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국의 무역흑자는 내겠다고 관세 폭탄을 먹이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세계 무역의 패권을 쥐려던 도널드 트럼프의 무리수가 제동에 걸리는 모양새다. 미국 전역에서도 트럼프 취임 석 달 만에 ‘반(反)트럼프 시위’가 불붙었다. 지난 5일(이하 현지시간) 전국적으로 50만명 이상이 트럼프 대통령을 규탄하는 ‘핸즈오프’(Hands Off·손을 떼라) 시위에 참여한 데 이어, 2주 만인 19일에는 워싱턴 DC와 뉴욕, 시카고 등 미국 전역 700곳에서 300만명이 참가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또한, 클린턴 오바마 바이든 등 민주당 출신 전직 대통령들이 각기 다른 이유로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석달 만에 가장 낮은 42%를 기록했고,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해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51%로 과반을 넘었다.
●트럼프 무대포식 ‘보호관세 부과의 패착’...폭탄은 되돌아 오는 거야
2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글로벌 경제질서와 대한민국’ 특강 자리에서 세계적인 경제 석학 장하준 교수(영국 런던대 경제학과)는 최근 글로벌 경제를 두고 미국 관세정책 전환과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경제구조 전환 등의 불확실성을 언급했다. 이에 한국의 시급한 문제로 ▲저출생·고령화 ▲양극화 심화 ▲주력산업 경쟁력 변화 등의 도전 과제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특히, 이날 장 교수는 트럼프 미 행정부의 보호관세 정책 헛발질로 미국 경제 재건 계획이 실패할 확률이 더욱 커졌다고 꼭 짚어 말했다.
장 교수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가져온 글로벌 경제의 혼돈 속에서 ‘한국경제의 슬기로운 대처법’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는 “급변하는 세계 경제의 틈에서 ‘누가 이득을 보냐’에 초점을 맞추면 편향된 것보다 근본적인 것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며 “40년 후의 경제를 내다보고 미리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지금 한국 정부가 시급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산업 정책과 이민 정책의 대전환을 통한 경쟁력 확보이다"며, "미국처럼 제조업이 불가능한 국가가 되면 트럼프식의 극단적인 정책으로 뒷감당하기 어려운 우를 범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관세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3가지 이유
장하준 교수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대해 “버틸 때까지 버텨야 한다”며 한국 정부의 신중한 대응을 권고했다. 트럼프 미 행정부가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K-조선’을 예로 들면서, "세계 조선업에서 중국과 견줄 수 있는 나라가 한국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실상 ‘무정부 상태’인 한국이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주도권을 쥘 기회를 얻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저항하지 않겠다’라는 취지로 발언을 하는 등 현재 한국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르고 있다고 지적한 장 교수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나라가 됐는지를 대통령 대행이란 사람이 모르고 한 얘기다. 아직도 국민소득 50달러에 원조 밀가루를 받아먹는 멘탈리티로 국제경영을 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일갈했다.
우선 미국은 제조업을 할 능력이 없다. 세계무역 2위 중국이 제조업의 약 70%를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소프트웨어와 기술력까지 보유하면서 모든 공정에 미국이 도움이 딱히 필요 없게 돼 버렸다. 이에 트럼프는 세계 패권의 유지하기 위해 관세 폭탄을 던졌는데 부메랑에 돼 돌아오게 생겼다.
장하준 교수는 “미국이 서비스 무역에서는 흑자를 내면서 상품 수출만 문제 삼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같은 나라에는 마이너스 관세를 부과해야 논리적으로 맞다”고 꼬집었다.
두 번째로 한 나라의 산업 재건은 20~30년이 걸리는데, 산업 생태계를 다시 만들기가 쉽지 않다. 미국 노동자의 높은 임금은 경제의 발전과는 다르게 50년간 정체돼 있다. 미국 노동자들은 이러한 불만을 안고 있었고,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결국 미국이 말하는 상호 관세 정책은 미국의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국제적 왕따’를 자행하는 꼴이 됐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투자를 생각보다 안 한다. 다우존스와 나스닥 등 미국 주식시장에서 주주자본주의의 폐해가 속출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장 교수는 “미국의 금융 시장은 완전히 기생충이 됐다”며 “미국 기업들은 이윤의 90~95%를 주주 환원에 사용한다”고 했다. 그는 “이런 금융 체제로는 아무리 관세를 부과하고 산업 정책을 펼쳐도 미국 산업 재건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얘기하는 것은 미국처럼 마음대로 기업에서 돈을 빼가고 싶은데 한국은 재벌 가문이 그걸 틀어쥐고 있다는 것”이라며 “재벌의 전횡도 있지만 그것을 막겠다고 완전히 반대로 가선 안 된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순간 무정부 상태...트럼프의 헛발질 ‘한국경제 위기이자 기회’
장하준 교수는 트럼프발(發) 관세 전쟁과 관련해 “미국은 한국과 같이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나라에 일방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며 법치주의를 포기한 나라가 됐다”며 “미국과의 협상에서 최대한 지연 작전을 펼쳐야 한다”고 했다. 장 교수는 “한국이 오히려 조선, 반도체 등 핵심 산업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라며 “장기적으로 보면 미국이 약자다. 버티면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장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수입산 다변화를 통해 미국을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석유와 가스는 60여개국과 협상이 가능하고, 상대적으로 무역량이 적은 EU(유럽연합)과의 교역량을 확충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우리나라의 과도한 가계부채 수준에 대한 경고도 내놨다.
그는 “미국이 그간 임금 상승을 억제해오면서 가계부채가 많이 늘어났는데,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로 미국보다 심각하다”라며 “기획재정부 등 공무원들은 공공부채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가계부채가 훨씬 심각한 문제”라고 짚었다.
이어 “우리나라의 공공부채는 40%대로, GDP 대비 이렇게 낮은 나라는 거의 없다"라며 "진짜 문제는 가계부채이고, 이는 한국 경제의 불안정성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주주이익 보호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정치권 일각에서 상법 개정 등을 추진하는 데 대해선 “극단으로 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기업 이윤의 10% 이상을 자사주 매입에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 등 일정한 선이 필요하다”라며 “한국 기업들이 주주 환원에만 집중하면, 결국 생산적인 기업 활동을 저해하고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