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이코노미뉴스 = 김소영 기자」“여러 나라를 다녀 보니까 우리나라 스켈레톤 수준이 형편없는 거예요. 실력도 장비도 없는데다 아예 선수 취급도 안 해줘요. 오기가 생겼죠.” 머리를 앞에 대고 온몸을 썰매에 맡긴 채 시속 130km의 속도로 가파른 얼음길을 내려와야 하는 스켈레톤 종목을 우리나라 올림픽 금메달 종목으로 키운 강신성 대한체육회 부회장, 공부만 빼고 모든 운동을 잘했다는 그가 이번에는 스포츠와 정치로 웃는 국민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빙판처럼 파란만장했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항저우 아시안게임 때문에 바쁘셨을 텐데 가장 가슴이 뭉클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강신성 부회장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5년 만에 열렸기 때문에 더 감격스러웠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해 열려야 했었는데 코로나-19로 지연돼 열린 것이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생각도 났고 우리 선수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기에 가슴이 벅찼지요. 무엇보다도 우리 선수들이 뛸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흥분되고 뿌듯했습니다.
Q. 어떤 경기를 직접 관람하셨는지요?
강신성 부회장 축구와 배구경기를 직접 관람했습니다. 스포츠는 매번 볼 때마다 똑같은 감정이 듭니다. 우리 선수들의 피와 땀이 만들어낸 결과이기에 감동이 다를 수 없지요. 저는 이번에 개막식이 있는 후 4일 뒤에 현지에 갔었는데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충분한 성적을 내고 있었거든요. 현지에서 육상 높이뛰기 남자 일반부 우상혁 선수와 배드민턴 안세영 선수를 만났는데 컨디션이 아주 좋아 보였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묵고 있는 선수촌에 가서 최현 선수단장과 장재근 선수촌장도 만나 뵙고 선수들과 함께 식사도 하면서 격려도 했습니다.
Q. 우리 선수들의 식사는 어땠는지요?
강신성 부회장 선수들과 점심 식사를 같이 했는데 선수촌 규모가 굉장했습니다. 관계자에게 물어보니까 약 3,000명 정도가 들어간다고 했어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전 세계의 선수들과 관계자들이 식사하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나라별 다양한 메뉴가 있었고 24시간 개방해서 선수들이 언제든지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Q.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우리 선수단의 활약을 보시고 나서 앞으로 우리나라 스포츠계가 어떻게 가야 한다고 생각하셨는지요?
강신성 부회장 한 언론사 기자가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어느 정도 성적이 나올 것 같으냐 물어보기에 욕심같아서는 2등을 하고 싶으나 중국과 일본 등과 비교했을 때 대한민국이 3위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이 통합되면서 선수들에게 많은 투자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려면 엘리트 체육보다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Q. 대한체육회 부회장은 언제 되셨고, 부회장이 6명인데 어떤 역할을 하시는지요?
강신성 부회장 올해 5월에 부회장으로 선임이 됐는데 임기가 2년입니다. 저는 동계올림픽을 맡고 있습니다. 동계는 빙상, 아이 스하키, 봅슬레이, 스켈레톤 등 7개 종목입니다. 저는 지난 18년 간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수석 부회장부터 회장까지 맡았습니다.
지난 2014년에 소치올림픽에 가보니까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는 너무 형편없었거든요.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는 꼭 봅슬레이 스켈레톤에서 금메달을 따고 말겠다, 돌아오는 길에 각오를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대한민국은 빙상이나 쇼트트랙을 빼놓고는 메달을 딸 수 없었습니다. 불모지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임원, 지도자, 선수들이 하나가 돼서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 1월1일 설날 아침에 윤성빈 선수가 스켈레톤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아시아 최초로 빙상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겁니다. 봅슬레이 4인승에서 원은용 선수가 은메달을 땄고요. 너무 감격스러워 모두가 눈물을 흘렸죠. 10년 동안 흘린 땀의 대가를 평창올림픽에서 모두 보상받았다고 해야죠.
Q. 지난 1997년 한국청년회의소 중앙회장을 하다 2012년 10월부터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회장을 하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요?
강신성 부회장 저는 운동을 참 좋아합니다. 다양한 운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역할도 맡게 된 겁니다. 우연한 기회였습니다. 체육계 어르신께서 부르시더니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을 맡아줬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능력도 그렇지만 연맹을 이끌려면 돈도 있어야 하는데 그럴 정도가 안 된다고 했었죠. 그런데도 크게 돈 쓸 일 없으니 맡으라는 겁니다. 평소 좋아했던 선배한테 회장을 맡게 하고 제가 수석부회장을 맡았습니다.
이후 해외 여러 나라를 다녀 보니까 우리나라는 정말 형편없는 겁니다. 실력도 없지, 장비도 없지, 우리 선수들을 보고 선수 취급도 안 하는 겁니다. 오기가 생겼죠. 2012년 소치올림픽에 출전하기 전 국내의 한 방송국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기에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소치올림픽에서 우리나라 봅슬레이 스켈레톤이 20위 안에 꼭 든다. 그리고 2018년 평창동계올릭픽에서는 분명히 메달을 딴다.
당시 우리나라 선수들이 출전하는 종목은 스켈레톤에 2명, 봅슬레이 2인승에 두 팀, 4인승에 한 팀이 전부였거든요. 소치올림픽에서 경험을 쌓아 평창에서 메달을 따는 게 목표였습니다. 실제로 소치올림픽 스켈레톤에서 윤성빈 선수가 스켈레톤을 시작한 지 1년 7개월 만에 16위를 했고, 봅슬레이 4인승은 20위를 기록했죠. 정말 잘 한 겁니다.
공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메달 색은 장담할 수 없으나 2개를 따겠다. 당시 기자들이 저보고 뻥치지 말라고 했어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이 금메달 하나와 은메달 하나를 땄잖아요. 동계올림픽의 어려운 점은 얼음의 강도라든가 썰매를 몇 번 탔는지에 따라서 빙판이 달라집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정말 눈물겨운 얘깁니다.
처음에는 종목조차도 생소해 선수가 없었어요. 기본 체력이 가지고 있는 레슬링을 했거나 육상을 했던 선수들 중에서 발굴해내야 했었죠. 선발전을 한 다음에는 아스팔트에서 훈련을 하거나 대관령 고개에서 훈련을 했으니까요. 로라 스케이트바퀴를 달아서 훈련을 했다면 얼마나 열악한 환경이었는지 이해가 될 겁니다. 중간에 그만둔 선수들도 참 많았어요. 미래에 대한 보장이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현재 우리 선수들에게 미래가 있냐면 그것도 아닙니다. 체육인들 중에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선수들은 몇 명을 빼고는 많은 선수들이 여전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어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가 체육에 투자를 하게 되면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데 많은 기여를 합니다. 그럼에도 운동하다가 부상을 입거나 더 큰 상심에 빠진 선수들을 케어해주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체육인들이 최소한의 생활이라도 가능하도록 국가가 세밀한 정책을 추진했으면 합니다.
Q. 올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우리나라 선수들 중 국민들에게 용기와 감동을 준 선수가 있을 텐데요. 3명을 뽑으라면 누구일까요?
강신성 부회장 육상의 우상혁 선수와 배드민턴의 안세영 선수, 탁구에 신유빈 선수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상혁 선수는 혼자서 이겨내는 특이한 선수입니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너무나 밝은 선수죠. 정말 노력을 많이 하는 선수이기도 하고요.
배드민턴의 안세영 선수는 메달을 딸 거라고 생각도 못했습니다. 대한민국 마크를 가슴에 단 국가대표로써 부상을 입었는데도 자기 역할을 다 해줌으로 힘든 시기에 우리 국민들에게 정말 큰 기쁨을 안겨줬다고 생각합니다. 신유빈 선수는 침체되어 있던 대한민국 탁구를 다시 살려 놓은 선수입니다. 과거 한국탁구는 세계를 재패할 정도로 실력이 좋았습니다만, 오랜 기간 침체되어 있었습니다. 많은 투자를 하지 못하면서 탁구가 슬럼프에 빠져 있었는데 이번에 신유빈 선수가 한국이 탁구강국이라는 것을 보여 준 겁니다.
이 외에도 한국 축구는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줬다고 봅니다. 초반에 선제골을 허락하면 이길 확률이 거의 없는 데도 이긴 겁니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와 같은 이슈들이 있는데 한일전에서 대한민국이 일본을 이김으로써 우리 국민들에게 통쾌함을 안겨줬다고 봅니다.
Q. 지난 1997년 제46대 한국청년회의소 중앙회장을 하다가 2012.10월부터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회장을 두번 하셨죠?
강신성 부회장 평소 운동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사회봉사를 많이 해오고 있습니다. 제가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회장을 3번 했는데 박근혜 정부 시절 문체부가 반대해서 그만뒀다가 다시 회장을 맡은 겁니다. 저는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습니다. 그래선지 항상 누굴 위해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주변의 추천도 있고 해서 맡게 된 겁니다.
저는 일찍이 고향에서 서울로 상경했습니다. 제가 7남매 중 6째인데 일찍이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다보니 어머니께서 아주 애지중지 키우셨지요. 그러나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요. 대신 운동에 소질이 있었죠. 제가 태어난 곳이 전북 완주군인데 너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서울로 가야겠다고 했더니 어머니께서 반대를 많이 하셨죠. 서울에 와서 취직도 해보고 안 해본 거 없이 다 해봤습니다. 그러다 군대를 가서 재대한 뒤에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게 된 거고요.
제가 오랜 기간 몸담으며 인맥을 형성한 JC(한국청년회의 소)는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활동하는 국제 청년민간봉사단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4년에 설립됐죠. 국제 우호 증진과 지역 개발 운동, 지도역량 개발 등 3대 이념의 구현을 목표로 사회에서 인맥도 넓히고 봉사하는 방법도 배우는 기회가 된 겁니다.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도 배웠고, 돈하고는 바꿀 수 없는 무형의 재산을 얻는 게 인맥이라는 것도 배웠죠.
현재 전국 16개 지구, 374개 지방회의소에 약 4만3000명에 이르는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서울 동대문 소속으로 활동하다가 1993년에 서울지역 회장과 1997년에 제46대 중앙회장을 맡아서 활동했습니다.
Q. 정치는 언제부터 하신 건가요?
강신성 부회장 기간으로 치자면 오래됐습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께서 창당한 새정치민주연합에 발기인으로 들어갔으니까요. 당시 JC에서는 문희상 전 국회의장님을 비롯해 5명 이 청년 대표로 들어갔습니다. 정당에 입당을 하게 된 건 처음이었죠. 그러다 안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러났죠. 지금은 정치거물이 된 김민석·우상호·이인영·우원식 국회의원 등과는 오랜 인연이 있습니다. 민주당 대표도 1년 6개월 했었고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2014년 3월 26일 새정치민주연합의 창당으로 사라지게 된 민주당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2014년 9월 21일에 창당했습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께서 좋아했던 민주당이라는 당명을 창당해서 박물관에 보관하든지 이름이 필요한 사람한테 주자는 취지였는데 김민석 의원을 중심으로 제가 당 대표를 맡다가 2016년 10월 19일 더불어민주당과 공식적으로 통합했습니다. 통합할 때 김민석 의원은 특보단장으로, 저는 다문화위원장으로 가게 됐는데, 이언주 의원이 탈당해 국민의힘으로 가면서 광명을 지역으로 가라는 겁니다.
당시 저는 광명에 연고가 없어서 생소했어요. 공천을 주는 줄 알았더니 경선을 하라는 겁니다. 2년 6개월 동안 열심히 조직을 관리해서 권리당원에서는 이겼는데 시민경선에서 탈락했습니다. 지금은 광명시민으로 살고 있죠. 광명은 참 따뜻한 도시입니다. 시민들과 대화하다 보면 가족같기도 하고 친구같기도 하고 알면 알수록 정이 가는 도시가 광명이죠.
Q. 최근 들어 스포츠 행정가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올림픽에서 정치와 스포츠, 혹은 스포츠와 정치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배경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강신성 부회장 건강하려면 운동해야 되고 정서적으로도 자연스럽게 문화와 체육이 하나의 예술이 되어 하나로 어우러지는 그런 거라고 봐야죠. 체육인들이나 행정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서로 하나가 되고 뭉쳐져야 건강한 행복한 삶이 되는 거니까요.
Q. 스포츠 행정가로서 개인적인 파티를 열고 5명을 초대한다면 누굴 초청하고 싶으신가요?
강신성 부회장 오랫동안 같이 했던 동료들이죠. 체육계, JC에서 활동하며 알아온 분들, 그리고 사회에서 알게 된 분들을 초청해야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이니까요. 저와 인연을 맺어온 분들은 제 삶과 맞아떨어집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여기까지 오면서 그 누구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 노력했고, 사회봉사를 통해 맺은 인맥이 정말 소중하잖아요. 스포츠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기간 한 발 한발 쌓아올려서 평창동계올림픽 신화를 만들어 냈잖아요. 지금은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 하면 ‘강신성’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지금껏 다양한 분야에서 봉사를 이어갈 올 수 있었던 건 결국 인맥입니다. 그 소중한 분들과 파티를 열어야죠.(웃음)
Q. 민간단체인 ‘탄소중립흙살리기운동본부’ 총괄단장을 맡고 계시는데 아주 중요한 시기에 출발한 이 단체를 앞으로 리드해 나가실 건가요?
강신성 부회장 우리 광명시가 올해 7월 6일에 탄소중립도시 선포식을 했습니다.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이었죠. 1.5도 기후의병운동 확산을 위한 18개동 시민단체 등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탄소중립도시 선언문도 발표를 했습니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탄소중립흙살리기운동본부’의 총괄 단장을 맡게 된 겁니다. 흙을 살리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흙이 건강하게 살아나야 탄소도 포집하고 건강한 먹거리도 생산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랜 기간 스포츠단체도 이끌었고 기업도 직접 경영해봤습니다. 흙 살리기 운동의 궁극적인 취지는 흙을 살려서 소멸되고 있는 지역으로 인구를 유입 지역을 살리자는 것과도 맞닿습니다. 앞으로 제가 속해 있는 JC 전국 조직의 회원들도 동참하도록 해서 함께 기후를 살리는 일에 힘을 보탤 예정입니다.
Q. 지역 주민과의 소통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강신성 부회장 사실 소통이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닙니다. 골목마다 다니면서 지역민들과 만나서 우리 지역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경청하는 겁니다. 현장을 돌아다녀봐야 지역에서 원하는 게 무언지도 알 수 있습니다. 시장 상인들을 만나보면 지금 경제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압니다. 광명의 미래는 소통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고물가 시대 정말 우리 국민들이 어렵습니다. 광명시는 골목상권 살리기 운동을 하면서 시청 직원들이 일주일에 한두 번은 주변 상가에서 식사하도록 하고 권장하고 있습니다. 지역화폐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정부에서 예산을 깎아서 걱정입니다. 앞으로도 귀를 열고 경청하겠습니다.
Q. 스포츠 행정가인 강 부회장님의 각오를 들려주십시오.
강신성 부회장 엘리트체육이나 생활체육을 즐기는 모든 사람들이 건강한 웃음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고자 합니다. 국민들이 즐겁고 행복하다면 최상이겠지요. 며칠 전에 광명 관내 슈퍼마켓 사장님들께서 단체로 1박2일 코스 선전지 견학을 갔습니다. 이틀 만이라도 그냥 다 잊으시고 즐겁게 보내시라고 했습니다. 우리 소상공인들이 너무 힘듭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봅니다.
개혁과 변화, 그리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의 정치 슬로건은 ‘웃는 광명을 만들자’입니다. 광명의 슬로건도 ‘웃는 광명해요’입니다. 시민들이 웃고 소상공인들이 웃는 광명을 만드는 게 제 정치적 목표입니다.
김소영 편집국장 오늘 인터뷰를 하다보니까 강신성 부회장님께서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이든 한 가지를 정상에 올려놓기가 쉽지가 않은데, 오기로 해내셔서 국민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주셨잖아요. 스포츠와 정치를 통해 웃는 국민을 꼭 만들어 주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