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을 표집(중학 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 전체 학생 81만7,470명 중 3.4%인 2만7,606명 표집)하여 평가한 2024년 국가수 준 학업성취도평가 결과가 발표되었다. 학업성취도평가는 ‘학생들의 교과별 학업 성취의 추이를 파악함으로써 교육 과정의 교육목표 도달 정도와 함께 교육과정 개선을 위한 기초 자료를 제공’하기 위하여 중학교 3학년과 고교 2학년 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평가대상 중 중학교 3학년은 의무교육의 마지막 해(의 무교육 기간이 9년인 우리나라의 경우이며 미국이나 유럽은 의무교육 기간이 최대 14년까지임)에 해당하는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1961년에 설립된 국제기구로 38개 국가가 가입하고 있으며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두 고 있음)에서도 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PISA)를 3년 단위로 실시하고 있다.
PISA 조사는 의무교육 수료단계의 15세 학생이 의무교육 기간에 익혀야 할 지식과 기능을 실생활의 다양한 장면에서 직면하는 과제에 어느 정도 활용이 가능한지를 측정하는 것이 주된 목적인데, 우리나라는 2000년에 실시된 첫 조사 이후 등락은 있지만 상위권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최근의 평가인 PISA 2022에서는 수학 527점(3위), 독해력 515점(4위), 과학 528점(3위)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 도는 우수한 성과를 거둔 바 있다.
◇확대일로로 치닫는 지역 간 학력 격차
2024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와 국제학업성취도평가인 PISA는 표집 대상과 문제 유형 등이 다르므로 반드시 결과가 일치한다고 해석하기 어렵지만 국제적인 평가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거두는 우리나라 중학교 3학년의 학업 성취도평가 결과를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2024년 평가에서 두드러진 점은 중학교 3학년의 국어, 수 학, 영어 3수준(평가대상 학년 학생들이 도달하기를 기대 하는 교육과정 성취 기준의 상당 부분을 이해하고 수행 하는 ‘보통학력 이상’) 이상 비율이 각각 66.7%, 48.6%, 61.2%로 국어와 영어는 과반수 가까이가 보통학력 이상 이지만 수학은 반수에도 미치지 않는다.
한편 1수준(평가 대상 학년의 학생들이 도달하기를 기대하는 교육과정 성취 기준을 이해하고 수행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 한 수준으로 ‘기초학력 미달’에 해당) 비율은 각각 10.1%, 12.7%, 7.2%로 전체 학생의 적지 않은 비율이다. 또 한 가지 두드러진 점은 지역 간의 학력 격차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림1〕은 지역별로 중학생 중 우수 학생 비율을 나타내고 있는데 국어, 수학, 영어 전 과목에서 대도시와 읍면 간에 우수 학생 비율 격차가 크게 생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2〕는 기초학력 이하 학생 비율인데 국어를 제외한 수학과 영어에서 기초학력 이하 학생 비율의 지역 간 격차가 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지표를 그대로 해석하면 우리나라 대도시는 고학력, 읍면 지역은 저학력이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보아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 일본 등의 국가에서는 공립과 사립 간에 다른 학교제도기준 (입시, 학교선택의 범위, 수업료, 교육 과정기준 등)을 적용하므로 공사립 간 학력 격차가 크게 나타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우리나라는 국·공·사립 구분 없이 동일한 학교제도기준이 적용 되므로 공사립 간에 학력격차는 적은 대신에 지역 간의 교육격차는 크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역 간 학력 격차는 확대일로를 치닫고 있는데,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확산 되기 전인 2019년 학업성취도평가에서 고등학교 2학년의 경우 ‘보통 학력 이상’ 비율과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대도시와 읍면 간에 통계상으로 유의 미한 차이가 크지 않았다.
한편, 중학교 3학년의 경우에는 읍면이 대도시보다 보통 학력 이상 비율이 국어 5.3%, 수학 13.1%, 영어 9.5%가 낮았으며,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국어 1.1%, 수학 4.9%, 영어 0.2%로 읍면이 다소 높은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는 중학교 3학년의 경우 아래 그래프에서 확인하듯이 ‘보통 학력 이상’(3수준 이상)은 읍면이 국어 13.7%, 수학 18.5%, 19.4% 낮았으며, ‘기초학력 미달’(1수준)은 읍면이 국어 5.6%, 수학 8.2%, 영어 5.1% 높았다.
◇공급자 입장의 학업성취도평가
지난 호의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학력 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는 가정 요인, 지역사회 요인, 학교 요인 등 다양하 다. 이들 요인은 한두 개가 독립적으로 작용하여 학력이라는 결과를 만들기 보다는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생산함수)하여 학력이라는 성과물을 만들어 낸다. 즉 지역 간 학력 격차는 어느 지역에 거주하느냐에 따라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가정 배경, 학교 교육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하여 생긴 결과이다.
교육격차는 엄마 뱃속에서 시작된다는 말처럼 학력 격차는 조기화 되어가는 추세이다. 서울의 특정 지역에서는 한 달에 수백만 원을 지불하면서도 선행 영어교육으로 일정한 수준을 갖춰야 입학하는 영어유치원에 입학을 대기할 정도라는 뉴스는 어제오늘의 화제가 아니다.
지난 3월에 발표한 ‘2024년 유아사교육비 시험조사’ 결과에서도 조사 대상 기간이 유치원의 방학이 끼어 있는 시기임을 고려하더라도 6세 미만 영유아의 절반 가까이가 사교육에 참가하고 1인당 사교육비로 월평균 33만 원 이상을 지출하고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교육격차는 조기화되고 있으며 여기에는 가정요인과 지역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 할 것이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대상에서 진로에 따라 일반계고, 특성화고 등으로 다양화되어 있는 고등학교를 포함하고 있는 것도 의문이다. ‘학생들의 교과별 학업 성취의 추이를 파악함으로써 교육과정의 교육목표 도달 정도와 함께 교육과정 개선을 위한 기초 자료를 제공’이라는 학업성 취도평가의 목적을 고려한다면 의무교육단계에서의 학업 성취도를 평가하는 것이 가정요인, 지역사회요인, 학교요인 등과 학력과의 관계를 정확하게 진단하여 문제를 발견 하고 처치하는 효과가 클 것이다.
의무교육에서 생긴 격차는 의무교육 이후 고등학교의 진 로와 교육 성취에 영향을 미치므로 의무교육 학교인 초등 학교와 중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24년 학업성취도평가 결과에서 고등학교의 경우 대도시와 읍면 간에 우수 학생 비율이 중학교와 비교하여 크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 것도 주거지역의 학교에 강제 배정하는 의무교육과는 달리 읍면지역에는 자율고등학교 등 전국에서 선택하여 진학하는 경쟁력 있는 고등학교가 적지 않는 이유이다.
학교 단계와 지식의 체계화와의 관계에서 의무교육은 인격을 완성한다는 개인화 작용과 국가와 사회의 유지·발전에 기여할 인재 양성이라는 사회화·경제화 작용이 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의무교육은 경제화 작용보다 교육을 통해 개인적 교양과 시민정신과 같은 사회의식을 길러 문화를 발전시키고 국민을 통합하는 등의 개인화·사회화 기능이 더 중요시되는 교육단계이다.
그래서 의무교육은 누구나 지역의 학교에 입학하여 차별 없이 균등하게 교육을 받도록 하는 ‘교육의 기회균등’ 이념이 철저하게 실천되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처우하는 형식적 평등을 일차적으로 실현하여야 하며, 경제적 · 신체적으로 곤란을 겪는 학생을 더 후하게 처우하는 실질적 평등 정책도 마련하여야 한다. 즉 출생이나 생태적 자원의 불평등은 부당하므로 어떻게든 국가는 이러한 계층에 대하여 보상해야 하며 이는 바로 롤스(John Rawls) 가 말하는 격차원리(정의의 제2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평하고 균등한 의무교육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 록 주거지역을 단위로 통학구역이 설정되어 있고 교과서, 교육과정, 교원 자격, 학교시설, 교육재정 등의 표준화가 마련되어 있다. 국민에게는 자녀를 취학할 의무와 이를 이행하지 않는 보호자에게는 벌칙도 마련하고 있다.
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는 누구나 교육의 접근기회를 보장하고 지역이나 개개인의 사회경제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육조건을 정비할 책무를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공교육에 무엇이 문제인지, 개선 방안은 무엇 인지, 선행해서 해결해야 할 교육과제는 무엇인지를 파악 하는 것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공동책임이다.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시작한 지가 70년을 넘어섰고 중학교 의무교육도 4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의무교육에서 지역 간에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공교육 어딘가에 큰 결함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기회균등에 철저해야 할 의무교육의 지역 간 실태를 파악하고 전국적으로 학생의 학력과 학습 상황을 정확히 분석·검증을 위해서는 현재와 같이 3% 내외의 표집 조사로는 불충분하다.
학업성취도평가는 1986년 처음 전수조사 방식으로 채택 되었으나 1998년 표집조사 방식으로 바뀐 다음 2008년 다시 전수조사로 전환되고 2017학년부터 다시 표집 방식으로 바뀌었다. 표집조사로 바뀐 주된 이유는 평가 결과를 공개하는 것이 지역 간 학교 간에 등수 경쟁을 야기한 다는 것이었는데 특정 교원단체의 반대도 한몫하였다. 그런데 2021년에 실시한 국회의원의 설문조사에서 과반수의 학부모는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전수조사를 찬성 했다고 하니 정부 정책은 교육수요자의 입장과는 거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학업성취도평가를 전국적으로 실시하여 공개하는 것을 ‘지역 간 학교 간 등수 경쟁’이라는 부작용을 우려하여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공급자 입장의 정책 방향이 타당한 지, 사교육의 효과도 작용하여 생길 수 있는 지역 간의 교육격차를 사실대로 분석 · 검증하여 가정형편이나 주거지역에 관계없이 질 높은 공교육을 받을 수 있는 수요자 입장의 교육정책이 더 중요한지는 정치와 정부가 현명하게 판단하여야 할 과제이다(다음 호에 계속).
◀김상규 박사
와세다대학 대학원에서 기초교육학을 전공하여 교육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현재는 학교법인 태재학원 법인처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민족교육(2017년), 교육의 대화 (2017년), 교육의 폴리틱스·이코노믹스(2022 년, 문화체육관광부 2022년 세종도서 학술부문), 학교제도:미국·영국·일본(2023년, 문화체 육관광부 2024년 세종도서 학술부문), 경계선의 교육(2024년, 대한민국학술원 2024년 우수 학술도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