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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외교] 약소국 외교의 특징과 유의 사항

-왕선택 칼럼

지난 2월 28일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상회담 후폭풍이 좀체로 가라앉지 않고 있다. 사실 그날 벌어진 일을 돌이켜보면 동양과 서양을 떠나서 세계 외교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희귀하게 정상 간 막말 대결이 진행됐기 때문에 쉽사리 수습될 수 없다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였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이 보여준 고압적이고 오만한 태도에 대한 비판은 누구라도 동의할 수 있을 정도로 명백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 벌어진 상황을 모두 트럼프 탓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과도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토론할 필요가 있다. 대화 전체를 찬찬히 분석해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도 상당한 수준의 책임이 있다는 점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근차근 그날의 대화록을 살펴보도록 하자.

 

문제의 정상회담 일정은 약 50분 동안 진행됐다. 원래 이 회담은 각국 정상들이 계산된 표현과 정교한 언어를 사용하여 의견을 교환하는 일상적인 외교 행사로 준비된 것이다. 사전에 진행된 외교 협상을 통해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부는 서로의 요구안과 양보안에 실무적으로 합의가 된 상태였다. 정상회담은 의례적인 차원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시나리오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회담이 시작되고 약 40분이 지난후 약 10분 동안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정상 간 삿대질 말싸움이 전개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많은 외교 전문가들은 마지막 10분에 주목했고, 결론도 비슷하다.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이 고압적이고 제국주의적인 태도를 취했고, 약소국의 비애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앞서 진행된 40분간의 대화까지 검토하면 매우 다른 그림을 만나게 된다. 

 

대화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분위기는 긍정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 환영 인사에는 회담 후 서명 행사와 오찬에 대한 언급이 포함됐다. 그런데 회담이 시작된 이후 10분 정도가 지난 뒤 불길한 조짐이 나타났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상당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유럽 국가들의 기여도가 낮다고 비판했는데, 젤렌스키가 즉각 반박한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상당한 지원을 제공했고, 여전히 강력한 파트너라고 주장했다. 이 장면에서 트럼프가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그 순간이 지나고 3분이 지난 후 중요한 상황이 발생한다. 트럼프가 "우리는 매우 좋은 대화를 나눴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은 공개 일정은 마무리하고 비공개 회담을 시작할 테니 기자들은 자리를 비켜달라는 취지로 협조를 요청하는 발언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트럼프는 다음 발언을 이어가지 못했다. 어떤 기자가 질문을 제기하면서 분위기가 갑자기 변하면서 새로운 토론이 시작된 것이다. 이 장면은 중요하다. 트럼프가 회담 시작 15분 이후 벌어진 상황을 미리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15분 이전에는 특별히 재앙에 해당하는 상황은 존재하지 않았다. 트럼프와 밴스가 젤렌스키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계획했고, 실행했다고 보는 해석이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순간이 지나고 3분 뒤에 또다른 결정적인 장면이 찾아온다. 기자 가운데 한 명이 젤렌스키에게 명백하게 악의적인 질문을 던진 것이다. 질문 요지는 미국 대통령을 만나러 백악관에 오는데, 복장이 불량하다는 것이었다. 이 순간 젤렌스키가 미국에 대해 무례하다는 불만이 트럼프와 밴스를 포함한 일부 사람들의 인식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회담이 시작되고 33분이 지난 시점에서 젤렌스키는 또 다른 사달을 일으켰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의 수많은 도시가 파괴됐다고 언급했는데, 젤렌스키가 그 말을 공박한 것이다. 우크라이나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도시가 많다면서 러시아의 허위 정보에 속아넘어가지 말라고 권고한 것이다.

 

사실 트럼프 발언에 굳이 반박할 필요가 없었다. 우크라이나에 아름다운 도시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도시가 파괴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짜증을 넘어서 화가 나기 시작한 트럼프는 J.D. 밴스 부통령과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에게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고 제안했다. 루비오 장관은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밴스 부통령은 오히려 상황을 극적으로 악화시키는 발언을 내놓았다. 아마도 트럼프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트럼프를 도와주는 차원에서 제기했을 것이다.

 

밴스는 푸틴과의 외교가 최선의 방책이라고 강조했다. 젤렌스키는 이 대목에서 참는 것이 좋았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당신이 말하는 외교는 어떤 외교냐’면서 밴스를 몰아부친 것이다.

 

밴스는 젤렌스키 반격에 10배, 100배의 반격을 가했다. 젤렌스키가 미국에 대해 감사하지 않고 무례하다고 비난한 것이다. 정상회담에 배석한 정부 관료가 상대국 정상을 이렇게 모욕한 사례는 아마도 인류 역사에서 처음일 것이다.

 

젤렌스키는 물러서지 않고, 미국도 앞으로 푸틴의 영향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트럼프가 직접 반격에 나섰다. 트럼프는 미국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라면서 “당신은 지금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없다” “당신은 불리한 처지에 놓여있다” 등등 가혹할 정도로 모멸적인 표현을 퍼부었다.

 

트럼프가 말하는 동안 젤렌스키가 조용히 경청하기보다는 그게 아니라고 반박하는 발언을 멈추지 않으면서 트럼프의 화를 돋구었다. 밴스가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젤렌스키가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 이전에 민주당 후보를 돕기 위해 펜실베이니아를 방문했다면서 미국 내정에 간섭했다고 비난한 것이다.

 

젤렌스키는 사태를 수습하기보다는 “조 바이든은 당시에 여러분의 대통령이었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지난 4년 내내 2020년 대선이 부정선거였고, 바이든은 대통령 자리를 훔쳐간 사람이라고 주장한 것을 고려한다면 젤렌스키 발언은 자살골 그 자체였다.

 

트럼프와 밴스, 젤렌스키의 외교 대참사를 차분하게 검토한 결과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이 트럼프나 밴스의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니고, 외교적 의사 소통에 익숙하지 않은 국가 지도자들이 불필요하게 충돌한 결과 벌어진 외교 참사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외교적 의사소통은 중요하며 국가 지도자와 고위 관리는 외교적 의사소통 기술을 고도로 훈련받아야 한다는 점도 알 수 있다. 효과적인 외교를 위해서는 신중한 표현, 감정적 통제, 전략적 기동이 필요하다는 점은 명백하다. 특히 약소국 지도자들이 불리한 처지에서 강대국 지도자와 외교 협상을 진행할 때에는 외교적 기본을 준수해야 하는데, 젤렌스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트럼프가 오만한 미국 대통령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반박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나 이번 외교 참사의 경우에 트럼프 책임이라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오히려 불리한 처지에서 외교 협상에 나선 젤렌스키가 개인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협상을 망쳤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약소국 외교, 더 정확하게 말하면 불리한 처지에서 외교 협상을 진행하는 경우에는 굴욕적인 상황을 맞이해도 차분하게 협상틀을 유지하면서 타협하는 시나리오에 집중하는 것이 외교의 정석이다.

 

젤렌스키에게 앞으로 외교 협상을 통해 우크라이나 국익 증대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외교 협상은 신중하고 전략적인 태도와 접근법을 유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강조하는데 도움이 되는 사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후세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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