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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제4부】 인류의 마지막 과제, 똥오줌을 어떻게 할 것인가?

- 똥 살리기, 땅 살리기

미국의 북동부 펜실베니아주에 사는 「조셉 젠킨스」 라는 사람이 자신과 가족의 인분과 오줌을 모아 친환경 발효 퇴비를 만들어 수십 년간 농사를 지으며 가족끼리 먹고 살았다. 1999년, Y2K 공포를 앞두고 미국 정부의 위기대응팀이 그에게 전화로 물었다.

 

 

"컴퓨터 시스템 오류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기 상황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데 성공했지만 딱 한 가지 해결되지 않는 게 배설물 처리 문제입니다, 어떻게 해결해야죠? 톱밥과 한 말들이 들통이 있으면 됩니다. 톱밥 변기를 만들면 시카고 고층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도 아무 문제 없습니 다."

 

그는 전화를 받고 나서 2000년, 자신의 ‘인분 발효 퇴비’ 농사의 경험을 《똥 살리기, 흙 살리기》라는 책으로 써서 자비(自費)로 출판했다. ‘똥은 더러운 게 아니라 자연 순환의 일부이며, 거름으로 만들어 흙으로 되돌려 줘야 할 대상’이라는 그의 주장은 인분 사용이 금지된 미국에서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져 그의 책은 각종 출판상을 수상했다. 서양과 달리 동양에는 ‘인분 발효 퇴비’ 농사의 오랜 역사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고려 중기부터 본격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밥은 나가서 먹어도 똥은 집에서 눈다,’ 는 속담이 생길 만큼 인분은 농사에서 금과옥조였다.

 

실제로 ‘인분 퇴비 농사’에 관한 실용적 기술은 미국의 조셉 젠킨스 보다 거의 200여년 앞서 18세기 말 조선 최고의 지성이라는 풍석(楓石) 서유구(徐有榘, 1764~1845)가 썼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산 정약용(1762~1836)과 달리 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다산처럼 정조의 총애를 받던 그는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다.

 

 

작은아버지가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홍문관 부제학을 그만두고, 43 살의 나이에 파주 임진강변으로 낙향했다. 하루에 세 번씩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워하면서도 다시 벼슬길에 오르기까지 18년 동안, 아들과 함께 초야에 묻혀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오늘날의 구글, 조선 최대의 백과사전 《임원경제지, 林園經濟誌》를 완성했다. 농업, 천문학, 수학, 의학, 어업, 상업 등 16개 분야에 걸친 총 113권, 250만자 (字)의 방대한 내용이었다.

 

“밭에 거름을 주는 것이 밭을 사서 늘리는 것보다 낫다” 라는 속담을 인용해 인분 퇴비의 친환경 농법을 강조한 조선 최고의 중농학자, 풍석 서유구의 ‘흙의 경제학’, 농약과 화학비료에 찌들고 병든 흙을 건강하게 되살리는 지혜가 아닐까?

 

임진강 강가에서 나는 울었다.

 

“나, 서유구는 파주의 임진강(臨津江) 강가에서 한없이 슬픈 눈물을 흘렸다. 1806년, 나의 작은아버지(서형수)는 동기인 김달순의 역모 사건에 연루돼 정계에서 축출당했다. 그로 인해 나도 홍문관 부제학에서 물러났다. 내 나이 43살 한참 때였다. 우리 집안은 풍비박산(風飛雹散) 났고, 나는 파주 임진강(臨津江) 강가로 낙향해, 59살에 다시 벼슬길에 오르기까지 18년간 18번 이사 다니며 죽을 못 먹을 정도로 끼니를 걱정해야 했고, 하루에 세 번씩 죽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할아버지(서명응은 초대 대제학으로, 천문, 지리, 농업 언어 등 다방면에 저술을 남겼다)와 아버지(서호수는 이조판서였고 수학과 천문분야의 최고수였다)의 실용 탐구적 유전자를 물려받은 나는 가학(家學)인 농학(農學)이 나로 인해 끊어지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병약한 아들과 함께 직접 농사를 짓고 물가에서 고기를 잡으면서, 농업, 건축, 의학, 과학, 수학, 천문학, 생물학, 음악, 미술, 요리 등 16개 분야의 실용지식을 모으고 또 모았다. 농촌에 살 때는 농부에게, 산촌에 살 때는 나무꾼에게, 어촌에 살 때는 어부에게 모르는 것은 묻고, 의심나는 것은 의견을 나눴다.

 

또, 인편을 통해 새로운 책을 구해 읽고 또 읽곤 했다. 이론과 명분을 앞세운 경제학(經世學)을 배격하고, 오로지 백성의 삶을 개선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실용기술에만 천착(穿鑿)했다. 내 아들 우보는 아예 붓과 종이를 가지고 다니면서 길거리에서 들은 것을 바로바로 기록했다. 그렇게 해서 나와 내 아들은 농사짓는 법, 가축 키우는 법, 고기 잡는 법 등을 책으로 옮겨 적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조선 백성들이 잘 먹고 잘살 수 있을까? 그것이 우리 부자의 바람이었다.

 

내 아들 우보는 비가 오는 날도 도롱이를 입고 논밭을 갈고 나무를 해서 가족을 봉양했다. 밤에는 내 책 쓰는 것을 도우며 틈틈이 과거 공부를 했다. 그렇게 착하고 가엾은 내 아들은 그러나 내가 18년 동안의 유랑생활을 마치고 다시 한양으로 돌아와 벼슬길에 나섰을 때, 과거에 연거푸 떨어진 탓인지, 며칠을 시름시름 앓다가 30살의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아들을 산에 묻고 돌아온 날 밤, 나는 실성한 사람이 되어 서가에 얹어둔 《임원경제지》를 방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울부짖었다.

 

“네놈이 내 아들을 죽였지? 네놈을 불쏘시개로 태워버리겠어.”

 

하지만 죽은 아들이 돌아올리 만무했다. 나는 74살에 벼슬에서 물러나 가슴에 묻어둔 내 아들 생각에 늘 괴로워 했다. 나는 다시 한양 근교(지금의 강북구 번동)에 거주지를 마련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농사를 실험하고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를 지켜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똥오줌을 버리는 게 아니다. 거두어 저장해야 한다.

 

‘농사는 거름을 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단언한 풍석 서유구는 ‘거름이란 척박한 농지를 좋은 농지로 바꾸고 메마른 땅을 기름진 땅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땅심을 길러주지 않으면 곡식이 번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농부는 소유한 밭에 해마다 씨를 심기 때문에 흙은 거칠어지고 기가 쇠하여 작물이 잘 자라지 못한다. 농부가 거름을 쌓고 썩혀 두었다가 거름을 주면 땅심은 항상 새로 왕성해져서 수확이 줄지 않을 것이다. 오직 근본에 힘쓰는 사람들만이 이 점을 알고 있으니, 거름 아끼기를 금 아끼듯 한 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속담에 ‘밭에 거름주기가 밭을 사는 것보다 낫다’라고 했다.

 

 

그러나 썩지 않은(발효시키지 않은) 생 거름(생분, 生糞) 을 급하게 사용하거나 지나치게 많이 뿌려 거름의 힘이 너무 뜨거우면 작물을 말려 죽이므로 도리어 해가 될 것이다. 무릇 농지는 3~5년 동안 씨를 뿌리면 그 힘이 매우 부족해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제 때에 비옥한 새로운 토양을 더해주면서 거름으로 관리할 수 있다면, 땅이 더욱 부드러워지고 비옥해져서 땅심은 당연히 늘 새롭고 왕성해질 것이다.

 

그는 ‘중국에서는 똥을 금처럼 아껴서 길에는 버려진 재도 없다면서, 중국에서는 똥을 마치 큰 부도(浮圖)처럼 모두 반듯한 네모나 세모 또는 여섯 모로 쌓는데, 쌓아둔 거름 밑을 파서 항아리를 묻고 거름에서 나오는 즙을 받는다. 혹은 큰 항아리에다가 누런 똥을 담고 막대기로 저어 덩어리진 것을 모두 풀어 묽은 죽처럼 만들기도 한다.

 

여름 낮에 긴 자루가 달린 표주박으로 그 똥을 퍼서 모래 마당에 엎어놓는다. 모래가 뜨거우면 말라서 꼭두서니 색을 띤 떡처럼 둥글어지는데, 그 무게도 차이 나지 않는다. 이것을 빻아 가루로 만들어 채소밭에 사용하는 것이다. 무릇 효과가 뚜렷이 드러나는 일로는 밭에 거름을 주는 것만 한 일이 없으니, 장자(莊周)의 "썩어서 냄새나는 것이 새롭고 기이한 것으로 변한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똥을 발효시키는 증분법

 

「조셉 제킨스」는 자신의 책에서 ‘인분에 톱밥이나 낙엽, 풀 등을 섞어 1년간 발효시키면, 퇴비가 되어 향긋한 냄새가 난다’고 했는데 이는 ‘썩어서 냄새나는 것이 새롭고 기이하게 변한다’라는 장자의 말과 일치한다. 특히 제킨스에 따르면 인분이 톱밥, 낙엽, 풀 등과 발효가 되는 동안 내부 온도가 60도~70도까지 올라가 모든 균이 사멸된다고 했다. 그래서 잘 발효된 인분 퇴비를 흙에 쓰는 사람은 한 방울의 오염물도 방출하지 않으니,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조셉 제킨스가 스스로 실험한 ‘인분 퇴비 농사’는 풍석 서유구가 《임원경제지》에 소개한 똥오줌 저장법 중 증분법(蒸糞法)에 해당 한다. 이는 띠 풀을 베어 뒷간을 만들고, 흙이나 재, 곡식 껍질과 쭉정이, 볏짚이나 낙엽을 모두 그 안에 쌓아놓는다. 그리고 바로 띠 풀 짚을 얽어매고 덮개를 덮으면 똥의 기운이 김을 내면서 발효가 일어나서 퇴비가 되는 것을 말한다.

 

 

서유구는 ‘똥약’이라는 속어를 소개하면서, 대체로 똥을 쓰는 것은 마치 약을 쓰는 것과 같다고 했다. ‘똥을 적절하게 쓰면 아주 조금만 써도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아마 발효가 충분히 되지 않은 것은) 아무리 많이 써도 또한 그 공이 적어질 것이다. 토질을 보고 사물의 성질을 따르면 때를 살펴 움직이고 신명을 다해 밝히면 거름을 적게 쓰더라도 곡식을 많이 거둔다’고 했다.

 

그는 사람이나 가축의 생 똥은 기운이 왕성하기 때문에 반드시 똥이 삭은 뒤에 써야 하는데 비록 똥이 다 삭았어도 논밭에 너무 많이 뿌려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많이 쓰려면 반드시 섣달에 거름을 주어야 밭이 아주 기름지다. 부득이하게 생 똥을 줘야 한다면 반드시 먼저 화분(火糞) 으로 구덩이에 오랫동안 덮어둔 뒤에야 쓸 수 있다. 흰 모래밭이나 억센 땅은 생 똥이 아니면 토질이 바뀌지 않고 보리밭이나 밀밭은 오줌을 주지 않으면 기름지게 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감옥에서 나오는 똥과 오줌은 밭을 비옥하게 하지 못한다. 기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기운을 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계암만필> 중)”이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절간의 똥은 시장통의 똥만 못하고, 못사는 사람의 똥은 잘 사는 사람의 똥만 못하고, 늙은이나 환자의 똥은 어린이나 청년의 똥만 못하며, 우리에 가둔 소의 똥은 놓아 기른 소의 똥만 못한 것이다. 그래서 똥은 반드시 사방으로 통하는 큰 도읍에서 거두고, 그 다음으로는 이름 있는 시골이나 번성한 시장에서 거둬야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혼분(溷糞)이란 사람이나 가축의 똥오줌’이라면서, ‘마른 흙을 윤택하게 변화시키는 것으로는 사람의 똥만 한게 없고, 단단한 흙을 부드럽게 바꾸는 것으로는 마 소의 똥만 한 게 없다. 또 가뭄에 견뎌 땅을 윤기 있게 만 드는 것으로는 누에똥만 한 것이 없으며, 적은 양으로 많은 양에 맞먹는 데에는 닭똥만 한 것이 없다. 그렇지만 돼지똥은 마르고 거칠어 기름지지 않으니, 다만 흙과 섞어 열을 내면 꽃나무나 과실나무를 심는데 쓸 수 있을 뿐이다.

 

논에 개똥을 많이 부어주면 강아지풀이나 오독도기가 무성해진다. 닭똥이나 오리 똥은 반드시 물에 담가 덮어놓은 뒤에 죽처럼 묽게 되기를 기다렸다가 재를 섞거나 물을 섞어서 사용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 많은 똥과 오줌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요즘 세상에 인분 퇴비 농사 운운하면 대개 더럽고, 비위생적이라고 펄쩍 뛸 것이다. 필자 역시 인분 퇴비 시대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농촌에 갈 때마다 느끼는 궁금증이 있다. 어째서 시골집도 수세식 화장실을 쓰고 인분을 사용하는 밭농사도 거의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이 내가 어렸을 때 보다 나빠졌냐는 것이다. 수량이 크게 줄어 졸졸 물이 흐르 는 개울이 된 데다가, 수질이 탁해지고 물속에 있는 돌 위에 누런 오물이 솜털처럼 덮여 발을 대면 쭈르르 미끄러질 정도가 되었다.

 

이는 수천 년 동안 우리 목숨을 살려 준 똥오줌이 흙으로 돌아가서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거름이 되지 못하고, ‘똥물’이 되어 바다나 강으로 흘러가 오염을 시키거나 아니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도시가 생기고 사람들 이 도시로 몰려들면서 사람 똥오줌은 거름이 되지 못하고 애물단지가 되어 태워서 매립(埋立)하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 최고의 중농 학자이면서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주목을 받지 못한, 풍석 서유구가 만약 오늘에 되살아 나서 비료와 농약으로 찌들어 가는 이 땅을 본다면 어떤 말을 할까? 아마도 이렇게 말하지 않겠는가.

 

“똥이 가장 훌륭한 비료니라, 똥의 연금술사가 되어 흙으로 돌려주어라"

 

조셉 제킨스에 따르면, 인분 1g에는 기생충, 간염균, 콜레라균, 장티푸스균과 같은 세균이 1조 마리나 살고 있다. 그러나 모든 균은 1년간 발효를 거치는 동안 말끔하게 제거된다. ‘인분 발효 퇴비’는 흙을 비옥한 부식토로 바꿔주고, TNT나 중금속, 심지어 방사능에 오염된 토양까지 분해하여 땅의 건강을 회복시킨다. 더구나 집에서 생기는 인분을 퇴비화하는 것은 그렇게 더럽거나 힘든 일이 아니 다. 간단하게 톱밥 변기 시설을 만들고 판자를 이용해 퇴비실을 만들어 준 뒤 분뇨 위에 건초더미를 덮어두기만 하면 된다.

 

똥이 더럽다고? 그럼 당신의 뱃속에 들어있는 건 똥이 아니고 무엇인가? 누구나 똥을 가지고 다닌다.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찌들고, 연작으로 땅심을 잃어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똥을 흙으로 되돌려 줄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MeCONOMY magazine Octobe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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