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 국책사업이 국가 발전의 동력이 아닌 사회 분열과 갈등의 촉매제가 되고 있다. 새만금, 밀양 송전탑, 제주 해군기지 등 수많은 사업이 극심한 사회적 대립을 낳으며 공동체 붕괴와 불신 심화라는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이는 경제적 효율성만을 앞세운 기존의 정책 결정 방식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으로, 사업 기획 단계부터 사회 통합에 미치는 영향을 총체적으로 분석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국민통합영향평가’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 이는 단순히 행정 절차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국책사업 거버넌스의 철학을 ‘예방적·통합적 거버넌스’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사업의 정당성을 경제적 수치가 아닌 사회적 합의와 통합이라는 더 높은 가치에서 찾으려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한국 국책사업 갈등의 해부
한국 국책사업 갈등의 근원에는 수십 년간 이어진 ‘선결정-후통보-강행(Decide-Announce-Defend)’이라는 권위주의적 정책 결정 모델이 자리 잡고 있다. 소수의 전문가와 관료가 비밀리에 계획을 수립하고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방식은 초기부터 주민 참여를 배제하여 정부와 국민 간의 깊은 불신을 만든다.
갈등의 동인은 복합적이다. 보상 문제 등 ‘경제적 이해관계 갈등’, 개발과 환경보전의 대립과 같은 ‘가치 기반 갈등’,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증폭시키는 ‘절차 및 신뢰 기반 갈등’이 서로 얽혀 있다. 이 요인들은 서로 영향을 주며 연쇄적으로 증폭되는 특징을 보인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갈등의 발생 자체가 아니라, 이를 건설적으로 관리하고 사회적 합의로 전환하는 시스템의 부재에 있다.
◇한국의 기존 사전 평가 제도에 대한 비판적 검토: 예비타당성조사, 갈등영향분석
현재 운영 중인 사전 평가 제도는 국책사업의 사회적 측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가진다. 첫째, 예비타당성조사(예타)이다. 이 제도는 1999년 도입되어 예산 낭비 방지에 기여했지만, 비용-편익 분석(B/C)이라는 경제성 분석에 과도하게 치우쳐 있다. 사회적 갈등, 환경 가치, 공동체 붕괴 비용 등 사회 통합과 직결된 요소는 부수적으로 취급되어, 경제성만 확보되면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사업도 추진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둘째, 갈등영향분석이다. 이는 갈등을 사전에 예측하고 예방한다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법적 구속력이 없고 기관장의 판단에 따라 실시되는 임의 규정이라 실효성이 거의 없다. 전문 인력과 자원 부족도 문제로, 사실상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상태이다. 요컨대, 경제성 중심의 예타가 다른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현재의 불균형한 평가 시스템은 ‘선결정-후통보-강행’ 모델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며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독일, 캐나다 모델 벤치마킹: 참여와 통합 강조
해외선진외국 모델중 독일과 캐나다 모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독일 모델은 ‘계획확정절차’와 ‘공공참여법’ 등을 통해 사업 초기 단계부터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법적으로 보장한다. 베를린 신공항 사례처럼, 광범위한 의견 수렴과 지속적인 대화 기구 운영을 통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갈등을 관리한다. 이는 ‘숙의의 제도화’가 갈등 관리의 핵심임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다음으로 캐나다 모델이다. 2019년 제정된 ‘영향평가법’은 환경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보건, 원주민 권리까지 포괄적으로 평가하도록 규정하여 통합적 평가의 좋은 모델을 제시한다. 하지만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 관할권 문제로 위헌 논란이 발생한 점은, 제도 설계 시 중앙과 지방 간의 정교한 권한 배분이 필수적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한국형 국민통합영향평가 도입을 위한 조건
우리나라에 국민통합영향평가제도가 성공적으로 도입되기 위해서는 아래의 5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법적·제도적 기반이다. 상위법으로서 「공공사업의 사회통합 증진을 위한 영향평가 기본법」을 제정하고,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국민통합영향평가위원회’를 설립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통합영향평가가 예비타당성조사에 선행하도록 평가의 위계를 재정립하여 ‘선 사회적 합의, 후 경제성 검토’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절차적 정의와 포용성이다. 국민통합영향평가는 일정 규모 이상 사업에 의무적으로, 그리고 계획 초기 단계부터 적용되어야 한다. 시민들의 실질적 참여를 위해 공청회, 시민배심원제 등을 활용하고, 참여에 필요한 비용을 공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모든 과정과 결과는 투명하게 공개되어 정책 결정의 책임성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실체적·포괄적 평가 기준이다. 경제성 중심의 비용-편익 분석을 넘어 사회적 결속, 지역 형평성, 사회적 약자 권리, 세대 간 정의 등을 포함하는 다차원 기준으로 사업을 평가해야 한다. 계량적 분석과 더불어 지역 주민의 생활사 등 질적 데이터도 동등하게 존중해야 한다.
넷째, 역량 및 자원이다. 공공 갈등 조정, 사회 영향 분석 등 제3자 중립 전문가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관련 공무원에 대한 의무 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또한, 위원회와 평가 과정이 정치적 영향에서 벗어나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독립적인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끝으로 정치적 의지와 조직문화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민통합영향평가제도의 성공은 최고 결정권자의 확고한 정치적 의지에 달려 있다. 평가 결과를 존중하는 일관된 리더십이 필요하며, 장기적으로는 제로섬 대결의 갈등 문화를 대화와 타협의 숙의 민주주의 문화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요컨대, 국민통합영향평가는 국책사업 갈등이라는 구조적 실패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적인 국가 전략이다. 이 제도의 도입에는 효율성 저하와 비용 증가를 우려하는 저항이 따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낭비’가 아니라, 향후 발생할 막대한 사회적 갈등 비용을 예방하기 위한 ‘필수 투자’이다.
절차적 정당성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확보된 사업의 정통성은 그 어떤 기술적 완벽함보다 강력한 추진 동력이 될 수 있다. 결국, 국민통합영향평가는 국가와 시민 간의 신뢰를 회복하고, 국가 발전에 대한 새로운 사회 계약을 맺는 과정이다. 국책사업이 더 이상 분열의 상징이 아닌 국민적 자부심과 통합의 상징이 되기 위해, 이제는 국민통합영향평가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