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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협상가와 휴리스틱스

정성봉 칼럼

성공적인 협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합리적 선택이 강조된다. 합리적 선택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의미한다. 협상가는 충동적이고 직관적이며 감정적인 의사결정이 아닌 정보에 기반한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의사결정을 하여야 한다.

 

합리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여러 가치를 비교하여 이를 명확하게 하고 우선순위를 일관되게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은 문제를 구조화하고 의사결정의 기준을 정하며 대안을 탐색하고 비교·평가하여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한 대안을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다섯 가지의 단계를 거친다.


그러나 현실 속의 협상가는 합리적 의사결정이론에 따라 판단과 의사결정을 하는 합리적 존재가 아니다. 협상가의 의사결정과 판단은 분석보다는 직관이나 어리짐작 또는 휴리스틱스 등에 의존한다. 그 결과 제한된 주의력과 기억력만을 지닌 협상가는 정보를 저장하고 추출하는 데 있어 오류를 범하기 쉽다. 협상이론 전문가들에 의하면 협상가가 이용하는 휴리스틱스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이용가능성, 대표성, 조정과 정박 휴리스틱스가 대표적이라고 한다. 

 

이용가능성 휴리스틱스(Availability heuristics)


사람들은 사례가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정도에 따라 어떤 사건의 빈도나 확률을 평가한다. 빈도가 높은 사건은 빈도가 낮은 사건에 비해 더 빠르고 유용하게 기억되기 때문에 이용가능성은 빈도나 확률을 평가하는 유용한 단서이다. 그러나 이용가능성은 빈도나 확률 이외의 다른 요소들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그 결과 이용가능성에 의지하게 되면 판단의 오류가 발생한다. 협상에서의 이용가능성은 
협상가로 하여금 두드러진 정보, 즉 쉽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례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만들어 잘못된 판단을 불러온다. 예컨대 과거에 위협 전략이 성공적이었던 사례가 잘 생각나면 현재 상황이 위협 전략이 적합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계속 위협 전략을 사용하는 경우이다. 

 

대표성 휴리스틱스(Representativeness heuristics) 


A가 분류상 B에 속할 확률은 얼마인가? A라는 사건이 B과정을 거쳐서 일어날 확률은 얼마인가? B과정이 A라는 사건을 초래할 확률은 얼마인가? 사람들은 대다수 이러한 질문에 대답할 때 대표성 휴리스틱스에 의존한다. 말하자면 A가 B를 대표하는 정도에 따라서 확률을 평가하고 그것은 A가 B와 비슷한 정도를 의미한다. 대표성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실과 다른 특성들에 근거하여 판단을 하는 현상과 관련된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 대표가 붉은 색 머리띠를 두르고 통일된 복장을 하고 협상에 임하게 되면 회사측은 과거와 같이 노조측이 무조건 강경한 입장을 고집할 것이라 예상하는 경우이다. 노조의 붉은 색 머리띠와 통일된 복장이 강경함의 표상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이나 대상을 어떤 범주가 지닌 전형적인 특징이나 외형만으로 그릇되게 판단하는 것이다.

 

정박과 조정 휴리스틱스(Anchoring & Adjustment heuristics)

 

정박과 조정은 일종의 단순화 전략(Simplifying strategy)으로서 자의적으로 선택된 기준점이 판단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이다. 한 실험에서 피실험자들은 전세계 국가 중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 수를 추측해 달라고 요구받는다. 이들은 0에서 100까지의 숫자가 적힌 원판을 돌리고 그 수가 아프리카 국가 수보다 많은지 적은지를 지적하고 숫자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결과 원판에 나온 임의의 숫자가 아프리카 국가 수를 추측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피실험자들의 예측치는 전혀 상관없는 원판의 숫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정박이라고 한다. 숫자를 마음대로 조정하도록 한 경우에도 처음의 숫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을 불충분한 조정이라고 한다. 협상에서 모두발언(Opening statement)이나 최초의 제의가 협상 결과에 미치는 커다란 영향은 정박과 그에 따른 불충분한 조정의 휴리스틱스를 보여 준다.

 

어떤 대안의 가치를 평가함에 있어 협상가들은 자신이 나름대로 알고 있는 판단 기준으로 대안에 대한 평가를 시작하고 차이가 나는 부분에 대해 조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조정은 최초의 평가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그친다. 이는 자신의 최초 판단이 타당하다고 지나치게 믿는 데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예컨대 주택매매 협상에서 어떤 사람이 이사를 가면서 급하게 싼 값에 집을 매물로 내놓아 거래가 성립되는 경우 이러한 정보가 이후의 주택 거래에 미치는 비정상적인 효과를 설명할 수 있다.

 

또한 협상가들은 흔히 최초의 결정에 정박한 채 그 결정을 합리화하려고 계속 노력하고 이러한 노력이 자신의 일관성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 결과 손실을 보면서까지 조정이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모호성과 불확실성이 큰 상황일수록 협상가들이 정박과 조정의 휴리스틱스를 사용할 가능성은 커진다.


현실 속의 문제들은 복잡하고 모호하며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사결정자는 시간제약,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 등으로 인해 모든 평가기준과 대안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실제 협상가의 행태는 합리적 선택이론에서 강조하는 합리성에서 상당히 멀어지고 협상가들은 합의안의 선택과 같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휴리스틱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장로교목사(헤브론드림교회 담임, 꽃동산교회 협동목사, 세직선 지도목사)로서 사역 중이며  Allianz 생명, 금감원을 거쳐 현재 농업정책보험금융원 투자지원센터장으로 근무 중이다. 농협은행  직원들의  협상능력  향상을 위한 교재를 저술하고 7년 이상 지도하는 데 참여하였다. 영남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후 웨스트민스터대학원대학교에서 목회학(M.Div.)과정과 고려대에서 MBA를 마친 후 미국Caroline University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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