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교육계에서 International Baccalaureate (국제 바칼로레아, IB) 교육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세종과 제주를 비롯한 일부 지역은 이미 공립학교 IB 시범 운영을 시작했고, 서울과 경기, 대구 등 다른 교육청에서도 본격적인 도입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 등 주요 대학들 역시 IB 전형을 마련하거나 확대하여, IB 과정을 마친 학생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있고, 경인교육대학교, 전주교육대학교 등에서도 교사양 성대학에서도 IB 교원 자격과정이 개설되고 있다.
부모들은 “IB가 우리 아이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를 묻고, 교사들은 “IB식 수업을 어떻게 내 교실에서 구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언론은 IB가 한국 교육 혁신의 기폭제가 될 수 있는지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관심은 단순한 새로운 교육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다.
한국 교육은 오랫동안 입시 위주의 교육이라는 강점과 한계를 동시에 지녀왔다. OECD가 3년 주기로 실시하는 PISA 평가에서 한국 학생들은 읽기, 수학, 과학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했지만, 창의적 문제 해결과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에서는 낮은 평가를 받았다. 즉, 학생들은 빠르고 정확한 문제 풀이에는 강하지만,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탐구하는 경험은 부족했다.
IB교육의 세계적 권위자인 연세대학교 이무성 교수는 한국 교육이 이제는 국가시험 성적 중심의 패러다임을 넘어, 국제 사회와 연결된 세계시민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IB 교육과정이 단순히 해외 대학 진학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비판적 사고·다양성 존중·글로벌 과제 해결 능력을 길러내는 중요한 교육적 실험이라고 보았다. 또 다른 글에서 세계시민교육의 핵심 요소로 비판적 사고, 다양성 존중, 글로벌 과제 해결 능력을 제시하면서, IB 의 철학이 이러한 가치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IB는 한국 교육에 단순히 도 입된 제도가 아니라, 우리 교육의 본질적 한계와 앞으로의 방향을 다시 점검하는 전환적 계기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교육과정의 탄생과 확산
IB는 특정 국가가 만든 제도가 아니다. 국제사회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교육 철학과 구조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글로벌 교육과정이라고 불린다. 1968년 스위스 제네바에 IB가 공식 출범했을 때, 그것은 단순히 외교관 자녀의 학업 편의를 위한 제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가 겪은 분열과 갈등의 경험을 넘어, 국제적 평화와 이해를 추구하는 교육의 상징이었다.
제네바는 유엔과 국제기구가 밀집한 도시였기에, 국제기구 종사자와 외교관 자녀들이 국가를 옮겨 다니며 학업을 이어가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이들에게는 국적과 상관없이 동일하게 통용될 수 있는 공통 교육과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IB는 단순히 현실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교육을 통해 평화로운 세계시민을 기르는 이상을 담았다.
IB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된 통계에 따르면, 2024년 10월 현재, 160개국 이상의 5,900개 이상의 학교에서 8,000개 이상의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있다 (IBO, 2025). 초기에는 유럽과 북미 의 국제학교를 중심으로 확산되었지만, 지금은 일본, 한국, 호주, 캐나다 등 공교육 시스템에까지 깊이 들어오고 있다. Bunnell은 이를 “IB의 두 번째 물결”이라 부르며, 국제학교 중심에서 국가 공교육으로의 확산이 교육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고 분석한다.
Resnik는 IB를 “교육의 탈국가화 (denationalization of education)”라고 표현했다. 다시 말해, IB는 특정 국가 의 이해관계를 넘어 국제 사회 전체가 합의할 수 있는 교육의 표준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IB의 역사와 배경
IB의 시작은 고등학교 과정, 즉 디플 로마 프로그램(DP) 하나뿐이었다. 이 과정은 대학 입학 자격으로 국제적으 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따라서 엄격한 학문적 기준과 평가 체 계가 필수였다. 특히 시험의 신뢰성과 공정성은 IB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IB의 평가 체계는 독창적이다. 학생들은 내부 평가(Internal Assessment)와 외부 평가 (External Assessment)를 모두 수행한다.
내부 평가는 교사가 학생의 과제를 평가하는 방식이고, 외부 평가는 IB 본부가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시험을 출제하고 채점한다. 이 체계를 통해 IB는 공정성과 지역적 맥락의 균형을 동시에 달성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IB는 초등· 중등 과정으로 확장되었다. 이는 국제 사회에서 “글로벌 교육은 고등학교 단계에서 갑자기 시작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초등 단계의 PYP(Primary Years Programme) 와 중등 단계의 MYP(Middle Years Programme)가 차례로 개발되면서, IB는 만 3세에서 19세까지 전 연령을 아우르는 연속적 교육 체계를 갖추게 되 었다. 1990년대 이후 IB는 국제학교를 넘어 각국의 공교육으로 확산되었다. 일본 정부는 2013년부터 문부과학성 을 중심으로 공립학교 IB도입을 적극 추진했으며, 현재는 일부 현립·시립 고등학교에서도 IB DP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세종·제주가 공립학 교 IB 시범 운영을 시작하며 비슷한 흐 름을 보이고 있고, 최근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IB의 역사는 단순히 하나의 교 육과정이 퍼진 과정이 아니라, 전쟁 이후 국제 사회가 평화를 위해 교육에 맡긴 역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PYP, MYP, DP의 구조와 실제 수업
IB 교육과정은 유아기부터 고등학교 까지 연속적 학습을 제공한다. 구체적 내용은 필자가 방문한 일본 내 IB교육의 구체적 사례와 함께 제시하고자 한다. IB 프로그램의 구성 (IBO 공식 홈페이지 내용을 발췌하여 작성) 첫째, PYP(3~12세)는 주제 중심의 통합적 탐구학습을 강조한다. 여섯 가지 대주제—“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세상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우리는 어떻게 서로 조직하는가?”, “우리는 지구를 어떻게 공유하는가?”—를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예컨대, 필자가 방문한 일본 도쿄도 시나가와의 한 국제학교의 PYP 교실에서는 ‘지속가능한 도시’를 주제로 모형 도시를 설계하고, 아이들이 영어로 직접 발표하는 프로젝트 수업이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단순히 과학적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 환경을 고려한 도시 설계라는 종합적 사고를 훈련한다.
둘째, MYP(11~16세)는 8개 교과군으로 구성된다. 특징은 개인 프로젝트다. 학생은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를 정해 1년간 탐구하고 결과물을 발표한다. 예를 들어, 일본 고치현의 한 MYP 학생은 ‘지역 고양이 문제 해결’을 주제 로 삼아 보호소를 방문하고, 인터뷰를 진행하며, 지역사회 캠페인을 기획했다. 또 다른 학생은 ‘앱 개발’을 시도하며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완성본을 발 표했다.
교사는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의 탐구 과정을 조력하는 퍼실리테이터였다. 셋째, DP(16~19세)는 고등학교 과정으로, 세계 주요 대학에서 입학 자격으로 인정된다. 학생들은 6개 과목을 선택해 심화 학습하고, 세 가지 필수 요소를 수행해야 한다. TOK(Theory of Knowledge)에서는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지식의 본질을 탐구한다.
EE(Extended Essay)에서는 약 4,000자 분량의 대학 수준 연구 논문을 작 성한다. 예를 들어, 일본 요코하마 국제고등학교의 한 학생은 “일본과 한국 교과서의 전쟁사 서술 비교”를 주제로 EE를 작성했다. 이러한 학술적 에세이는CAS(Creativity, Activity, Service)에서는 다양한 학문적 영역뿐 아니라, 봉사활동, 예술, 체육활동 등을 통해 지식이 삶과 사회적 책임으로 연결된다는 IB의 핵심적 교육내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CP(16~19세)는 진로교육(커리어)와 관련된 프로그램으로 마지막 학기 학생들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게 하고, 학업 과목과 자신의 전문적 관심사를 결합하여 진로를 찾아 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과정이다.
Learner Profile과 핵심 개념들
IB 교육의 독창성은 교과 구조만이 아니다. 그 핵심에는 Learner Profile(학습 자상)이 있다. IB는 모든 학생들이 열 가지 특성을 갖춘 학습자로 성장하기를 목표로 한다. 구체적으로 Learner Profile은 열 가지특성으로 이루어진다:
탐구자 (Inquirer) | 의사소통자 (Communicator) | 배려하는 사람 (Caring) | ||||
지식인 (Knowledgeable) | 원칙 있는 사람 (Principled) | 도전하는 사람 (Risk-taker) | ||||
사려 깊은 사람 (Thinker) | 열린 마음을 지닌 사람 (Open-minded) | 균형 잡힌 사람 (Balanced) | ||||
|
|
이러한 특성은 학생이 지식·기술을 넘어서 삶의 태도와 가치를 배우도록 한다. 예를 들어, 한 MYP 학생이 환경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는 단순히 데이터를 수집하는 지식인 (Knowledgeable)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왜 이 문제가 중 요한가?”를 질문하며 Thinker로 성장한다.
또 발표 과정에서 의견을 나누며 Communicator가 되고, 다른 학생의 제안을 경청하면서 Open-minded한 태도를 기른다. 프로젝트가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질 때 학생은 Caring과 Principled를 경험한다. IB 교실에서는 이러한 Learner Profile이 수업 피드백 언어로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교사는 “너는 오늘 새로운 방법 을 시도했구나”, “유연하게 네 과정을 돌아본 점이 인상적이야”라고 말한다. 이렇게 학습자상은 단순한 교훈적 덕목이 아니라, 학생 성장을 구체적으로 언어화하는 도구로 쓰인다.
Learner Profile은 필자가 관심있게 연구하는 세계시민교 육의 핵심 역량—비판적 사고, 다양성 존중, 공동 문제 해결—과 긴밀히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IB가 단순히 학업 성취를 높이는 교육과정이 아니라, 학생의 인성 과 시민성까지 통합적으로 길러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Learner Profile은 “지식 + 가치 + 실천”을 결합하는 IB 교육 철학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IB와 한국 교육의 접점, 그리고 과제
한국에서 IB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해외 대학 진학 때문만이 아니다. 부모들은 자녀가 단순히 시험을 잘 보는 학생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변화시킬 힘을 가진 시민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교사들은 강의식 수업과 객관식 시험만으로는 학생들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없음을 절감한다.
정책 결정자들은 공교육 혁신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고 강조한다. IB는 완벽한 해답은 아니지만, 한국 교육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우리는 어떤 시민을 길러 낼 것인가? 교육의 목적은 단순히 대학 입학인가, 아니면 더 나은 사회와 세계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세계시민 양성인가? IB는 이 질문을 실험할 수 있는 하나의 장이다. 그러나 IB와 한국 교육의 접점에는 뚜렷한 제도적 제약 과 한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공교육 및 현 입시 제도와의 연계 문제
가장 큰 문제는 한국의 공교육 및 대학입시 제도와의 간극이다. IB DP 과정에서 학생들은 TOK, EE, CAS와 같은 심화 학습 경험을 쌓고, 프로젝트·보고서·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역량을 기른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 중심 평가와 프로젝트 결과물은 한국의 대학 입시에서는 직접 반영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현재 일부 대학이 IB 전형을 마련하고 있지만, 전체 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미미하다. 많은 대학들이 IB 성적표를 평가 기준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기존의 대학입시 전형을 주요 지표로 삼고 있다. 따라서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는 IB를 이수하더라도 “국내 대학 진학에 유리할까?”라는 불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IB가 한국에서 널리 확산되는 데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다. 학생들은 IB 학습을 통해 탐구력과 세계시민적 태도를 기를 수 있지만, 입시와 연결되지 않으면 결국 선택의 폭이 제한 될 수밖에 없다.
고등교육(대학)과의 연계 한계
또 다른 문제는 한국의 대학 교육 체제와의 연계다. IB DP는 대학 수준의 학문적 글쓰기와 연구를 강조한다. EE는 대표적으로 고등학생이 대학 학술논문에 준하는 글을 작성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나 한국 대학들은 입학 이후에도 여전히 강의식 수업, 암기 중심 시험, 대규모 수강생을 대상으로 한 획일적 교육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IB를 마친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오히려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대학 교육이 IB 경험을 확장·심화하지 못하고, 다시 지식 주입과 시험 위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는 IB도입이 단순히 중등 단계의 혁신으로만 머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초,중,고등학교 과정에 IB가 강조하는 역량(탐구, 비판적 사고, 협력적 문제 해결)을 보다 확장할 고등교육의 커리큘럼 및 제도적 장치의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적 맥락에서의 과제
IB와 한국 교육의 접점은 분명히 교육 혁신의 기회이지만, 동시에 입시 체제와 대학 교육의 구조적 제약 속에서 시험대에 오른 도전이다. IB가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 교육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초중등 단계에서의 실험을 넘어 고등교육과 입시 체제의 개혁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IB는 일부 국제학교와 특수학교의 프로그램으로만 머무를 위험이 있다.
IB는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교육의 본질을 다시 묻는 거울이다. 탐구와 성찰, 표현과 협력, 책임과 시민성이라는 가치는 IB 교육의 핵심이며, 동시에 한국 교육이 오랫동안 소홀히 했던 부분이다. 최근 한국에서 IB가 주목받는 이유는, 결국 과거의 방식만으로는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는 자각 때문이다.
IB는 완벽한 교육에 대한 해답은 아닐 지라도, 우리 교육의 현재와 미래를 점검하는 중요한 거울이 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지식의 유효기간이 짧아지거나 대학 교육의 권위가 약화되어가는 현재 이후에 IB는 인간의 삶을 건강하게 하는 에너지원으로서 작용하지는 않을까?
글 현재균 교육학박사(일본 쓰쿠바대학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