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한 정도가 아니었어요. 정말 문제는 지금부터거든요. 5억 원 넘는 손해가 났는데 지금 나가 있는 물건들 회수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요. 저희가 좀 미련한 바보였던 것 같아요. 그냥 간단하게 중국산 제품 인증 받아 팔아먹었으면 이런 상황이 안 생기는 건데 괜히 무슨 국내 제조에 사명감을 가진다고 이런 걸 해가지고...”
약 10년 동안 차량용 애프터마켓 튜닝부품을 개발, 제조, 판매해온 업체 (주)에스라이팅은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그동안 튜닝용 LED 전조등 램프를 거래하던 거래처에서 불법 제품이라며 계약을 파기하자고 통보해 온 것이다. 해당 제품을 설치한 소비자가 자동차종합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 계약 파기의 이유였다. 에스라이팅 박병인 대표(사진)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자동차튜닝산업협회를 통해 인증 받은 제품을 잘 판매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불법 제품으로 낙인찍히면서 회사가 파산위기에 놓였다”며 “정부가 튜닝 활성화를 위해 마련했다는 튜닝부품 인증제도가 오히려 튜닝 산업계를 위축시키고 있다”고 한탄했다.
튜닝부품 민간 인증권한 독점체제...고비용·저효율 문제 고스란히 드러나
자동차 튜닝은 정부가 2014년 자동차 튜닝 산업 활성화 방안을 내놓으면서부터 제도권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크게 구조변경이 따르는 빌드업튜닝, 엔진성능을 향상시키는 튠업튜닝, 취향에 맞게 꾸미는 드레스업 튜닝으로 구분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승인했거나,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제55조 제1항에 따르는 ‘경미한 튜닝’이거나, 국토부 산하 민간기관인 한국자동차튜닝협회가 인증한 부품을 설치하면 합법이다.
문제는 튜닝부품에 대한 민간 인증 권한을 한국자동차튜닝협회가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점체제에서 나타나는 고비용 저효율 문제가 고스란히 나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병인 대표는 “차종별 개별적으로 인증비용을 지불하도록 해놓고 인증 기준도 허술하다보니 국산 제품은 가격적으로 중국산 저가 제품에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지금 구조에서는 국내에서 힘들게 개발하고 생산하는 것 보다 중국 알리바바(전자상거래 업체) 같은데서 만 원 짜리 물건 떼다가 간단하게 인증 받고 6~7만 원씩 받고 유통하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특히 큰 문제로 인증 기준이 허술한 점을 꼽았다. 인증기관 독점체제 하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소비자들이 안전상 위험에 노출 돼도 구제 방법이 없다는 주장이다.
박 대표는 “LED 제품은 전기부품으로 내구성이나 내열성 평가가 필수임에도 한국자동차튜닝협회가 시행하는 인증에는 이런 시험 항목이 전혀 없고 심지어 진동테스트도 안 한다”며 “실제 유통업체들은 이런 튜닝인증의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서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진지도 모르는 중국 제품들은 대량으로 국내에 들여와 인증 받아 팔고 있다. 소비자들의 안전이 상당히 위험한 상태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국토부에서는 그런 것 따지지 말고 자기들이 지정한 인증기관에서 인증 받고 팔면 되는 것 아니냐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기업입장에서는 내수시장만큼 해외 수출도 중요하기 때문에 내구성이나 진동테스트도 거치지 않은 하나 마나한 인증절차는 품질을 보증한다고 볼 수가 없다”고 했다.
국회서 지적 받은 국토부의 소비자 선택권 제한
국내 튜닝산업 발전과 소비자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인증기관 복수화가 필수라고 말한 박 대표는 “인증기관끼리도 경쟁을 해야 제품이 발전하고 우수한 부품이 나올 수 있다”면서 “한국자동차튜닝협회의 인증기관 독점이 국내 튜닝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사한 규모의 다른 산업군을 봐도 사실 인증기관 독점체제는 아이러니하다. 일례로 생활가전 산업군을 보면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과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 등 민간 인증기관이 4곳에 달한다. 제품의 품질을 직접 확인한 업체나 소비자들이 인증기관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돼 있는 것이다. 최근 자동차 튜닝 활성화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을 대표 발의한 이종배 국민의힘 정책위의장도 이와 관련 소비자 선택권 확보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국토부에 전달했다.
이종배 의원실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곳에만 인증 권한을 준 것 자체가 결국 독점이다 보니 가격 상승이 일어날 수 있고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할 여지가 있다”며 “결격사유가 없는 등 일정조건을 충족하면 어떤 기관이든 인증권한을 받을 수 있도록 해 경쟁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소비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는 뜻을 국토부 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검토해 보겠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아직 확답은 받지 못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국토부, 타 협회 인증기관 신청 반려...“인증사업 돈벌이로 보나”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인 한국자동차튜닝산업협회는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국토부에 인증기관 지정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당시 한국자동차튜닝산업협회는 “지금과 같은 단독 인증기관 운영은 소비자 및 인증 수요기업의 선택권 보장을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2개 이상의 인증기관 운영으로 소비자 선택권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며 국토부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국토부는 공문을 통해 “우리 부에서는 국토교통부 공고 제2015-62호에 따라 튜닝부품 인증기관을 지정한 바 있고 이후 해당기관에서는 튜닝부품 인증대상 및 인증기준 마련, 서류심사, 인증시험, 인증서 발행, 인증표시 등에 대한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관리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현재까지 인증업무 수행과 관련해 특별한 불편이나 부당한 업무처리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답했다.
이어 “추가적인 인증기관 지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향후 튜닝부품의 인증 수요변화 등을 면밀히 검토한 후 결정할 사안으로 현 시점에서는 추가적인 인증기관의 지정은 오히려 튜닝시장에 불필요한 혼란만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된다“며 “이번 튜닝부품 인증기관 신청 건은 수용이 곤란하다”고 못 박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에스라이팅의 제품은 현재 시행되고 있는 인증기준보다 훨씬 더 까다롭고 체계적인 테스트를 통과하고도 불법 제품으로 전락했다. 국토부의 산하단체 수익 챙겨주기 아니냐는 의심이 들 만한 대목이다. 박 대표는 “협회에서 인증 한개 내주면 2,000원 이상 받는데, 현재 인증횟수가 10만 건이 넘는다”며 “국토부나 한국자동차튜닝협회나 인증사업을 국내 튜닝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수단보다는 돈벌이로 밖에 안보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국토부 “관련 수요 많아지면 시험기관 늘릴 것”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민간 인증 관련 제도가 시행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유사인증 등으로 국민들이 피해보지 않도록 통일감 있게 업무를 처리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면서 “앞으로 관련 수요가 많아져 필요하다면 당연히 시험기관을 늘리는 방향을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MeCONOMY magazine February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