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협력업체들이 거래 중단을 통보하면서 위기를 겪는 듯 했으나 납품 정상화를 위한 릴레이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급한 불은 끈 모양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여전히 홈플러스가 정상영업을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을 품고 있다.
특히 점포 내 입점업체들이 지난 1월분 매출의 정산을 받지 못하면서 ‘제2의 티몬·위메프 사태’로 번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특히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1월분 정산일인 4일에 기습적으로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행태가 악질적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에 더해 법정관리 신청 직전 협력업체들의 소속 변경을 진행해 분리매각을 동시에 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일었다. 홈플러스 사태에 김병주 MBK 회장의 책임론까지 부상하면서 사재를 써서라도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 최상위 ‘을’ 영세 입점업체, 한달 벌어 한달 사는데 정산지급은 후순위?
홈플러스는 협력업체 납품 정상화를 위해 업체별로 협의를 이어가며 밀린 대금을 순차적으로 지급 중이다. 회생절차 개시일(4일) 20일 이전에 발생한 회생채권도 법원 승인을 받아 지급하고 있다. 법원 승인을 받은 회생채권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1·2월분 3,457억원 규모다.
홈플러스가 보유하고 있는 가용자금은 현금 잔고 3,000억원과 3월 현금 유입액 3,000억원 등 6,000억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의 입점업체인 오뚜기, 롯데웰푸드, CJ제일제당 등은 11일 지연된 대금을 받고 납품을 재개했지만 아직까지 대금을 받지 못한 협력사와 임대주들은 여전히 답답한 상황이다.
홈플러스는 이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오는 14일까지 상세대금 지급계획을 수립해 전달할 방침이라고 밝혔지만 지난 7일 법원이 회생채권에 대한 지급을 승인하면서 그 주까지 지급을 완료하겠다는 홈플러스의 말이 번복돼 입점업체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특히 대·중기업 위주로 대금지급이 이루어지고 있어 여유자금이 없는 영세업체들은 대금 정산 지연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기자가 서울에 있는 한 홈플러스를 취재한 결과, 밀린 1월분 대금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프렌차이즈 업체 위주로 지급되면서 영세한 입점업체들은 아직까지 정산을 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조기 변제 계획서도 삼성, LG 등 대기업에는 제공했으나 소상공인 입점업체엔 구체적인 계획통보도 없어 불안을 더욱 키우고 있다.
홈플러스에 입점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A씨는 M이코노미뉴스 기자에게 자금난을 호소하며 홈플러스 행태에 분통을 터뜨렸다.
A씨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여기 개인사업자들이 다 어렵다. 직원급여와 물품대금 다 밀려있는 상태다. 직원들은 이해해주지만 물품 업체는 대금을 빨리 입금해 달라고 독촉하는 상황"이라고 난처해하며 “솔직히 홈플러스가 가지고 있는 돈이 다 우리 돈이지 않나. 판매대금으로 현금 보관하고 있는 거 우리 돈 아니냐”고 반문하며 정산지급 지연에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입점업체 B씨는 “여기 있는 사람들은 한 달 일해 한 달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이다. 지금 가장 급한 건 직원들 월급과 업체 대금 지급하는 거다. 이걸 빨리 해결해 줘야 한다”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문을 닫을 수도 없고, 하루 12시간씩 일하는데 상황이 진짜 어렵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 홈플러스, 회생신청 직전까지 어음 판매... 투자자들 분통
홈플러스는 지난 1월 정산금을 약속한 날 기습적으로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며 협력사들의 분노를 샀다. 여기에 더불어 회생을 준비하면서도 입점을 유도한 행태에 홈플러스와 MBK 관계자들이 이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한 업주는 “회생을 준비하며 입점을 받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MBK의 행태를 비판했다.
또 업계에 따르면 MBK가 기업회생 절차 신청 직전에 협력업체(입점 브랜드숍)들의 소속을 변경하는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수 협력업체의 소속을 '홈플러스 특정 의류잡화'에서 '홈플러스 몰'로 바꾼 것이 기업회생과 몰 사업부 분리매각을 동시에 진행하려는 사전작업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MBK가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을 인지했을 수 있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되는 가운데, 협력업체 사이에서도 MBK 움직임이 '계획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는 모양새다. MBK는 회생신청 직전까지 개인과 기업 등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기업어음 등을 판매했는데 기업 손실을 투자자들에게 떠넘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여기에 더해 지난 10년간 MBK는 홈플러스 점포 매각 등으로 빚을 갚고 배당을 받는 식으로 투자 원금을 회수해 왔는데 홈플러스가 위기에 빠지자 자구 노력 없이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해 '먹튀' 논란이 일고 있다.
◇ 김병주 MBK 회장 '책임론' 확산... "사재 털어서라도 해결해야"
홈플러스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는 가운데 김병주 MBK 회장이 사재를 털어서라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사모펀드의 한 고위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롯데, 신세계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면 신동빈 회장과 정용진 회장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김병주 회장이 나와서 설명을 해야 하는데 뭘 하는지 모르겠다"며 "선제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것에도 여러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MBK가 홈플러스의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한 자구책 대신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한 것은 더는 손해 보지 않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김병주 회장은 사재를 내놓는 등의 방식으로 홈플러스 부실 경영에 따른 한국 경제에 혼란과 홈플러스 채권 등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손실을 초래한 데 대한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홈플러스 사태에 김병주 회장의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11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홈플러스 사태와 관련해 “기업 회생 절차에 돌입한 홈플러스가 대한민국 유통업계를 넘어 국민 경제 전반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며 “홈플러스 소유주인 MBK가 배를 불리는 동안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 협력업체, 소비자들에게 전가됐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는 단순한 경영 실패가 아닌 명백한 사모펀드 먹튀 자본의 폐해”라면서 “김병주 회장은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후 국회 정무위원회는 홈플러스 사태와 관련해 김병주 회장 등 5명에 대한 증인 채택의 건을 의결했다.
정무위원회는 정무위 전체 회의에서 김 회장을 포함해 조주연 홈플러스 공동 대표,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 겸 홈플러스 공동 대표, 금정호 신영증권 사장, 강경모 홈플러스 입점협회 부회장 등 5명을 오는 18일 긴급 현안 질의에 부르기로 했다.
정무위는 김 회장을 대상으로 홈플러스 사태 관련 배임 행위 여부를 집중적으로 질의에 나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