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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황하지 않는다

(주)99플라워 윤공순 대표

 

【M이코노미뉴스 = 김소영 기자】 제1회 여성기업 주간 개막식이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7월 5일 오후 여의도 중소기업 중앙회 KBIZ홀에서 열려, 윤공순 ㈜99플라워 대표가 영예의 첫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윤 대통령과 정부관계자, 여성기업 및 중소기업 관련 협회와 단체장, 여성 기업 유공자 등 1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시상식에서 윤 대통령은 격려사를 통해 “그동안 우리 여성기업인은 강인함과 섬세함으로 위기 극복과 신산업 창출에 앞장서 왔다”고 치하했다. 이날 윤 대통령이 시상한 첫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윤공순 대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흙수저 출신의 여성 기업인이다. 사회 밑바닥에서 온갖 역경을 딛고 40년 만에 꽃 배달 전문업체 「구구플라워」를 전국 620여 개 체인점을 보유한 대표적인 꽃 배달 서비스기업으로 키웠다.

 

윤 대통령으로부터 박수를 받는 동안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서 있었던 윤 대표는 자신이 평생 천덕꾸러기 신세여서 지금까지 그 누구로부터 박수를 받아보지 못했는데 대통령으 로부터 박수를 받았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잘 곳이 없어 손바닥만한 흙바닥에서 자야 했고, 배가 고파서 길바닥에 떨어진 동태전을 집으려는 순간, 행인이 밟고 지나가는 바람에 먹을 수 없게 되어 울고 또 울었다는 그는, 평생 흘린 눈물로 이 세상의 꽃들을 키워 세상을 들어 올린 역도선수 같은 여성이다. “꽃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황하지 않는다”는 윤공순 대표를 만나 고통을 그물로 짜서 고 기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들어봤다. 

 

Q. 제1회 여성기업 주간 개막식에서 영예롭게 첫 번째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윤공순 대표   내 인생을 지금 인정 받았다는 느낌이었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지금껏 힘들게 살아온 제 자신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까요. 상을 받고 자리에 앉으니까 바로 앞자리에 앉아 계시던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께서 ‘이 상을 받으려면 7개 부처에서 심사를 받고 통과가 되어야하는 상인데 대단한 상을 받았다’고 하면서 격려해 주시더라고요. 그런데 권 대표의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제 눈에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그 어떤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거예요. 저의 평생 꿈은 열심히 일하다 죽는 거였거든요. 그런 제가 큰 상을 받을 거라는 건 꿈에도 몰랐어요. 험한 세상을 살면서 늘 바둥바 둥했던 제가 '진짜 큰 상을 받았구나' 하는 그 감동밖에 없었죠.

 


Q. 은탑산업훈장은 보통 제조업에 주는 훈장인데 화훼유통업을 하는 윤 대표께서는 이 훈장을 어떻게 해서 받게 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윤공순 대표   저는 여성경제인협회에 소속되어 있는데 협회에서 매년 수상기업 후보의 신청을 받죠. 신청 조건은 10년 이상 해당 분야에서 기업을 했어야 하고, 하자가 있어서는 안되거든요. 조건이 꽤 까다롭다고 봐야죠. 올해도 후보 신청 을 받는다고 해서 신청한 거였는데, 운 좋게 제가 선정된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은탑산업훈장은 언감생심이고 한참 밑인 대통령상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Q. 윤석열 대통령하고 같이 사진을 찍었는데 그때 기분이 어땠 어요?


 윤공순 대표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냥 멍했어요. 대통령이 직접 오셔서 수상을 한 건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상 받은 순간 기억도 없고, 사진 찍은 순간 기억도 없어요. 정신이 그냥 혼미했어요. 며칠간 꿈을 꾼 것 같더라고요. 비몽사 몽이었지요.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제가 너무 큰 상을 받는 건 아닌가 해서 실감이 나질 안 났어요.


Q. 사업가로서의 윤공순 대표가 기억하는 어릴 때의 성장 환경 은 어땠나요?


 윤공순 대표   정말 무지하게 힘들었어요. ‘가난하다’는 말을 왜 찢어지게 가난하다고 하는지 아마도 그런 생활을 해 보지 않은 분들은 모를 거예요. 학교를 제대로 못 다니게 된 건 육성회비를 못 낼 정도로 힘들었다는 얘기잖아요. 우리 집 은 농사를 지을 땅이 없었어요. 아버지는 조그마한 장사를 하셨는데 그나마 일찍 돌아가셔서, 집안은 더 어려워졌죠.

 

형제가 6남매인데 어머니 혼자서 너무 힘드시니까 형제를 학교에 보낼 수 없었어요. 저는 6남매 중 막내였고요. (잠시 눈시울을 적시면서) 우리 형제들은 지금도 만나면 과거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니까요. 어릴 적에 뿔뿔이 헤어져 살다 보니 추억도 서로 공유하지 못해요. 저는 열두 살에 객지생활을 해야 했어요. 식모살이를 했죠. 하숙집에서 식당을 운영했는데 거기서 물 긷는 일을 했어요. 큰 물탱크에 물을 가득 채우는 일이었죠.

 

정말 힘들었지만 주인이 무서워서 힘들다는 얘길 못했어요. 겨울에는 양말을 제대로 못 신다 보니 발이 얼어서 피가 날 정도였어요. 혹시라도 주인이 알면 자를까 봐 그걸 감췄죠. 하숙하는 분 중에 음악선생님이 한 분 계셨는데 한 번은 제 발을 보시고 약을 발라 주시면서 낫게 해주셨죠. 그분이 저를 부산으로 보내주셨는데 그 선생님의 누님 집이었어요. 그 집에서 허드렛일을 했지만 물은 안 기르니까 훨씬 몸이 편했죠. 나중에 그분을 찾아가 보니 이미 돌아가셨더라고요. 참 고마운 분이셨는데...말이죠. 


부산에서는 6년 정도 살았어요. 그러다 경기도 평택(송탄)으로 갔어요. 거기서도 힘들기는 매 한가지였죠. 버스터미널 바로 옆에 있는 식당에서 일했는데 한 번은 정말 멋진 여자 분 이 식사하러 온 거에요. 얼마나 돈이 많으면 저렇게 멋있게 하고 다닐까, 하고 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을 했어요. 언젠가는 나도 부자가 될 거다. 당시 함께 일하던 분께 그 얘길 했더니 그분이 제 이마를 콕 쥐어 박고 나서, 한 마디 툭 던지는 거예요. “네가 많이 배우기를 했니, 이쁘기를 하니,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길 했니, 넌 절대로 그렇게 되질 못해” 라고 하시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에 자극을 많이 받았던 거 같아요.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을 많이 했죠. 새벽시장에 나가서 인절미도 팔았고, 김밥도 팔았고요. 남들과 같이 자고 일어나서는 돈을 벌 수 없다고 생각해서 하루 2시간 정도 잠을 자면서 일했던 거 같아요. 

 

Q. 그럼 어떻게 하다 화훼 유통분야에서 발을 딛게 되셨나요?

 

 윤공순 대표   꽃은 진짜 기적이었어요. 사람이 성실하게 살아야 된다는 걸 알게 해 준게 꽃 장사니까요. 우리은행의 전신이 상업은행이잖아요. 그 앞에서 리어카로 장사를 했어요. 바로 옆에는 한 평 정도 되는 가건물이 있었는데 꽃집이었어요. 장사하시던 분이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어디론가 가버린 거예요. 은행지점장이 저를 부르더니 가건물 주인이 바로 인척 (姻戚)간인데 거기서 꽃집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거예요.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방법을 한 번 찾아보자는 거예요. 마침 꽃을 대주던 분이 돈을 받으러 왔다가 그 얘기를 듣더니 자기가 꽃을 대 줄테니, 한 번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돈 한푼도 없이 그렇게 꽃가게를 하게 된 거죠. 당시 꽃집은 꽃다발을 파는 게 아니라 화분을 팔았어요. 화분 하나 원가가 1,500원~1,800원 정도 됐는데 장사가 잘 됐어요. 화분을 받은 다음에 팔아서 지불하는 후불제였죠. 밑천 한 푼도 없이 꽃 가게를 하게 됐으니 신용만큼은 철저하게 지켰죠. 새벽이면 일찍 출근해서 은행 앞 도로까지 깨끗이 청소도 했고요. 성실하게 일하니까 굉장히 신뢰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인덕이 있었던 거죠. 가까운 구석에 허술한 가게가 있었는데 그 점포를 얻어서 꽃가게를 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죠. 대략 4평 정도 됐을 거예요. 어느 날 점포가 빈 것을 보고 주인을 찾아갔더니 이미 계약이 됐다는 거예요. 이북에서 오신 노부부였는데 무조건 제게 달라고 억지를 썼죠. 보증금 500만원을 받았다는데도 사정을 했더니 제가 애처로워 보였던지 계약서 쓰고 보증금까지 받은 계약을 해지하고 저한테 가게를 준 거죠. 

 

그분이 그러더라고요. 혹시 계약이라는 걸 아느냐고. 모른다 고 했더니 계약을 하고 나서 해지를 하면 손해를 본다고 하시면서 그럼에도 젊은 사람이 워낙 열심히 살고 주변에서 신용이 좋으니까 가게를 줄 테니 열심히 살아 봐라. 돈이 없는 거 같으니 보증금은 3년 후에 300만원만 걸어라. 대신 월세는 조금 더 내야 한다고요. 소원을 풀었으니까 얼마나 열심히 살았겠어요. 밤낮을 모르고 살았죠. 제가 가진 열정을 다 쏟았던 거 같아요. 목숨을 걸고 일을 한 거예요. 


Q. 프랜차이즈 형태로 매장을 확장한 건 언제부터인가요?

 

 윤공순 대표   아마 2004년경일 겁니다. 아들이 함께 저와 사업을 하게 되면서 아이디어를 낸 거죠.

 

Q. 어떻게 운영하고 있나요?


 윤공순 대표   프랜차이즈는 플랫폼 공유서비스잖아요. 주문이 들어오면 해당 지역으로 넘겨서 배달을 해주는 그런 시스템이죠. 고객과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체인점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정해 놓고 있어요. 규칙을 어길 시 두 번까지는 시정하도록 하지만 3번째는 계약을 해지해요. 회사 영업팀은 수시로 각 체인매장을 돌아다니면서 점검해요. 이를테면 소재는 어떤 걸 쓰는지 등을 꼼꼼히 체크하죠.

 

저는 사업을 시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불시에 매장을 방문 하고 있어요. 전국의 매장을 다 돌아다니는데 한 곳을 한 번은 꼭 간다는 목표를 정해놓고 있어요.  우리 회사가 소재를 중요하게 보는 건 바로 고객만족도와 직결되기 때문이에요. 가끔 소재를 아주 싼 걸로 구입해서 쓰는 곳들을 보게 되는데 그런 분들은 고객의 만족도를 받을 수 없죠. 소재를 잘 골라서 쓰면 꽃을 받는 사람의 마음이 풍족해 지거든요. 새로운 업체를 선정할 때도 이 부분을 중 요하게 보고요. 현재 우리 체인점들은 오래됐고 다 잘하지만요. 

 

Q. 꽃 장사를 하다가 조직을 가진 기업형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게 됐을 때 화훼업계의 반응은 어땠나요?


 윤공순 대표   사실 우리 회사가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눈을 돌리게 된 건 협회 때문이에요. 협회가 업체들한테 수수료를 너무 많이 받는 거예요. 업체들은 영세하거든요. 그래서 생각한 게 꽃 배달 서비스 프랜차이즈 사업이었어요. 당시 체인 형태로 만든다고 하니까 업계에서는 제가 협회를 만드는 줄 알았어요. 협회만 해도 충분한 수익이 생기니까요. 만약에 당시 우리 회사가 협회를 만들었더라면, 지금의 99플라워가 없었겠지요.

 


Q. 99플라워는 어떤 점에 가장 주목하는지요?


 윤공순 대표   같은 꽃 장식을 만들더라도 꽃을 하나라도 더 꼽아서 받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려고 노력해요. 꽃을 사보면 알겠지만 직접 매장에 가서 사는 꽃과 배달 꽃이 달라요. 예를 들어 5만 원짜리 꽃다발이라고 치면 인터넷으로 시켰을 때 훨씬 더 크고 예뻐요. 편리하기도 하지만 꽃다발 자체가 다른 거죠. 체인점들이 이런 점을 신뢰해요. 하루 하나 팔아준 곳과  하루 10개 팔아준 곳 중에서 어떤 곳이 수익이 더 낫겠어요? 꽃장식도 많이 팔아본 매장이 꽃을 더 예쁘게 만들고 꽃도 싱싱하죠. 그걸 만들기 위해서 지금껏 엄청난 노력을 해왔고 지금도 노력 중이에요.

 

Q. 꽃가게가 과거와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윤공순 대표   우선 매장이 작아졌죠. 과거에는 매장이 컸잖아요. 지금은 대형매장이 대부분 문을 닫거나 없어지는 추세죠. 3단 화환만 해도 일반 꽃집에서는 못 만들어요. 꽃다발을 파는 곳과 화환을 만드는 꽃집이 분리됐죠.


Q. 꽃 선물도 시대에 따라 트렌드가 있나요? 

 

 윤공순 대표   옛날에는 장미를 좋아했다면 지금은 다양한 꽃을 좋아해요. 예전에는 꽃다발을 만들면 빨간색 꽃이 70% 였어요. 지금은 혼합이 70%구요. 단순히 한두 가지 꽃을 사는 게 아니라 이거 저거가 섞어서 자연스러우면서 예쁜 그런 걸 좋아해요. 과거에는 백합을 좋아해도 선물할 때는 빨간 색이 더 무난하니까 장미를 보냈던 거죠. 하얀 물망초에 빨간 장미~ 과거에는 대부분이 꽃만 선물했다면 지금은 소재 반 꽃 반이에요. 꽃만 하면 촌스럽지만 다양한 소재를 혼합하면 더 예쁘잖아요. 꽃도 이렇게 바뀌었는데 특히 올해는 더 급속도로 바뀌는 것 같아요. 

 

Q. 꽃 시장에도 외국산이 들어오나요?

 

 윤공순 대표   시장의 대략 85% 정도는 외국산일 거예요. 중국산이 100%였던 국화가 지금은 베트남과 중국산이 반반 이에요. 튤립은 콜롬비아산, 카네이션은 중국산이지요. 국산은 미미해요. 작년까지만 해도 장미꽃은 수입이 미미했는데 올 들어 약 70% 정도가 수입되고 있어요. 현재 국산장미는 5%도 안 될 거예요. 요즘은 꽃이 항공으로 오기 때문에 하루면 들어와요. 싱싱함이 그대로 유지 되죠.

 

예를 들어 국화 수입산은 한 단에 비쌀 때는 평균 8,000원~ 9,000원이라면, 국산은 2만 원인데 누가 국산을 쓰겠어요. 가격에서 국산하고 수입산 값이 똑같다고 하더라도 경쟁력에서 떨어져요. 수입산이 더 예쁘니까요. 꽃집에 가서 예쁘고 싱싱해 보이는 건 무조건 수입이라고 보면 돼요. 그러니 소비자들도 국산 보다는 수입을 선호할 수밖에 없죠. 


Q. 외국산 꽃이 싱싱하고 화사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윤공순 대표    잘은 모르나 약품 처리를 하는 거 같아요. 우리 농가에서는 아직 그걸 못하는 거 같고요. 


Q. 국산 화훼농가들이 어떤 점에 주목해야 할까요?


 윤공순 대표    인건비가 안 나오니까요. 농가에 사람이 없잖아요. 동양란은 씨앗(모종)을 수출한 다음 외국에서 키워서 다시 한국으로 들어온다고 해요. 인건비가 3분의 1이 싸니까요. 동남아에서 꽃을 키우면 항상 따뜻하니까 꽃도 잘 자라고 인건비도 싸고 일거양득이잖아요. 정부가 이런 점에 관심을 가져야 화훼농가들이 살아나지 않을까요? 우리같이 꽃을 유통하는 입장에서는 외국산 꽃이 가격도 싸고 오래 가니까 좋지만 농가 입장에서는 힘들지 않겠어요.


Q. 최근 코로나로 경제가 많이 힘들다는데 꽃 시장은 어땠나요?


 윤공순 대표   마찬가지로 영향을 받긴 하나 꽃 선물은 꾸준한 거 같아요. 다만 꽃 선물이 꽃다발이나 꽃바구니 보다는 작은 화분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바뀌는 거 같아요.

 

Q. 꽃 주문하는 걸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이런 거도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윤공순 대표   대충은 알 수 있어요. 꽃을 주문하면서 까다롭고 까칠한 사람들은 대부분 싼 꽃을 사게 되는 거 같아요. 어떤 꽃이 예쁜지 골라주세요. 그런 분들은 성격도 좋지만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고요. 

 

Q. 꽃 보내고 클레임 걸릴 땐 언젠가요?

 

 윤공순 대표   결혼하고 나서 장모님이나 장인어른 생신에 하얀 꽃을 보내는 거요. ‘우리 장모님이 백합을 좋아해요’ 이건 100% 클레임이에요.

 

Q. 꽃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윤공순 대표   꽃이라는 게 참 신기하더라고요. 아기 가 태어났을 때도, 즐거울 때도, 슬플 때도 선물하는 게 꽃이에요. 결혼할 때도 선물하고 사람이 죽어도 선물하는 건 꽃 밖에 없어요. 꽃의 매력은 바로 이거죠. 


Q. 정말 힘든 과정을 거쳐서 지금에 왔는데 가장 힘들 때가 언제였어요?

 

 윤공순 대표   너무 많아서 꼭 집어서 말하기 그런데요. 그럼에도 제 기억에 힘들 때가 있었어요.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일일 거예요. 서울에 와서 사업을 시작 했을 때 동종업계에서 모함해 검찰 중수부까지 가서 조사를 받았는데 무죄를 받았죠. 그게 가장 충격적이었어요. 그 일이 있고 나서 ‘죄를 짓고 살지 말자’가 제 생활신조가 됐어요. 남들보다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기댈 사람도 없는데 정직하게 하는 거 밖에 더 있겠어요.

 


한번은 국세청 조사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오신 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국세청에서 30년 넘게 근무했는데 이렇게 깨끗한 회사는 처음 봤다”고 하더라고요. 병적이라고 할 정도로 깨끗하다는 거예요. 저는 아직까지 법인카드를 써 본 적이 없어요. 당시 검찰조사 받은 충격 때문이죠. 여자가 사업을 하다 보면 참 무시를 당해요. 백화점 가서 비싼 옷도 사 입고 사치도 부려볼까. 그러면 무시하지 않으려나. 제가 차를 소형 차를 타고 다녔더니 그거도 무시해서 그들이 시샘하게 외제 차를 타볼까도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러진 못했죠.(웃음) 


Q. 어떻게 극복했어요? 


 윤공순 대표   제가 아는 분이 일수를 하셨는데 한 번은 저를 보더니 작은 책을 한 권 주는 겁니다. ‘내 인생 내 지게에 지고’라는 남대문 시장 지게꾼 이야기인데 실화에요. 그 책을 읽어 보니까 저랑 다를 게 없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이렇게 같을 수 있을까? 그랬더니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 삶에 다 복수하고 싶거든 열심히 살아라” 그러더라고요. 자신도 힘들게 세탁소를 하다가 이혼했는데 위자료 받은 돈으로 일수를 했더니 사람들이 돈이 많은 줄 알고 무시하지 않더라는 거예요.

 

그분의 말을 듣고 더 이를 악물고 살았죠. 남이 잠을 잘 때 덜 자고 일어나 새벽시장에 나가 장사하고, 낮에는 리어카 끌면서 장사하고 저녁에는 김밥을 팔고요. 잘 사는 게 나 자신에게 복수하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100원 짜리 동전 10개를 모아서 천원을 만들고 1천 원짜리 10개를 모아서 만 원을 만들고, 만 원짜리를 10개 모아서 10만 원 만 들고요. 오직 돈 버는 것 외엔 다른 것은 관심조차 두지 않았죠.

 

저는 그게 몸에 배어 수입의  7% 이내에서만 소비해요. 워낙에 돈을 안 쓰니까 요즘은 아들이 이거저거 사다 주는데 그럴 때마다 제가 그러죠. ‘나도 이제 쓸 건데 너희들 땜에 못 쓰잖아’라고요.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덤덤하게 말하지만 사실 눈물겨운 신세였죠. 평택으로 왔을 때 돈이 없어서 흙바닥에서 자기도 했는데 그때는 배부르게 밥을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그 슬픈 날들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제가 없었겠죠.

 

한 번은 길을 가는데 한 소녀가 배추포기를 들고 웃고 있는 그림을 파는 거예요. 그 모습이 어찌나 저랑 닮았던지 사다가 걸어 놨어요. 어쩌면 지워지지 않고 있는 제 어릴 적 추억을 그 그림이 말해주는 거 같더라고요. 가끔 저보고 잘 웃어서 좋다는 말을 해요. 제가 살아온 얘길 안하니까 그분들은 제가 평탄하게 살아온 줄 아나 봐요. 사실 제가 잘 웃고 얼굴이 밝은 것은 어쩌면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나 싶어요. 가진 게 없으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려면 웃어야 하잖아요. 

 

Q.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지금에 이르게 된 윤공순의 ‘좌우명’은 뭔가요?


 윤공순 대표   「뿌린 만큼 거둔다」는 겁니다. 노력하지 않고 거둘 수는 없잖아요. 저는 하루 10시간 넘게 일을 해요. 직원들은 그럴 수 없잖아요. 사장인 제가 모범이 되어야 회사도 최고가 되는 거죠. 늘 직원들한테 거울이 되고자 노력해요. 저는 힘든 과정을 겪어 오면서 만약에 내가 사장이 된다면 월급을 단 하루도 늦추지 말자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그걸 실천하고 있어요.


Q. 지금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일이 있다면 몇 가지만 소개해 주세요. 


 윤공순 대표   재미있다기 보다는 화가 났던 기억이에요. 결혼한 신부였는데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시댁에 도착할 때 꽃바구니가 도착하도록 주문했어요. 그런데 체인점에서 주문을 받고 보니까 시댁 집안에 아는 분인 거예요. 그래서 며느리가 꽃바구니를 보냈는데 기분 좋으시게 아침 일찍 배달해드린 거예요. 며느리가 이걸 알고 난리가 났어요. 왜 꽃을 일찍 배달했냐는 거죠.

 

전후 사정을  설명해도 막무가내로 환불을 요구한 겁니다. 너무 심하게 따지니까 상담직원이 환불처리를 해줬는데도 직원 교육 잘 시키라고 하면서 회사를 망하게 하려고 했는데 참았다는 겁니다.  그것으로 끝났으면 참았을 건데 남편과 이혼하려 했는데 무릎 꿇고 빌어서 안했다는 등 너무 심하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전화를 해서 시댁 주소를 아니까 직접 가서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하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난리가 난 겁니다. 막상 찾아가게 되면 공짜로 꽃 받은 것도 탄로가 날 거 아니에요. 전화벨이 계속 울려도 안 받았더니 친정 부모님이 찾아온 거예요. 딸이 잘못했으니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요. 공짜로 꽃을 보내기 위해서 수를 쓰다가 혼이 났던 거죠. 

 

또 하나는 가슴이 찡했던 일인데요. 한 남자가 장미 천 송이로 하트모양을 만들어서 고속도로로 주문한 거예요. 업소에서 술을 마시다 여성이 고속도로에서 만나자고 한 모양이에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니까 전화해서 여자가 안 온다면서 이 꽃을 어떻게 하냐는 거예요. 제가 사비를 들여서 용달차를 보내 그분을 도와준 적이 있었죠. 참 가슴이 찡했어요. 세상에 이런 순수한 분도 있구나 하고요.


Q. 요즘 취업이 안 되다 보니 창업하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노하우를 알려준다면?

 

 윤공순 대표   일단은 말릴 거예요. 왜냐면, 지금 이 건물 1층에 꽃집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고요. 부산에 꽃을 보내고 싶다면 1층에 있는 꽃집으로 갈까요? 그렇지 않죠. 인터넷 검색을 해서 주문하지 않겠어요. 이젠 매장을 두고 순수하게 장사해서 살아남기 힘들어요. 길을 오가면서 매장에 들어와 꽃을 사서 들고 가는 시대는 지났다는 얘기지요. 그런 수요 자체도 없고요. 그리고 꽃 가게가 생각만큼 낭만적이진 않아요. 왜냐면 인터넷이 24시간 열려 있잖아요. 우리 회사도 저녁 9시~10시까지 주문을 받아요. 아침에 일찍 주문을 해야 한다면 새벽에 출근해서 준비도 해야죠. 휴일이 없죠. 꼭 하고 싶다면 프랜차이즈 플랫폼을 구축해야겠지요.


Q. 직원은 몇 명이나 되나요?

 

 윤공순 대표   총 32명인데 정직원은 21명이고 나머지는 아르바이트에요. 요즘은 노동 시간 때문에 정직원으로 다 채용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쓰고 있죠.


Q. 요즘 삼포시대라고 하잖아요. 한마디 해준다면?


 윤공순 대표   사실 삼포라는 말이 첨엔 이해가 안 됐어요.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왜 삼포라고 할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 안 좋게 봤던 게 사실이에요.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었고 젊은 사람들은 저희들과 다르죠. 정보력만 해도 우리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고요. 물론 장점만 있는 건 아니지만 젊은 사람들을 이해해요. 아쉬운 점은 두려움 없이 시작해야 결과도 얻을 수 있어요. 어렵다고 힘들다고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면 결과가 없으니까요. 힘들더라도 꿈을 위해서 도전하라고 말 해주고 싶어요. 

 

Q. 올해 계획하고 있는 건 뭔가요?


 윤공순 대표   우선 회사는 지난해보다 5%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건강을 돌보고 싶어요.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2년 전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너무 척박하게 살아 오다 보니 온 몸이 망가진 거죠.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저에게 휴가를 주려고 해요. 3개월은 쉴 거예요. 


Q. ‘99플라워’라는 상호명은 무슨 의미인가요?

 

 윤공순 대표   사업을 하려고 이름을 짓는다고 하니까 지인이 100%는 신한테 죄짓는 거니까 99%로 하라는 거예요. 사실 저는 100으로 하려고 했었거든요. 지금도 많은 분들이 조금 더 세련된 이름으로 바꾸라고 하지만 아직은 바꿀 계획이 없어요.

 

 

흙에서 피어난 꽃! 그대 이름은 ‘윤공순’


이제 고인이 된 베트남의 틱낫한 스님은 “한 송이 꽃은 남에게 봉사하기 위해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다. 오로지 그냥 꽃이기만 하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말이다. 한 사람의 존재 또한, 그가 만일 진정한 인간이라면 온 세상을 기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흙수저라고? 이번 생애는 망했다고? 

 

윤공순 대표처럼 흙에서 피어난 진정한 꽃을 보고 그런 소리를 하지 마시라.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당하고 굶는 것의 서러움을 겪어보고,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리어카를 끌어보시라. ‘흙수저만이 금수저와 은수저를 녹일 수 있다’  ‘목숨을 걸고 일하면 되지 않는 게 없다’고 윤 대표의 은근한 웃음이 말하는 듯했다.

 

MeCONOMY magazine August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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