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일정 공간에 거주하는 주민의 교양을 기르고 지역의 통합에 기여하고 지역의 경제활동에 봉사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한 국가의 현재와 미래를 열어갈 국민을 기르는 활동이다.
그래서 교육은 국가의 책임이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서로 협력해야만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20세기 후반부터 국가가 교육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과 이에 대한 반론이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의이다.
선택·경쟁과 민영화를 전략으로 하는 교육에서의 신자유주의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여 종전의 복지국가 체제가 약화하거나 그 역할이 줄어들었을까?
신자유주의 논의에 앞서 복지국가의 발생 논의를 세 가지, 즉 산업화론, 권력자원론, 국가론의 관점에서 교육을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산업화론
산업화론은 복지국가론 가운데 가장 고전적인 이론으로 산업화로 인하여 생긴 사회적 위험도의 증대로 국가의 사회 복지적 기능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논리다. 기업에 고용되어 자율적인 생산 기반을 가지지 못한 고용자들에게 있어 노동재해, 질병, 노후, 실업 및 저소득 등은 생활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산업화에 의한 사회이동의 증대와 업적중심주의적 행동양식의 보급은 지금까지 사람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온 친족 및 지역공동체, 교회, 전통적 협동조합을 해체해 간다. 그 결과 임금노동자는 산업화로 인해 유래하는 위험에 직접적으로 노출되게 된다.
복지국가는 이러한 사회적 위험에 대처할 필요성에서 발생한 것으로 국가는 임금노동자를 산업화의 위험에서 지켜 노동자들의 일정 생활 수준을 보증하는 기능을 맡은 것이라고 이해한다.
산업화론으로 공교육의 제도화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
서구 국가에서 근대 공교육제도가 확립된 것은 19세기 중후반이다. 복지국가 체제의 시작과 비슷한 시기에 공교육제도가 확립된 것이다. 공교육제도는 16세기부터 오랜 기간의 논의과정이 있었다.
국가가 전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공교육제도에 대한 반감, 의무교육의 강제성에 대한 비판, 교육의 국가 수단화 등에 대한 역사적 논의를 거쳐 1852년 미국의 매사추세츠주를 시작으로 19세기 후반 서구 선진국들이 다양한 의도와 목적으로 국가 제도로서 확립했다.
근대 공교육제도는 현대 공교육제도에 비하여 정교하고 조직적이지는 않지만 종교적, 정치적 활동으로부터 중립성을 확립했으며 지역의 아동은 지역주민이 부담하는 세금을 교육재정으로 하여 누구나 평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
교육이 사회계층의 선호로 구입할 수 있는 사적 재화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배타성이 없고 경합적이지 않은 공공재로서 가치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교육은 공공재로서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졌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교육의 공공 재적 성질에 대해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공공재 이론을 교육에 적용하여 교육 은 공 공재가 아니라 사적 재화라고 주장한다.
교육은 원래 사적 재화인데 정부나 국가의 역할이 증대하면서, 즉 근대 국가가 성립되면서 국가가 학교 교육을 무상으로 보급했으며, 교육이 공공재이기 때문에 정부나 국가가 생산하고 공급한 것이 아니라 정부나 국가가 교육을 공공재로 만들었다는 것이라는 논리다.
과거 학교는 사립학교가 주류였으며, 교육이 공공재로 발전한 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평등한 교육을 운영하는 공교육의 도입이므로 이 논리 또한 틀린 것은 아니지만 교육이 사적 재화라는 주장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공공재는 재화가 가지는 특성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공공복리, 공익 등 국가 정책적인 측면이 많고 그 개념도 정치적, 사회적 산물이다. 예를 들면 물과 공기는 자연 공공재로 국가 정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인간의 생명에 직결되는 재화이다.
그런데 도로의 경우를 보자. 도로는 국도도 있고 지방도도 있고 민간 소유인 사도(私道)도 있다. 이 경우 사도는 경합성과 배제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공공재라 할 수 없다. 공교육제도도 산업화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장치인 셈이다.
산업화가 복지국가의 기능을 필요로 한다는 기능주의적 설명 방법에 대한 비판이 있듯이 공교육제도를 산업화론으로 설명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권력자원론
권력자원론은 노동자 계급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는데 성공한 것이 복지국가를 생성했다는 설명이다. 권력자원론 은 산업화론이 설명하는 산업사회의 기능적 필요성이 아니라 산업화에 의하여 출현한 노동자 계급이 사회적으로 조직화돼 국정에 참가해 가는 과정을 중시한다.
노동자는 산업화에 의해 사회적 리스크를 가장 받기 쉬운 위치에 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개별적으로는 이러한 리스크에 대항할 수 없으므로 상호 부조적 조직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해 임금과 고용을 둘러싸고 고용자와 대립한다.
아울러 노동조합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정당도 결성해 국가의 공공성 장치인 의회에 참여해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대변한다.
권력자원론은 노동자 계급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사회 민주주의적 정당의 태두가 복지국가의 형성을 촉진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노동자 계급을 지지기반으로 하 는 노동당과 사회민주당이 의회에 참여하고 정권을 창출해 왔다. 노동자 계급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정당이 정권을 잡는 경우 일반적으로 국가의 사회적 지출은 증가하게 되고 사회적 지출이 증가하는 법 제도와 정책을 실현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도 노동자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정당이 있으며 일본의 경우에도 직접적으로 노동자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정당은 없으나 특정 정당의 경우 지지층이 노동자로 많이 구성돼 있다. 이러한 정당이 정권을 집권하는 경우 교육정책에서도 선택과 경쟁보다는 평등주의를 강조한다.
영국의 노동당 캘러핸 정권은 11세 시험 결과에 따라 세 종류의 중등학교(grammer schools, secondary modern schools, secondary technical schools)에 분류하는 선발제도(selective school)가 교육의 평등에 반한다는 이유로 폐지하고 종합중등학교(comprehensive schools)로 전환했다.
(1970년의 선거에서 노동당이 보수당에게 참패하여 영국 전역에서 중등학교 선발제도를 없애는 것은 실패했다)
일본 노동자층의 지지가 많은 민주당 정권하에서도 고등학교 무상화 정책과 사립고교 취학지원금 제도를 성립시켰다. 소득을 구분하지 않는 보편주의에 대한 반론도 많았다. 2013년 정권을 다시 회복한 자민당은 보편주의에서 선별주의로 정책을 수정하여 일정 소득이 넘으면 지원하지 않는 것으로 변경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포퓰리즘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무상급식 등의 교육복지 정책이 서민 정책을 표방하는 정당의 이념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포퓰리즘 정책이 국정 선거를 기점으로 생성되고 소멸되는 특성상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의 정치적 과정에서 포퓰리즘은 정당의 정통성과 크게 관계되지 않는다.
선거에서 이기는 전략 차원에서 포퓰리즘은 생성된다.
예를 들면 고교 무상화 공약이나 논란이 되었던 누리과정 등의 정책도 복지정책에 속하기는 하지만 정책 수단이 결여된 채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차원의 전략에서 급조된 측면을 부인하기 어렵다.
국가론
국가론은 복지국가의 발생을 국가의 내재적 제 요인에 주목하는 논리로 국가의 제도와 그 능력에 착목하는 접근방법(이하 제1 접근방법)과 국가의 통지를 담당할 정치지도자 및 관료 등이 맡을 적극적, 능동적 역할에 주목하는 접근방법(이하 제2 접근방법)이 있다.
제1 접근방법은 국가가 복지국가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자원을 징발하여 이러한 자원을 사회복지를 위해 재분배하는 능력이 필요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의 행정기구의 집권화, 관료제화, 전문화가 전제조건이 된다.
국가에 의하여 공 중위생, 학교 교육, 철도·도로 등의 ‘민정적’ 기능이 적극적으로 수행되고 이러한 국가의 기능을 달성하기 위한 합리적인 관료기구와 공익에 봉사하는 관료층의 형성, 필요한 재원을 조달할 수 있는 과세제도, 이렇게 조달한 재원을 재분배하는 행정 제도 등으로 국가의 기능은 확장되게 된다.
아담 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하에서 국가는 야경국가(nightwatchman)에 머물렀지만 복지국가 체제 하에서 국가는 시장에 관여하고 재분배기능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위치로 탈바꿈하였다.
즉 제1 접근방법은 국가의 제도와 기능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제2 접근방법은 국가 행정 관료와 정치 리더가 노동자 계급으로부터의 정치적 요구에 앞서서 스스로 이니셔티브를 고안해 도입하는 행위자로서 국가의 능동적 역할을 중시하 는 입장 이다.
‘근대적 사회보험과 복지정책의 아이디어는 각료, 행정관, 정당의 리더가 대두하는 노동자 계급에 대처하기 위해 기존 또는 용이하게 확장 가능한 정부 행정 능력의 혁신적인 사용 방법을 모색하고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특히 사회보험제도의 선도적 혁신은 산업사회의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한 단순한 반응도 아니고 노동조합 및 노동자 계급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의 요구에 대한 직접적 양보도 아니다.
사회보험의 혁신적 정책은 산업노동자 계급을 미리 정치적으로 편입시켜 두려는 체제의 정교한 작업으로 이해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것은 우선 노동자 계급의 급진주의를 제어하고자 하는 온정주의적(paternalistic) 군주제적 관료체제에서 일찍이 출현해 그 이후에 점차로 민주화가 진행되는 자유로운 의회 체제에서 경합하는 정당이 새롭게 선거권을 얻은 노동자 계급의 표를 기존의 정치조직과의 연립 형성에 동원하는 가운데 출현한다.’
복지국가의 발생을 국가의 내재적 제 요인에 주목하는 국가론은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으로 인한 뉴딜 정책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케인즈의 경제이론, 즉 케인즈주의는 국가의 재정적 관여를 통하여 노동자와 자본가가 하나의 이익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는 사상을 기반으로 복지국가의 황금시대(golden age)를 열었으나 이러한 황금시대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1970년대 석유파동 등에 의하여 복지국가를 유지할 재원 부족에 시달렸다.
복지국가 체제가 후퇴하고 신자유주의가 등장함으로써 사회 각 부문에서 공공성의 논의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논쟁의 출발점이 되었다.
정부의 재정지출을 줄이는 전략으로 시장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국가가 하는 일을 지방으로 배분하는 지방분권도 국가 정책의 어젠다가 되어 있다.
지방분권이 행·재정의 중앙집권 체제에서 중앙정부의 하위적 위치에 있었던 지방에게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는 ‘복음’이 되고 주민이 행복 지수가 더 높아질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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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규 교육학 박사 와세다대학에서 기초교육학을 전공했으며 연구 분야는 학교제도개혁, 비교교육정책, 재일한국인 교육이다. 저서로는 『민족교육―일본의 외국인 교육정책과 재일한국인의 교육적 지위』(2017), 『교육의 대화』(2017), 『교육의 폴리틱스·이코노믹스』(2022, 세종도서 학술부문 선정)가 있다. 주요 논문은 「세계의 학교제도 연구」(2019), 「대학법인 경영구조 개선과 재정건전성 확보방안 연구」(2021) 등이 있다. |
MeCONOMY magazine May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