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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땅에 내 조상묘’, 분묘기지권 대법원 ‘아직은...’

대법 62년 만에 재확인 판결
“2001년 장사법 이전에 설치된 묘지 권리 인정”


[M이코노미 최종윤 기자] 지난해 하반기 법조계를 뜨겁게 달군 ‘분묘기지권’ 논란이 일단락됐다. 대법원은 1월19일 “아직까지 분묘기지권에 관한 관습법의 존립 근거가 상실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 “여전히 우리 사회에 분묘기지권의 기초인 매장문화가 자리 잡고 있고 사설묘지의 설치가 허용되는 등 분묘기지권에 관한 관습법이 소멸했다는 뚜렷한 자료는 없다”고 이유를 밝히며, 아직은 ‘분묘기지권’을 법적 권리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지난 2011년 12월, 강원도 원주시 소재 한 임야의 소유자인 A씨는 자신의 땅에 있는 B씨 조상의 6기의 분묘를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B씨에게 요구했다. 하지만 B씨는 이에 응하지 않았고 결국 사건은 소송으로 번졌다. 해당사건의 1, 2심 재판부는 “6기의 분묘 가운데 5기의 분묘에 관해서는 20년의 취득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로 B씨의 분묘기지권을 인정했다. 그러자 A씨는 “분묘기지권의 시효 취득에 대한 관습법은 없다. 관습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 등으로 소멸했다”면서 대법원 판례가 이제는 변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묘기지권, 우리나라 고유의 ‘매장’ 문화에서 기인


분묘기지권은 분묘를 수호하고 봉제사하는 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범위 내에서 타인 소유의 토지를 사용할 수 있고, 토지 소유자나 제3자의 방해를 배제할 수 있는 관습상의 물권이다. 여기에서 분묘란 내부에 사람의 유골, 유해, 유발 등 시신을 매장해 사자(死者)를 안장한 장소를 말한다.


대법원은 오랜 기간 동안 ▲타인 소유의 토지에 소유자의 승낙을 받아 분묘를 설치한 경우 분묘기지권을 취득하고, 자기 소유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사람이 토지를 양도한 경우에 분묘를 이장하겠다는 특약을 하지 않는 한 분묘기지권을 취득한다고 판시해 왔다. 또 ▲타인 소유의 토지에 소유자의 승낙 없이 분묘를 설치한 경우에도 20년간 평온, 공연하게 그 분묘의 기지를 점유하면 관습상의 물권인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하고, 따로 등기 없이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것이 관습이라고 인정해 왔다.


분묘기지권이 인정된 배경에는 우리 고유의 문화에서 기인한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조상숭배사상의 영향으로 좋은 장소를 찾아서 조상의 분묘를 설치하고 그곳을 경건한 곳으로 생각했고, 자손들은 물론 보통사람들도 이를 존엄한 장소로서 존중해야 하며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관념을 만들어 왔다. 부모에 대한 효사상이나 조상숭배사상을 중시하는 전통문화의 영향이 남아있는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장묘(葬墓) 방법은 시신이나 유골을 땅에 묻는 ‘매장’이었다. 하지만 근대적인 의미의 임야소유제도가 만들어지면서 다른 사람의 토지 위에 설치된 분묘에 관해 법률분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법원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던 매장 중심의 장묘문화와 이를 바탕으로 인정된 분묘의 수호와 봉사를 위한 토지 사용권의 보호를 내용으로 하는 관습 또는 관행의 존재를 근거로 해, 분묘를 소유하기 위한 토지 사용권인 분묘기지권을 지상권과 유사한 관습법에 의한 물권으로 인정하면서 승낙이나 취득시효를 원인으로 분묘기지권을 취득한다고 판단해 왔다. 대법원은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을 우리 사회에 오랜 기간 지속돼 온 관습법의 하나로 인정해 20년 이상의 장기간 계속된 사실관계를 기초로 형성된 분묘에 대한 사회질서를 법적으로 보호했고, 민법 시행일인 1960년 1월1일부터 50년 이상의 기간 동안 관습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법적 확신이 확고부동하게 이어져 온 것을 확인하고 이를 적용해 왔다.



“재산권 침해” vs “조상숭배 관습”
90년 넘게 지속된 논란


하지만 우리 고유의 장묘문화도 변해왔다. 시간이 많이 흘러 ‘매장’문화는 어느 덧 화장문화로 바뀌었다. 한국장례문화연구원이 매월 발표하는 통계를 보면 화장을 경우가 80%를 넘어섰다. 반면, 아직도 전국의 많은 분묘가 설치돼 있고, 새로 설치되는 분묘가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타인 소유의 토지에 설치된 분묘는 전국적으로 약 1,500만개로 추산되며, 분묘기지권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분묘기지권을 이제는 인정하면 안 된다는 사람들은 남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분묘기지권은 문제가 있고, 토지 정리가 이뤄진 상황에 아직도 남의 땅에 조상을 묻어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반면, 아직 시기상조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조선시대에서는 산림의 사적 소유를 인정하지 않았고, 국가가 매장 목적의 묘지점유권을 보호해 왔던 것이 계속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며, 분묘기지권은 정당한 범위 내의 재산권 제한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법원도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에 앞서 이례적으로 지난해 9월22일 공개변론을 열고, 생중계 방송을 실시했다.


공개변론에서는 ▲관습법상 물권으로 인정돼 온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고, 양측의 입장은 팽팽히 맞섰다. 변론에서는 해당 분야 전문가인 오시영 숭실대 국제법무학과 교수가 원고측, 이진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피고측 참고인으로 참석했다.


원고측, “애초 관습도 없었고, 있었다 해도 사회상황 변했다”


원고측 대리인인 최문수 변호사는 먼저 취득시효는 서구의 법 제도가 우리나라에 전래되면서 도입된 것으로, 취득시효에 관한 관습은 애초부터 없었다고 주장했다. 분묘기지권은 사실상 영구적으로 토지 소유자의 소유권을 제한하는 것으로서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설명이다. 또 분묘를 무단으로 설치한 자에게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을 인정하는 것은 악의의 무단점유자의 경우 소유권 취득시효를 허용하지 않는 대법원 판례와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과도한 분묘기지권 인정에 따른 국토 이용의 효율성 저해, 화장률 급증 등 국민의 장묘문화에 대한 국민의 의식도 변했고, 이에 분묘기지권을 인정해 온 과거와 달리 현재는 사회적 여건이 크게 달라진 점을 부각시켰다.


원고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오시영 교수는 “관습상의 분묘기지권은 취득시효 및 법정지상권에 대한 국민의 ‘법적 인식’이 전제돼야 한다”면서 “하지만 조선총독부의 관습조사보고서에서도 ‘취득시효에 관한 관습이나 제도가 우리나라에는 없다’고 기술돼 있고, 법제사적으로나 수많은 산송 사례에 비춰 분묘기지권을 인정하는 관습은 1927년 당시에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종래 그러한 관습이 있었다 하더라도, 조선고등법원 판결 후 약 90년이 지난 현재 사회변화에 따라 더 이상 그런 관습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법률이 정비되고 장례문화가 변화함으로써, 타인 토지 위의 분묘기지권을 인정하는 관습은 오늘날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고 강조했다.


원고측 최종갑 변호사는 마무리 변론으로 “무단점유자의 권리취득을 제한하고 토지 소유자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것이 기본적인 법리로 정립된 지 오래됐다”면서 “장묘문화가 화장 등의 방식으로 거의 대부분 변화된 현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분묘의 관념적 특수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피고측, “분묘기지권은 필요불가결한 제도”


피고 대리인인 조홍준 변호사는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 관련 관습은 일제강점기인 1927년 조선고등법원에서 승낙형 및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을 인정했고, 현재까지 약 100년 가까이 대법원에서 인정돼 왔다”면서 “분묘기지권은 정당한 범위 내의 재산권 제한이고, 종교의 자유 및 국가의 전통문화 계승의무를 선언하고 있는 헌법의 이념에도 합치한다”고 주장했다.


참고인으로 출석한 이진기 교수는 “분묘기지권은 법률로 사설묘지, 특히 개인묘지를 허용하는 국가 법 체제 아래에서 존재 의의를 가진다”면서 “모든 사람이 묘지를 쓸 수 있는 토지를 소유하지 않으므로, 분묘기지권은 필요불가결한 법률제도이고 법률로 규율하기 곤란한 관습법”이라고 진술했다. 이 교수는 또 “2014년 화장률이 78.8%라는 것은 20% 이상의 매장이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장묘방식으로 매장과 이를 위한 분묘가 존재하는 한도에서 분묘기지권은 존속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을 반대하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교수는 “2001년부터 시행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분묘기지권을 배제하지 않고, 단지 분묘설치와 범위의 제한, 그리고 설치기간의 제한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면서 “특히 법률은 사설묘지의 설치를 허용하는 등 분묘기지권을 적극적으로 배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분묘기지권의 정리, 해결을 위해 시간을 두고 장묘문화의 변화를 지켜보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조홍준 변호사는 마무리 변론으로 “최근의 높은 화장률은 경제적 사정으로 매장할 토지를 구하지 못하거나 국가의 시책에 따른 것이지, 분묘기지권이라는 관습에 대한 인식전환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만약 분묘기지권이 인정되지 않으면 전국적인 철거소송과 이장, 화장 및 봉안 문제는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갈등과 엄청난 경제적 부담이 생기므로 점진적인 개선 및 입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아직 분묘기지권에 관습법의 존립근거가 상실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


공개변론과 생중계라는 조치까지 동원했던 대법원은 1월19일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타인소유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하고, 20년간 평온·공연하게 그 분묘의 기지를 점유하면 지상권과 유사한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한다는 점은 오랜 세월동안 지속돼 온 관습 또는 관행으로서 법적 규범으로 승인돼 왔다”면서 “이러한 관습법이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일인 2001년 1월13일 이전에 설치된 분묘에 관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8명의 다수의견으로 최종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먼저 “관습법의 효력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그 관습법을 둘러싼 전체적인 법질서 체계와 함께 관습법의 효력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의 기초가 된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태도나 그 사회적·문화적 배경 등에 의미 있는 변화가 뚜렷하게 드러나야 한다”는 점을 전제했다. 대법원은 분묘기지권에 관해 그동안 형성된 법률관계에 대한 법적 안정성을 중시할 필요가 있는 점, 장사법의 입법태도·분묘의 특수성과 분묘기지권을 둘러싼 현실 등을 고려해 아직까지 분묘기지권에 관습법의 존립근거가 상실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용덕·박보영·김소영·권순일·김재형 5명 대법관의 반대의견은 달랐다. 반대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사실상 영구적이고 무상인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을 인정하는 종전의 관습은 적어도 2001년 1월13일 장사법이 시행될 무렵에는 사유 재산권을 존중하는 헌법을 비롯한 전체 법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정당성과 합리성을 상실했다”면서 “아울러 이러한 관습의 법적 구속력에 대해 사회 구성원들이 확신을 가지지 않게 됨에 따라 법적 규범으로서 효력을 상실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따라서 2001년 1월13일 당시 아직 20년의 시효기간이 지나지 않은 분묘의 경우, 종전의 관습을 가지고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을 주장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법적 안정성·사회적 혼란 등 고려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90년 이상 지속되어 온 분묘기지권은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법적 안정성과 아직 전국적으로 1,500개 정도나 되는 분묘로 인한 사회적 혼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판결 직후 대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대법원이 오랜 기간 동안 인정해온 관습법의 효력을 부정할 경우 수십년 간 형성된 과거의 법률관계의 효력을 일시에 뒤흔들게 돼 법적안정성을 해칠 위험이 있다”며 “관습법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관습법의 효력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그 관습을 둘러싼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태도나 그 사회적·문화적 배경 등에 의미 있는 변화가 뚜렷하게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장사법 역시 시행 후 설치된 분묘에 관해서만 규제를 함으로써 점진적인 개선을 도모하고 있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매장문화가 자리 잡고 있고, 사설묘지의 설치가 허용되는 등 분묘기지권에 대한 관습법이 소멸했다는 뚜렷한 자료는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분묘는 아직까지 그 특수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자손들은 물론이고 보통사람들도 이를 존엄한 장소로 존중하고 함부로 훼손하면 안 된다는 관념이 형성돼 있다. 하지만 엄연히 남의 토지 위의 분묘는 재산권의 침해인 점도 분명하다. 아직도 찬반이 팽팽한 수십 년 간 진행돼 온 토지소유권과 분묘기지권의 불편한 동거에 대해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MeCONOMY magazine February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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