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에 따라 변화되지 않는 조직은 곧 몰락을 의미한다. 무한경쟁시대로 접어든 방송시장에서 상호간의 신뢰와 최상의 품질을 위한 기술경쟁력은 최우선이 될 수밖에 없다. 항상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T미디어웍스는 뉴미디어시대의 선두주자를 열어가고자 한다. 김기배 전무를 만났다.
국내 유일의 종합방송기술전문회사인 T미디어웍스. 프로그램제작에서부터 송출까지 방송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기술력을 갖추고 최상의 품질을 만든다는 목표아래 전 직원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각 분야의 방송전문가들이 모여 뉴미디어시대를 열어가고자 출발한 이 회사는 최고의 기술력과 최상의 품질을 추구한다. 지상파방송 및 케이블방송, 위성방송 및 ,DMB스포츠와 골프 채널을 비롯한 각종 프로그램제작을 해내는 체계적인 시스템은 국내에서는 유일하다.
“우리 회사는 6개의 채널을 제작하고 있는데요. 곧 8개로 늘릴 예정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SBS의 위성DMB와 지상파DMB를 했었는데 위성DMB는 SBS로 가져갔고 지상파DMB만 우리가 하고 있죠. 현재는 SBS케이블채널과 종편방송인 채널A를 우리 회사에서 제작합니다.” 김기배 이사의 설명이다.
원래 T미디어웍스는 SBS자회사성격이었다. 당시 SBS가 몸집을 슬림화시키면서 150여 명의 직원들에게 직책에 따라 주식을 골고루 나눠주는 형식으로 SS비전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던 것. 그때가 2002년이었다. 집안에서 귀염 받던 아이가 세상에 발을 내딛으면서 느끼는 두려움처럼 개척의 길을 걸어야 하는 두려운 도전이 이 회사의 태동이었다.
그럼에도 걱정과 달리 전 직원들의 주주참여의식은 회사가 갈 방향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됐다. 동시에 어떤 의사를 결정함에 있어서는 대다수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어려움도 컸다. 더욱이 5개 채널에 분산되어 있는 기술력들을 한데로 결집해야 하는 문제도 남았다. 한 프로그램에 기술팀, 미술팀, 영상팀 등이 각각이다 보니 바쁜 쪽은 늘 바쁘고 한가한 쪽은 늘 한가하면서도 업무협조가 안 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 몸집만 크고 실효성이 떨어진 회사의 시스템을 새로 구축해 체계화시켜야 하는 것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했다.
단계적인 과정을 거쳐서 새로운 이름으로 태어나다
작년에 종편된 채널 중에서 T미디어웍스가 제작을 하게 된 방송사는 채널A다. 체계적인 틀을 갖춰서 종편에 대비했던 계획이 제대로 들어맞았다. 2011년 4월에 출발해서 연 매출 120억을 기록했으니 1년 동안의 성적도 나쁘지 않다. 올 7월에는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채널들이 한군데로 뭉친다. 지금보다 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되는 이유다.
“지금 우리 회사는 행정업무는 방이동에 있고, 기술진들은 올림픽공원 내에 있습니다. 그리고 5개의 채널들은 각자의 자리에 그대로 있거나 다른 지역에 있어요. 중구난방(衆口難防)이죠. 상암동에 새롭게 짓고 있는 사옥이 완공되는 7월에는 흩어져 있는 모든 채널들이 한 군데로 뭉칩니다. 그래서 방송장비를 옮겨가는 준비를 우리 엔지니어들이 설계를 하고 있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엄청난 공사거든요.”
방송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로 나뉜다. 여기서 소프트웨어라고 하면 작가나 연출자, PD를 말한다. 하드웨어는 미술이나 카메라, 엔지니어와 같은 기술력을 뜻한다. 이 회사의 경쟁력은 최고의 하드웨어다. 채널마다 각각의 사장들이 있고 그 사장들을 대표하는 총괄사장체계는 합리적인 경영을 하는데 큰 힘이 된다. 이러한 조직개편을 단행한 사람은 이준실 대표이사다.
사업영역을 확장하고자 하는 분야도 무궁무진
“우리 회사는 처음에 SBS에서 분사해서 나올 때 SBS라는 상호를 쓸까말까를 고민이 많았죠. 그런데 변화되는 경쟁사회에서 사업영역을 확장하지 않으면 회사가 성장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해서 SBS상호를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SS비전이라는 상호는 그래도 끈을 완전히 놓는데 대한 아쉬움이었죠. 모태가 SBS방송국이고 전 직원들이 SBS직원들이었으니까요. 초창기 SS비전은 SBS와 관련이 있는 자회사의 성격이었죠. 그렇지만 T미디어웍스는 전혀 상관없는 완전 독립된 회사에요. 채널A처럼 협력사일 뿐이죠. 채널A만 해도 기술과 제작은 모두 우리 직원들이 맡고 있고 광고, 행정, 기자, 그리고 PD 한두 명만이 방송국에 있죠. 송출만 담당하는 구조에요. 이런 시스템은 몸집이 큰 방송사에 비해 상당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채널A에서 우리 회사에 요청한 직원이 60명이에요. 기술 감독, 카메라감독, 오디오, 비디오감독 등 기술을 필요로 하는 분야는 대부분이 이 회사의 직원들이죠.”
불필요한 관계를 미련 없이 잘라버리고 경영의 지배구조에 맞춘 경영진들의 강력한 리더십은 정글과 같은 이 사회에서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잣대로 작용한다. 대부분의 외주제작사들이 한두 명의 직원을 고용해서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비해 이 회사는 최고의 장비와 최고의 기술력으로 방송의 서비스를 개선해나가고 있었다. 이 회사는 중계차를 SBS에서 임대해서 쓰고 있다. 중계차는 스포츠경기장과 같은 현장에 투입되는데 현재 100%가동된다고. 50억 원 정도가 드는 중계차를 조만간 직접 구입하여 방송장비를 장착하기 위한 설계도 한창이었다.
기획에서 드라마까지 모든 분야를 해낸다
T미디어웍스는 기획에서부터 드라마까지 모든 분야를 해낸다는 최후의 목표까지 세워놓았다. 지금은 7개의 채널을 소화해내는 것만 해도 바쁘기 때문에 단계별로 하나하나를 세워서 추진해간다는 계획이다. 방송환경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선두주자로서 차후에는 엔터테인먼트까지 사업도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경쟁력이 있는 기술력을 갖췄기에 사업영역을 확장하고자 하는 분야도 무궁무진해 보인다.
“분야별 아웃쇼싱형태의 시스템의 장점은 협력차원에서는 장점이고요. 소프트웨어의 서비스질도 상당히 좋아질 수 있어요. 채널 A만 보더라도 다른 종편채널과는 비교가 되잖아요. 이번 종편에서 사고가 안 난 회사가 유일하게 채널A인데요. 그만큼 현장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말이에요. 채널A는 우리 회사 경력직원들이 전체의 40%정도나 돼요. 나머지는 경력사원들로 채웠고요. 결국은 기술력을 가졌다는 것이 엄청난 경쟁력인 거죠. 이제는 환경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해요. 과거처럼 몸집만 부풀렸다간 성장은커녕 주저앉게 되는 거죠.”
이 회사 200여명의 직원들 70%는 정규직이다. 나머지는 연봉직인데 2년이 지나면 대부분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2년 기간제인 파견직도 있다. 이들도 성실하다고 판단되면 단계를 거쳐서 정규직으로 수용한다. 올해는 종편이 생기면서 신규채용을 60여명 했다. 분야의 특성상 신규사원이라고 해도 대부분은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다. 학력철폐를 기본으로 하지만 전자공학이나 컴퓨터그래픽과 같은 분야는 어쩔 수 없이 대학을 졸업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 신규채용에서 합격한 미국 일리노 주립대 유학생은 미국 시민권자인데 한국으로는 취업비자를 얻어 왔다고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영상이나 이런 걸 좋아하니까요. 이 직원은 연봉직도 상관없다면서 안 따진다면서 취직시켜 달라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우리나라까지 왔다는 말을 듣고 너무 놀랐죠. 우리시대에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거든요.”
이 회사는 고졸사원 채용대신 인턴사원을 뽑는다. 한국예술종합전문학교와 서울호서전문학교와는 ‘산학협정식’을 맺어서 학생들이 3학년 때 수업대신 현장에 나와서 실습을 하도록 한다. 실습을 한다고 해도 학생들에게는 매달 100만 원의 급여가 지급된다. 1년간 실습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시험을 볼 때 학교로 돌아간다.
석사학위 기네스기록을 가진 사나이
이른 30대 중반에 세상의 이치를 깨달고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던 김기배 이사는 살아남기 위해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의 권유에 밀려 고리타분하다고 싫어하는 아카데미 카메라 교수까지 했다.
“그게 제 인생의 전환점이 아니었나 싶어요. 시간도 남겠다 공부만 죽어라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공부를 하다보니까 중독증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오기도 생기고요. 그래서 내친김에 석.박사를 해보기로 했죠. 같은 해에 입학해서 서강대에서는 방송전공을, 한양대에서는 뉴미디어를 전공했어요. 석사학위는 이틀에 걸쳐서 땄는데 우리나라 최초 기네스기록이라고 하더라고요. 박사학위는 경희대에서 했어요.”
열심히 공부한 만큼 업무에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철학으로 새벽방송을 지원해 새벽 4시면 출근하고 주말이나 휴일에 하는 드라마는 다 지원해서 일했단다. 그러고도 5권의 책도 썼다. 그 열정이 명함에 적힌 ‘언론학박사’라는 문구가 대신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온 그가 한 마디 했다.
“세상은 공평해서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더라고요. 공부한다고 보낸 8년 반 가족들과 정겨운 시간을 가질 시간이 없었는데 아이들은 벌써 성장해버렸고요. 위장병도 생겼어요. 그래서 요즘은 하루에 한 시간 정도 매일 올림픽공원을 걷고 있습니다.”
기자가 취재한 날도 우린 올림픽공원 내에 있는 회사의 장비와 스튜디오를 돌아보고 겨울운치가 듬뿍 내려앉은 올림픽공원을 걸으며 목 젓이 보이도록 한참을 웃었다. 결국 행복이라는 것은 이렇게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이라는 것을 세삼 느끼면서.
[MBC 이코노미 2012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