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업은 경영 환경이 점차 개선될 것이란 기대를 품고 사업을 이어가나 실제 현장에서는 이러한 기대보다 불안의 신호가 포착되는 경우가 많다.
거래처의 발주 주기가 점차 늦어지고, 원자재 가격은 불안정한 흐름을 보이며, 환율과 금리 변동에 대한 언급이 잦아질수록 조직 내부의 긴장감 역시 서서히 높아진다. 이러한 인식이 지속되면 조직은 외부 환경의 변화를 관리와 대응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불가항력적인 전제 조건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전략적 판단의 범위는 점차 축소되고, 선택과 조정을 통해 상황을 바꾸려는 경영의 역할 역시 약화된다.
결국 문제 해결 을 중심으로한 적극적인 경영은 뒤로 물러나게 되고, 주어진 환경을 그대로 수용하는 소극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조직 전반에 확산될 위험이 커지게 된다. 사실 위기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경영 전략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급망 불안, 금융 환경의 변동, 소비심리 위축, 규제 강화와 경쟁 구도의 재편과 같은 요인들은 특정 시점에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 형태를 달리하며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구조적 환경 변수에 가깝다. 이러한 환경 변화는 시간이 지나면 해소되는 일시적 문제가 아니라, 기업 경영 전반에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전제 조건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업 경영의 핵심 과제는 위기를 통제하거나 제거하려는 데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위기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환경 속에서도 조직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상황 변화에 흔들리지 않 는 판단 체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 결국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것은 위기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위기를 해석하고 대응하는 조직의 구조와 의사결정 방식이다.
실제 사례를 보면, 위기 상황에서도 조직의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는 기업은 외부 요인의 유 불리에 의해 좌우되기보다는 환경 변화에 대한 점검 체계와 의사결정 기준, 그리고 조직 운 영의 피로도를 관리하는 구조를 사전에 정비해 온 경우가 많다. 이들 기업은 위기를 구조적 붕괴의 계기가 아니라, 대응 체계를 정교화하는 전환점으로 활용함으로써 경영 안정성을 유지해 왔다. 위기 상황에서 중소기업이 반복적으로 범하는 판단 오류를 중심으로 이번호에서는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운영 기준을 단계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 위기 대응 방식의 중요성
대외환경이 악화되면 모든 기업이 동일한 충격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 환율 변동, 금리 상승, 수요 둔화, 거래처 불안과 같은 변수는 업종이나 기업 규모를 가리지 않고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기업별 결과는 분명하게 갈라진다. 같은 업종에 속해 있고,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규모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음에도 어떤 기업은 매출 감소 국면에서도 조직을 유지하며 버텨낸다.
반면, 어떤 기업은 외형 지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도 내부 운영과 판단 체계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 요인은 외부 환경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위기를 마주했을 때 기업이 어떤 기준으로 상황을 해석하고 무엇을 우선적으로 조정하며, 조직을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분명하게 갈리게 된다. 실제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공통적인 요인을 알아보자.
1) 정보는 넘쳐나지만, 판단의 속도는 오히려 늦어진다
실제로 위기일수록 정보는 폭증한다. 각종 경제 지표, 언론기사, 업계 소문, 거래처의 말, 내부 보고 자료가 동시에 쏟아진다. 문제는 정보가 많아질수록 판단이 빨라지기보다는 오히려 더 느려진다는 점이다. 회의는 잦아지고, 보고서는 점점 두꺼워지며, 결론은 다음 회의로 미뤄진다. 결정을 유보하는 사이 현장은 불안해지고 영업은 소극적으로 변한다. 그 사이 고객은 미묘한 흔들림을 감지하고 떠난다. 위기 국면에서 가장 위험한 선택은 잘못된 결정이 아니라 결정하지 않는 것이다.
2) 비용을 줄이려다 ‘회복 능력’까지 함께 잘려 나간다
위기 대응에서 비용 통제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비용을 줄이는 과정에서 조직의 회복 능력까지 함께 제거해버리면 위기 이후에 남는 것은 ‘슬림한 회사’가 아니라 ‘약해진 회사’다. 필수 인력을 과도하게 줄이거나 고객 접점의 품질을 낮추거나, 핵심 거래처 관리 활동을 중단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단기적으로는 손익이 개선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은 위기가 완화된 이후에도 회복 속도를 크게 늦추는 요인이 된다. 위기를 넘긴 뒤 다시 일어설 힘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셈이다.
3) 조직의 불안이 커질수록 내부 탓이 늘어난다
외부 환경이 불안해질수록 조직 내부에는 그 불안을 해소할 대상이 필요해진다. 그 결과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 ‘책임 찾기’다. “영업을 못해서 그렇다”, “생산이 비효율적이라 그렇다”, “구매가 단가를 못 잡아서 그렇다”는 말이 늘어나고, 부서 간 협업은 줄어든다. 위기 국면에서 조직을 무너뜨리는 것은 외부 변수만이 아니다. 불안이 만든 내부 갈등이 누적되면 판단은 더 느려지고, 실행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위기를 관리하지 못하는 회사의 공통점은 외부를 탓하는 시간이 내부를 정비하는 시간보다 길다는 점이다.
4) 선택과 집중보다 중요한 것은 ‘선택의 기준’이다
많은 경영서와 강연은 위기 상황에서 “선택과 집중”을 강조한다.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현실은 다르다. 애초에 선택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매출은 몇몇 거래처에 집중 되어 있고, 핵심 인력 한두 명이 빠지면 즉시 공백이 발생한다. 현금 흐름은 늘 빠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선택과 집중을 외치면 오히려 중요한 것을 잘못 버릴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위기 대응은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는 “어떤 기준으로 결정할 것인가”를 정하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 의사결정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비용 절감 과정에서도 일관성이 사라지고, 무엇을 먼저 조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우선순위 역시 흔들리게 된다. 반대로 판단 기준이 정리되어 있으면 선택의 폭이 넓지 않더라도 의사결정의 속도와 일관성은 확보된다. 위기 국면에서 살아남는 기업은 더 많은 선택 지를 보유한 기업이 아니라, 위기 이전부터 선택의 기준을 정리해 온 기업이다.
◇ 고정비보다 먼저 숨은 변동비를 찾아라
위기 국면에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대응 수단은 인건비나 임대료와 같은 고정비 절감이다. 그러나 고정비는 일단 조정에 들어가면 원상회복이 어렵고, 조직 내부에 남는 손실과 후유증도 커진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핵심 인력 이탈이나 운영 기반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단기 비용 절감이 중장기 경쟁력 훼손으로 전환되기 쉽다. 위기 대응의 출발점은 고정비가 아니다. 위기 초입에서 우선 점검해야 할 대상은 일상적인 운영으로 누적된 변동비이며, 이를 얼마나 정교하게 관리하느냐가 이후 대응 여력의 차이를 만든다.
생산·물류·구매·품질과 같은 운영 영역에는 평상시에는 큰 문제로 인식 되지 않던 비용들이 누적돼 있는 경우가 많다. 불량률이 점진적으로 상승하거나 재작업이 관행처럼 반복되고, 필요 이상의 포장 자재 사용이나 계획 없 이 발생하는 긴급 발주가 잦아지는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비용들은 개별 항목만 보면 경영 신호로 작용한다.
규모가 크지 않아 관리 대상에서 쉽게 제외되지만, 위기 국면에서는 현금 흐름을 서서히 잠식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매출 변동성이 커지는 시기에는 이와 같은 누적 비용이 기업의 대응 여력을 빠르게 약화시킨다. 위기 국면일수록 현장을 다시 점검하고 작은 개선을 꾸준히 반복하는 접근이, 대규모 구조조정보다 훨씬 현실적인 대응이 될 수 있다.
위기는 외부에서 시작되나 결과는 내부에서 결정된다
위기 상황에서는 복잡한 계획이나 장기 전략보다 구성원 모두가 공통으로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명확한 점검 기준을 중심으로 한 운영 방식이 더 효과적이다. 회사가 앞으로의 현금 흐름을 어느 수준까지 관리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 진짜 위험한 것은 매출이 줄어드는 일이 아니라, 현금이 어떻게 빠져나가고 있는지를 모르는 상태다.
반대로 단기 현금 흐름이 가시화되면 불확실성은 줄어들고, 비용 조정과 운영 판단 역시 훨씬 신속하게 이뤄진다. 또 핵심 거래처 몇 곳의 발주량과 결제 패턴이 주 단위로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지속해서 확인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모든 고객을 동일한 강도로 관리하기 어려운 위기 국면일수록 핵심 고객의 미세한 변화가 가장 중요한 가격 인하를 가장 먼저 검토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점검 대상이다. 가격을 낮추기 전에 제품 구성·납기 조건·결제 방식 등 거래 조건 전반에 조정 여지가 있는 지를 우선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격은 한 번 낮추면 회복이 어렵지만, 거래 조건은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 재고에 대한 인식도 중요하다. 재고를 단순한 자산으로만 인식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중요하다. 재고를 자산으로만 보는 순간, 현금이 묶이고 있다는 구조적 위험을 놓치기 쉽다. 위기 상황 에서는 재고가 곧 현금의 잠금장치라 는 인식이 조직 전반에 공유되어야 한다.
비용 절감 방식 역시 점검이 필요하다. 모든 부서에 동일한 절감 목표를 일괄적으로 부여하는 방식은 관리 측면에 서는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핵심 기능까지 약화시킬 위험이 크다. 줄여야 할 비용과 반드시 유지해야 할 비용을 구분하고 있는지가 핵심이다.
마지막으로 회의와 의사결정의 속도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회의 횟수는 늘어 나는데 결론 도출이 지연되고 있다면, 이는 위기 대응 역량이 떨어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위기 국면에서는 회 의의 양보다 판단의 속도와 명확성이 더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