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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영화 터널> 대한민국의 현실을 담다


올해 7월, 하정우, 배두나, 오달수 주연의 재난영화 '터널'이 개봉됐다. 이 영화는 개봉 6일 만에 관객 수 700만을 돌파하면서 큰 흥행을 거두었다. 영화 터널의 장르는 재난영화다. 사고현장이 아닌 터널을 배경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터널이라는 제한적인 공간에서 한 사람이 겪는 재난 상황을 1인칭 시점으로 박진감 있게 살려냈다.


관객들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감대라 공포감을 더욱 느낄 수 있었다. 영화 터널의 원작은 소재원 작가의 첫 소설 ‘터널 : 우리는 얼굴 없는 살인자’다. 터널 감독 김성훈은 이 소설을 읽으며 화가 나고 어이가 없는 사회 현실에 대해 슬픔을 표했다고 밝혔다.


영화 ‘터널’은 영화전반을 통해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날카롭고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일화의 줄거리는 자동차 영업사원인 김정수가 일을 마치고 딸의 생일 케이크를 사들고 지방의 하도터널을 지나가다가 무너진 터널에 갇히게 돼 구조를 기다리는 상황에서부터 시작된다. 터널 속에서 구조되기 전까지 인간의 강한 생존욕구와 감정의 변화들을 보여주는데, 구조를 기다리던 중, 매몰된 한 여자(민아)와 애완견을 발견하게 된다. 갈증을 느끼는 민아를 위해 얼마 남지 않은 물을 나눠주고, 같이 있던 강아지에게도 먹을 것을 나눠먹으며 같이 살아남아 나가자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터널 붕괴 후에 애초부터 잘못된 설계도 때문에 지연되는 구조작업으로 다른 하도 2터널의 개통이 늦어지자 생존자의 구조를 중단하고 하도 2터널의 개통공사를 재개하자는 여론이 더 커진다. 생존자의 목숨을 외면하면서까지 무너진 터널을 폭파하자는 국민들의 여론이 60%를 넘어선다. 밖에서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 세현(배두나)도 권력자들과 여론에 의해 구조포기를 동의하게 된다. 하지만 이에 맞서 구조 대장 오달수가 주인공의 생존사실을 확인하고 터널폭파를 막고 35일 만에 김정수를 구조하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 속 이정수는 터널 속에 갇힌 후에도 구조를 기다리면서 라디오채널 속 클래식음악을 듣는 등 터널 속 생활을 즐긴다. 붕괴 초반엔 두려움, 분노, 화를 내다가 시간이 흘러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인정하게 되고 마지막으로 좌절하는 모습은 인간이 절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에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또 구조작업의 허탕과 터널재공사 여론이 짙어지면서 이정수는 터널 속에서 버틸 수 있다는 마음이 약해져만 간다. 더욱이 같이 매몰된 민아가 죽음을 맞게 되면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자책감을 느끼고 슬퍼한다.


이정수 아내 세현은 남편이 터널 속에 갇힌 사실을 알게 되고 밖에서 구조협조를 돕는다. 하지만 구조작업을 하다 희생한 분의 어머니의 “너 때문에 내 아들이 죽었다”라는 통곡을 듣고 욕을 먹기도 한다. 결국 구조를 하지 못한 채 남편도 이미 죽었을 거고, 국민들도 그것을 원한다는 말에 세현이 내뱉은 “만약 살아있다면 그 사람한테 미안하지 않겠어요?”라는 대사는 대중들에게 어떤 사건을 상기시킨다. 구조중단과 터널공사재개에 어쩔 수 없이 동의를 한 후, 남편이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라디오 방송을 찾아가 “미안해. 근데 듣고 있으면 어떡하지”라며 남편을 구하지 못했다는 슬픔과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함에 가슴 아파한다.


정치인들의 현실도 풍자


이 영화는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정치인들의 현실도 풍자하고 있다. 안전행정위원회 장관 김해숙과 관료인들은 슬퍼하는 세현에게 동정을 하는 듯이 기념사진을 찍자고 한다. 김혜숙은 구조중단 후 폭파지시를 내리지만 터널 속에서 생존자가 구조된 상황을 보고도 난 모르쇠라는 태도로 “내가 뭘 잘 못했어”라는 대사는 현시점 정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영화 속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나 몰라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구조 대장 김대경(오달수)은 정치, 언론인들을 비판하는 살아있는 영웅이다.


매몰된 이정수에게 구체적으로 살기위한 방법을 제시하면서 주인공에게 희망을 주기도 한다. 하도터널 대책위원회에서 한 관계자의 “이전에도 터널공사 당시에 도롱뇽 한 마리 때문에 공사를 연기 및 중단하여 피해가 있지 않았나” 라는 대사가 있다. 이에 김대경은 “저 안에는 도롱뇽이 아닌 사람이 갇혀있다”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모두가 구조포기를 할 때 “기다리라고 했는데 그냥 가버리면 미안하잖아”라며 끝내 이정수를 구한다.


재난영화로 사회 풍자


‘터널’은 재난영화로써 특이하게도 어떤 전조도 없이 터널이 붕괴되는 것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주인공은 직접 상황에 맞서 극복을 하지도 않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이 한 순간에 재난의 현장으로 바뀌는 처참한 상황을 오히려 하정우의 재치 있는 대사와 먹방으로 우습게 그려낸다. 터널 안의 하정우의 긴박한 움직임, 생존도구로 케익과 개 사료, 소통수단으로 핸드폰과 라디오 등 재난영화의 단편적인 틀을 깨면서 관객들에게 흥미를 유발시킨다.


스펙터클한 영상미와 멋지게 구출을 도와주는 영웅은 나오지 않지만 재난 속에 고립된 한 인간의 심리변화를 단층적으로 묘사한다. 여기서 우리는 일반 재난영화가 다르게 대다수를 중심이 아닌 한 사람으로 그려낸 것이 흥미롭다. 한 사람이라서 그 안에 공포감은 더 전달되고 한 사람이기 때문에 터널 밖 세상이 한 인간의 생명에 대해 어떻게 대하는지 여과 없이 드러난다.


그러나 ‘터널’은 단순한 재난영화인 줄 안다면 착각이다. 오히려 사회비판영화에 가깝다. 영화 ‘터널’은 안전무지증인 우리 사회현실에서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과 동시에 몇 년 전 대한민국의 대참사와 이에 대한 정치적 대응태도가 오버랩이 된다. 재난 속에서 나타나는 부조리한 사회현실, 사익만 챙기는 정치인, 자극적인 특종기사에만 목을 매는 언론인들을 비판한다.


영화속 건설관계자는 “대한민국에서 FM대로 지어지는 건물이 어딨나”라는 대사는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보여준다. 재난사고를 보고 장관의 “왜? 나? 나는 잘못 없어”라는 태도는 현 시점의 정치적 상황도 보이기도 한다. 관객들의 분노와 답답함을 샀던 언론은 보도를 위해 이정수와 통화하는 상황에서 배터리를 아껴야하는 상황인데도 “지금 심경이 어떠신가요?” 등의 틀에 박힌 질문만 해댔다. 언론에서는 최선을 다해 구출하겠다고 보도를 했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구조상황이 부진한 상황이었다. 이정수가 구조된 순간에도 “하루만 더 늦게 구출되지”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언론의 자극적인 특종기사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그려냈다.


감독은 “세월호 사건을 의도하고 만들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 사건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밖에 없다. 잘못된 설계도와 부실공사, 안전사고를 대비한 정부의 미흡한 태도로 재난은 이미 예고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정안전처 장관은 사고에 대해 “알아서 하세요”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은 세월호 참사 당시 누군가를 반영한 듯하다.


또한 주인공이 아닌 또 한명의 매몰된 희생자(미나)는 터널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녀에 대한 무관심은 세월호사건 때 희생된 사람들을 향한 사회의 시선이 매치된다. 하지만 ‘터널’과 현실은 달랐다. 오히려 현실은 더 가혹했다. 터널 속 이정수는 구조됐지만 세월호 사건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고원인, 대통령의 7시간의 행적조차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영화에서는 이정수를 구하는 구조대장이 존재했지만 과연 우리사회에선 존재할까?


우리는 이정수인가, 이정수를 죽이려한 국민인가.


영화 터널과 현실에서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우리의 모습은 두 인물로 나눠진다. 터널에 갇힌 이정수, 이정수를 죽이려한 이기적이고 냉소한 시민이다. 요즘 사회는 이런 재난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만약 이정수처럼 재난을 맞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정수는 긍정적으로 희망을 가지지만 국가적 차원으로 해결되어야할 문제를 개인이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재난을 극복할 순 없었다.


영화 속에서 이정수는 현실적인 인간의 처절한 생존욕구와 더불어 인간적인 미를 보여준다. 터널에 갇힌 또 다른 생존자를 발견해 생존자를 위해 물과 식량을 나눠주지만 한편으로는 식량을 뺏긴다는 생각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생존자가 결국 죽게 돼 자신의 이기심에 의해 죽었다는 자책감에 미안함을 느낀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과연 이정수처럼 식량을 나눠줄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재난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지라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시기하면서 상대방을 밟고 이 세상을 살아남는다는 생각에 쉽사리 주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우리는 밖에서 이정수를 지켜보는 시민이 될 수도 있다. 요즘 영화가 현실이 되고 현실이 영화가 되는 시대다. 영화에서 터널사고가 전국에 알려져 “국가 안전이 무너졌다”고 언론에 보도되면서 국민들은 터널 안에 갇힌 이정수를 같이 걱정하고 염려하면서 구조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구조작업이 지연되고 희생자가 발생함으로써 이정수가 살아 있을까하는 의문을 품고 국민들의 머릿속엔 이정수가 잊혀져갔다. 또한 하도2터널 공사가 지연되자 언론과 정치인들에 휩싸여 “이제 그만하고 터널공사를 재개하자”는 여론이 짙어지며 이정수를 죽었다 단정 짓고 터널폭파를 결정하게 된다.


우리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자신이 사고당사자가 아니라면, 또는 이미 구조가 불가능한 사고라면, 그로인해 잃게 되는 금전적인 이익에 결국 우리는 영화처럼 잔인하게 이정수에게 등을 돌리지 않을까 싶다. 영화의 마지막에 구조된 이정수는 사고 후 아내와 함께 터널을 지나가기 전 트라우마를 겪듯이 긴장하지만 아내가 손을 잡아주면서 통과하게 된다. 이정수와 아내는 터널에서 빠져나왔지만 사회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영화 ‘터널’에 갇힌 이정수는 구조됐지만 현재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헤매고 있는 대한민국은 구조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MeCONOMY magazine  December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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