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상풍력 조인트벤처(JV)인 ‘제라 넥스 bp’가 지난 주 공식 출범했다. 일본 니케이아시아 신문이 지난해 12월, 영국 석유 메이저 bp와 일본 최대 전력회사 중 한 곳인 제라가 공동 투자해 JV를 설립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한 지 약 6개월 만이다.
당시 일본 영자지 니케이아시아는 양사의 결합에 대해 글로벌 해상풍력 산업이 수익성 하락 및 프로젝트 비용 상승을 겪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고 분석했다. 두 대형 에너지 기업은 한국, 일본, 대만, 유럽 등에서 보유하고 있는 해상풍력 포트폴리오를 통합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아시아와 유럽 간 해상풍력 협력을 강화해 각국의 재생에너지 정책 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제라의 재생에너지 분야 최고 책임자인 사토시 야지마는 “해상풍력 산업 환경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자재비가 상승하는 것은 물론 프로젝트 비용이 커지면서, 대규모 재무제표가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국에 진출한 해외 해상풍력 기업들도 최근 인력 감축을 추진하는 움직임을 보이며 전 세계 해상풍력 시장의 위축된 업황이 국내 시장에도 여파를 미치고 있는 모습이다.

◇전 세계 4위 규모 동서양 대표하는 대형 해상풍력 합작사 등장
제라 넥스 bp는 지난 4일(현지시간) 이베르드롤라, 에퀴노르, RWE 등 세계 최대 해상풍력 개발사에 이어 4위 규모로 출범했다. 양사는 2030년까지 JERA Nex bp에 최대 58억 달러를 투자해 합작회사를 신설하며, 13GW에 달하는 순발전 용량을 보유한다는 전략이다. 본사는 런던에, 아시아 지역 전담 자회사인 ‘제라 넥스 bp 재팬’은 도쿄에 설립해 동서양에 독립적인 운영 체계를 마련했다.
제라 넥스 bp의 CEO인 나탈리 우스터링크는 “제라 넥스 bp는 동서양을 대표하는 두 에너지 기업의 경험, 관계, 구매력, 그리고 독보적인 글로벌 접근성을 갖춘 두 유능한 팀을 하나로 모았다”며 “해상풍력 산업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이 분야의 세계적인 선도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전문성과 경험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bp의 CEO인 머레이 오친클로스는 “제라와 계약을 체결하여 세계 5대 풍력 발전 기업을 설립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며 “이는 주주들에게 자본 절감 모델을 유지하면서도 탈탄소 시대로 성장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JERA Nex bp는 bp의 해상 에너지 분야 경험과 JERA의 프로젝트 수행 운영 전문성을 상호 보완적으로 결합한 JV다. 이번 합작 투자는 두 회사의 기술과 프로젝트 관리 전문성은 물론, 확립된 조달 역량도 활용할 전망이다. 또한 영국이 청정에너지 산업에서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일본도 유럽 등 글로벌 해상풍력 무대에 본격 진출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마츠오 타케히코 일본 경제산업성 국제협력 담당 차관은 “뛰어난 전문성, 경험, 그리고 역량을 갖춘 일본과 영국 기업 간 협력은 의미가 크다”며 “세계적인 해상풍력 에너지 기업 중 하나인 제라 넥스 bp 재팬이 세계 무대에서 해상풍력 발전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업황 악화에 오스테드 위기...한국 진출 글로벌 기업도 인력 감축
지난 10여 년간 해상풍력 분야는 탈탄소 전환의 핵심 산업으로 주목받았다. 해상 지역은 풍량이 일정하고 발전소 부지 확보가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업황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 원자재 가격 급등과 금리 인상이 겹치며 프로젝트 원가는 치솟고 있다.
세계 최대 개발사인 오스테드도 급격한 비용 상승, 높은 이자율, 정치적 불활실성 등으로 사업 철수나 완공 시점 연기 등 사례를 겪고 있다.
오스테드가 영국 동부 해안에서 추진했던 초대형 해상풍력 프로젝트 혼시어4(2.4GW)는 올해 6월 전격 중단됐다. 혼시어 프로젝트는 세계 최대 단일 해상풍력 단지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녔으나, 원자재 가격 급등과 시공·조달 비용 증가, 그리고 금융 시장의 금리 인상이라는 삼중고를 견디지 못했다. 이로 인해 사업성이 급격히 훼손됐고, 오스테드는 재무적 부담을 감내하지 못하고 사업 철회를 결정했다.
오스테드가 뉴욕 동남부 인근 해상에 건설 중인 선라이즈 윈드(924MW) 프로젝트도 내년도 완공을 목표로 추진했었으나, 핵심 기자재인 모노파일 기반 비용 급등, 공급망 차질, 트럼프 행정부의 해상풍력 발전소 인허가 및 보조금 지원 규제 등으로 사업 차질을 빚었다. 결국 완공 시점을 2027년 하반기로 1년 이상 늦출 수밖에 없었다.
최근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해상풍력 개발사들도 인력 감축을 추진하는 등 사업 축소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프랑스 에너지 기업 토탈에너지스는 해상풍력 담당 한국지사인 ‘토탈에너지스 오프쇼어 윈드 코리아’ 인력 상당수를 올해 6월 축소했고, 노르웨이 해상풍력 기업 에퀴노르도 올해부터 다수 인력을 감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에너지 기업 셸 역시 울산의 부유식 해상풍력 프로젝트인 ‘문무바람’ 사업 지분을 지난해 전량 매각했다.
이런 가운데 출범한 제라 넥스 bp는 전 세계 해상풍력 산업이 본격적으로 ‘규모의 경쟁 시대’에 들어섰음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재무 안정성과 기술 혁신, 정책 적응력을 동시에 갖춘 기업이 살아남는 구조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