고군분투하지 않으면 내 아이가 뒤처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들게 만드는 과열된 사교육 시장 등 한국 사회의 사교육 세태를 짚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김주표 변호사(법무법인 엘케이에스)는 “코미디를 다큐로 받아치는 마인드로 보면 모든 게 문제가 된다”며 “어머니가 본인의 인생을 잃어가면서까지 아이의 영재성을 발견하기 위해 집중해야 하나, 아이는 그런 걸 진정으로 바라는지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분석했다.

●지방대학 미달 사태, 초등학교 폐교 속출... 미래 세대, 어디로 가야 하나
그렇게 사교육에 매진해 소위 서울 상위권 대학을 응시하는 학생들은 의과 대학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그에 못 미치는 고3 수험생은 ‘인(in) 서울권’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면 재수를 하거나 대학을 포기하기도 한다.
충격적인 것은 전국 약 190개 대학 중 경쟁률이 3대 1을 밑도는 곳이 근 40%에 이른다는 점이다. 경쟁률이 3대 1보다 낮으면 미달로 보며 이 중 86%가 지방대다. 부산대, 경북대, 충남, 전북, 전남대 등 지방국립대 대부분이 인기 없는 과는 ‘미달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세계 최저 출생률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의 인구 감소에서 찾을 수 있다. 21세기에 들어 한국은 일찍이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일본보다 더 심각한 저출산율을 나타내고 있다. 2023년 일본의 합계출산율 1.26명에 비해 우리나라는 0.78명으로 그 격차가 난다. 2001년 출산률이 1.30명을 기록하며 일본(1.33명)에 역전당한 후 2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따라잡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나마 일본은 ‘교육 인프라’에 있어서는 지방 명문 대학이 버티고 있어 수도인 도쿄로 몰려들 이유가 없다. 이 사실은 한국과 일본이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한국의 경우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말미암아 결혼과 출산 이후 교육 문제에 있어서도 지방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결혼의 가장 크고 높은 허들로 꼽히는 주거·교육 문제의 단면이다.
그 사이 한국의 저출생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4년 출생아 수는 47만6958명이었으나 20년 후인 지난해 출생아 수는 23만8300명으로 반토막났다. 시·도별로 보면 전북 60.6%, 광주 59.3%, 서울 58.3% 순으로 출생아 수가 급감했다.
또한, 올해 초등학교에 취학 예정인 어린이가 10년 전보다 21% 줄면서 올해에만 학교 49곳이 폐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8일 교육부에서 받은 ‘최근 10년간 시·도별 초등학교 입학생 추이 현황’ 자료 등에 따르면, 올해 전국 초등학교 1학년 취학 예정 아동은 35만6258명으로 10년 전보다 21.8%(9만9421명)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북은 2015년 대비 36.6% 줄어든 1만348명으로 전국 시·도 가운데 가장 많이 줄었다. 이밖에 경북 33.3%, 경남 31.7% 순으로 감소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작금의 현 세태를 비판했다. 정 교수는 “코미디언 이수지 씨의 극성 대치맘 패러디는 한국의 사교육의 현주소를 제대로 풍자한 게 맞다”며 “이는 소득불평등 등의 다양한 영역이 상호작용해 양극화로 이어지는 다중격차가 낳은 ‘웃픈’(웃기고 슬픈) 현실이다”고 진단했다. 또한 그는 “대치동과 같이 사는 곳이 특정된 곳에서 우월감을 느끼고, 자산, 인맥 등을 총망라하면서 자녀의 상위 1%를 위해 부모가 서포터하는 한국 교육의 문제를 그대로 볼 수 있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물론 입시 지옥에 벗어나 ‘제주형 자율학교’ 등을 선택하는 학부모들도 있다. 한때 관광 활성화와 국제학교 입학 수요 등으로 ‘글로벌 역량학교’가 제주도 이주를 이끌었다. 4년 전 서울에서 제주도로 이주한 B씨는 “제주도로 이사온 뒤 중학생인 아들과 딸이 이전보다 너무나 행복해 한다”며 “학업에 치여 경쟁하기보다는 얘들이 뛰어노는 시간이 많아졌고, 방과 후에 내가 운영하는 카페의 베이킹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은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후 진로 결정에 있어서도 자녀의 뜻을 최우선으로 존중할 생각이다”라고 말한다.
당신의 자녀가 상위 1%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 의사 선생님이 되길 바라는가. 그렇다면 대치동 학원을 다닐 수 있게 ‘영끌’해서 주변에 집을 구하고 주변 인맥을 총동원해 자녀가 좌절을 맛보기 전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당신의 자녀가 그 힘든 바늘구멍을 뚫고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면 그것은 자녀의 성취인가, 부모의 성공인가. 혹시 ‘보상 심리’가 생긴다면 당신의 자녀는 불행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