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사이의 기적, 그리고 조용한 질문
2025년 10월 초, 일본 과학계는 ‘기적의 이틀’을 맞았다. 10월 6일, 오사카대학의 사카구치 시몬(坂口志文) 교수가 면역학 연구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이틀 뒤 8일에는 교토대학의 키타가와 스스무(北川進) 교수가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불과 48시간 사이, 서로 다른 분야에서 두 명의 일본 과학자가 노벨상을 차지한 것이다. 10월 21일 필자가 방문한 일본 분쿄구에 소재한 국립츠쿠바대학 부속소학교 도서관 입구에도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의 사진과 함께 그 소식을 알리고 있었다.
이로써 일본의 자연과학계 노벨상 수상자는 총 개인 30명, 단체 1개 수상을 포함하여 31개에 달한다. 특히 과학 분야는 27명이 수상하였고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에 이은 순서이다. 한국은 비과학 분야에서 문학상과 평화상에서 각 1개, 총 2개를 수상하고 있다.
일본 언론은 “과학입국(科学立国) 일본의 자존심이 부활했다”고 평가했다. NHK와 주요 일간지는 연일 두 과학자의 업적을 분석하며, 이번 수상이 일본의 기초과학 저력을 다시 한번 세계에 각인시킨 사건이라 전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영광이 “현재의 일본”이 아닌“과거의 축적이 만들어 낸 마지막 결실”이라는 경고도 이어졌다.
◇두 명의 과학자가 보여준 ‘기초의 힘’
노벨상은 다이너마이트의 발명가인 스웨덴의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제정된 상으로, 물리학, 화학, 생리학·의학, 문학, 평화의 5개 부문(이후 경제학이 추가되어 현재는 6개 부문)에서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수여된다. 1901년에 창설된 이 상은 특히 자연과학 분야의 세 부문(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이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매년 어떤 연구가 수상 대상이 될 것인가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으며, 각 부문별로 최대 3명까지 시상하고 있다.
교토대학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된 다음 자료에 의하면, 일본은 2025년 10월 기준 개인상으로서 30명과 1개의 단체가 수상하였다. 1949년 유가와 히데키(물리학상)를 시작으로, 도모나가 신이치로, 후쿠이 겐이치, 도네가와 스스무, 혼조 다스쿠, 그리고 2025년 사카구치 시몬(생리의학상), 기타가와 스스무(화학상)까지 이어진다.
이들 중 다수는 교토대학 졸업생이거나 교수로 재직했던 연구자들로 일본 과학기술 발전을 이끌어 온 핵심 인물들이다. 교토대는 “자유로운 발상과 독창적 탐구”를 기치로 내걸고 있으며, 이 같은 연구 문화가 장기간의 축적된 결과가 세계적 성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한다. 이번 두 명의 수상은 교토대학은 기초과학 전통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 사카구치 시몬: ‘면역의 브레이크’를 찾아낸 연구자
사카구치 교수는 인체 면역계가 단지 외부를 공격하는 체계가 아니라, 스스로를 억제해 균형을 유지하는 조절 T세포(Treg)의 존재를 처음 규명했다. 그의 연구는 자가면역질환, 장기이식, 암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하지만 이 발견은 한순간의 행운이 아니라 집념의 결과였다.
그는 1980년대 초, 미국 NIH에서 연구를 시작했을 때 주류 면역학계의 시선을 받지 못했다.“증거가 약하다”, “설득력이 부족하다”라는 이유로 논문이 여러 차례 반려되었고, 연구비 지원도 끊겼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연구 노트에는 10년 넘게 반복된 실험 결과와 실패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번 수상 소감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연구는 기획서로 시작하지 않는다. 질문이 있고, 그것을 붙잡는 용기가 있을 뿐이다.”
그는 ‘연구비가 아니라 질문이 과학을 움직인다’ 라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일본의 젊은 연구자들에게 강렬한 울림을 주었다. “돈보다 질문”이라는 이 단순한 문장은 성과지상주의의 시대를 사는 과학자들에게 가장 낯선 표현이기도 했다.
◇ 기타가와 스스무: 보이지 않는 공간을 설계한 화학자
기타가와 교수는 금속 이온과 유기물이 결합해 자연스럽게 격자 구조를 이루는 금속–유기 골격체(MOF, Metal–Organic Framework)를 발견했다. 이는 고열이나 고압, 촉매를 사용하지 않고 분자 간의 미세한 인력을 통해 자발적으로 결합하는 혁신적 신소재다(일본 산케이 신문, 2025.10.15.).
이 물질 내부는 미세한 구멍이 무수히 뚫린 ‘분자 구조의 그물망’처럼 되어 있어, 특정 분자를 선택적으로 흡착하거나 저장할 수 있다. 이 기술은 이산화탄소의 회수 및 저장(CCS), 수소 연료의 안정적 저장, 공기 중 수분을 모아 식수로 전환하는 장치 개발 등에 응용되고 있다.
공동수상자인 오마르 야기(Omar Yaghi) 교수는 이 구조를 이용해 사막 지역에서 물을 생산하는 기술을 상용화 중이다. 노벨위원회는 그를 두고“상상조차 할 수 없던 기능을 가진 신소재 개발의 길을 열었다”라고 평했다.
일본 과학신문 2025년 10월 12일 기사에는 일본의 화학상 수상자는 이번이 9번째로 후쿠이 겐이치, 시라카와 히데키, 노요리 료지, 스즈키 아키라, 요시노 아키라에 이어 “화학 입국 일본의 계보를 잇는 새 금자탑”으로 평가받았다고 논평했다.
◇다음 세대로 이어가기 위한 과제
일본 사회는 이번 쾌거를 진심으로 기뻐하면서도, 그 기쁨 속에는 조용한 불안이 섞여 있음을 볼 수 있다. 사카구치 교수는 1949년생, 기타가와 교수는 1951년생으로, 둘 다 1980~1990년대 ‘기초연구 황금기’에 성장한 세대다. 즉, 이번 노벨상은 현재의 시스템이 아니라 과거의 연구 환경이 낳은 결실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마이니치신문은 2025년 10월 19일 자 사설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노벨상은 일본의 연구력이 여전히 높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력 저하는 명백하다. 학술 연구를 강화하기 위한 국가적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
”실제로 일본의 과학논문 수는 2000년대 초반 이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며, 세계 인용 상위 10% 논문 비율도 이전에 비해 떨어졌다. 화학 분야 대학원 진학자 수도 줄고 있고, AI·양자기술·생명과학 등 ‘트렌드 분야’로 인력이 이동하면서 기초 화학의 기반이 약화되고 있다.
산케이 신문은 “화학은 일본 산업의 생명선이지만, 지금 그 생명력이 약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일본 산케이 신문, 2025.10.15.). 또 “산학 연계가 일본 화학의 원동력이었으나, 현재는 연구현장의 열기가 떨어지고 있다”며 정부, 기업의 공동 대응을 촉구했다.
이번 노벨상 수상에 대해 소셜 미디어에서는 “やっぱり日本の基礎研究は強い(역시 일본의 기초연구는 강하다)”는 찬사와 함께, “이런 환경이 다음 세대에도 이어질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 반응이 동시에 올라왔다. 한 화학을 연구하고 있는 대학원생은 NHK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노벨상을 꼭 받을 필요는 없어요. 다만,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안정된 환경이 있었으면 좋겠어요.”그 말은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일본이 지금 직면한 과학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틀 사이의 기적’을 만든 세대 이후, 그 바통을 이어받을 새로운 세대를 키울 수 있을까? 이것이 지금 일본 사회가 직면한 가장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과제다. 즉, 연구 환경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시스템과 연구개발비의 확보 및 기초연구와 응용연구를 함께 성장시킬 수 있는 지속 가능성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사카구치 교수가 수상 인터뷰에서 이야기하였듯이 ‘연구비가 아니라 질문이 과학을 움직인다’ 라고 한 점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과학의 본질을 추구하는 연구라고 생각한다.
아래는 교토대학 공식 홈페이지 내용을 필자가 번역한 자료(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