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역대급 ‘세수 펑크’로 지출 절감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경찰이 정치권과 정부의 눈치를 보며 ‘치안 공백’을 자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경찰청에서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경찰은 초과근무로 총 1조3407억5500만원을 집행하며 관련 예산(1조3136억여원)을 약 2%(272억여원) 초과했다.
검찰청도 지난해 초과근무로 284억458만원을 집행해 초과근무 예산을 10%가량 넘겼으며, 해양경찰청도 1759억3800만원을 초과근무 예산으로 지출하며 예산을 17%(258억4900만원)가량 초과했다.
또 소방청(지역소방서 제외) 역시 예산을 18%가량 초과한 83억7175만원을 집행했다.
이처럼 경찰청을 포함해 4개의 국가 기관이 모두 초과근무에 할당된 예산을 초과 집행했지만 공식적으로 ‘초과근무 자제령’을 내린 곳은 경찰청 한 곳 뿐으로,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기관에서 초과근무 자제령을 내린 적은 사실상 전무하다.
해경 관계자는 “초과근무 예산이 부족할 경우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불용액(집행하지 않은 예산)을 인건비로 전용해서 쓴다”며 “초과근무 자제령을 내린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경찰청 불용예산은 2022년 2201억5700만원에 달했다.
경찰청은 지난해 11월 초과근무와 자원근무를 최소화하고 휴가를 적극 권장하는 내용이 담긴 ‘경찰청 근무혁신 강화 계획’을 시·도 경찰청과 부속 기관에 하달했다.
이 계획에는 특별치안활동과 집회·시위가 많아 초과근무가 지난해보다 월평균 0.9시간 늘었으니 남은 두 달 동안 초과근무를 줄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용산서의 경우 공문을 통해 1인당 직무에 따른 초과근무 상한 시간을 명시하고 평소보다 최소 5% 감소한 수준으로 조정했다.
초과근무 시간 감축을 위한 방법으로 △가족 사랑의 날 2회 확대 △주말·공휴일 초과근무 원칙적 금지 △연가 활성화 등을 제시하기까지 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은 “경찰 수뇌부는 대통령실 입김에 미래가 결정되고 잘리면 갈 곳이 없으니 정권 바뀔 때마다 눈치 보는 게 일”이라며 “정부에서 재정건전성을 위해 긴축 기조를 강조하니 치안이고 뭐고 알아서 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초과근무 자제령도 57조 원에 달하는 역대급 세수 결손과 이를 만회하려는 정부의 은근한 예산 ‘불용’ 압박의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추경호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세수 결손을 만회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불용을 활용하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양경숙 의원은 “윤석열 정부 최악의 세수펑크 사태로 경찰 공무원들의 야근수당 지급이 제한되고 치안과 민생 공백 우려까지 발생했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기획재정부는 세수추계 정확성을 높이고 총선용 묻지마 감세를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