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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철칙 깨트린 국민연금, 산산이 조각난 국민신뢰


<m이코노미 이홍빈 기자> 1988년 처음 도입돼 지난해 기준 가입자가 2,000만 명을 넘긴 국민연금기금(NPS)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국민의 연금으로 자리잡았다. 201610월 기준 국민연금기금의 총액은 5458,266억원으로 전 세계 공적 기금 가운데 기금자산이 가장 큰 일본의 공적연금과 노르웨이의 GPEG(정부연금기금글로벌)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는 기금이다. 하지만 국민의 든든한 노후 생활 버팀목이 되기 위해 조성된 국민연금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최근 터져 나온 국민연금의 기이한 운용으로 국민들의 연금에 손해가 발생하자 수많은 사람들은 분노하기도 했다. 국민연금은 왜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국민연금은 대한민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적연금이다. 201610월 기준 국민연금 가입자만 2,180만 명이 넘어가며, 실제로 연금을 수령하고 있는 사람도 400만 명이 넘어선다. 2016년 한해에만 가입자들의 연금보험료 납입금액과 운용수익 등을 합쳐 48조원이 늘어났고, 연금지급액과 운영비 등 각종 지출을 제하더라도 33조원이라는 돈이 국민연금기금에 추가됐다.

 

국민의 미래, 사회보장제도 국민연금

 

인간은 질병과 노령, 장애, 빈곤 등 문제를 겪으며 살아간다. 이는 누구나 겪는 인류보편적인 문제다. 과거 이 같은 문제는 사회구조적 대안이기보다는 개인이나 가족의 책임 아래 견뎌야했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넘어오면서 개인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각종 사회적 위험이 생겨났고, 개인 차원에서 다루어지던 문제들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다양한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빈곤을 해소해 국민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마련된 제도적 장치가 바로 사회보장제도다.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회보장제도는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과 같은 사회보험제도가 있으며, 생활보호와 의료보호를 주목적으로 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그리고 노인·부녀자·아동·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다양한 사회복지서비스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1988년 실시된 국민연금제도를 통해 대한민국은 사회보장제도의 외현을 확장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산업화 이후 생활수준의 급격한 상승과 함께 의료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해 평균수명이 늘어난 반면, 출산율은 급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령인구비율은 20007.2%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기 시작했고, 2017년과 2026년에는 각각 고령사회와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UN기준 고령화 사회 7%, 고령사회 14%, 초고령사회 20%) 고령화 속도가 매우 빠르다던 일본이 고령사회와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데 각각 24년과 11년이 걸린데 반해, 우리나라는 17년과 9년밖에 걸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출산율 저하, 1인 가구 증가 등과 같은 사회적 이슈는 국민연금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현실 속에서도 스스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은 적다. 가난한 사람들은 지금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노후 준비냐라고 이야기하고, 젊은 사람들은 “20, 30년 후의 노후준비를 왜 벌써 해야 하나며 노후준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이다.

 

사고나 질병 등 각종 사회적 위험은 언제 어디서 들이닥칠지모른다. 특히, 현대사회는 도시화·산업화로 인해 교통사고, 산업재해 등 각종사고의 위험이 크게 증가하고 있어 이같은 위험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그리고 이런 위험을 개인이나 가족 스스로 해결하기에는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국가를 필두로 사회구성원간의 공동체적 연대와 세대 간의 부양시스템에 기초한 국민연금제도가 필요하다.

 

국민연금의 배신, 삼성의 손에 놀아난 국민의 노후자금

 

국민연금기금운용지침에 따르면 국민연금기금은 수익성 안정성 공공성 유동성 운용독립성 등 5대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550조원대 기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의 가장중요한 원칙은 독립성이다. 국민연금공단이 2,000만 대한민국 국민의 노후 자산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다. 또한 국민연금은 국민들의 소중한자산을 지키기 위해 투자에 있어서도 수익성을 따지고 항상 신중한 결정을 해야한다. 특히, 어느 특정인의 이익을 위해편의를 봐주는 식의 운용도 절대 금지된다. 하지만 그 철칙을 국민연금 스스로가 깨트렸다. 20157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찬성하며 사실상 삼성이라는 특정인을 위해 운용했기 때문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의 핵심은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4.1%였다. 이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뒤를 이어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의 경영권을 승계하는데 있어 화룡점정과 같은 지분이었다. 그러나 당시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총수 일가가 보유한 삼성물산의 주식은 삼성물산을 지배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삼성물산 주식 7.12%를 가진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 반대 입장을 공식화하며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 승계 작업에 제동을 걸었다. 아울러, 당시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마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은 부적절하다며 합병 반대를 권고했다. 한국거래소 등 한국기업지배구조원과 제일모직이 자문을 의뢰한 회계법인마저도 합병 비율이 부적절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이런 상황이 닥치자 모든 관심은 삼성물산 지분을 11.21%보유한 국민연금으로 쏠렸다. 국민연금의 판단으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의 여부가 결정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운용원칙에 따르면 해당 합병을 찬성해서는 안됐다. 삼성 측에서 제시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10.35)에 동의하면 해당 지분만큼 국민연금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이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의사결정 시스템은 무력화됐다. 원칙대로 외부인으로 구성된 전문위원회에서 해당 안건을 처리해야 했다. 그러나 외부위원들의 성향을 분석해본 결과 100% 찬성 의결이 어렵다는 판단이 서자 기금운용위원회의장인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기금운용본부 내부직원들로만 구성된 투자위원회에서 삼성물산 합병 안을 찬성을 처리했다.

 

삼성물산 합병으로 국민 노후자금 5900억원 손실 vs 계산상 오류

 

국민연금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지지한 이후 이재용 부회장 일가는 빠르게 합병을 진행했다. 2015717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주주총회가 열렸고, 삼성물산 합병 안은 69.5%의 찬성을 얻으며 이재용 부회장의 뜻대로 흘러갔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를 뒤에서 지켜보던 국민연금은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져야했다.

 

시장 정보업체인 재벌닷컴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5,900억원의 손실을 입었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국민연금이 보유했던 삼성물산 지분 가치가 21,050억원에서 15,187억원으로 줄어들었다고 분석했기 때문이다. 재벌닷컴은 국민연금이 합병 전 보유하고 있던 삼성물산 지분 11.61%와 제일모직 지분 5.04%, 합병 이후 보유중인 삼성물산 지분 5.78%의 시장가치 차이를 비교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삼성 측은 계산상의 오류라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 이후 10월과 12월 사이 1695,868주를 매각한 바 있는데 이를 반영하지 않아 평가 손실이 실제보다 더 과장됐다는 주장이다. 삼성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정확한 평가손실 규모는 합병 당시 보유 주식수를 기준으로 산정해야 한다면서 이를 적용할시 국민연금의 손실 추정액은 2,327억원으로 재벌닷컴이 주장한 5,900억원의 절반이 안 된다고 알렸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중대한 결함

 

20162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투자 잔액은 915,000억원으로 국내 상장주식 시가총액 1,4077,000억원의 6.5% 수준이다. 회사별 지분율의 경우 국민연금이 5% 이상 보유한 종목이 122개사이며, 이 가운데 10%이상 보유 종목만 33개사(20161분기 기준)에 이를 정도로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큰 손 역할을 한다. 현재 국민연금 기금운영위원회 의결권 행사 여부는 운용본부 내 투자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한다. 기금운용전략실장이 의결권 행사 안을 마련해 정해진 기일까지 준법 감시인에게 송부하는 방식이다.

 

다만 자체 찬반 판단이 곤란할 경우 기금운용위원회 산하주식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이하 전문위원회)에 결정을 요청할 수 있다. 전문위원회 위원은 총 9명으로 정부추천 2, 사용자, 노동자, 지역가입자 대표가 각각 2, 연구기관에서 1명이 참가한다. 한신대학교 국제경제학과 전창환 교수는 현행 기금운용체계와 기금운용위원회가 몇 가지 중대한 결함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기금운용계획수립 상설지원 조직에 불과한 보건복지부, 그 중에서도 연금재정과가 기금운용체계전체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공단이나 기금운용본부 모두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이라는 이유로 독립적인 조사·연구를 수행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보건복지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국민연금의 전략적 자산배분에서 주요한 결정사항은 보건복지부와 기금운용본부가 다 결정한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금운용위원회의장직을 맡도록 돼 있어 주무부처나 상설지원조직 수준을 훨씬 넘는 위상과 역할을 맡고 있다는 주장이다.

 

전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형식적으로 국민연금의 최고의사결정 및 심의기구로 돼 있는 기금운용위원회가 기금운용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전략적 자산배분에서 전혀 자기본연의 권한과 능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모든 사회보장 공적 연금에서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탁자이사회 내지 집행이사회가 자산군의 설정과 변경 자산군 별 자산의 비중 등을 결정하지만 기금운용위원회는 전혀 그런 역할을 수행하지 못 한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공적 연기금의 자산운용에 관한 전문성이 거의 없는 기금운용위원회의 가입자대표들은 보건복지부와 기금운용본부 등이 막후에서 마련한 주요 전략적 자산배분 안을 사후 형식적으로 심의할 뿐이라며 전술적 자산배분에서 기금운영위원회 역할은 전무하고, 기금운용본부 전문 운용인력들만이 주된 역할을 할 뿐이라고 알렸다. 이어 전 교수는 국민연금의 주식투자비중이 전체 자산에서 20%에 육박하고 향후 이 비중이 크게 늘어날 것을 감안할 때,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지가 매우 중요해 진다기금운용위원회의 민주적 대표성과 함께 기금운용위원회가 독립성을 가지고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수술 들어가는 국민연금 의결권과 기금운용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지난 1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찬성표를 던진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특검에 의해 구속 기소됐다. 삼성물산 합병 당시 문 장관은 국민연금에 불리한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하면서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승계를 도왔고, 이로 인해 국민연금이 수 천억원대의 손해를 입혔다. 이는 독립성과 함께 특정인을 위해 운용해서는 안 된다는 국민연금의 철칙을 처참히 짓밟은 처사였다.

 

이에 참여연대,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등은 지난 1월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국민의 노후자금으로 삼성 경영권 승계를 도와준 불법행위자들에게 책임을 물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문 전 보건복지부장관과 박근혜 대통령, 이재용삼성전자 부회장,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 최순실 등 5명에게 5천억원의 손해배상청구를 신청했다. 정혜경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은 국민연금을 지켜야 할 금고지기들이 자신의 역할을 망각하고 재벌이익을 위해 불법행위를 저질렀으며,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국민연금을 악용한 불법행위자 5명을 꼭 처벌해야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국민연금기금 운용에 대한 시민사회의 불만이 커져가자 정부는 삼성물산 합병 때와 같은 기금 의결권 행사를 둘러싼 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금운용 체계에 칼을 대기 시작했다. 지난 1월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의결권 행사 절차 개선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의결권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기금운용체계 개편을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 피와 땀, 국민연금의 가치

 

그동안 국민연금 기금을 두고 누가 어떻게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두고 제도권 내에서는 수년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현 정부여당측은 국민연금 기금의 수익성을 최대로 끌어올리고, 기금운용본부를 공사 형태로 완전히 독립시켜야한다고 주장했고, 야당 측은 안전성을 우선으로 수익성을 강조하며, 가입자의 대표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고 현행 체계의 내실화를 주장해왔다.

 

하지만 삼성물산 합병 사태를 통해 처참히 짓밟힌 국민연금을 보고 분노한 시민들은 현재 제도권에서 주장하는 수익률이나 안정성을 따지고 싶은 상황이 아닌 듯하다. 그들은 다양한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 빈곤을 해소해 국민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마련한 제도적 장치인 국민연금의 가치를 훼손한 자들에 대한 강력한 징벌을 부르짖고 있다.

 

MeCONOMY magazine February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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