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정부가 해외건설이 고부부가치 산업으로 재도약할 수 있도록 우리 기업이 가진 강점 기술을 집중적으로 육성한다는 내용을 담은 ‘해외건설 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집중 육성할 핵심 분야로는 데이터센터, 송배전 인프라, 에너지저장시스템 등을 제시했다.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초고층 빌딩, 초장대 교량 등과 같은 분야를 더욱 고도화해 독보적인 입지를 확보하고, 원전 등 타산업과 건설이 함께 진출하는 사업은 범부처 지원체계를 가동할 계획이다.
또한 도시, 철도, 공항 등 한국형 기술개발에 성공한 대형 인프라 사업은 중소·중견기업과 대기업·공기업의 동반진출을 패키지형으로 수출한다.
이 같은 정부 정책은 한국의 해외건설 수주금액이 최근 3년 연속 증가하는 추세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11월 기준 누적 해외수주 금액은 446억957만 달러를 기록했다.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6% 증가한 수치로 11월 누적 기준으로 2014년 591억 달러 이후 11년만에 가장 높은 실적이다.
이번 해외수주 규모 급증은 지난 6월 187억 달러(약 26조원) 규모의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수주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내년에도 해외건설 시장이 긍정적으로 흐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관세협상 후속 조치로 국내 기업들이 미국 등 해외시장 투자를 확대할 예정이고,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등에 필요한 에너지 인프라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 삼성물산, 전력 인프라 경험 SMR 사업에 집중...해외매출 비중 52%
여기에 국내 시공능력평가 순위 1, 2, 3위 건설 기업인 삼성물산 건설부문(이하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도 각자 장점을 살려 해외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삼성물산은 최근 5년 연속 해외건설 수주금액 ‘톱3’에 랭크된 해외건설 강자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삼성물산의 올 3분기까지 누적 수주액은 56억400만 달러다. 12월 16일 환율 기준으로 8조2451억원이다.
대표적인 수주 프로젝트에는 △호주 나와레 배터리에너지저장시스템(BESS) 프로젝트(1억4700만 달러) △아랍에미리트(UAE) Al 다프라 개방형 가스터빈(OCGT) 독립형 전력생산플랜트(IPP) 프로젝트(4억8100만 달러) △카타르 듀칸 태양광 발전소(10억4700만 달러) 등이 있다.
삼성물산은 해외건설 부문에서의 매출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 3분기까지 총 매출 10조1045억 중 5조3311억을 벌어들였다. 해외매출 비중이 52.8%나 된다. 같은 기간 10대 건설사 중 해외매출 비중이 과반을 넘는 곳은 삼성물산이 유일한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물산은 작년에 해외매출 비중 47.01%를 기록했고 2023년에도 47.90%를 기록하는 등 꾸준히 실적을 내는 중이다. 이는 수주 이후 짜여진 일정에 따라 착실하게 공사를 진행해 실적으로 이어지게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외건설은 국내 사업보다 변수가 많기 때문에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삼성물산은 올해 그동안 추진해온 소형모듈원전(SMR) 사업이 내년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직 수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그동안 스웨덴, 폴란드, 루마니아 등 유럽 무대를 중심으로 SMR 관련 사업 계획을 추진해왔다.
지난 15일에는 폴란드 SMR 개발사 신토스그린에너지와 SMR 개발 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폴란드 최초 SMR 포함 총 24기 건설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다. 협약식에서 오세철 삼성물산 대표는 “신토스그린에너지와의 긴밀한 협력은 폴란드와 중·동부 유럽 진출의 기반을 확보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지난 10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과 일본 히타치가 합작 설립한 GVH와 유럽·동남아·중동 지역 SMR 사업 확장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스웨덴 SMR 공급망 행사를 진행한 바 있다”면서 “이번 협력을 통해 스웨덴뿐만 아니라 중·동부 유럽까지 유럽 내 SMR 핵심 플레이어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겠다”고 밝혔다.
◇ 현대건설, 내년 미국 대형원전·SMR·AI 데이터센터 복합단지 수주 기대
현대건설은 올해 3분기까지 누적 해외건설 수주액 40억5200만 달러를 달성했다. 1966년 해외건설 수주액 집계가 시작된 이례 역대 누적 수주금액 1위는 단연 현대건설이다. 올해 3분까지 전 기간 현대건설의 누적 수주금액은 1495억3700만 달러에 이른다. 이 부분 2위인 삼성물산으로 980억600만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 현대건설이 수주한 대표적 성과로는 △미국 텍사스 콘초 LUCY 태양광 발전사업(1억6400만 달러) △사우디 New Khulis 380kV 송전 공사((1억7500만 달러) △사우디 Humaij(HMJ) 380KV 송전(2억1300만 달러) △이라크 바스라 해수처리 사업(31억6000만 달러) 등이 있다.
특히 현대건설은 지난 4월 해외건설협회가 주최하고 국토교통부가 후원한 ‘해외건설 1조 달러 수주 및 60주년 기념식’에서 선정한 ‘해외건설 10대 프로젝트’에 총 4건의 프로젝트가 리스트에 올랐다. 해당 프로젝트는 △태국 연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사우디 주베일 산업항 △이란 사우스파 가스전 △UAE 바라카 원자력발전소 등이다.
수주를 기반으로 한 매출 실현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올 3분기 누적 매출 23조2054억원 중 해외매출은 8조8376억원에 이른다. 해외건설 매출 비중은 38%를 기록했다. 지난해 해외건설 매출 비중은 40.1%, 2023년 39.2%로 나타났다.
현대건설도 유망 분야인 해외 원자력발전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물산이 유럽을 무대로 공략하고 있다면, 현대건설은 미국이 주요 전략국가다. 지난 10월 현대건설은 미국 페르미 아메리카(Fermi America)와 ‘복합 에너지 및 인공지능(AI) 캠퍼스’ 내 대형원전 4기 건설에 대한 기본설계(FEED)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복합 에너지 AI 캠퍼스는 페르미아메리카가 텍사스주 아마릴로 외곽의 약 2119만㎡ 부지에 조성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민간 전력망 단지다. △AP1000 대형원전 4기(4GW) △SMR(2GW) △가스복합화력(4GW) △태양광 및 배터리에너지저장시스템(1GW)을 결합한 총 11GW 규모의 독립형 전력 공급 인프라와 이 전력을 연계할 초대형 하이퍼스케일 AI 데이터센터의 단계적 구현을 계획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내년 설계·조달·시공(EPC) 계약 체결을 목표로 사업성, 안전, 공기 등 구체적인 내용을 검토 중이다. 일각에선 계약 규모가 60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대우건설, EPC 능력 기반 해외사업 강화...독보적 해외신도시개발사업 기대감
대우건설은 올해 3분기까지 12억6600만 달러 해외건설 수주를 달성했다. 7억8400만 달러 규모의 투르크메니스탄 ‘투르크메바낫 미네랄 비료 공장’이 대표적이다. 해외건설 매출은 1조5659억원으로 전체 6조3406억원의 24.70% 수준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을 주축으로 구성된 팀코리아의 일원으로 26조 규모 체코 두코바니 대형원전 건설 사업의 시공사로도 참여할 예정이다.
대우건설은 해외사업에서 시장 다변화와 공종 다각화를 위해 신규 프로젝트 발굴에 집중하고 있다. 대형 투르크메바낫 미네랄 비료공장 사업과 같은 대형 EPC 수행 능력을 강화하고 거점 시장 공고화와 점진적 신시장 개척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최근 김보현 대표는 투르크메니스탄을 방문해 현지 주요 관리들과 만나 후속 사업을 논의했다. 이와 관련해 대우건설 관계자는 “석유화학 플랜트 사업 뿐 아니라 다양한 인프라 사업 분야에도 적극 진출하여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2조2000억 원 규모의 이라크 알포항 해군기지, 1조원 규모의 이라크 공군기지, 나이지리아 인도라마 비료 플랜트 추가 설비 공사 등도 막바지 조율 단계에 있어 대규모 해외 일감 확보가 유력하다. 특히 나이지리아는 대우건설의 핵심 거점 국가다.
무엇보다 대우건설의 가장 큰 장점은 해외도시개발사업이다. 건설업계에서 해외도시개발사업은 사업 제안에서부터 투자승인, 파이낸싱, 보상, 시공, 분양, 운영에 이르는 여러 절차와 시간이 필요한 만큼 최소 10년 이상 걸리는 사업으로 접근하기 쉽지 않은 사업으로 알려져있다.
대우건설은 이러한 해외도시개발사업은 정원주 대우건설 회장이 이끌며 성과를 내고 있다. 베느탐 하노이 스타레이크시티 신도시 사업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일를 바탕으로 현재 베트남 타이빈성에 여의도 3분의 1 규모의 끼엔장 신도시 개발사업에 대한 투자 승인도 이끌어 냈다. '끼엔장 신도시 개발사업'은 베트남 타이빈성의 성도 타이빈시 일대에 약 96만3000㎡ 규모의 주거, 상업, 아파트, 사회주택 등이 들어서는 신도시로 2025년부터 2035년까지 10년에 걸쳐 약 3억9000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통해 신도시로 조성될 예정이다.
현재 베트남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나이지리아, 캐나다 등 해외 각지에서 도시개발사업 및 부동산개발사업에 대한 검토를 진행 중이다.
해외건설사업은 국내 주택시장 장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건설사들에 새로운 기회일 수 있다. 국내 건설업계가 매출 비중이 주택사업에 치중돼 있는 현실에서 해외 시장 개척은 필수적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해외건설 수주 지원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겠다고 하면서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진출 기회가 더욱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풍부한 해외건설 경험을 가진 국내 빅3 건설사가 힘을 보태면 부동산 시장 침체기에 해외건설 시장은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